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숙명

홍정선 유고비평집

홍정선 지음 | 정과리 책임편집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8월 21일 | ISBN 9788932041971

사양 변형판 140x211 · 434쪽 | 가격 26,000원

책소개

‘온몸’으로 문학과 합동해온
문학평론가 홍정선(1953~2022) 유고비평집

탁월한 통찰력과 인문학적인 시선을 바탕으로 일평생 문학적 실천에 주력한 문학평론가 홍정선(1953~2022)의 1주기를 맞아 유고비평집 『비평의 숙명』이 출간되었다. 홍정선 선생이 생전에 준비하던 비평집 원고와 사후에 새로 발견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발표 이후에도 자신이 쓴 글들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한편 원고에 대해 명확하게 말을 남기지 않았던 고인의 작업 방식을 고려하여 이본(異本)이 많은 경우 가장 나중에 수정한 원고를 최종본으로 삼았고 두 개의 글을 합성한 경우 이를 완성본으로 간주하였다. 또 세미나나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것보다는 ‘글’로서 출판된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홍정선은 『역사적 삶과 비평』(1986) 『인문학으로서의 문학』(2008) 등 유의미한 저서를 남긴 성실한 문학평론가였고, 대학 교정에서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였으며, 중국의 문인‧학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굉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한‧중 문학 교류의 선구자였다. 또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문학과지성사 대표이사를 지내고, 별세하기 직전까지 이청준기념사업회와 팔봉비평문학상 운영에 관여하는 등 글 외의 차원에서도 문학에 헌신하였다. 그야말로 삶의 모든 면이 “문학과의 ‘온몸’의 합동”(문학평론가 정과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홍정선의 비평을 읽는 일이 그의 생애를 추모하는 일과 맞닿아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순수한 기쁨의 비평으로 그러모은
문학적 생애의 궤적들

『비평의 숙명』의 책임 편집은 홍정선과 문학적‧인간적으로 연이 깊은 문학평론가 정과리가 맡았다. 정과리는 홍정선의 작고 후 “마지막 친구를 잃었다는 생각이 처절한 실감이 되어” “가슴이 뜯겨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도, “나에게는 이제 그를 냉정하게 복기하는 일만 남았다. 그것만이 우리의 우정의 의미를 밝혀줄 것”(「정선 형, 이건 애도가 아니라 곡성이구려」, 『문학과사회』 2022년 겨울호)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그는 단순히 유고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에서 나아가, 책머리의 글 「일하는 기쁨의 비평적 변용」을 통해 문우(文友)로서 고인의 발자취를 돌이켜 본다.
정과리는 「일하는 기쁨의 비평적 변용」에서 홍정선의 삶의 세목을 전반적인 생애, 사회적 경력, 문학평론가로서의 이력, 문학사업가로서의 경력, 문학 교류 매개자로서의 활약까지, 크게 다섯 가지의 운동 궤적으로 나누어 꼼꼼하게 톺아보며, 홍정선을 이토록 치열하게 움직이도록 이끈 동력으로 ‘순수한 일의 기쁨’에 주목한다. 홍정선의 행보 곳곳에서 엿보인 순진무구한 진심에 대해 증언하며 그가 문학인으로서 남긴 활약은 곧 “‘스스로 합목적적인’ 행위, 아니 차라리 ‘무목적적인’ 자세”였다고 평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유의 문학관이 그의 비평 세계로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짚음으로써 홍정선의 인생 궤도들이 그리는 타원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로 비평임을 환기한다. 그렇게 고인의 순수함과 닮은 맑은 우정의 마음으로, 또 고인의 진중함과 닮은 웅숭깊은 문인의 마음으로, “홍정선의 비평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할 날을 위해” “제주(祭酒) 한 잔”을 바친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자”
비평의 숙명, 숙명의 비평

비평의 출발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한 작품 읽기이다. 비평은 동시대의 독자들로 하여금 작품에 대해 더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책임이 있으며, 자기 행위의 가치와 의미를 동시대의 작품 속에서 입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비평가는 작품을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작품에 대해 공감의 시각이나 비판의 시각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냉혹하고 잔인한 눈길로 작품을 뚫어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_「비평의 숙명으로서의 작품 읽기」

홍정선은 그 누구보다 비평의 역할과 소명을 잘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 문학평론가였다. 그에게 있어 비평이란 “동시대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는 장르”였고, 이에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작가들의 작품 읽기를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시대 문학에 대한 책임감을 토대로 치밀하게 텍스트를 분석하여 그 의미를 발굴해냈으며, 그와 동시에 너른 시선으로 각 작품이 놓여 있는 맥락과 흐름을 살폈다. 비평이 품고 있는 숙명이 무엇인지 깨달은 이상, 비평은 곧 그의 숙명이 되었으리라.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비평으로 그의 문학적 인생을 모을 때만이 그 의미의 진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문학평론가 정과리)다.
『비평의 숙명』에는 40년간 이어진 홍정선의 문학적 생애의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스물네 편의 비평이 묶였다. 글의 차례는 고인이 생전에 정리해놓은 순서를 따르되 큰 주제에 따라 총 다섯 개의 부로 나눴다. 1부와 2부는 시인과 시집에 대한 비평으로 꾸려졌다. 1부에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근대시 작품들에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한편 이상, 이상화, 김영랑, 백석, 윤동주, 유치환 문학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며, 2부에서는 정일근, 황동규, 김경미, 류근 등 현대 시인들의 시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다. 3부를 채우고 있는 것은 소설론으로, 염상섭과 이청준의 문학사적 위치를 점검하고 이병주, 김원일, 박상우의 작품들을 면밀하게 다룬다. 4부에서는 비평과 연구에 대한 소신을 밝히며 해방기 시문학과 친일 시비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으며, 5부에서는 한‧중 문학의 현황과 지향점을 구술함으로써 번역 윤리 실천과 비교 연구 및 학문 교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 책 속으로

시를 이해하는 데 독자의 직접 경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직접적 경험 없이도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러나 김소월의 「옷과 밥과 자유」를 읽으면서, 당시의 의식주 생활을 체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는 이해의 깊이와 정서적 공감 정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 시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 질문이다. 우리는 시 교육의 측면에서도, 인문 교육의 측면에서도 과거의 문화적 기반을 이루는 전통사회가 붕괴되고 일상적 삶으로부터 얻는 경험적 지식이 사라져가는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해보아야 할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모르는 것을 낯설게 여기고, 낯선 것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드러내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본능이 습관화되기 전에,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과거의 시를 어떤 방식으로 올바르게 이해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소중하게 이어받아야 할 유산과 버려야 할 인습을 선택하는 문제를 젊은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_「일상적 삶의 변화와 시 읽기의 어려움」

이청준은 고향 사람들이 어떤 허물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던 태도, 자신의 출생이 남루한 데에서 비롯된 “내 탓입니다”로 돌리던 그 태도를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에 대한 보편적 ‘피의자 의식’으로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이청준의 초기 대표작인 『소문의 벽』 『조율사』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 등이 탄생했습니다. 가난이 원죄처럼 따라다니며 소설가를 ‘피의자’로 만드는 모습을 소설의 서술 방식과 주인공의 의식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들은 우리나라 국민 모두를 일종의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던 당시의 권력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자, 까닭 없이 스스로를 죄인으로 간주하며 살아야 하는 폭력적 시대에 대한 용기 있는 항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렇게 이청준이 장흥에서 체험했던 가난과, 허기와, 죄의식과 부끄러움은 여느 지역의 사람들이 체험했던 동일한 체험과는 달리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기억하는 보편성을 획득했습니다.
_「유년기의 한스러움과 고향으로 가는 힘든 여정」

청마 유치환은 혼란스러운 해방기와 자유당 정권의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하던 1950년대 후반기에 누구보다 용기 있게 시적 저항을 펼쳤던 시인이었다. 예언자적인 목소리로 거리낌 없이 분노를 표출하고 질타를 가하던 시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용기 있고 강직한 문화인의 표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 그가 쓴 저항과 분노의 시들이 시로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면, 아마도 그에 대한 우리의 존경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지금 우리가 청마를 독립운동가 유치환이 아니라 시인 유치환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실에서 잘 알 수 있다. [……] 청마는 우리 문학사에서 인격과 작품이 일치하는, 드문 경우였다. 시는 곧 진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시를 쓴 사람이었다. 자신의 시와 이름을 동일시한 사람이었다. 그런 청마를 향해 사실로 입증되지 않은 친일 문제를 거론하며 과격한 인격적 모욕을 가하는 일은 비극적이다. 한국문학사의 의미와 가치는 중요한 작가를 올바르게 존경하는 자세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다.
_「청마 유치환을 향한 친일 의혹, 그 문제점에 대하여」

수교 후 1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다른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 밀접해지고 친밀해졌습니다. 무역, 관광, 유학, 문화 교류 등, 모든 부면에서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관계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이런 추세는 문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
그렇지만 이렇게 빠르게 급성장한 중국어 번역은 양적 팽창에 따르게 마련인 질적 측면의 부정적 요소를 이곳저곳에서 노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가벼운 대중문학 작품이 번역되는 데 따르는 양국의 부정적 시선, 허황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중국에서는 쉽게 자비출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토, 서툰 초보자를 값싸게 고용한 결과 번안에 가까워진 번역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수많은 부정적 요소들을 한국의 훌륭한 문학작품이 중국에 번역 소개되는 과정에 불가피하게 따르는 부차적인 요소로 만들면서 전진해나가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_「중국에서의 한국문학 번역 출판의 현황과 문제점」

목차

■ 차례

책을 펴내며
일하는 기쁨의 비평적 변용 | 정과리

1부
일상적 삶의 변화와 시 읽기의 어려움
동아세아적 전통과 진정한 근대인의 길—이상의 경우를 중심으로
봄을 노래한 시와 인문주의적 시 읽기—이상화와 김영랑 읽기
민족의 시원을 향한 시인의 눈길—백석의 시
윤동주 문학과 초월적 상상력의 기반에 대하여
아, 청마! 그 의지와 사랑의 열렬함이여!

2부
시, 상처를 다스리는 신음 소리—정일근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몸과 더불어 사는 기쁨—황동규의 『사는 기쁨』
‘나’라는 이상함, 혹은 불편하게 살아가기—김경미의 『밤의 입국 심사』
상흔의 세월과 홀로 당당해지려는 의지—류근의 『어떻게든 이별』

3부
시대에 대한 통찰과 내면세계의 확장—염상섭의 「만세전」과 『삼대』 읽기
이청준 문학의 근원을 찾아서—소설의 원형, 원형의 소설 형식에 대한 고찰
유년기의 한스러움과 고향으로 가는 힘든 여정—이청준의 경우
역사에 대한 회의와 ‘기록’으로서의 소설—이병주의 경우
소설가의 성숙과 주인공의 성장—김원일의 『늘푸른 소나무』
낯설고 위험한 소설 앞에서—박상우의 『비밀 문장』

4부
비평의 숙명으로서의 작품 읽기
문학 교과서와 친일 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해방기 시문학 연구에 나타난 문제점과 향후의 과제
청마 유치환을 향한 친일 의혹, 그 문제점에 대하여

5부
중국에서의 한국문학 번역 출판의 현황과 문제점
번역의 이상과 현실
한국문학과 외국 문학의 관계―과거‧현재‧미래
한‧중 문화의 이질성과 동질성에 대하여―비교 연구를 위한 몇 가지 단상

홍정선(洪廷善) 연보
수록 글 발표 지면

작가 소개

홍정선 지음

홍정선은 1953년 예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2년 『문학의 시대를 창간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역사적 삶과 비평』(1986)『신열하일기』(1993)『카프와 북한 문학』(2008)『프로메테우스의 세월』(2008)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문학상(신인상)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정과리 책임편집

1958년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조세희론」으로 입선하며 평단에 나왔다. 저서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존재의 변증법 2』(1986),『스밈과 짜임』(1988),『문명의 배꼽』(1998), 『무덤 속의 마젤란』(1999),『문학이라는 것의 욕망─존재의 변증법 4 』(2005),『문신공방 하나』(2005),『네안데르탈인의 귀환─소설의 문법』(2008), 『네안데르탈인의 귀향─내가 사랑한 시인들·처음』(2008) ,『글숨의 광합성─한국 소설의 내밀한 충동들』(2009) 등이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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