그라이아이

김혜빈 장편소설

김혜빈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9월 14일 | ISBN 9788932042015

사양 변형판 120x188 · 284쪽 | 가격 16,000원

수상/추천: 박화성소설상

책소개

2023년 박화성소설상 당선작
아일랜드 이탄지에서 발굴된 고대 한국인 미라 백희
지상에 없는 숭고한 여정이 다시 시작된다!

2021년 시작되었던 목포문학상 장편소설상이 올해부터 ‘박화성소설상’으로 개칭되었다. 목포시와 ㈜문학과지성사가 공동 주관하는 ‘박화성소설상’은 한국 여성 작가 최초로 장편소설 『백화』를 집필한 박화성의 문학적 열정을 잇는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두 달간의 치열한 심사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수상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와 동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한 김혜빈으로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당선된 데 문학상까지 연달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단 세 장의 시놉시스만으로 이목을 이끈 작가 김혜빈은 참신한 주제 선정과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 있는 전개로 마지막까지 심사위원의 마음을 붙들었다. 아일랜드 이탄지에서 한국계 미라의 머리가 발굴되면서 시작되는 장편소설 『그라이아이』는 “이 작품의 인상적인 도입부를 잊지 못”(소설가 이기호)한다는 평과 함께 각 부가 전개될수록 점차 선명하게 확장되는 주제의식에 힘을 입어 “폭력에서 돌봄에 이르는 주제를 문제적으로 부각”(문학평론가 복도훈)시킨다는 찬사를 받으며 2023년 박화성소설상을 거머쥐었다.
책의 제목 ‘그라이아이’는 그리스어 ‘그리아이아이(Γραῖαι)’에서 비롯된 것으로 ‘하얀’ ‘늙은 여자’ ‘노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날 때부터 백발이었던 그리스로마신화 속 세 자매를 지칭하는데 각각 눈과 치아가 하나뿐이어서 번갈아가며 사용해야만 했던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어버린 소녀’라는 점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작품 속에서 자매들, 즉 여성 인물들은 자신이 무엇을 열망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사회와 집단에 의해 끊임없이 규정되고 정체성과 욕망, 꿈, 미래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다. 이는 우리의 선조이자 머리만 발견된 미라, ‘백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주나,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해온 영현 그리고 손가락이 여섯 개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서 도망쳐야만 했던 백희와 그 딸들까지 그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 책의 제목이 『그라이아이』일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방송국과 아일랜드의 연구소
폭발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1부에는 아일랜드 이탄지에서 발굴된 미라 ‘백희’를 취재하는 방송작가 주나와 다큐멘터리 PD 입봉을 앞둔 문정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학생 때부터 줄곧 단짝이었던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이지만 그 관계 속에는 분명 비정상적인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마치 가학적인 부모와 학대당하는 자식처럼 보이는 관계를 두고 그들의 선배인 차 PD는 주나에게 이 관계의 본질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으며 “한쪽이 매달리는 관계, 이건 뼈를 부수고 살을 찢는 것보다 더한 폭력”이라 말한다. 한국과 아일랜드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는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는 1부에 시선을 빼앗기게 된”(소설가 구병모)다는 평을 받은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잔혹하게 살해된 채 머리만 발굴된 백희의 존재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자 가족들과 친구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해온 ‘주나’가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에 회의를 품는 과정을 보여준다. 늘 주나를 앞에 두고 늘 술을 마시곤 했던 엄마, 가정의 평화가 깨지자 자취를 감추어버린 아빠, 하나밖에 없는 형제이지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할 수 없는 주진. 주나는 늘 사랑받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챙기지만, 끝끝내 그중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2부에서는 아일랜드에서 백희를 연구하고 그의 몸을 찾아 헤매는 유 박사와 그의 딸 영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오랜 애인 지나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영현은 간단한 심부름만 해주면 돈을 두둑하게 챙겨주겠다는 아버지의 제안에 지체 없이 아일랜드로 떠난다. 그곳에서 영현은 연구소에서 일하는 돈과 미조 그리고 MJ를 만나게 된다. ‘백희’라는 공통 분모로 만난 이들은 서로의 과거에 대해 나누면서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늘 이야기는 맴을 돌다 그치기에 이른다. 오랜 연인으로부터 사랑과 신뢰가 아닌 실망과 부채감만을 떠안게 된 MJ와 자신이 아닌 첫사랑과의 결혼을 택한 지나에 대한 원망을 떨쳐내지 못하는 영현은 점차 가까워진다. 늘 유 박사를 비롯한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맴돌아야만 했던 영현은 아일랜드 샤먼의 지목으로 백희의 몸을 찾는 일에 가담하게 된다. 그 누구로부터 존중받지 못했던 인물이 영혼을 찾는 유일한 열쇠라는 사실은 극적인 반전보다는 “인간관계 내에서 은은하게 발생하는 착취”(심완선 문학평론가)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작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특정 성별에 돌봄을 강요하고 질책하기까지 하는 사회의 모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일랜드에서 백희의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건 샤먼과 영현인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유 박사만이 중책을 맡고 있다는 것, 그가 자신의 딸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을 불러내는 일까지 부탁하는 데 필요한 건 약간의 돈과 숙식 제공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영현이 가까운 친구는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애인에게조차 화를 내거나 원망을 하지 못하는 감정 불능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백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아이, 태어남과 동시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던 백희는 자신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소년을 남편으로 맞아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결국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정처 없는 여정을 시작한 백희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남편을 잃고, 자식마저 잃어버린다. 모든 것을 잃은 그녀는 초인적인 힘으로 자신에게 닥친 역경을 하나하나 극복해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운다는 것” 자신의 눈앞에 닥친 “예정된 실패” 앞에서도 “폭발적인 에너지”(손보미 소설가)를 보여주는 백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싸우는 존재이다. 이로써 백희는 친절한 이웃이나 호기심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발굴된 존재가 아닌, 스스로 드러난 존재로 발돋움한다.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바라지 않았다. 자신의 머리로, 자신의 몸을 찾고, 다시 아이들을 찾아낼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기에.


이것은 우리들의 이야기
상처 받은 이들은 다시 싸우게 되어 있다

주나와 영 그리고 백희,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돌봄’을 강요당하고 ‘폭력’의 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끝끝내 자신 앞에 놓인 현실과 맞서기를 택한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힘이자 매력은 사회 속에서 타자화되었던 한 인물이 반드시 다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키고 그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사랑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고대 미라의 머리,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손이나 다리가 아닌 ‘머리’가 발굴되었던 것 역시 이들의 정신이 대를 이어서까지 끊기지 않고 온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편소설 『그라이아이』를 집필하기 전 작가 김혜빈의 포스트잇에는 이 여정에 관한 이야기가 분명히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세 딸들의 성장 이야기다. 폭력을 마주한 순간에도, 그들은 어떻게든 자라난다. 그 성장은 이제 다른 딸들에게 물려질 것이다.” 그 짧지 않은 여정을 작가는 한국의 방송국과 아일랜드의 이탄지에서 “현실과 환상을 횡단하며 샤먼의 복화술사 같은 환상적 이야기꾼”(우찬제 문학평론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머리가 잘린 채 잠이 든 ‘백희’를 발굴해내 얼굴에 묻어 있는 흙을 털어내고 그의 삶에 생명력을 부여한 신예 김혜빈은 폭발적인 이야기와 선명한 주제의식 그리고 사회를 꿰뚫는 첨예한 비판의식까지 다 갖추고서 자신의 장편소설 『그라이아이』를 후회 없이 완성해냈다. 지상에 없었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 책 속으로

미조는 엄마의 가냘픈 몸을 망토 위에 올려놓은 뒤, 상반신에 쌓인 진흙을 긁어냈다. 모유로 가득 찬 큰 가슴이 깡마른 몸과 대비됐다. 자매들은 엄마와 자신들의 몸을 비교했다. 엄마의 목 아래 모든 기관은 온전했다. 하지만 머리는? 머리는 어디에 있지?
어리둥절한 언니들과 달리 다운은 젖을 찾아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먹은 모유에선 흙 맛이 났다. 예상처럼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운도 언니들처럼 멍해졌다.
혹시, 머리가 있어야 맛있나?
—「프롤로그」

주나는 외신 기사를 통해 백희를 처음 봤던 순간을 떠올렸다. 발굴지는 올드 크로건맨이 발견된 미스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킬데어주의 한 이탄지였다. 어느 늦은 일요일 아침, 토탄을 캐 연료로 쓰려던 농장주가 땅 깊숙한 곳에 묻힌 백희의 머리를 지상으로 끌어 올렸다.
—「보그랜드」

산신동자를 모시는 무당의 말에 따르면 주나는 죽은 아기 오빠들에게 귀중한 것을 빼앗기고 앞으로도 빼앗길 팔자였다. 그것이 운이든 재물이든 상관없이.
“그래도 무슨 방법이든 주셔야 하지 않겠어요?”
주나 엄마는 해줄 게 없으니 그냥 돌아가라는 무당의 손을 붙들었다. 무당은 마지못해 부적 하나를 써주면서 얼마 안 되는 복이라도 잡으려면 딸의 얼굴에 있는 흉점을 모두 없애라고 조언을 덧붙였다.
주나 엄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홀로 상경한 남편을 떠올렸다. 전주 토박이로, 어릴 적부터 점이 너무 많아 점박이라 불리던 남자였다.
‘어쩌다가 내가 그런 놈을 만나서. 어쩌자고 내가 그런 잠만 많은 새끼를……’
—「꼿꼿이 서서」

머리가 도난당한 직후, 백희는 처음 발견됐을 때보다도 더 많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연구와 관련된 이들은 모두 아일랜드 현지 경찰에게 불려가 심도 있는 조사를 받아야 했다. 공교롭게도 사건이 일어난 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든 CCTV가 먹통이었고 결국 아무런 물증도 남지 않았다.
—「차량 기지」

조심스레 장치 앞에 섰다. 백희의 풍성하고 검은 머리칼이 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윤기가 났다. 백희는 고작 십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얼굴은 온통 검붉은빛이었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했다. 잠을 자듯 감긴 두 눈꺼풀이 당장이라도 열릴 것 같았다. 하지만 목 밑의 거친 절단면을 본 순간, 영은 현실로 돌아와 장치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연구가 끝나면, 이 머리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박물관에 전시되겠죠. 다른 미라들처럼.”
—「코미디언」

“어떻게 끝났는데요?”
“아름답게, 아름답게 끝났어요.”
—「앞구르기와 림보」

“백희 몸을 아직 못 찾았거든요.”
미조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유 씨의 의지에 따라 백희의 머리가 발견된 이탄지를 헤집어봤지만 의미 없는 퇴적물만 나왔다. 백희의 몸은 이탄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미 썩어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 씨는 그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종교적 제의의 희생양이었든, 원주민에 의한 처분이었든, 백희는 다른 이의 손에 살해당했다. 목 아래의 거친 절단면이 그 사실을 입증했다.
—「식물도감과 화집」

“당신들이 머리를 훔쳤습니까?”
유 씨의 울음이 멎었다. 다운은 당혹스러워했다.
“우리는 머리를 훔치지 않았습니다.”
돈은 다시 유 씨에게 물었다.
“유 박사, 당신이 머리를 훔쳤습니까?”
유 씨는 머리를 흔들면서 울었다. 영은 뒷걸음질 쳤다. 돈은 유 씨에게 책임과 평가, 막대한 손해를 이야기했다. 유 씨의 몸이 점차 작아졌다. 영은 책상 위로 카드키를 던지곤 연구실을 빠져나와 라운지를 향해 달렸다.
—「가능한 세계」

백희白曦.
흰 백, 햇빛 희. 하얀 기쁨이 아니라 흰 햇빛 같은 사람. 이제 막 떠오르는 해 같은 여자. 그러니 너는 태초의 태양처럼 순수하다는 의미라고, 누군가가 내게 속삭였다. 그 여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화목」

“너를 만난 것도 결국 늑대 덕분이야.”
그는 내게 선물했던 조약돌에 다리가 다섯 달린 늑대를 새겨주었다. 나는 그것을 소중히 쥐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진 못했지만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가장 발이 빠른 남자로 성장했다. 그의 셈에 따르면 다리 다섯 달린 늑대 덕에 이곳에 정착했으니 여섯 개의 발가락이 지닌 여자쯤은 부족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야 했다.
—「광활한 땅」

가끔은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옷을 짓는 데 필요한 물품과 목걸이, 팔찌도 훔쳤다. 그때마다 깊은 슬픔을 느꼈다. 고작 몸을 치장하기 위해 이따위 것들을 훔치다니. 도망치는 데 조금의 쓸모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있어야 당신이 버틸 수 있어.”
그가 청동으로 만든 장신구를 내 발목에 채웠다. 걸을 때면 묵직한 감촉이 살결을 간지럽혔다. 나는 그 장신구 덕분에 내게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건강한 발이 있단 사실을 매일 아침 깨달았다.
—「살육과 키스」

샤먼은 영현을 낳기도 전, 아이를 밴 몸으로 남편에게서 달아나야만 했던 순간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녀의 남편은 어린 소녀였던 샤먼을 납치해 억지로 결혼한 이후 내내 집 안에 가둬두었다. 샤먼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물론, 1년 중 반을 집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남편은 샤먼의 아름다운 얼굴과 그녀가 지닌 신비한 능력을 마음에 들어 했다. 곧 태어날 영현 역시 그의 훌륭한 소유물 중 하나였다. 그러니 샤먼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에게서 달아나 딸을 최대한 멀리, 남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버리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영현이 돌아왔으니 과거의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된 것이다.
—「농후한 세계」

스며들고 있다.
시간이, 퇴적물이, 생명체들이.

*

머리가 잘린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품위가 폭력에 의해 폄하되지 않는 세상을, 수많은 비관에도 사라지지 않는 낙관을 꿈꾸며, 내가 배운 모든 것들을 아이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투쟁이다.

—「에필로그」


■ 작가의 말

사람에게 다가서는 방법을 알지 못해 시작했던 글쓰기가 이토록 오래 저를 지탱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을 사랑해서 시작했으니 그 끝 역시 사랑이길 바랍니다. 마음을 한껏 표현하기 위해 이모티콘을 쓰고, 월요일을 싫어하면서도 꿋꿋이 일어나고, 때로는 술과 음식, 취미에 마음껏 몸을 던지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이 주인공이라는 말보다, 부디 행복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무책임한 위로와 쓸쓸함 사이에서 분투 중인 내게 오늘을 왜 살아내야 하느냐고 그래도 물으신다면, 그것은 불어오는 바람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불고, 아마 내일도 바람이 불 것입니다. 기압 차이로 인해 공기가 움직이는 단순한 기상현상이 때때로 우리를 살립니다. 어쨌든 바람은 바람인 것입니다.
봄과 가을은 해가 갈수록 짧아지고 혹독한 여름과 겨울은 늘어나고, 아무래도 이 세상에 남은 희망은 없어 보이겠지만 바람은 여전히 불어옵니다.
웅크렸던 어깨를 반듯하게 펴고 오늘을 버텨낸다면, 다음 작품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저는 그사이 오늘의 기온을 확인하고 강아지에게 밥을 준 뒤, 또 다른 이야기를 열심히 적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계속합시다.
끝내지 말고, 계속 바람이 부는 곳을 찾아 서봅시다.

오늘도 꼭 안녕하시기를. 사랑하는 R과 B의 곁에서 인사를 보내봅니다.

안녕!

목차

■ 차례

프롤로그

1부 주나
2부 영
3부 백희

에필로그
작가의 말

작가 소개

김혜빈 지음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캐리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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