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몽의 아빠

기 드 모파상 지음 | 고봉만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7월 7일 | ISBN 9788932041889

사양 변형판 124x188 · 300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모파상을 읽어라, 거기엔 그 무엇이 있다_안톤 체호프

모든 지성을 만족시키고 모든 감성에 자극을 일으키는 걸작_에밀 졸라


삶에 좌초하고 허우적대는 인간 군상의 민낯과 삶의 면면을
날카롭게 포착해낸 기 드 모파상 단편선

에드거 앨런 포, 안톤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기 드 모파상의 단편선 『시몽의 아빠』(고봉만 옮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의 작품은 일상의 사건을 간결하고 짜임새 있게 서술하면서도 섬세한 관찰력과 유려한 문체로 극적인 반전 효과를 거두기에 오늘에 이르도록 수많은 작가의 경탄의 대상이자 본받을 만한 교본이 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시몽의 아빠』는 무려 300여 편에 이르는 그의 중·단편 가운데 대표작 열한 편을 선별해 충북대 고봉만 교수의 충실한 번역으로 독자들 앞에 선보인다.

책의 표제작인 「시몽의 아빠」는 부모의 불화와 이혼으로 아버지 없이 자란 모파상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으로, “아빠 없는 애가 있다니. 이 이상하고 불가능하고 괴이쩍은 사실 앞에서” “한 마리가 상처 입으면 그 즉시 공격해 죽여버리는 닭장 안의 암탉들”과 같이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동심에 덧씌워진 포장을 가감 없이 벗겨낸다. 이처럼 부모의 불화와 파경은 모파상의 삶과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 책에 실린 「시몽의 아빠」 「아버지」를 비롯한 그의 많은 작품에는 불행한 결혼 생활, 어리석고 무책임한 남편과 아버지 없는 외로운 아이가 자주 등장한다.

유년 시절 모파상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노르망디 해안의 에트르타에 정착해 살았다. 이 시절 경험한 노르망디의 바다와 대자연, 시골 사람들의 성정과 습성은 그의 작품의 배경과 소재로 자주 나타나는데, 흔히 우리가 시골 생활에 기대하는 순박함과는 거리가 먼 본능적 이기심이나 교활함, 인색함 등을 유머러스하면서도 통렬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 실린 「전원에서」와 「잃어버린 끈」 등이 그러한 작품으로, 특히 「잃어버린 끈」의 주인공 ‘오슈코린느 영감’에 대한 입체적인 인물 묘사나 인간의 심리를 절묘하게 풀어낸 사건 전개가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낸다. 노르망디 사람 특유의 인색함을 지닌 그는 설사 “비난받을 짓을 했더라도 그것이 훌륭한 책략인 양 허풍 떨 수 있”는 교활한 인물이지만, 성정이 그러하기에 오히려 그가 당한 억울함을 토로할수록 “말도 못 하게 약아빠진 사람”이라 취급당한다. “그의 변명이 복잡해질수록, 그의 논증이 치밀해질수록” 사람들은 “거짓말쟁이는 늘 저렇게 해명하는 법이지”라고 등 뒤에서 쑥덕거릴 뿐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쏘다니던 유년 시절을 거쳐 모파상은 파리 법과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지만, 바로 이듬해(1870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군대에 징집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비곗덩어리」를 비롯해 여러 작품의 모티프가 된다. 특히 「비곗덩어리」는 귀족과 부르주아, 공화정 투사와 가톨릭 수녀 그리고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매춘부라는,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만한 다양한 인물들의 흥미로운 대비를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해 드러나는 인간 군상의 민낯을 탁월하게 그려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모파상은 이 결정적 작품으로 프랑스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단번에 “대가의 반열”에 들어서게 된다. 이 책에 함께 실린 「두 친구」 역시 정교한 언어와 탄탄한 구성으로, 전쟁에 내던져진 인간의 불안과 허무 의식을 냉소적으로 표현해낸 걸작이다.

「비곗덩어리」와 더불어 모파상의 가장 널리 알려진 단편 「목걸이」는 인간의 헛된 욕망이 불러온 고통과 좌절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프티 부르주아 계층의 허영과 위선, 속물근성에 대한 모파상의 비판적 시선이 감지된다. 특히 출신과 가문, 물질적 부에 따른 차별, 당대 자본주의 계급 사회에 대한 풍자가 여과 없이 드러나 있는데, 이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이 끝난 후 파리에 정착해 해군성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며 파리 서민층의 생활상을 몸소 겪고 목격한 모파상의 체험담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파리의 프티 부르주아와 귀족들의 허위의식 그리고 범속한 인간들의 무미건조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은 모파상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는 또 다른 특징으로, 「목걸이」 외에도 이 책에 실린 「말을 타다」 「쥘 삼촌」 등의 작품에서 독자들은 일상의 사건을 통해 삶의 속살을 묘파해내는 모파상 특유의 글쓰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모파상은 1880년 「비곗덩어리」를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은 이후 1890년까지 10년에 걸쳐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과 여섯 편의 장편소설, 다섯 편의 희곡과 시, 기행문 등 수많은 작품을 창작했고, 세계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얻으며 승승장구했다. 그의 대표작 열한 편을 엄선해 엮은 『시몽의 아빠』는 삶에 좌초하고 허우적대는 인간의 면면과 삶의 단면을 냉혹하고 적나라하게, 그러나 위트 있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펼쳐 보인다. 간결하고도 명료한 문체, 다채로운 소재와 내용, 무엇보다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심리를 단숨에 포착해 강렬하게 표현해낸 그의 작품 세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자들의 쾌감과 만족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모파상의 글은 지금 읽어봐도 확실히 뛰어나다. 그의 글은 세월의 흐름이 무색하게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그의 글은 100여 년이 지났어도 지치지 않고 읽힌다. 『르 피가로 문학 뉴스Le Figaro littéraire』가 2004년 프랑스 고전 문학·사상 분야 문고본의 판매 부수를 집계한 이래, 현재까지 그의 작품은 모든 작가를 통틀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_「옮긴이의 말」에서


책 속으로

“있지…… 시몽은…… 아빠가 없대.”
개구쟁이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우쭐해진 소년이 목소리를 높였다.
“확실히 알았지. 저 애는 아빠가 없다는 걸.”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이들도 이 이상하고 불가능하고 괴이쩍은 사실 앞에서 아연실색했던 것이다. 아빠 없는 애가 있다니. 그들은 어떤 희귀한 현상, 신비적 존재를 대하듯 시몽을 바라보았다. (「시몽의 아빠」, 11~12쪽)

어느새 아이들은 그 아이에게 동조하듯 행동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묘지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아버지가 없는 시몽을 짓밟아도 될 명분이라도 되는 듯이. 이 개구쟁이들의 아버지는 대부분 성미가 고약한 술주정꾼인 데다 사기꾼이었고, 아내에게 거칠고 사납게 굴었다. 하지만 이따위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적법하게 태어난 이 아이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 있는 시몽을 압박해 질식이라도 시키려는 듯, 서로 바싹 몸을 대고선 점점 더 포위망을 옥죄어왔다. (「시몽의 아빠」, 13쪽)

사랑이 그들의 화제로 떠올랐다. 〔……〕 대체로 남자들은 사랑의 정념이란 질병과도 같아서 한 사람이 여러 번 앓을 수도 있고, 그 앞에 장애물이 가로막혀 있는 경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는 딱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지만, 여자들은 객관적인 관찰보다 감상을 앞세우며 사랑이란, 참으로 진실하고 위대한 사랑이란, 평생에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벼락과도 같아서, 일단 사랑의 벼락을 맞은 뒤에는 마음이 공허해지고 황폐해지고 남김없이 타버려, 그 후로는 아무리 강렬한 감정이라 할지라도, 아니 그저 꿈일지언정 그 자리에 다시 움틀 수는 없을 거라고 주장했다. (「의자 고치는 여자」, 31~32쪽)

그러나 그는 살면서 겪을 혹독한 시련을 일찍이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 현실을 벗어나 구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저항할 힘도 수단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 특별한 재주나 능력을 어릴 때부터 계발하지 못한 사람들, 싸움에서 악착같이 이기는 힘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 수중에 무기나 연장 하나 없이 맹하니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 삶에 좌초하여 허우적댔다. (「말을 타다」, 67~68쪽)

급기야 정치를 둘러싼 토론이 벌어졌다. 유순하지만 소견이 좁은 그들은 나름의 건전한 이성을 바탕으로 정치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간이란 그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몽발레리앵 언덕에서는 쉼 없이 쾅쾅 울려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포탄은 터질 때마다 프랑스인의 집을 부수고, 삶을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짓누르고, 수많은 꿈과 기쁨, 바라 마지않던 수많은 행복을 박살 내고, 저쪽 다른 나라의 아내와 딸, 어머니들의 가슴에 영원히 가시지 않을 상처를 입히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삶이란 거지.”
소바주 씨가 단정하는 투로 말했다.
“차라리 이런 게 죽음이라고 말하게.”
모리소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두 친구」, 94~95쪽)

삼촌은 행실이 좋지 못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 돈을 좀 날렸는데, 그건 가난한 집안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죄악이었지. 부잣집에서야 불성실하고 빈둥거리는 사람더러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만 하지. 그런 사람을 가리킬 때면 웃으며 방탕아라고 부르거든.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는 부모 재산을 축내는 자식은 악동, 망나니, 건달이 되고 말지!
실상 같은 행동이라 하더라도 이런 차별은 당연한 거야. 결과만이 행위의 심각성을 결정하기 때문이지. (「쥘 삼촌」, 106~107쪽)

그러자 그는 다시 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날마다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서, 매번 새로운 이유를 달아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항변했고 혼자 있는 동안 상상하면서 준비했던 것보다 더 엄숙한 맹세를 덧붙였다. 그의 정신은 오로지 그 끈 이야기에 몰두해 있었다. 그의 변명이 복잡해질수록, 그의 논증이 치밀해질수록 사람들은 그의 말을 더 믿지 않았다.
“거짓말쟁이는 늘 저렇게 해명하는 법이지”라고 사람들은 그의 등 뒤에서 쑥덕거렸다. (「잃어버린 끈」, 161쪽)

루아젤 부인은 그새 푹석 늙었다. 억세고 투박하고 거친 여자, 가난한 아줌마가 되었다. 머리는 빗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부스스하고, 치마는 아무렇게나 걸쳤으며, 벌겋게 튼 손으로 목청 높여 지껄이면서 물로 텀벙대며 바닥 청소를 했다. 그러나 남편이 출근하고 없을 때면 이따금 창가에 앉아 그 옛날의 파티를 떠올리곤 했다.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환대받았던 그날 밤의 무도회를.
그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누가 알랴?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인생이란 참 야릇하고 변화무쌍한 거야! 사소한 일 하나가 사람을 파멸로, 또 구원으로 이끌기도 하니 말이야! (「목걸이」, 182쪽)

“〔……〕 아휴 부인! 저 군인들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요. 사람 죽이는 법이나 배우는 인간들을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먹여 살려야 한다니요! 그래요, 전 일자무식 할망구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제자리걸음 하면서 몸만 축내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답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에 도움이 되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데, 저 사람들은 왜 세상에 해가 되려고 저렇게 고생을 사서 하나! 정말 프로이센 사람이든, 영국 사람이든, 폴란드 사람이든, 프랑스 사람이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몹쓸 일 아닙니까?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게 복수하면 유죄를 선고받으니 악이 되고, 총으로 아이들을 사냥감처럼 쏴 죽이면 가장 많이 죽인 사람한테 훈장을 수여하니까 선이 되다니요? 아니, 나는 도통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비곗덩어리」, 245쪽)

목차

■ 차례

시몽의 아빠Le papa de Simon
의자 고치는 여자La rempailleuse
전원에서Aux champs
말을 타다À cheval
두 친구Deux amis
쥘 삼촌Mon oncle Jules
아버지Le père
잃어버린 끈La ficelle
목걸이La parure
고향으로 돌아오다Le retour
비곗덩어리Boule de suif

옮긴이 해설

작가 소개

기 드 모파상 지음

(1850. 8. 5. 프랑스 디에프 근처 미로메스닐 성[?]~1893. 7. 6. 파리: 프랑스의 작가)
모파상은 파리에서 법률을 공부하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해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체험한다. 그뒤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그는 문학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모파상은 교육부 공무원으로 생계를 꾸리며 귀스타브 플로베르에게서 문학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에밀 졸라가 주축이 돼 엮은 단편집 『메당 야화(夜話)』에 「비곗덩어리」(1880)를 발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등단한다. 이 작품을 통해 촉망받는 문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는 이후 10년 동안 「목걸이」 「오를라」 『여자의 일생』(원제는 ‘어떤 삶’)을 비롯한 약 3백 편의 단편소설과 6편의 장편소설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20대부터 앓아온 신경 질환은 그의 생활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마약과 문란한 여자 관계 등으로 병세가 악화된 그는 1892년 1월 2일에 자신의 목을 베어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 파리 근교의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다가 43번째 생일을 맞기 1개월 전에 그 병원에서 전신성 마비로 사망한다.

고봉만 옮김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루소와 레비–스트로스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저서와 개성 있는 프랑스 소설을 번역・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문학의 고전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성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 『방드르디, 야생의 삶』 『인간 불평등 기원론』 『덧없는 행복』 『크리스마스의 악몽』 『악마 같은 여인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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