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44호 (2023년 겨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2월 5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316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겨울호를 펴내며

‘살과 피를 가진 자에 의해 말해지는’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입학하자마자 배워 온 것이 학교 폭력에 관한 것이었다.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 그 친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폭력이라고 배워 왔다. 그 뒤로 아이들 사이에서는 무슨 유행어처럼 ‘그건 폭력이야’라는 말이 흔해진 것을 보게 되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사안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혼내고 있는데, 아이가 엄마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다며 “그건 폭력이야”라고 나의 언행을 지적했다. 꽤 그럴듯한 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거기서 아이를 더 혼내야 할지, 아니면 먼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기 위해 훈계를 멈춰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불편하다는 감정은 실은 다양한 상태를 포괄하는 말이다. 불쾌, 두려움, 민망, 초조, 후회, 슬픔, 외로움 등의 여러 감정이 불편한 상태로 환원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불편하다. 자신의 상태가 조금만 불편해도 그것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는 아이들의 태도는 아마도 저러한 다양한 감정들을 일상의 관계 안에서 충분히 학습하지는 못한 채로, ‘불편’과 ‘폭력’이라는 말을 먼저 배운 탓이라고도 말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비단 아이들뿐일까. 서로 다른 의견을 확인하는 일조차 꺼려하고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관계에서의 안락만을 누리고자 하는, 즉 ‘비판이 불가능한’ 이즈음의 세태 속에서 우리는 다채로운 의견과 다양한 감정을 마주하기 이전에 남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과도한 예의’와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그건 상대의 탓이라는 ‘어긋난 적대’ 사이를 무한히 오가고 있다. 이러한 사정에서라면,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비평이 비판적 사유를 전제로 하며 대화를 통해 지속된다는 것은 여전히 틀림없는 사실이다. 비판이 없는 시대라는 말을 요즘 종종 듣게 되는데, 합리적인 비판보다는 대체로는 상대에 대한 무관심, 어쩌면 과도한 예의, 때로는 선을 넘은 조롱이 동시에 넘쳐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비평이 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할 수 있을까. ‘대화’를 통해 ‘비평’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문학과사회』의 최근 기획들은 우리 사회가 점점 잃고 있는 ‘비판적 사유’와 ‘생산적 대화’의 회복에 그 최종 목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비판으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자신의 감정적 불편과 분노가 정당한가, 그리고 그것이 적당한 곳을 조준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일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판이 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비판은 대화의 상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을 거는 행위이지 손쉽게 비난하고 돌아서며 자기 우위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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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문학과사회 하이픈』의 기획은 ‘비평–대화’이다. 지난 호로부터 연장된 이 기획은 갈수록 ‘생산적 비판’과 ‘합리적 대화’의 가능성 자체를 잃어가는 한국 사회에서 비평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한 자리이다. 연속 기획으로서 ‘비평’과 ‘대화’라는 주제를 확장해본 이유는, 이 기획이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대화로 이어져 비평장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나아가 ‘메타비평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일이 이즈음의 한국 사회에서 특별히, 그리고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보원의 「자가진단으로서의 비평」은 “대화는 두 담론 사이의 통약 불가능성으로부터만 가능해진다”는 명제 아래 문학의 ‘내재적 문학성’ 혹은 ‘본질적 문학성’을 새삼 옹호해보고자 하는 글로 읽힌다. “문학은 현실과 전적으로 같지는 않은 무엇”이며 문학의 “내재적 원리를 인정하는 것은 현실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내는 행위”라고 그는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했을 때에라야, 문학과 현실 사이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것, 즉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끝에 그가 정의하는 ‘자가진단으로서의 비평’은 “문학이라는 세계에 속한 내재적인 법에 의존하여 어떤 작품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 그리하여 “어떤 한 작품을 위해 아직 씌어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씌어질 수 없는 법을 창안하는 것이” 된다. 최근 한국 비평의 특정 경향에 대해 전면적인 성찰을 요청하는 글로 읽히는바, 이후의 비평들이 이 글과 어떤 대화를 이어나가게 될지 자못 기대된다.
최선교의 「대화의 조건—『문학과사회 하이픈』 2023년 가을호를 읽고」는 근래의 몇몇 비평들을 경유하여, 비평장에서의 생산적인 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관해 그 전제 조건들을 검토해보는 글이다. 그것은 바로 , “비평장에는 여러 개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일, 나아가 각자의 진실 사이에 서로 나뉘고 겹치는 지점을 명확히 확인하려는 태도로 정리된다. 이러한 생산적 대화의 전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최근의 비평들이 서로 갈라지고 만나는 지점들이 실질적으로 확인되는 장면도 흥미롭게 읽힌다. 더불어 우리가 쉽게 놓치게 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도 기억해둘 만하다. “매끄러운 비평장에서 실수, 오해, 무지가 부끄러운 것, 감춰야 할 것, 결여된 것으로 전제되는 동안, 평론가들이 충분히 발화하지 못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 경험이나 감정은 비평의 용어로 적절하지 못한가”라는 질문들 말이다.
심진경의 「스캔들의 문학과 비평의 몫」은 2020년 여름에 불거진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 인용’ 사태를 반추하면서 한국 문단에 제출된 오토픽션에 관한 논의들을 날카롭게 정리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우리가 재차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토픽션 작가를 자칭한 자들이 주로 유대인,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등이라는 사실”, 즉 오토픽션의 존재 이유가 ‘소수집단’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오토픽션은 일관성과 통일성에 기반한 완결된 서사 속에는 담아낼 수 없는 그들의 상처와 파괴의 흔적을 담아내는 유용한 글쓰기 전략일 수 있”음이 강조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심진경의 글은 이러한 오토픽션 전략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주체가 작가 자신이 아닌 ‘독자 –비평가’가 된, ‘미투 국면’ 이후 문단의 변화를 잊지 않고 지적한다. 오토픽션 또한 “사실과 허구, 감춤과 드러냄 사이의 긴장 관계를 기반으로 한 소설 장르임”이 분명하다면, “‘문학의 이름으로’ 인정되는 위반”은 오토픽션에서조차 예외없이 이제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문학과 현실, 사실과 허구, 작가와 독자, 재현 주체와 재현 대상의 관계에 관하여 여러 겹의 문제를 도출하고 확인하는 글로서 의미가 크다.
이지은의 「라운드어바웃—전회 혹은 순환의 양상들」은 최근 한국문학 비평장을 진단하는 전제처럼 호출되고 있는 ‘페미니즘적 전회’라는 용어가 과연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기표인지를 치밀하게 점검하는 글이다. 소영현, 성현아, 최가은, 고봉준, 인아영, 김보경 등의 논의를 경유하여 이 글은 ‘페미니즘적 전회’의 세 가지 용례를 확인한다. 그것은 “작동하지 않는 텅 빈 기표”가 되거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온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 되거나, “문학성·문학사의 탈구축 움직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두가 ‘페미니즘적 전회’를 말하지만 그것을 전혀 같은 의미로 말하지 않는 것은 이 세 가지 용례가 자본, 문단, 젠더라는 한국문학을 구성하는 각각의 권력에 대해서만 사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연히 이지은의 결론은 ‘자본 –문단–젠더’를 동시에 문제 삼으며 상대를 향해 가로질러 나아가 충돌하는 ‘비평적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 된다.
강도희의 「돌봄에 대해 우리가 대화하지 않은 것들」은 최근 비평장에서 활발하게 논의된 ‘돌봄’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주요한 작품들을 재검토하면서 ‘돌봄’의 문제가 담론의 차원이 아닌 실천의 차원에서 더욱 세밀하게 다뤄져야 하는 논제임을 확인하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이 지적하듯, “돌봄이 어려운 이유는 그 가치가 끊임없이 저평가되고 적절한 분배와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구조의 문제도 있지만, 구체적인 실천 안에서 타인에게 무엇이 좋은 돌봄인지가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고 따라서 참여자들 스스로 인식의 재고를 끊임없이 요구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돌봄의 주제가 ‘난잡한’ 사유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문학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 어떤 윤리적 실천이 가능한지를 고민하는 일을 지속하는 일이 당연히 필요하다. 강도희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중요하게 확인하게 된다.
윤재민의 「연구 노트 /단상—비평이라는 문학」은 일본의 문학평론가 후쿠시마 료타가 2019년에 출간한 『백 년의 비평—어떻게 근대를 상속할 것인가』의 서문에서 그가 밝힌 ‘문학을 문학주의와 분리하기’라는 태도에 흥미롭게 주목하면서, 이를 참조하여 한국의 비평장에서 ‘문학주의’라는 용어가 “논쟁용 용어”로 ‘활용’되어온 맥락을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지금의 비평장에서 이 ‘문학주의’라는 용어가 어떻게 다시금 의미 있는 비평적 대화를 촉발할 수 있을지 그의 후속 논의를 기대해봐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흥미로운 여섯 편의 비평과 함께 실린 여성 평론가 네 명의 좌담도 알차다. 세대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여러모로 조심스럽지만 좌담의 자리에 함께한 김보경, 백지은, 소영현, 홍성희 평론가는 비평을 써온 기간만을 따져보더라도 세대가 어느 정도는 분명히 나뉜다고 할 수 있다. 문단·제도·비평·젠더·‘나’·‘우리’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 세대를 거슬러 그녀들의 대화가 만나고 충돌하고 흩어지는 장면들을 흥미롭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대화의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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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 쉬지 않고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읽고 나면 누군가와 어떤 말이라도 나누고 싶어지는 멋진 작품들이 있어서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계절에도 그런 작품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황동규, 김행숙, 이근화, 김상혁, 구현우, 이소호 , 박은지, 조시현, 김뉘연, 이예진 시인이 신작 시를 보내주었다. 송지현, 김봉곤의 신작 소설도 특별히 반갑게 맞아주시기를 바란다. 지난 계절에도 소중한 신간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지면의 한계로 리뷰 코너에서 보다 많은 작품을 다루지 못해 아쉽다. 김영임, 소유정, 유성호 , 최현식, 김요섭, 서영인, 이근희, 황유지 평론가의 정성스러운 리뷰도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본격적으로 메타비평적 성격의 글 두 편도 함께 싣는다. 김영찬의 「기차를 타고 , 기어라, 비평!」은 김형중의 『제복과 수갑—긴급조치 시대의 한국 소설』을 “푸코와 아감벤, 프로이트와 라캉이 함께 써”낸 ‘증상들의 문학사’로 , 바로 한국문학사의 정곡에 해당되는 것으로 읽어낸다. 전승민의 「Re-troubling the Trouble」은 심진경의 네번째 비평집 『더러운 페미니즘』(민음사, 2023)에 대한 꼼꼼한 리뷰의 글이다. 심진경의 스물네 해 비평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우리는 전승민을 따라 “심진경의 비평은 교차성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 문학평론가가 한국문학과 벌이는 사유의 ‘실뜨기 놀이’로 지어진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호는 ‘문지문학상’의 선정 소식과 함께 더욱 풍성하고 따뜻하게 꾸려졌다. 소유정, 이희우, 최선교 평론가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이 함께 지난 1년간 흥미로운 대화의 시간을 거쳐 선정한 ‘이 계절의 소설’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문지문학상 소설 부문의 수상작으로 예소연의 「사랑과 결함」을 선정하였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문지문학상 시 부문의 수상작은 김리윤의 「전망들」 외 4편으로 결정되었다. 선정에 참여해주신 김언, 김행숙, 이원 시인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수상자들의 역시나 멋진 수상 소감과 심사위원들의 세심한 심사평도 본권 지면을 통해 확인해주시기 바란다. 두 분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이번 호를 꾸리며 ‘대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마음조차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일진대, 그런 우리가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기만에 불과할지 모른다. 게다가 그런 우리가 가진, 타인을 이해할 가장 유력한 수단이 바로 ‘언어’라는 사실은 대화의 불가능과 가능을 동시에 환기하기도 한다. 언어를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 너머로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문학 속에서 무수한 말을 배운 우리가 언어를 통해 대화의 축복을 누리는 방법을 과연 찾게 될까.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조차 없다면, 이 무수한 말은 대체 다 무슨 소용이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문장들이 “살과 피를 가진 자에 의해 말해진다는”(김리윤의 수상 소감에서) 그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면, 우리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 호를 읽는 독자들이 이러한 질문을 함께 고민해준다면 좋겠다.

편집동인 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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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차례

| 본권 |
겨울호를 펴내며


황동규 마음 기차게 당긴 곳 외 1편
김행숙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직 잠을 청할밖에 외 1편
이근화 새벽의 모양 외 1편
김상혁 할머니의 거북 외 1편
구현우 나는 절필한다 그러나 절필을 선언하지 않는다 외 1편
이소호 최악의 전망 외 1편
박은지 무엇이든 자란다 외 1편
조시현 뮤리엘의 일기 I 외 1편
김뉘연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 외 1편
이예진 우리 모두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귀를 뚫었다 외 1편

소설
송지현 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김봉곤 기록적

리뷰
김영임 뉴노멀New Normal의 ‘벙커’와 ‘문지방’
—강혜빈, 『미래는 허밍을 한다』
—주민현, 『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소유정 뚫고 지나가기
—문보영,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김소연, 『촉진하는 밤』
유성호 오랜 시간의 풍경을 순간의 파문으로 그려내는 것
—김명인,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최현식 “야생의 심장”, 생명력과 폭력성의 다른 이름
—최두석, 『두루미의 잠』
김요섭 우리는 매번 다른 무대에 오르게 되겠지만
—장류진, 『연수』
—서이제, 『낮은 해상도로부터』
서영인 더 멀리, 끝까지 가보기 위해
—구병모, 『있을 법한 모든 것』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이근희 서로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최은미, 『마주』
—임솔아,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황유지 차라리 몸들의 롤플레잉 게임
—이유리, 『좋은 곳에서 만나요』
—김화진, 『공룡의 이동 경로』

메타비평
김영찬 기차를 타고, 기어라, 비평!
—김형중의 『제복과 수갑』을 읽으며
전승민 Re-troubling the Trouble
—여성성을 내파하는 여성성: 심진경의 『더러운 페미니즘』

2023년 문지문학상 발표
김리윤 전망들 외 4편
예소연 사랑과 결함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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