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모던의 건축

스베틀라나 보임 지음 | 김수환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5월 30일 | ISBN 9788932041537

사양 변형판 128x187 · 195쪽 | 가격 14,000원

분야 채석장, 인문

책소개

“결코 존재한 적 없는, 하지만 존재할 수도 있었을”
모더니티의 추론적 역사 다시 쓰기

“타틀린의 기념탑은 연극적 파편으로서, 종이 건축의 미완성 모델로서,
미래의 폐허를 닮은 유토피아적 비계로서 태어났다.”

간략 소개
2015년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러시아 출신의 미국 인문학자이자 작가, 미디어 아티스트인 스베틀라나 보임의 에세이 『오프모던의 건축』이 출간되었다. 보임은 좁은 학제의 경계를 넘어 예술과 건축, 문학과 철학, 그리고 기술의 상호 교차를 흥미롭게 탐색하는 저술과 창작을 통해 지성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그녀는 모더니티, 자유, 유토피아, 기억, 노스탤지어, 아방가르드, 키치, 낯설게하기, 폐허 등의 토픽을 넘나들며 매력적인 개념들을 창안해왔는데, 특히 ‘성찰적 노스탤지어’와 ‘복원적 노스탤지어’를 구분하는 그녀의 저명한 노스탤지어 유형론은 연구자들과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주며 우리 시대를 고찰하기 위한 흥미로운 해석적 도구로 활용되어왔다. 이 책 『오프모던의 건축』에서 다루고 있는 “오프모던”은 보임의 지적 여정의 마지막 시기를 대표하는 탐구 주제 중 하나로, 비판적 근대성의 옆 골목을 탐색하고 그것의 측면적 잠재성들을 추적하기 위한 기획을 가리키는 보임의 신조어다. 그녀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중 하나인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타틀린 탑)의 역사와 후생을 추적하는데, 실현된 적 없는 현대 건축의 추론적 역사를 상상해봄으로써 근대성에 관한 대안적 계보학, 이른바 “제3의 길의 지성사”를 새롭게 써나간다.


상실된 기회들의 유령과도 같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타틀린의 기념탑을 경유한
근대성에 관한 “제3의 길”의 지성사

“제3인터내셔널에 바치는 기념비는 극단적인 반-기념비가 되어야만 했다. 건축 혁명의 선언문으로서 타틀린의 탑은 “부르주아적인” 에펠탑과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양자 모두에 도전했다.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그 탑은 회전하는 세 가지의 유리 몸체, 즉 정육면체와 피라미드 그리고 원기둥으로 구성되었다. 세계인민위원회가 자리할 정육면체는 일 년에 한 번, 제3인터내셔널 수뇌부와 행정위원회를 위한 피라미드는 한 달에 한 번, 정보 및 선전 본부가 될 원기둥은 매일 한 차례씩 회전하게 될 것이다. 라디오 전파가 탑을 하늘로 연장한다면, 3층에 자리한 타이포그래피 작업실은 그날의 모토를 구름을 향해 투사한다. 실제로 탑은 “혁명”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수많은 명시적・함축적 의미들을 구현하고 있었다.”(20)

이 책은 끝내 건설되지 못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제3인터내셔널(1919년 모스크바에서 창립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기념하기 위해 ‘모형’으로만 만들어진 바 있는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전설적인 기념탑(1919~25년)의 형상을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 투사해 보여주는 한 영화의 스틸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스베틀라나 보임은 이 신화적 건축물의 건축적·철학적인 변모 과정을 탐구해나가겠다고 말하며, 타틀린의 탑이 근대성에 관한 “제3의 길”의 지성사, 즉 자신의 대안적 계보학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대안적 계보학에 “오프모던”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포스트” “네오” “아방” “트랜스” 같은, 전진하거나 너머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도 결국엔 필사적으로 “안”에 머물러 있고자 골몰하는 온갖 포스트-비판의 접두어들 대신, 보임은 “빗겨나off” 서서, “무대 뒤편off-stage”에서, “엇박자로off-beat”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off”라는 단어를 택한다. 그러면서 진보의 직선로가 아니라 옆길이나 뒷길을 탐색하는 오프모던, 근대적 조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전통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예를 설명하기 위해 끝내 건설되지 못한 아방가르드 건축물 타틀린 탑을 소환한다. 왜 타틀린의 탑인가? 그보다도 왜 ‘건축’인가?

사유의 건립으로 표상되는 철학은 체계와 구조의 상징이라 할 건축에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해왔으며, 건축적 은유는 서구 철학의 전 역사를 압도해온 수사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보임이 건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체계를 세우는 일보다는 그것이 “세계에 질감을 부여하는 포에시스의 형식”(10)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임은 20세기의 직선적 내러티브를 농락하면서 “제3의 길”을 꿈꿔왔던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게오르크 짐멜,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저자들의 근대성에 관한 철학적 담론 속에 건축적 형상이 스며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보임은 짐멜의 “모험의 현상학” 개념에 기대어 오프모던의 건축을 “모험의 건축”으로 규정하는데, 여기서 타틀린의 기념비는 “건설의 기술적 가능성이 아니라 […] 가능성의 건축이라 불릴 법한 새로운 차원을 여는 하나의 모델이자 기획”(66)을 대변한다.


모험의 건축과 오프모던
“이것을 폐허의 경관으로 간주할지 아니면
유토피아적 건설의 현장으로 간주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타틀린 탑은 처음부터 부동의 건물이 아닌 일종의 움직이는 기계로 설계되었다. 탑을 구성하는 내부의 세 몸체는 각기 다른 속도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고, 이는 천체 궤도의 운행, 즉 반복과 회전을 가리키는 혁명의 어원적 의미를 구체화한 것이다. 기울어진 구조와 나선 형태(“최적의 마르크스-헤겔적 형태”)로 무한히 열린 상부는 건물의 몸체를 중력을 거슬러 대지로부터 밀어 올리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낳는다. 타틀린 자신의 말에 따르자면 “순전한 예술적인 형식을 공리적인 목적들과 결합”시킨 결과물, 즉 창조자의 의도에 따르면 유용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기능하지 못하는 이 탑의 영구한 비완결성은 그것에 부여된 유토피아적 성격의 이면처럼 보인다. 타틀린의 슬로건인 ‘삶 속으로 들어간 예술’이나 ‘기술 속으로 들어간 예술’은 결코 “삶이나 기술을 위해 봉사하는 예술이나 정치적·사회적 혁명에 봉사하는 삶을 제안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이 건축의 미완성 모델로서, 미래의 폐허를 닮은 유토피아적 비계로서 태어났다.”(31)

타틀린의 기념탑은 또한 복원적 노스탤지어(상실된 대상의 초역사적인 재건을 시도하면서 집단적·민족적 성격을 띠는 정치적 통일체에 집착)와 성찰적 노스탤지어(상실의 근본적인 회복 불가능성과 아이러니적인 거리를 인정하면서 역사적 경험의 개인적 차원을 지향, 창조적 감정이 될 수 있다)라는 보임의 저명한 노스탤지어 유형학을 보여주는 실례로서 읽을 수 있다. 전자가 제3인터내셔널의 꿈을 대체할 수 있는 궁극의 건물인 소비에트 궁전 건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면, 후자는 종이 건축과 개념주의 설치라는, 20세기 중반 이후 소비에트 예술사의 독특한 흐름 속에서 끝없이 환기되어 재작동하는 불멸의 유령 같은 두번째 실존을 얻게 되었다.

보임은 콘스탄틴 보임에서 시작해 레오니드 소코프, 유리 아바쿠모프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폐허가 된 유토피아와 관계하면서 1920년대의 유토피아의 꿈을 기억하고 재활용하는 소비에트 비순응주의 예술이라는 일련의 개념적 시도를 따라가는데, 특히 올해 5월 말에 작고한 저명한 소비에트 출신 망명 예술가 일리야 카바코프의 “총체적 설치”는 오프모던을 대변하는 주역들 중 하나로 등장한다. 카바코프의 작업은 “모든 종류의 유토피아적 체계의 바탕에 놓인 이런저런 틈새와 절충, 당혹과 검은 구멍에 대한 신중한 환기가 된다. […] 카바코프는 근대 유토피아의 기원으로 소급해 들어가 두 가지 모순적인 인간적 충동을 드러낸다. 모종의 집단적인 동화 속에서 일상을 초월하려는 열망과, 기억을 보존한 채로 살아남음으로써 가장 살아가기 힘든 폐허 속에 거주하려는 열망.”(104~105) 미국의 큐레이터 로버트 스토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환상의 상실과 그것을 발명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구 사이의 긴장이며, 이는 20세기의 꽤 훌륭한 요약”이다. 카바코프는 망각/폐기 대 복원/건설이라는 이원적 선택지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내고자 한다. 보임은 이러한 오프모던의 시선이 인간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 그리고 자연적 시간 사이의 양가적 관계와 부조화를 인정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프로젝트들을 변증법적인 폐허로서 프레이밍 할 수 있게 허용한다.”

보임은 책의 말미에서 ‘전문적 사유’와 체계성과 일관성의 요구가 아닌 경외감에 의해 인도되는 ‘열정적 사유’를 구분할 것을 제안했던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오프모던을 최종적으로 정의한다. “오프모던의 사유는 이론과 실천, 상상적 건축과 물리적 경험 사이의 이중적 운동에 관여하는 열정적 사유의 한 형식이다.”


스베틀라나 보임의 지적 여정

스베틀라나 보임은 2019년에 번역된 『공통의 장소』와 두 편의 글을 통해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그녀의 저작 전반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소개는 여전히 미흡한 형편이다. 구소련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망명자-이방인 신분에 더해 소비에트의 해체로 고향을 영원히 상실한 경험을 통해,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낯설게 볼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었던 보임은 상투적인 개념들에 새로운 조명을 비추어(그녀의 이름 스베틀라나는 ‘빛’이라는 뜻이다) 새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비상한 재능을 지닌 연구자였다. 특히 2001년도에 출간된 책 『노스탤지어의 미래』는 우리가 ‘기억’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으며, 그녀의 이름을 영원히 ‘노스탤지어’ 개념과 연결시킨 바 있다. 한나 아렌트, 빅토르 시클롭스키, 게오르크 짐멜 등을 동원해 ‘자유’를 철학적 이념도 정치적 권리도 아닌 제3의 방식으로 이론화한 시도 역시 자유에 새로운 의미를 기입시키며 학문적·예술적으로 흥미로운 참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2015년 보임의 때 이른 사망으로 인해 오프모던을 둘러싼 말년의 작업들은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보임이 지금까지 탐색해온 주제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개념은 우리 시대에 관한 새로운 사유와 해석과 연구를 자극할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책을 옮긴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 김수환은 해제에서 우리 시대의 정초적 사상가 중 한 명인 보임의 위상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임의 학문 작업 전체를 상세하게 살펴보고, 특히 오프모던 개념을 둘러싼 담론적 지형을 점검, 그녀의 지적 여정에서 이 기획이 차지하고 있는 각별한 의미를 보여준다. 또한 보임이 오프모던의 개념을 적용하며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있는 네 명의 인물과 관련해 이론적 배경 및 선행 연구들을 소개함으로써 책의 풍부한 독해에 도움을 준다.


■ 책 속에서

결코 실현된 적이 없는 현대 건축의 추론적 역사를 꿈꾸게 될 때 관건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비스듬한 움직임은 예술과 기술, 노스탤지어와 진보, 그리고 건축적 상상의 미래를 둘러싼 우리의 이해에 어떤 도전을 안기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중 하나인 타틀린의 전설적인 기념탑의 건축적이고 철학적인 변모 과정을 탐구해보려 한다. 이 탑은 근대성에 관한 “제3의 길”의 지성사, 즉 나의 대안적 계보학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 대신에 나는 그것을 오프모던이라고 부를 것이다._7~8쪽

내 관심사는 건축의 상징적 형식이 아니라 흔히 지적인 장르나 사유 체계, 학제들 사이의 틈에서 발견되곤 하는, 건축과 이론, 모더니즘 소설과 철학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특이하고 실험적인 이론적 스토리텔링 형식들을 포함하는 제3의 사유의 서사적・공간적인 구성이다. 이런 사유 형식은 체계를 세우는 일보다는 오히려 기획과 모험으로서의 삶과 예술에 관한 것이다. 문학과 철학은 많은 잠재적인 공간들을 제공해주는데,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모델을 제안하는 상상적 위상학의 공간들이다. 모험이 제공하는 것은 뒤집힌 미메시스의 가능성인바, 강렬한 상상은 자연을 모방하는 대신에 미래의 건축을 제안한다. 문학과 철학은 “종이 건축”의 형식이 될 수 있다._10~11쪽

내가 생각하기에 오프모던의 건축은 모험의 건축이다. 모험adventure은 문자 그대로 이제 막 발생하려고 하는 어떤 것, 바야흐로 도래하는 것à venir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것은 모종의 파국적인 혹은 메시아적인 미래를 열어젖히기보다는 현재의 보이지 않는 시간적 차원들로 이끈다. 20세기 초반의 가장 흥미로운 제3의 길의 사상가 중 한 명인 게오르크 짐멜은 우리의 일상적 삶의 흐름을 끊어내는 동시에 그것의 내적 핵심을 결정화하는, 모험의 현상학을 제안한 바 있다._11쪽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보게 되는 것은 시클롭스키의 낯설게하기의 건축과, 예기치 못한 자유의 제3의 길을 찾으려는 한나 아렌트의 시도 사이에 존재하는 “대응”이다. 아렌트는 사람들을 “근대적인 삶의 자동화 및 일상화” 너머로 몰고 가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이상한 것”으로 자유를 묘사한 바 있다. 시클롭스키에게 오스트라네니예가 세계로부터의 낯설게하기가 아니라 세계의 갱신을 위한 낯설게하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렌트는 점근 곡선과 사선을 꿈꾸면서 문학과 철학 그리고 극장의 도움을 받아 자유의 예측 불가능한 건축을 상상한다. 그녀의 에세이 「자유란 무엇인가?」는 희망 없음에 대한 성찰로 시작된다.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일은 가망 없는 기획enterprise인 듯하다. 철학자들에게 자유 혹은 그 반대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사각형으로 된 원이라는 개념을 깨닫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_62쪽

하지만 타틀린의 기념비에 대한 가장 충격적인 평가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에게서 나오게 될 것이었다. 리가의 저명한 건축가의 아들이었던 그는 자신의 영화와 이론적 에세이들에서 건축 공간을 재정의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는 아버지의 모더니즘적 절충주의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1930년대 초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천명되었던 그 시절, 에이젠슈테인은 많은 동료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제작하고 배포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의 글쓰기와 몽타주 이론으로 되돌아갔다. 에세이 「파토스」에서 그는 “현수 건축”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타틀린과 말레비치가 이 탑에서 건축과 조각의 종합을 보았다면, 에이젠슈테인은 1831년에 고골이 쓴 건축에 관한 잊혀진 에세이로 되돌아가면서 거기에 문학과 영화라는 또 다른 차원을 보탰다._70~71쪽

카바코프의 작품은 또한 기억의 선택성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파편화된 “총체적 설치들”은 모든 종류의 유토피아적 체계의 바탕에 놓인 이런저런 틈새와 절충, 당혹과 검은 구멍에 대한 신중한 환기가 된다. 과거를 향한 모호한 열망은 역사의 개인적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공감에 낯설게하기를 결합시킴으로써, 그의 아이러니적인 노스탤지어는 기억하는 행위의 윤리학에 관한 성찰로 관객을 초대한다. 더 나아가 카바코프는 근대 유토피아의 기원으로 소급해 들어가 두 가지 모순적인 인간적 충동을 드러낸다. 모종의 집단적인 동화 속에서 일상을 초월하려는 열망과, 기억을 보존한 채로 살아남음으로써 가장 살아가기 힘든 폐허 속에 거주하려는 열망이 그것이다. 그의 설치 예술은 진보의 목적론의 실패를 전시한다. 단독적이고 통합적이며 휘황찬란한 모종의 미래의 궁전 대신에 눈앞에 보여지는 것은 과거와 미래의 사방으로 흩어진 모델들이다._104~105쪽

유토피아는 여전히 가능할까? 아니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그것의 기원으로, 즉 삶이 아닌 예술 속으로 돌려보내야 할까? 나는 인터넷에서 타틀린 스튜디오와 나보코프의 나비 이미지를 발견했고, 우연히 하나 위에 다른 하나를 겹쳐 인쇄했다. 그 결과는 내게 소비에트 시절의 과학 수업을 연상시켰는데, 우리는 사회주의 생물학의 프로젝트들, 특히 배와 사과를 끝도 없이 이종교배했던 이반 미추린의 작업을 공부하곤 했다. 수년이 흐른 후 나는 흔히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20세기의 두 가지 상이한 꿈과 미학적 유토피아를 우연히 교차수정시키게 된 것이다. 타틀린에 의한 아방가르드 상상력의 희한한 비행과, 그에 못지않게 희한한 나보코프의 예술적 귀향이 그것이다._「오프모던 선언문」 200쪽

‘유토피아’와 ‘폐허’라는 저 짝패는 다음 책 『노스탤지어의 미래』(2001)에서 제시될 보임의 저명한 유형론을 곧바로 연상시킨다. 여기서도 보임은 단어 노스탤지어nostalgia를 이루는 두 개의 어근에 주목한다. 첫 어근인 nostos(집)를 강조하는 “복원적restorative 노스탤지어”가 잃어버린 집의 초역사적인 재건을 시도하면서 집단적·민족적 성격을 띠는 정치적 통일체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면, 집을 향한 갈망 자체, 즉 두번째 어근인 algia(고통) 위에서 번성하는 “성찰적reflective 노스탤지어”는 상실의 근본적인 회복 불가능성과 아이러니적인 거리를 인정하면서 역사적 경험의 개인적 차원을 지향한다. 두 개의 어근이 합쳐진 이런 이중적 측면을 다채롭게 변주하면서 그녀는 노스탤지어를 모더니티라 불리는 우리의 과거를 비판적으로 재사유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등극시켰다._「옮긴이 해제」 138쪽

목차

■ 차례

모험의 건축과 오프모던
타틀린의 테크네와 혁명적 폐허
낯설게하기의 건축과 자유의 커브
서스펜션 건축과 프로젝트 시학
설치 건축과 현대의 폐허애호주의

[오프모던 선언문]

도판
옮긴이 해제 | 김수환

작가 소개

스베틀라나 보임 지음

1959년 구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게르첸 사범대학을 다니던 중 21세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보스턴 대학에서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하버드 대학에서 비교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중 암에 걸려 2015년 5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보임은 30여 년간의 저술과 창작을 통해 21세기 지성사에 적지 않은 족적을 남겼다. 특히 2001년에 출간된 책 『노스탤지어의 미래』는 학자들이 ‘기억’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으며, 그녀의 이름을 영원히 ‘노스탤지어’ 개념과 연결시킨다. 그녀는 또한 사망하기 직전까지 근대성에 대한 대안적 계보학을 탐사하는 “오프모던”이라는 기획에 매달렸는데, 끝내 건설되지 못한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기념탑 <제3인터내셔널 기념비>의 역사와 후생을 탐사하는 짧은 에세이 『오프모던의 건축』에서 보임이 이제껏 발전시켜온 탐색의 줄기들이 오프모던이라는 개념을 통해 통합되어가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그 밖의 주요 저서로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간한 『인용부호 속의 죽음: 현대 시인의 문화적 신화들』(1991), 『공통의 장소: 러시아, 일상의 신화들』(1994), 『노스탤지어의 미래』(2001),『또 다른 자유: 이념의 대안적 역사』(2010) 등이 있다.

김수환 옮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문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책에 따라 살기』 『사유하는 구조』 등이, 옮긴 책으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코뮤니스트 후기』 『영화와 의미의 탐구』(공역) 『문화와 폭발』 『기호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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