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닌

Pnin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 김정아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7월 28일 | ISBN 9788932041926

사양 변형판 125x1922 · 304쪽 | 가격 17,000원

책소개

“나보코프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코믹하고 가장 애달프고 가장 단순한 소설이다.”
―브라이언 보이드(오클랜드 대학교 석좌교수, 나보코프 연구자)

“나보코프가 가장 유명해진 책은 『롤리타』이지만
독특하고 독창성 있는 작가로서, 망명 작가가 아닌 미국인으로서
명성을 처음으로 얻은 것은 『프닌』이다.”
―데이비드 로지(소설가, 비평가)

나보코프 최초의 베스트셀러 『프닌』 국내 초역 출간

“영광스럽게도 나보코프는 우리 언어를 써서 그것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앤서니 버지스(『시계태엽 오렌지』 작가)

나보코프 특유의 미학과 소설 기법이 응축된 장편소설 『프닌』이 미국에서 출간된 지 65년여 만에 드디어 문학과지성사에서 초역 출간되었다.
나보코프가 코넬 대학 재직 중 『롤리타』를 완성하기 위해 무급 안식년을 보내던 1953년 11월, 『뉴요커』에 「프닌」이라는 제목의 소품이 실렸다. 그 뒤로 세 편의 글이 더 연재되었고 이 글들을 모은 데서 출발한 『프닌』은 『롤리타』와 비슷한 시기에 마무리되었다. 『롤리타』는 미국에서 사실상 출판이 금지되어 1955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되었고 『프닌』도 연이어 퇴짜를 맞았다. 『프닌』은 1957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나보코프가 미국에 정착한 이래 세번째로 출간한 영어 소설이 되었다. 출간 2주 만에 3쇄를 찍는 성과를 냈지만, 1958년에 결국 미국에서 출간된 『롤리타』가 폭발적 성공을 거두면서 『프닌』은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
『프닌』은 소품이라는 이유로 처음에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보코프를 단순한 망명 작가가 아닌 독창적인 작가로 각인시키는 작품이 되었다. 나보코프는 이 작품을 “『롤리타』의 참을 수 없는 마력을 벗어나 잠시 환한 곳으로 탈출하는” 글이라고 언급했고, 자신의 모든 소설 캐릭터 가운데 프닌을 인간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두번째가 롤리타).


망명자 프닌, 캠퍼스의 작은 세계에 도착하다

“나보코프는 소설의 기법적 트릭에 완전히 통달했고 자신의 고유함을 창안했다.”
―피터 애크로이드(소설가, 평론가)

“상상력 면에서 나보코프보다 힘이 있는 작가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존 업다이크(소설가, 퓰리처상 수상자)

이 작품의 주인공 티모페이 프닌은 러시아 상류층 출신으로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 지식인이다. 미국 동부의 웬델 대학에서 비정규 교수로 근무하는 그는 미국 문명에 힘겹게 대처하는 구세계 지식인, 구세계에서 연마한 교양과 지식이 평가 절하되는 아웃사이더, 과거를 트라우마처럼 회고하는 망명자, 혼란스러운 여러 인간관계에 놓인 감상적인 사람, 잔인하고 무지한 교수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는 사람이다. 프닌은 우스꽝스러운 외모(대머리, 큰 몸통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가는 다리와 작은 발)와 불완전한 영어(를 포함한 3중 언어 구사자), 좌충우돌의 일상(모든 사물과 투쟁함) 등으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프닌(러시아 망명 지식인)과 화자(나보코프와 직업과 생일이 같은 나보코프의 소설적 분신), 작가 나보코프의 세 차원으로 서술된다. 이 셋은 실제 나보코프의 이력과 경험을 부분적으로 반영한다. 가령 프닌의 어린 시절 연인이 나치 수용소에서 죽은 점은 시인이자 동성애자이며 반히틀러주의자였던 나보코프의 동생 세르게이가 비슷한 죽음을 맞은 사실과 겹친다. 작품의 화자가 곤충학자이자 러시아 문학가인 점도 실제 나보코프와 유사하다. 프닌 – 화자 – 작가는 영어 구사의 수준이나 미국 적응 정도, 학내 평가 면에서 차이가 있다. 작품 곳곳에서 이 세 가지 서술 차원이 중첩되고 균열되고 분리되면서 독자는 작품이 주는 리듬과 혼란, 오해를 오가다가 마침내 감동과 이해를 얻게 된다. 이 소설에서 프닌은 버려진 개와 함께 불확실한 목적지,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화자와 다른 등장인물들이 생각하는 종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프닌의 망명과 상실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웃음과 조롱의 끝에서 맞닥뜨리는 슬픔과 윤리의 문제

“나보코프는 거장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하고 그 웃음은 눈물에 이른다.” ―『가디언』

나보코프 연구자 브라이언 보이드는 『프닌』을 “나보코프의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코믹하고 가장 애달프고 가장 단순한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이 평가는 『프닌』이 나보코프의 가장 단순한 작품이라는 뜻일 뿐 이 소설 자체는 단순하지 않다. 나보코프는 복잡한 이야기를 정교한 기법으로 들려주는 작가였고 『프닌』에도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나보코프는 시점 전환을 중요한 소설 기법으로 즐겨 썼고, 『프닌』은 작품 전체가 이 기법을 실험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잠재력을 다시금 놀랍게 보여준다.
작품의 화자는 주인공의 시각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동시에 화자의 시각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독자는 화자가 이끄는 대로 주인공 프닌이 웃음거리가 되는 데 쾌감을 느끼다가 화자의 정체가 드러날수록(처음에는 화자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나중에야 드러난다) 초반에 화자와 함께 프닌을 비웃었던 순간들이 떠오르면서 윤리적 궁지에 몰리게 된다. 작품 후반에야 독자는 나보코프가 작품 전체에 심어둔 함정과 실마리, 중층적 서술 차원을 깨닫게 된다. 우리도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과 마찬가지로 프닌을 조롱하고 오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데 공모해온 것이다.


■ 본문 속으로

학생들이 그를 좋아했던 것은 실력 있는 교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안경을 벗어 들고 현재의 렌즈를 문지르는 동안 과거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내면서 잊을 수 없는 여담들을 들려주는 교사였기 때문이다. 엉터리 영어로 향수와 함께 떠나는 여행들. 개인사의 토막 정보들. 프닌이 어떻게 Soedinyonnïe Shtatï(미국)에 오게 되었느냐 하면. “상륙 직전 선상 시험. 걱정할 것 없다! ‘신고할 것 없나?’ ‘없다.’ 걱정할 것 없다! 다음은 정치 문제. 그의 질문은 ‘당신은 아나키스트인가?’ 나의 대답은.” (화자가 편안히 소리 없이 웃는 동안 이야기가 중단된다.) “‘첫째. 우리는 아나키즘 아래의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용적, 형이상학적, 이론적, 신비주의적, 추상적[abstractical], 개인주의적,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젊었을 때, 이것들은 모두 나에게 의미를 가졌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토론을 가졌고, 그것의 결과로 나는 엘리스섬에서 2주를 보냈습니다.” (들썩이기 시작하는 복부, 크게 들썩이는 복부, 부들부들 떠는 화자.) _12~13쪽

“터진 탁구공. 러시아인.”
“프닌 교수, 맙소사!” 로런스가 소리쳤다. “‘소인이 그자를 잘 아옵니다. 그 나라의 귀금속입지요―’ 이봐, 나는 그 괴짜를 내 집에 들이는 데 절대 반대야.” _42~43쪽

티모페이 프닌은 거실에 자리를 잡았고, 두 다리를 po amerikanski(미국식으로) 교차했고, 이런저런 불필요한 디테일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는 두껍게 요약된 이력서였다. 189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1917년 양친이 티푸스로 사망. 1918년 키예프로 탈출. 5개월간 ‘백군白軍’으로 복무. 처음에는 ‘통신병’이었고, 나중에는 ‘군 정보사’에. 1919년 적화된 크림반도를 탈출해 콘스탄티노플로 감…… “그럼, 긴 이야기를 아주 짧게 줄이자면, 1925년부터 파리 주거, 히틀러 전쟁의 시작기에 프랑스 포기, 지금 여기 있음. 미국 시민임. 반달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기타 과목들을 가르침. _44~45쪽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개성이라는 게 있는데.” 마거릿 세이어가 말했다. “그걸 아예 무시할 수는 없을 거 같은데.”
“그런데 무시를 하잖아!” 하겐이 외쳤다. “그게 비극이라는 거야! 예를 들어, 저 사람”―환한 표정의 프닌을 가리키며―“누가 저 사람의 개성을 원할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 세상은 티모페이의 원더풀한 개성 따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내팽개치겠지. 세상이 원하는 건 기계야, 티모페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_242쪽

잭 코커럴의 프닌 흉내 연기가 완벽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는 최소한 두 시간 동안 진행된 그 공연에서 나에게 모든 레퍼토리―프닌의 수업, 프닌의 식사, 프닌이 여학생에게 추파를 던지다, 프닌이 선풍기의 영웅 서사시를 쓰다……―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프닌이 자기가 ‘총살당했다’고 말하는 장면까지 갔다. 흉내 연기자에 따르면, 그 불쌍한 녀석에게 그 말은 ‘해고당했다’는 뜻이었다(나는 내 친구가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중에는 그 상황 전체가 얼마나 지겨워졌는지, 이 프닌 사업이 사업자 코커럴의 치명적 강박이 되게 하는 모종의 시적 복수―조롱의 대상을 그가 조롱하는 대상에서 그 대상을 조롱하는 자기 자신으로 대체하는―가 작동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_282~283, 285쪽

목차

■ 차례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옮긴이의 말․『프닌』의 반전: 기법적 절묘함과 ‘윤리적 아름다움’
작가 연보

작가 소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부유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자유주의적인 집안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나보코프 가족은 런던을 거쳐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922년 아버지가 극우파 러시아인의 총에 맞아 살해되자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나보코프는 외국어, 테니스 강습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1923년부터 러시아어로 장편소설, 단편소설, 희곡, 시, 번역서를 내면서 중요한 러시아 망명 작가 중 하나로 명성을 얻다가 1940년 아내와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 정착한 나보코프는 1941년부터 웰즐리 칼리지에서 강사로 지내다가 1948년 코넬 대학교 러시아문학 교수로 임용되어 1959년까지 재직했다. 1955년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롤리타』가 출간되었으며, 『프닌』(1957)은 『서배스천 나이트의 진짜 인생』(1941), 『벤드 시니스터』(1947), 『말하라, 기억이여』(1967), 『롤리타』와 함께 미국에서 출간된 작품이다. 1960년 미국을 떠나 스위스로 이주했고 1977년 몽트뢰에서 사망했다. 이 외에도 『창백한 불꽃』(1962), 『아다 혹은 열정: 가족 연대기』(1969), 『어릿광대를 보라!』(1974) 등 다수의 작품을 썼으며 미발표 작품으로 『오리지널 오브 로라』가 있다.

김정아 옮김

에밀리 디킨슨의 시로 영문학 석사학위를, 소설과 영화의 매체 비교 연구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발터 벤야민 평전』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자살폭탄테러』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슬럼, 지구를 뒤덮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으로』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걷기의 인문학』 『감정 자본주의』 『미국 고전 문학 연구』 『3기니』 『프닌』(근간) 『센티멘털 저니』(근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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