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생의 피부

클로드 무샤르 지음 | 구모덕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월 30일 | ISBN 9788932041285

사양 변형판 140x210 · 264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모든 것은 문학적 우정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클로드 무샤르의
프랑스에서 한국 시 읽기

프랑스 시인이자 파리8대학의 명예교수 그리고 권위 있는 시 전문지 『포에지Po&sie』의 부편집장인 클로드 무샤르의 한국 문학 연구서 『다른 생의 피부ㅡ오를레앙, 파리, 서울 그리고 시』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한국 문학 전도사’로 잘 알려진 무샤르는 1999년에 처음으로 『포에지』 한국 시 특집호를 출간한 이후 2012년에도 300쪽가량의 두번째 특집호를 선보이는 등 꾸준히 한국 문학작품을 알리는 데 힘써왔다.

2012년에 발간된 『포에지』 한국 시 특집호

이러한 그의 한국 문학에 대한 사랑이 오롯이 담긴 첫 책이 『다른 생의 피부』이다. 황지우의 시구에서 가져온 이 제목은 한국인 유학생들을 통해 우연히 한국 문학을 접한 프랑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가 자신이 살아온 생애와는 아예 다른 삶을 오롯이 문학 작품으로만 간접 경험했음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어는커녕 한국 문학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던 클로드 무샤르는 이 책에서 그는 이상, 윤동주, 기형도의 시가 내포한 예측 불허의 창조성에 관한 분석은 물론, 소설가 이청준, 시인 김혜순과 나누었던 문학적 우정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책의 서문에는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청준과 함께했던 남도 여행의 일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겪은 한국전쟁의 참상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이청준은 모두가 침실로 돌아가려 할 때, 대뜸 “불 꺼지는 소리가 두렵”다고 말한다. 지금도 지나치리만치 차분했던 이청준의 목소리가 선명하다고 말하는 무샤르는, 이청준의 말을 듣고 오를레앙에서 들었던 폭격 소리와 공포를 기억해낸다.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함께 이루어진 한국 문학 읽기는 개인의 역사와 국가적 이념을 초월한 강한 떨림을 전달한다. 그는 윤동주, 김수영, 조지훈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20세기 역사의 흔적들을 읽어나가며 과거의 경험이 어떻게 작품의 구조와 시간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증언문학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의 상황을 기록한 조지훈의 시 「절망의 일기」를 예로 들어 어떤 시는 단 한순간도 역사의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매 순간 자기만의 현재를 만들어낸다고 강조한다. 현재를 달리 바라보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작품도 있다고 말하는 클로드 무샤르에겐 지금도 이상의 시 「오감도」를 번역해 읽었던 날이 선명하다. 읽는 순간 숨을 멎게 만든 이상의 작품은 독특한 비유와 의도적 여백을 통해 혼란스러운 현재는 물론 당장에 가늠하기 어려운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시인의 문장이 자신의 기대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는 그는, 이상이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폭력과 한국과 일본에서의 불행을 이채로운 시선으로 분석한다.

우리는 낯선 이상의 작품이 사실은 적나라한 현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정착할 수 있는, 그 어떤 곳에 대해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현실은 이상의 문장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다. 그러한 이유로 춤은, 언제나 다시, 더 멀리 뛰어오르기 위해 계속된다. 한 텍스트에서 또 다른 텍스트로, 같은 텍스트 안의 한순간에서 또 다른 순간으로, 글쓰기의 자리 그 자체가 일어나 이동하고 증식하고, 멈추지 않는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클로드 무샤르가 『포에지』의 두번째 한국 시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느낀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자 시인 김혜순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답한다. 이후 무샤르는 그의 시를 영어 번역본을 통해 읽고 프랑스어로 옮기는 작업에 참여하게 된다. 김혜순을 읽는다는 것은 “원초적 감각에 몸을 맡기는 것”임을 느끼며 무샤르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동하는 한국 문학에 깊이 매료된다. 그는 김혜순의 시를 통해 기이한 환희의 상태를 경험하고 지배 세력에 대항해 굴복하지 않는 용기가 무엇인지도 다시금 깨닫는다. 이렇듯 한국 시는 언어 깊숙이 내재된 역설을 통해 가장 음울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며, 이는 정치적 선언이 아닌 정치적 해방을 의미한다. 무샤르에게 좋은 시 또는 좋은 문학작품이란 언제나 고정된 형태에서 벗어나 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고 이는 한국 문학작품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그는 시를 읽는 것은 하나의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며 이를 어떻게 수용할지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에게 남은 시대적 과업임을 강조한다. 그가 한국 문학작품을 역사적·예술적 관점에서 폭넓게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탐닉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작품과 작가를 자신의 문학적 동지로 삼고 끊임없이 자신의 삶 속에 끌어안고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 책, 『다른 생의 피부』는 한국 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목에서 묵묵히 길잡이 역할을 했던 클로드 무샤르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속에는 저자의 고향인 오를레앙과 한국 시를 처음으로 접한 파리, 한국 작가들과의 우정의 장소 역할을 했던 서울, 그리고 시(時)에 이르기까지 클로드 무샤르와 소중한 인연을 나눈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으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국 문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꿈틀대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무샤르 선생의 ‘신심’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의 특별한 면모에 대한 무샤르 선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발견을 보편적 동의로 만들고 그 이해를 심화,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으로 이어감으로써 값진 결과들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헌신은 결국, 변방의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독자적인 한 단위로 등록시키고자 하는 오래된 염원에 중요한 초석을 놓는 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과리(문학평론가)


■ 책 속으로

이 모든 일이 무샤르 선생의 ‘신심’과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무엇보다도 한국 시의 특별한 면모에 대한 무샤르 선생의 발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발견을 보편적 동의로 만들고 그 이해를 심화,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천으로 이어감으로써 값진 결과들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헌신은 결국, 변방의 한국 문학을 세계 문학의 독자적인 한 단위로 등록시키고자 하는 오래된 염원에 중요한 초석을 놓는 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ㅡ 무샤르, 서쪽에서 온 고운 스파이 │ 정과리(문학평론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지 못하기에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내가 김혜순 시인에게 프랑스 시 전문지 『포에지Po&sie』의 두번째 한국 시 특집호를 준비하면서 느낀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그녀는 우정어린, 따뜻한 목소리로 위와 같이 말해주었다.
ㅡ 한국의 희미한 불빛 언어들

프랑스 언론이 한국의 경제적·사회적 도약을 주목하고, 많은 한국인이 프랑스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른 프랑스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무지했기 때문에, 지난 세기 동안 한국이 겪은 수난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 이후에 계속된 폭력적이고 참혹한 독재의 시절에 대해 이청준에게 물을 수 없었다.
그의 소설에서는 무엇인가를 만들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의 대립을 자주 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의 전부인가?
ㅡ 불 꺼지는 소리가 무섭소

1934년 12월 24일에 발표된 윤동주의 시 「삶과 죽음」은 시간을 찢으며 나타난다. 이 시가 보여주는 갑작스러움, 나는 그것이 한국 시인들의 작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을 보았다. 소곧감이 돋보이는 위의 시에서 인간의 삶은 노래와 춤 그 자체로 표현된다. 하늘 한복판에 던져진 생은 곧 중단될 것이다. 그 생은 어떤 흔적들을 남길까? 무엇을 “알 새기듯이” 한다는 것이며, 어떤 하늘 위에 흔적을 남겨 빛의 글쓰기를 하겠다는 것일까?
ㅡ 세상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

낯설면서도 친숙한 이상, 그는 자신의 작품 안에 세계의 공기, 또는 시간을 압축해 넣어놓는 듯하다. 그가 짧은 생애 동안 겪었던 한국과 일본에서의 불행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는 20세기 근대화의 시공간이 뿜어내는 기운을 느꼈던 것 같다. 그의 너무나도 구체적인 추상의 몽환적 작품들은, 반세기 후 중국 시인 구청의 ‘잘못 펴진 땅’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ㅡ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

우리는 왜 특별히, 번역시 읽기를 망설이는 것일까? 어떤 이는 번역시를 읽는 것은 진짜 시와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우리가 읽는 글이 번역된 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본래의’ 언어로 씌어진 시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진짜 시’가 아니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시는, 특히 현대시는, 또 다른 가능성의 여지를 언제나 열어둔다.
ㅡ 불란서에 가더라도

너무나 빈곤한 공동체의 삶은 기형도의 작품에서 언제나 위태로워 보인다. 그 무엇이 시인의 글 속에 은밀히 모습을 드러내는 수많은 생을 붙잡는지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곧 파괴될 듯 숨 막히게 일어난다. 그리고 시는 해체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존재가 발생하는 곳, 존재 사이의 떨림을 만들어내는 지점에, 좀더 가까이 다가간다.
ㅡ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나희덕의 모든 작품은 빠르게 일어나는 예민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한다. 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가 있다. 나무의 고운 빛깔이 우리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지만 나무는 곧 멀어져 이내 과거가 되어버린다…… 시를 통해 우리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것이 금세 몸을 감추고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시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ㅡ 복숭아나무라는 예민한 사건

이인성의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아주 독특하고 불안한 소설 중 하나이다. 인물과 사건, 모든 것이 끝없는 혼란에 휘말린다. 환상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허구적 주관성의 외면과 내면, 그리고 육체 사이의 모든 경계가 무너진다.
ㅡ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신경숙의 『외딴방』.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의 이 소설에 나오는 열여섯 ‘나’의 위험한 꿈은 바로 작가가 되는 것이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자신의 꿈을 털어놓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외사촌뿐 아니라 독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금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조차도…… 수줍은 속에 눈부신 싱그러움이 밀려든다.
ㅡ 입속에서 굵은 모래가 서걱거렸다

김혜순을 읽으며 우리는 기이한 환희를 경험한다. 절대 사나움을 잃지 않은 환희. 시인에게, 시는 자신에 대한 자신을 포함한, 지배 세력을 실질적으로 즉시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것의 언어이며, 굴복하지 않는 용기이다. 스스로에 대한 정의나 이미지가 붙잡아놓은 것에조차.
ㅡ 내가 그 바다에서 걸어나올 시각

어느 날 저녁, 산속의 텅 빈 식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불현듯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웠다. 이청준은 내게 미소를 지었고, 나는 국그릇에 눈물을 떨구었다. 나는 처음으로 슬픔이 아닌 다른 어ᄄᅠᆫ 각별한 감정으로 비롯된 눈물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흘렸으며, 그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프랑스어 단어가 내게는 없다.
ㅡ 예측할 수 없는 한국 문학

목차

■ 차례

무샤르, 서쪽에서 온 고운 스파이 │ 추천의 글 4

한국의 희미한 불빛 언어들 21
불 꺼지는 소리가 무섭소 27
세상의 습곡이여, 기억의 단층이여 48
그 속에 잠시 머물다가 타버린 64
불란서에 가더라도 88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96
복숭아나무라는 예민한 사건 109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112
입속에서 굵은 모래가 서걱거렸다 115
내가 그 바다에서 걸어나올 시각 127
예측할 수 없는 한국 문학 143

유령들 │ 옮긴이의 말 161

작가 소개

클로드 무샤르 지음

시인, 문학평론가, 파리8대학 비교문학부 교수이자 프랑스의 권위 있는 시 계간지 『포에지Po&sie』의 부편집장. 1941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났으며, 파리8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한국 작가들을 접하고 이후 여러 차례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적 우정의 교류를 이어왔다. 1999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포에지』 한국 현대시 특집호를 발간하며 프랑스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구모덕 옮김

파리7대학에서 영화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전공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동양어문화대학교에서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며 문학번역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어로 옮긴 책으로 김혜순의 『슬픔치약 거울크림』 『죽음의 자서전』, 박상순의 『나는 더럽게 존재한다』 『죽은 말의 여름 휴가』(근간) 등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8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