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문학 걸작선

이갑수 소설집

이갑수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2월 28일 | ISBN 9788932041193

사양 변형판 124x188 · 312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따뜻한 블랙 유머의 달인, 이갑수의 두번째 소설집!

넘치는, 그리하여 모자란
모든 현상의 기원과 유래를 뛰어넘는
나와 너 사이의 사랑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갑수의 두번째 소설집 『외계 문학 걸작선』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소설집 『편협의 완성』(문학과지성사, 2018), 장편소설 『킬러스타그램』(시월이일, 2021)을 펴내며 정평이 자자했던 이갑수식 블랙 유머가 진하게 녹아 있다. 총 아홉 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물리적으로 한층 더 확장된 세계를 배경으로, 특유의 부조리극을 활발하게 전개해나감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인간 존재의 이유를 들여다본다. 첫 소설집 『편협의 완성』의 등장인물과 장면 들이 소설집 곳곳에서 재등장해 퍼즐과도 같은 묘미를 더한다.
이갑수의 소설 세계는 과학적 사실과 물리학 이론, 각종 수학 공식으로 가득하다. 이성적 사고를 드러내는 간결한 수식 덕에, 인간의 행동심리를 다루는 작가의 분석은 그 즉시 묘한 “설득력”(작가가 첫 소설집에서 다룬 바 있는)을 갖고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는 ‘완벽한 인간’의 상을 구현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작동 원리를 살피는 데 쓰인다. 작가는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인간성’이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산업구조를 바꿔놓은 오늘날 어떤 위상에 놓이는지, 따뜻한 감동과 위트를 버무려 흥미롭게 전한다.

처음에 ‘나’는 이와 같은 인간의 태도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과정을 방해하는, 그 과정을 흐리게 만드는 불순물과 같은 것이라 이해한다. 하지만 도리어 그 불순물과 같은 것이 한 인간의 핵심임을, 그리하여 그것을 자신의 행동 속에서 ‘반복’함으로써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 ‘나’는 종국에 이르러 “Q . E. D. ”를 선언하며 새로운 지식 체계를 확립한다. 혹은, 좀더 인간적인 언어로 말해보자면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 그것은 마치 사랑과도 같아 보인다. 임지훈(문학평론가)


외계로 구축된 소설 바깥의 현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랑에 대한 고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타임 루프에 갇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종류의 텍스트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레고리 잠자는 벌레가 되었을 때 무기력하게 당했지만, 이미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사람은 갑자기 벌레가 되어도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지 않는다.
―「시간의 문법」 중에서

“수요일 오후 2시까지 8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반복되는 일주일에 갇힌 주인공 ‘나’는 두어 번의 시간 순환 끝에 “아! 식상해” 하고 중얼거린다. ‘나’의 타임 루프를 접한 가족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거 뭔지 알아. 드라마에서 봤어”라고 반응하는 엄마와 이모는 급기야 “열심히 해봐” “힘들겠네” 하며 격려까지 건넨다. “이번 주 로또 번호가 뭐냐?”라고 묻는 이모부의 모습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낸다(「시간의 문법」). 그런가 하면 “이 나라에는 이제 지식인이 없”느냐는 질문에 “네이버”에 있다고 덤덤히 말하는 어린이대공원의 수문장 로봇이 있으며(「수문장」), 지구 멸망을 예감하고 앞서 회사를 떠난 재봉사들처럼 “스티븐 호킹이 죽었어. 그래서……”라고 전화로 어렵사리 퇴사 결심을 털어놓는 ‘나’에게 “올 때 쿠킹호일 좀 사” 오라는 아내가 있다(「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이갑수의 소설 세계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실소는, 독자가 독자로서의 역할―읽는 행위―을 진지하게 이행하는 그 찰나를 노린 일격과 같다. 때때로 과연 이것이 소설일까? 하는 의심마저 불러일으킬 만큼, 인물을 둘러싼 현실은 허구fiction와 사실fact 정보가 뒤섞인 채 촘촘한 결을 유지한다.
소설에서 인물의 행동에 관한 ‘당위’는 심리가 노출되기에 앞서 앞뒤 맥락이 충분히 설명될 때에 성립된다. 여러 장치를 통해 소설 바깥의 독자로 하여금 ‘나라면?’이라는 가정을 수시로 일깨우는 것 또한 효과적일 테다. 당위는 공감과 맞닿아 있으므로. 반면 이갑수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신이 처한 작금의 현실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에게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니와, 이미 벌어졌거나 훗날 펼쳐질, 과거나 미래에 관한 가정이 없기에 결연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당위적이진 않아. 그냥 하고 싶은 것도 있어. 이유를 잘 모르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고.”(「이해학 개론」) 그 자체로 소설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을 가볍게 무시하며―현실에 지친 우리가 흔히 그러하듯―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평범한 사람은 타임 루프에 갇혀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은 듣기에 퍽 놀랍다. 그것이야말로 소설 바깥에서 현실을 겪으며 삶을 ‘읽는 자(독자)’의 깊은 동조를 이끌어내는 고찰이므로.
이렇듯 허구의 기능에 기댄 전통적인 소설의 화법과 간극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갑수의 소설은 독특한 공감의 지평을 연다. 눈앞에 벌어진 당혹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며, 어떤 식으로든 자율적으로, 주체적으로 헤쳐나가는, 주어진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어쩌면 그것이 인간 삶의 ‘진짜’ 모습일지 모른다고 이갑수의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성공이다. 그 실패로 인해 외계의 범위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세계의 크기와 형태는 인식하는 주체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 당대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만큼이 세계다.
―「외계 문학 걸작선」 중에서


이성과 합리성 너머 온기를 간직한
포스트 휴먼의 얼굴

하지만 사실 새로운 이야기 같은 것은 없고, 결국에는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소설은 논리적 구조물이고, 그게 유기적으로 짜여진 거라면 거기에서 어떤 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겁니다.
―『채널예스』 7문 7답 작가 인터뷰(2021.10.28.)에서

‘인간이 무엇이냐’는 현대사회의 질문은 자연스레 첨단 과학기술의 그늘 아래 ‘소설의 역할은 무엇이냐’ 하는 문학적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갑수의 소설은 매우 산뜻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힌트를 드러낸다. 가령, 「수문장」에서 어린이대공원의 수문장 로봇은 누구보다 성실하고 원칙을 준수하는 모범 (대체) 인력이다. 한때 인간이었던 그는 놀이공원의 안전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어린이날에 펼쳐진 테러 현장에서 그가 내린 판단은 ‘오류’에 가깝다. “어린이는 우리의 희망이다”라는 문장이 씌어진 발판을 달고 있는 소파 방정환의 동상은 3억이 넘는 코끼리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값싼 ‘물건’임에도, 수문장은 “(방정환) 선생이 아니라 (어린이를 공격하며 주차장에서 날뛰는) 코끼리를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기로” 결심하고 칼을 휘두른다. 여전히 수문장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자본에 따른 가치가 아닌, ‘존재의 의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주 시점」에서 외계인이 천만 명을 제외한 인류를 무작정 죽이기로 한 시점에, ‘나’는 아버지와 안전한 자리를 운 좋게 확보하고 남은 태호 형을 염려한다.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누가 물으면 망설임 없이 우주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태호 형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오랜 시간 동경을 품었지만 정작 미래에 목숨이 보장된 것은 ‘나’이다. 그러나 어처구니없을 만치 절망적인 현실을 마주하는 동안에도 곁을 지키며 “컴퓨터의 랜덤 추첨에서 태호 형이 뽑힐 가능성”을 점쳐보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처럼 이갑수의 세계에서는, 이야기의 물꼬마다 이정표처럼 세워둔 물리학 이론과 수학 공식을 걷어낸 즉시 인간사의 드라마―숱한 의혹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의미를 부여하며 행복을 갈구하는 얼굴들―가 또렷이 보인다. 그들은 불가해한 현실에 쉽게 압도되지 않고, 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특정한 지식의 관점에서 소화시킬 수 없는 불순물이 바로 그 지식의 관점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리, ‘인간의 이유’인 것”이라는 임지훈의 해설이 가리키듯,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써 “변하지 않는 본질을 찾”(「인류애」)아 골몰하고 실패를 거듭하며 나름의 믿음에 도달한다. 그러니 이갑수의 소설 공식에 따르면 그 무엇이 인류의 미래를 덮치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우주 시점」)


본문에서

―눈앞에서 아버지가 죽는 모습을 봤으니 충격이 컸을 겁니다.
의사가 말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생명, 삶, 죽음에서 어떤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음악과 유사했다. 어떤 리듬이 세상을 움직이고, 또 모든 생명의 근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생성과 소멸, ‘살아 있다’라는 것의 의미…… 그런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거라는 것 이외의 별다른 결론을 얻을 수는 없었다.
―엄마, 나 배고파요.
다시 말을 한 순간에, 나는 ‘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인칭대명사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외계 문학 걸작선」

다음 날, 하급생 아이가 혼자서 당신을 찾아온다.
―왜 도와주지 않았죠? 아저씨 때문에 새로 산 신발을 뺏겼어요.
아이가 말한다.
―저, 나는 경찰이 아닙니다만.
당신이 말한다.
―그래도 도와달라는 신호를 감지했으면 도와줬어야죠.
아이가 말한다. 크게 억울한 모양이다.
난감한 일이다. 아이의 신호는 명확하지 않았다. 도와주면 도와준 대로 또 다른 원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여섯 번이나 직장을 옮기면서 인간에게는 결정적으로 한 가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관성.
분명 책임지고 맡아서 일하라고 해놓고, 며칠 후에는 그렇게 마음대로 할 거면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친다. 「수문장」

―말도 안 돼.
환상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지면 텍스트 안의 인물은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텍스트를 아는 사람은 비현실적인 가능성이라도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거 뭔지 알아. 드라마에서 봤어.
실제로 엄마와 이모는 내가 타임 루프에 갇혔다고 하자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각각 이렇게 덧붙였다.
―열심히 해봐.
―힘들겠구나.
그러니까 내가 도서관에 간 이유는 무엇이 힘든지, 뭘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시간의 문법」

―너 매일 게임만 한다고 엄마가 걱정하더라.
―4차 산업혁명 못 들어봤어? 이제 기계가 일하고 인간은 노는 세상이 올 거야.
―그래. 그런 세상이 오면 정말 좋겠다.
나는 아들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일을 하는 세상이 올지는 모르지만, 그런 형태는 아니다. 기계가 일하고 기계의 소유자들이 노는 그런 세상이다. 자기 대신 일할 기계를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로 할 때보다 돈이 덜 드는 일을 찾아 헤맬 것이다. 「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작가의 말

나의 스승은 멀리 떠나며 내게 씨앗을 줬다. 무슨 씨앗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마침 적당한 땅이 보여서 씨를 뿌렸다. 주인이 없는 땅이었고, 아주 넓었다.
내가 씨를 뿌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사람들이 몰려와 공사를 시작했다. 무슨 협회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들은 땅을 파고, 고르고, 잔디를 심더니 잔디 위에 선을 긋고 골대를 세웠다. 공사가 끝났을 때쯤, 나는 스승이 준 씨앗이 무엇인지 알았다. 옥수수였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관중석과 중계석을 만들고, 축구를 시작했다.
―여기서 옥수수 키우시면 안 됩니다.
옥수수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해설가라는 사람이 와서 그렇게 말했다.
―여긴 주인 없는 땅인데요.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 계속 물을 줬다. 해설가는 매섭게 나를 노려보더니, 중계석으로 돌아갔다.
꼬리를 길게 빼는 호각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다 자란 옥수수를 수확하며 가끔 공이 오가는 것을 지켜봤다.
―다들 열심히 뛰는구나.
허리를 펴며 감탄하고 있는데, 심판이 내게 달려와 레드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카드를 받고, 심판에게 옥수수를 하나 주었다. 심판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당신이 심판인 경기의 선수가 아니야. 여기는 축구장이 아니야. 너희가 멋대로 축구장을 세우고, 시합을 하고 있을 뿐이야. 여기는 드넓은 대지야. 여기서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종이비행기를 날리든, 노래를 부르든, 농사를 짓든 각자 자기 마음이야. 너희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축구를 하라고 강요하지 마.
―그러면 저희가 해설을 할 수가 없잖아요.
해설가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는지 중계를 하다 말고 그렇게 말했다.
―그냥 맛있게 먹어요.
나는 해설가에게도 옥수수를 하나 줬다.
스승이 내게 씨앗을 준 이유를 생각해본다. 어쩌면 스승이 준 건 다른 씨앗인데, 내가 키워서 옥수수가 자란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뭔가 착각한 것은 아닐까.
―축구공을 줬어야죠.
그랬으면 저기서 같이 경기를 뛰었을지도 모르잖아요. 나 축구도 무지 잘하는데.
하지만, 옥수수 키우는 것은 재미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월드컵이 인기가 있다지만, 이 드넓은 대지에 모두가 축구를 하고 있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스
승은 내 성향을 잘 알고 씨앗을 줬을 것이다.
루브르박물관에서 뭔가를 할 기회가 생기면 아마도 나는 브레이크댄싱을 출 테니까.

2023년 봄
이갑수

목차

차례
외계 문학 걸작선
이해학 개론
수문장
시간의 문법
달인
대통령의 검술 선생
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우주 시점
인류애

해설│성실한 인간들의 ‘짠한’ 분투기・임지훈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이갑수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소설집 『편협의 완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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