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가시

대산세계문학총서 184

시마오 도시오 지음 | 이종은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4월 12일 | ISBN 9788932041445

사양 변형판 130x200 · 568쪽 | 가격 22,000원

책소개

“난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요.
당신이란 인간은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남편의 외도로 시작된 아내의 병
추궁과 고백, 다툼과 다짐은 끝없이 이어지고
두 사람의 감정은 바닥의 바닥을 드러낸다.

제43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죽음의 가시」 원작 소설

패전 후의 혼란을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 전후문학의 대표 작가 시마오 도시오의 장편소설 『죽음의 가시死の棘』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84번으로 출간되었다.
작가인 남편 ‘나’와 아내 ‘미호’는 10년을 함께한 부부이다. 남편의 불륜을 감지한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의 일기를 보고 남편을 심문하기 시작한다. 유순했던 아내가 다른 사람처럼 변하자 남편은 잘못을 인정하지만 가족의 일상은 점점 무너져간다. 일본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시마오 도시오는 정신적 위기에 몰린 아내와 남편, 그와 함께 흔들리는 가족의 모습을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이 작품은 1954년 10월부터 1955년 6월까지 작가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다룬 소설로, 부부는 이후 이 일을 둘러싼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각자 발표하기도 했다. 소설과 작가의 삶 모두 관심을 모으는 작품이지만 정작 소설은 끝없는 다툼의 시간 속에서도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는 부부의 모습을 통해 사랑과 유대, 감정과 시간이 진정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이토록 무시무시한 작품들에서 인간성을 구해야 할까, 아니면 예술을 구해내야 할까. 사소설이란 이처럼 절망적인 질문을 부추기는 골치 아픈 존재라는 것을 이만큼 명확하게 증명하는 작품이 있을까? – 미시마 유키오(소설가)


시마오 도시오와 사소설, 그리고 『죽음의 가시』

시마오 도시오는 패전 후의 혼란을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제3의 신인’으로 분류되는 작가로 고지마 노부오, 엔도 슈사쿠 등과 함께 동시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힌다. 한국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소설 『죽음의 가시』는 제43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동명 영화(오구라 고헤이 연출)의 원작이기도 하다.
시마오 도시오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실 중 하나는 실제 자신의 가정에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죽음의 가시』를 썼다는 것이다. 시마오 자신도 그 일 이후의 일기를 책으로 출간하고, 아내인 미호도 이후 작가로 활동하며 『죽음의 가시』의 바탕이 된 경험을 책으로 출간했으며, 『죽음의 가시』는 시마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니 여러 의미에서 시마오 도시오 개인의 삶과 『죽음의 가시』를 떼어놓고 그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시마오 도시오의 작품세계를 사소설에 한정하거나 그가 사소설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아내를 만나기 전 그의 삶을 좀더 짚어보면, 시마오는 해군 소위로 임관 후 어뢰정에 몸을 싣고 출격하는 훈련을 반복하다 1945년 8월 13일 출격 준비 명령을 받았으나 최종 명령은 내려지지 않은 채 15일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였다. 죽음을 반복 연습하는 이 경험은 시마오의 삶과 문학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이후 시마오는 이 경험을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 기법으로 소설로 써나간다. 이처럼 시마오 도시오는 사소설로 분류되는 죽음의 가시 외에도, 전쟁의 체험을 담은 소설, 20년 이상 아마미에 거주하며 군도에서의 삶을 다룬 작품들도 다수 발표하였으며 하나의 국가가 아닌 군도로서의 일본을 사고하기를 촉구하며 야포네시아Japonesia라는 개념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죽음의 가시』는 작가의 개인사와 사소설이라는 특징으로 주로 논해지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을 언어화해나간 작품이라는 지점에서 그의 다른 소설과 함께 하나의 문학세계를 형성한다.

“사소설이란 지극히 현실적이라 초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어떤 각도에서 보면 상당히 초현실주의적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사소설도 끝까지 파고든다면 ‘나’라는 말을 쓰더라도 그건 이른바 작가인 내가 아니라 나를 꿰뚫고 나가 일종의 투명한 존재가 되므로 눈에 비치는 것이 지극히 리얼하다 할지라도 그걸 쓰면 뭔가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소설이란 말을 들어도 상관없으니 사소설의 기법으로 써보자고 생각했죠.” (시마오 도시오, 「『죽음의 가시』의 토대」)


부부와 사랑, 가족과 유대의 의미를 묻는 소설

소설은 남편의 불륜을 감지한 아내가 남편을 추궁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흘 밤을 새우며 이어지는 추궁은 상황에 따라 잦아들기는 하지만 멈추지는 않고 때에 따라 오히려 더 심해진다. 아내의 끝없는 추궁에 남편은 때로는 궁색하게 답변하고 때로는 가정에 충실할 것을 맹세하고, 어떨 때는 남편 역시 괴로움에 실성한 척을 하거나 소리를 지른다. 그러는 동안 아들 신이치와 딸 마야는 부모의 감정에 함께 흔들린다. 누가 봐도 괴로운 이들의 대화는 완전히 고통스럽고 서로를 증오하기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대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 망설이게 될 정도로 격하게 이어지는 이들의 심문 속에 드러나는 10년간의 결혼생활과 서로에 대한 감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언젠가는 또 부리나케 뛰어오더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라고 말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미안해요. 미안, 용서해줘요. 이런 모습 보여 부끄러워.” 그러면 나도 어느덧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긴장이 풀린다. (37쪽)

의사는 이상한 물건을 보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그런 태도는 나를 흥분시켰다. 그토록 참기 힘든 아내였지만 이 세상에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문득 아내에게 가여운 감정이 든다. (313쪽)

아내를 방기한 긴 시간과 남편의 외도 후 시작된 아내의 병. 그 시간 속에 쌓인 것은 사랑과 미움만이 아니다. 서로를 향한 안타까움과 지난 시간이 갖는 힘과 아이들과 함께 만든 일상 같은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작가인 시마오 도시오는 남편의 외도와 아내의 심문으로 시작해 사랑과 유대, 감정과 시간이 진정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 책 속으로

“그런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죠? 정말 사랑하면 그런 짓을 할 리 없을 텐데요. 당신, 둘러대지 않아도 돼요. 날 싫어하잖아요. 싫으면 싫다고 해요. 그건 당신 자유니까 그래도 상관없어요. 분명 싫어했잖아요. 당신, 솔직히 말해봐요. 이번만이 아니죠? 훨씬 더 많잖아요. 대체 몇 명의 여자와 관계한 거죠? 차 마시고 영화만 봤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나는 하나하나 세어봤다. 그때는 신나게 활개 치고 다녔지만 이제는 썩어 악취를 풍기는 어둠의 행위가 수북이 쌓인다. 그렇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생각이 안 나는 척 그냥 넘어간 것도 있다. 일일이 세어보니 좋지 못한 과거의 행태가 한둘이 아니라 스스로도 놀라 입을 다문다.(9~10쪽)

“난 아무래도 이해가 안 가요. 당신이란 인간은 왜 그런 짓을 한 거죠?”
아내의 추궁이 그 지점으로 되돌아오면 나는 또다시 그 논리에 휘말리지 않을까 겁부터 났기에 아내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버렸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내의 가출을 감시하는 것뿐이다. 어쨌든 당분간 자살을 유보해달라고, 앞으로의 내 모습을 지켜봐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한 끝에 겨우 아내의 단단한 응어리가 조금 풀린 듯했다. (18쪽)

“……”
“말해봐요.”
“……”
(69쪽)

미처 마음의 준비도 못 했는데, 아내가 고개를 숙이고 묻는다.
“당신, 걔는 만족시켜줬어요?”
오늘 아침 일을 생각하니 불길한 예감이 들어 겁이 덜컥 났다.
“말해봐요, 만족시켜줬어요? 난 전혀 아니던데.”
“……”
“어땠는지 말해봐요.”
“그런 건 내가 모르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간신히 대답했다. (144쪽)

“이 사람은 내 남편이에요. 내가 너무 괴롭혀서 정신이 좀 이상해졌어요. 내가 붙들고 있는 손을 놓으면 열차에 뛰어들 거예요. 부탁이니 좀 도와주세요.” (149쪽)

[……] 쇠기둥에 매달려 떨던 아내는 내가 다가가자 퀭한 눈으로 겁을 내며 연신 거친 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 입을 떠난 말은 반향 속에서 교활한 울림을 남긴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운 사람이에요, 당신은. 날 내버려둬요. 내 곁에 오지 말아요.”
아내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농담처럼 말한다. 세상에서 떨궈진 것처럼 불안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 나도 떨며 옆에 서 있었다. (300~01쪽)

목차

■ 차례
제1장 이탈
제2장 죽음의 가시
제3장 벼랑 끝
제4장 하루하루
제5장 흘려보내다
제6장 매일의 의례
제7장 오그라든 하루
제8장 아이들과 함께
제9장 과월제過越祭
제10장 한참 뒤
제11장 이사
제12장 입원까지

옮긴이 해설 · 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에 대한 고백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시마오 도시오 지음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부모의 고향인 후쿠시마를 오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가사키 상업고등학교 입학 후 문학 동인 활동을 하며 시를 발표하였다. 이후 『14세기』라는 동인지를 창간하여 활동하였으나 시마오의 소설을 비롯한 동인들의 작품이 풍기문란과 반전사상의 혐의를 받아 판매 금지되었다. 1944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아마미 군도에 부임하였으며 훗날 아내가 되는 오히라 미호와 만났다. 1945년 8월 13일 출격 준비 명령을 받았으나 최종 명령은 내려지지 않은 채 15일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였다. 1948년 『단독여행자』를 출간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고도몽」 「꿈속에서의 일상」 등 전쟁의 체험이나 일상을 초현실주의적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1960년부터 『죽음의 가시』에 수록되는 단편 연작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그 일부를 동명의 소설집으로 출간하였으며, 같은 해 제11회 예술선장(문예 부문)을 수상하였다. 17년간 발표하였던 죽음의 가시는 1977년 12장으로 완결되어 장편소설로 출간되었고, 1990년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되어, 제43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였다.
시마오 도시오는 사소설로 분류되는 대표작 죽음의 가시 외에도, 20년 이상 아마미에 거주하며 시간의 경과 등 군도에서의 삶을 다룬 작품들을 다수 발표하였다. 1986년 출혈성 뇌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이종은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전문지 『키노』에서 기자로 일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상이론과에서 예술전문사를 취득했고, 「90년대 한국, 그 욕망의 투사」(『아틀란티스 혹은 아메리카』 수록) 등 한국영화를 다룬 글을 썼다.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 한일번역을 전공했으며, 『D자카 살인사건』 등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사건수첩 시리즈 전권을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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