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과 수갑

— 긴급조치 시대의 한국 소설

김형중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8월 10일 | ISBN 9788932041964

사양 변형판 140x210 · 285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개발독재, 급속근대화, 한강의 기적, 군사독재
푸코의 권력이론으로 읽는 한국문학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김형중의 비평집 『제복과 수갑-긴급조치 시대의 한국 소설』(문학과지성사, 2023)이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의 한가운데서 꾸준한 저작 활동을 해온 저자는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비평에서의 자기 영역을 끊임없이 개진해왔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가 식민지 시기부터 지금의 분단국이 형성되기까지 단 한 번도 ‘예외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집중하여, 이를 푸코의 ‘생명권력’에 입각해 다채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특히 ‘한강의 기적’이라는 구호 아래 기형적인 성장을 일궈낸 1970년대를 중심으로 개발독재, 군사독재, 급속근대화가 이루어졌던 배경과 그 이후에 남은 병폐를 짚어나간다.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1960년대부터 팬데믹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문학사에서 깊이 다루지 않았던 작가를 조명하는 건 물론, 발표 이후 단일한 연구 방법으로만 분석되어온 작품을 다각도로 살펴보는 과정은 고속도로 발전한 한국 사회의 성장 이면을 해체하는 과정이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작품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역사, 경제, 정치를 말할 때면 빠지지 않고 1960~70년대가 소환된다. 각자의 삶의 궤적에 따라 혹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달리 일컫는 시대.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묵살되어왔던 개인의 삶을 이 책은 푸코의 권력이론을 발판 삼아 세심하게 분석해나간다. 오랜 시간 문학장의 중심에서 한국사에 한국문학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분석으로 자기만의 비평을 이어온 작가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부터 자신이 푸코의 권력이론에 매료되었음을 밝힌다. 푸코의 생명권력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의 권력이 이전 시대와는 확연하게 다름을 우선으로 한다. 이전 시대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전략을 고수한 근대 권력은 개인 단위가 아닌 인구 단위의 대규모 집단의 질서를 구축하고 창조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즉 개인이라는 자원을 국가 질서에 개입시키기 위해 보다 더 효율적으로 길들이는 것이다. 이는 이 책에서도 여러 번 소환되는 박정희의 독재정치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모두 “온 국민을 같은 시간에 깨우고 같은 시간에 귀가시키고 비슷한 노래를 듣게 하”는 게 당연하듯 용인되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거대한 정치권력에 조직적으로 길들어진 개인의 삶과 욕망은 찾아볼 수 없다. 혹은 이름만 남기고 그 행적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듯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번뇌하는 개인을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가. 저자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문학작품이다.


전쟁이 아닌 실직에 고통받는 사람들
1960년대 한국 소설

저자는 그동안 문학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1960년대 소설에 대해 조명하면서 예로 든 작품을 괴테의 『파우스트』와 병치해 혼란스러운 시대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번뇌와 고통에 대해 보여준다. 즉 한국의 개발독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1960~70년대의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을 ‘사이비 파우스트’에 맞선 기록물들로 새로이 분석해낸다. 이렇듯 1960년대 한국문학을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50년대와 개발독재와 민중의 현실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 70년대의 가교 구실에서 벗어나 그 시대만의 특수한 문학사상을 짚어낸 것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그간의 문학사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은 김광식과 김동립의 작품 세계를 다루는데, 여기서는 전쟁의 상흔이 아닌 이후 작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국적 모더니티’에 집중한다. 이제 더는 전쟁의 트라우마가 아닌 ‘근대의 공포’가 자리 잡은 시대적 변화를 꼬집는 것이다. 이러한 변모를 잘 드러내는 김광식의 단편 「213호 주택」(1956)은 일종의 강박신경증을 앓는 주인공 김명학의 의미 없이 반복되는 행위와 정확성에 집착하는 태도는 ‘전쟁’이 아닌 ‘실직’에 고통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전쟁이 아닌 이제 막 산업사회를 맞이한 한국의 자본주의적 일상을 보여준다.
김광식, 김동립이 60년대 소설의 징후를 보여주었다면 사회의 규율과 현대인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확장한 작가는 남정현이다.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반미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반미문학의 효시로 불리는 「분지」(1965)를 중심으로 그동안 남정현 작품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정신분석학적 연구 방법을 대입시킨다. 그간 남정현의 소설이 반미문학, 풍자문학이라는 평 외에는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남정현의 작품에 정신병리적 상태에 놓인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소설이 없다는 것을 짚어낸다. 망상과 편집증부터 여러 도착적 증세와 강박에 시달리는 남정현의 작품은 “다양한 신경증 징후들의 진열장”이라 해도 될 정도로 그 모습이 다양한데, 그중 허허 선생(「허허 선생」 연작)은 자신의 안전이 침해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 채 수많은 개를 기르고 위험한 상황에서 움직일 수 있는 집을 만들고, 땅굴을 파는 것과 같은 태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이처럼 남정현의 작품 속 인물들의 과대망상과 강박증은 당시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사대주의와 정치적 부패를 공격적으로 풍자하는 데 성공한다.


산업화의 전말은 소외된 도시인
1970년대 한국 소설

박정희 집권 당시 대한민국은 권력이 국가 건설에 필요한 개인과 인구 질서를 조형하는 생명권력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어왔다. 그중 광주대단지사건은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 행정에 반발하여 시민들이 도시를 점거한 빈민항거운동으로 가까스로 정부의 입장 변화를 끌어내긴 했지만 ‘단순 폭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당시 경기도 광주(지금의 성남)에서 교직 생활을 하던 윤흥길은 자신이 가르치는 한 여학생의 우울한 얼굴과 예비군 훈련장에서 광주대단지사건의 당사자를 만난 것을 계기로 이 사건을 더 알리기 위해 교편을 내려놓고 집필을 시작한다. 그 작품이 바로 사건의 전말을 서술하며 문학으로서 역사를 기록한,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1977)이다. 민중문학을 예비한 예언적 작품인 동시에 산업화 시대 한국의 소시민들의 세계를 예리하게 묘파한 이 작품은 순박한 시민 ‘권기용’과 병든 지식인 ‘오 선생’을 주축으로 여러 해석과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김형중은 이 연작의 주요 인물이 둘이 아닌 셋임을 강조하며 제3의 인물 민도식을 소환한다. 1980년대 한국의 문학사는 민도식의 의미화를 뒤로해왔다. 당시 강제이주를 당한 철거민들이 주권 없는 난민 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민도식이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냉정하기만 하다. 김형중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도시 봉기이자 박정희 개발독재권력의 성격을 보여주는 광주대단지사건을 대척점에 서 있는 시민과 지식인을 통해 보여주는 게 아니라 모진 시련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끊임없이 말하려 했던 각각의 인물에 더 탐구해야 하는 이유이다.
1970년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작가로는 최인훈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최인훈은 “당시 주류 소설과 달리 한국의 모더니티를 개인심리와 일상의 관점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타인의 방」은 아내가 외출한 사이 출장에서 돌아온 남자가 사물로 변한다는 단순한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이때 수많은 사물이 남자에게 말을 걸고 반대로 남자는 점점 사물처럼 굳어간다는 설정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모던하고 감각적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아파트’와 같은 상징 최인훈 소설을 읽는 것도 하나의 독법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최인훈이 「타인의 방」 외에도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위대한 유산」 「깊고 푸른 밤」 같은 문제작을 발표했다는 것에 집중해 그의 작품이 너무도 선구적인 탓에 당시 한국의 문학장에서 그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적절하게 대응할 개념적 도구나 패러다임이 부재했음을 짚어낸다.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여전히 불안을 먹고사는 사회

책은 1970년대를 지나 80년대, 90년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 작품에서 나타나는 ‘생명권력’의 그늘을 조명한다. 단순히 시대의 흐름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 국민이 통제된 생활을 해야만 했던 코로나19에 대해서도 되짚는다. 한국은 팬데믹 당시 철저한 확진자 이동 경로 탐색과 실시간 데이터 공유로 잠시나마 과학 방역의 성공을 경험하는 듯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개인위생에 철저히 신경을 썼으며 정부와 지자체 역시 개인의 작은 움직임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이렇듯 대한민국이 대규모 인구 단위의 통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일찍이 일제의 위생경찰 제도와 박정희 정권 주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근대 권력 주도하에 우리는 주체성을 가진 한 개인이 아닌 보다 정확한 생산성을 가진 시민으로 존재해야만 했다. 한국 사회의 ‘생명권력’은 전쟁의 불안, 자본주의 불안, 도시화의 불안, 질병의 불안과 함께 변화해왔고 이와 함께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의 심기증은 더욱더 극심한 형태로 그려졌다. 이 책의 마지막 차례인 「심기증(Hypochondria) 시대」에 “자본은 심기증을 먹고산다. 그리고 먹이를 쉽게 놓아주는 것은 자본의 생리가 아니다”라는 평론가 김형중의 말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책 속으로

근래 한국 지식계에 중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며 소개된 ‘생명권력’ 혹은 ‘생명정치’의 관점(카를 슈미트,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미셸 푸코, 조르조 아감벤 등이 이 새로운 권력이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름들이다)에서 볼 때, ‘산업화’와 ‘개발독재’란 말은 재정의되어야 할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이 시대가 아감벤이 말하는 소위 ‘항상적 예외상태’의 시대였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1960~70년대 한국의 정치 상황을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재고해보고자 한다.
한국의 1960~70년대와 생명정치

19세기의 위대한 모더니스트들에게서 보이는 생산과 파괴의 변증법, 즉 ‘둘 다/모두’의 태도는 20세기에 이르면 ‘둘 중 하나/또는’의 태도에 의해 대체된다. 근대는 지독한 부정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분별없는 찬양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전자의 태도야말로 김광식, 김동립, 남정현의 소설이 공히 취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 사이비 파우스트의 시대 초입에서 그것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병리적일 정도로 격렬하게 부정할 뿐 그것이 가져다줄 비극적 풍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근대에 대한 파우스트의 양가적 태도, 그 비극적 풍모가 그들에게는 부재한다.
파우스트의 시대— 김광식·김동립·남정현·박태순·김정한 소설 재론

남정현 소설에서 에이런 유형의 인물들은 대개가 무위도식자이거나, 현실부적응자,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자로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잃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관계로 이들 유형의 인물들에게서는 안전이나 위생에 대한 불안과 강박증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 그들에게는 이 땅이 총체적으로 부정적이기만 한 관계로 대한민국이 아니면 어디가 되었건 떠나기를 바라마지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증상이 가급적 현재의 공간을 유지하고, 지키고, 보존하고자 하는 알라존들의 안전강박증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는 점이다. 기득권층에 속하는 알라존 유형의 인물들이 과장되게, 신경증적으로 현상태를 유지하고자 함으로써 풍자의 대상이 되는 반면 이들 가진 것 없는 에이런 유형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상태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풍자와 정신병리— 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

이른바 ‘규율권력’이 주권 권력을 제치고 권력의 지배소 자리를 점유하던 시기에 정신의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등장한 것은 따라서 우연이 아니다. 정신의학은 의학의 이름으로 개인의 신체에 규율을 부과할 권리를 생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적인 것을 광기에 부과하는 추가적 권력”이 바로 정신의학이다. 이 말을 뒤집어도 무방한데, 실은 정신의학은 광기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광기를 생산하다.
풍자와 정신병리— 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와 권력의 테크놀로지

1960년 스무 살의 나이에 4·19혁명을 맞이했고, 다음 해 곧장 5·16의 좌절을 경험해야 했던 김승옥과 그의 세대 작가들이 부딪혀야 했던 첫번째 질문은, 아마도 ‘4·19냐 5·16이냐’라는 선택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도 역시 선택의 여지는 없었는데, 4·19는 미완의 혁명으로 끝났고 5·16은 기나긴 군사 독재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훼손된 4·19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었고 개발독재는 이제 비가역적으로 성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강요당한 선택— 김승옥의 1960년대 중·단편 소설 재론

물론 박정희 시절의 국가 권력이 오로지 주권권력의 성격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박정희는 초법적 주권자였을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같은 시간에 깨우고 같은 시간에 귀가시키고 비슷한 노래를 듣게 하고 비슷한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머리 길이와 치마 길이를 유지하게 하려고 시도했던, 아주 촘촘한 규율권력의 수립자이기도 했다. 이 점이 1960~70년대 한국 사회의 권력이 가진 복합적이고 특수한 성격이기도 한데, 민도식이 불안에 가득 찬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민도식의 해방—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에 나타난 권력의 양상

물론 이때의 ‘생물학적 단위 집단’이란 벌거벗은 생명체들의 덩어리로 환원된 집단, 곧 ‘인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주의 시대의 주권 권력이 “죽이거나 살게 놔두는” 권력이라면 근대 생명정치의 권력은 “살리거나 죽게 놔두는” 권력이다.
난민들의 문학사— ‘광주 대단지 사건’과 생명정치 시대의 한국문학

푸코와 아감벤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1970년대는 그야말로 항상적인 예외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생명권력이 그 지배를 철저하게 관철시킨 전형적인 사례로 거론될 만하다. 그리고 최인호의 「견습환자」가 예견하고 경고한 것이 바로 그와 같은 사태였다. 그의 비극적 세계 인식은 이제 권력이 공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까지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리하여 권력의 바깥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로부터 비롯된다.
긴급조치 시대의 호모 사케르— 최인호의 중·단편 소설 재론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인간은 자기보존 본능의 노예다. 그럴 때 절대적 외부에서 들이닥치는 타자(사건, 이방인, 몫이 없는 자)를 환대하는 일은 바로 그 ‘자기임’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는 일에 내기를 거는 행위이다. 혹자는 이즈음의 한국 소설이 고통을 과장함으로써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알리바이를 고안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실은 타자 윤리는 그런 식으로 자기 윤리를 동반한다. 타자를 환대할 수 없음의 고통이 자기 윤리의 기반이다.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을 찾아서—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 통치성

저 문장들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는 물론 아주 위생적인 세계다. 안전한 세계이고, 장수하는 세계일 것이다. 그러나 또한 오로지 살아 있는 것이 목적일 뿐(무미건조하게 오래 사는 것과 의미 있게 일찍 죽는 것 중 어떤 것이 나은 것인지도 의학이나 다른 학문에 의해 증명되지 않았다. 물론 삶의 ‘의미’란 것의 정체도 마찬가지다), 충동적인 모험도, 격렬한 사랑도, 얼마간의 부주의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세계일 것이다.
마스크 쓴 사회— ‘코로나 19’ 시대에 대한 메모들

세월호 참사는 문학장 내외를 불문하고 거의 전 국민을 우울증 상태로 몰아넣은 집단적 트라우마였고,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이 나라의 얼마나 많은 여성이 일상적인 성추행과 성폭행 속에서 ‘PTSD’ 상태를 겪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이후로 한국문학은 이 문제에 무감할 수 없었다. 소설이 이제 PTSD를 앓아야 할 참이었고, 실제로 많은 문인이 바로 그런 상태로 글을 쓰고 시위에 참여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당사자들의 치유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여기에 더해 페미니즘 리부트 운동이 가속화되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윤리’와 ‘정치적 올바름 ’ ‘정체성 정치’의 시대를 살고 있다.
PESD와 ICD

자본은 심기증을 먹고 산다. 그리고 먹이를 쉽게 놓아주는 것은 자본의 생리가 아니다.
심기증(Hypochondria) 시대

오늘날 한국은 참 이상한 나라다. 그리고 그것을 뭐라고 부르건 ‘이상함’의 기원으로 1960~70년대가 소환되는 일이 잦다. 그 시절을 일컫는 이름은 제각각이다. 개발독재, 급속근대화, 한강의 기적, 군사독재 등등.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겨왔고, 그래서 그 시절을 얼마간의 분노를 섞어 ‘극악한’ 한국식 천민자본주의의 시발점으로 여겨왔다. 그러다 푸코를 읽었고 그의 권력이론에 매료되었다. 그에게서 작금의 전 지구적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어떤 전망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 주변의 몇몇 ‘생명권력’론자들로부터 나는 작금의 세계를, 1960년대 이래의 한국 사회를 가장 세심하게 분석할 수 있는 어떤 이론적 가능성을 보기는 했다. 그렇다고 여기 실은 내 글들이 196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에 대해 탁월한 푸코주의적 통찰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불성설이다. 내게는 그런 능력도 그럴 의사도 없다. 철들고 나서부터 오로지 문학과 함께 살았으니, 나는 그저 틈나는 대로 한국의 문학사를, 최근의 문학 작품들을 푸코와 그의 동료들이 가르쳐준 바에 따라 읽고, 몇 자씩 글로 남겼다.
‘마치며’에서

목차

■ 차례

1부 프롤로그
한국의 1960~70년대와 생명정치 9

2부 생명권력과 문학사
파우스트의 시대 31
—김광식·김동립·남정현·박태순·김정한 소설 재론

풍자와 정신병리 1 59
—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

풍자와 정신병리 2 86
—남정현 소설에 나타난 정신병리와 권력의 테크놀로지

강요당한 선택 106
—김승옥의 1960년대 중·단편 소설 재론

민도식의 해방 129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연작에 나타난 권력의 양상

난민들의 문학사 154
—‘광주 대단지 사건’과 생명정치 시대의 한국문학

긴급조치 시대의 호모 사케르 180
—최인호의 중·단편 소설 재론

3부 팬데믹 이후
다시 포스트모더니즘을 찾아서 199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 통치성

마스크 쓴 사회 220
—‘코로나 19’ 시대에 대한 메모들

PESD와 ICD 242

4부 에필로그
심기증(Hypochondria) 시대 269

마치며 284

작가 소개

김형중 지음

1968년 광주에서 태어나 전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비평집으로 『켄타우로스의 비평』 『변장한 유토피아』 『단 한 권의 책』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후르비네크의 혀』 등이, 산문집으로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사라지는 것들에 기대다』(공저)가, 엮은 책으로 『한국 문학의 가능성』 『무한텍스트로서의 5‧18』 등이 있다. 소천비평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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