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은 혀

—어느 청춘의 이야기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 김진숙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12월 23일 | ISBN 9788932040592

사양 변형판 130x200 · 568쪽 | 가격 24,000원

책소개

“내 삶의 이야기 속에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군중과 권력』의 저자
작가 카네티의 탄생을 보여주는 16년간의 기록

“군중의 본질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함으로써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의 토대를 마련”(아놀드 토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 『군중과 권력』의 저자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 1905~1994)의 자서전 『자유를 찾은 혀—어느 청춘의 이야기Die gerettete Zunge. Geschichte einer Jugend』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자서전 5부작 중 첫번째 책으로 카네티라는 비범한 인물의 정신적 삶을 형성한 사건, 인물, 지적인 힘에 대해 들려준다. 나머지 인생을 결정할 만큼 영향력이 컸던 아버지의 죽음과 극단적인 방식으로 카네티의 지적 성취를 일군 어머니와의 관계, 불가리아 ‧ 영국 ‧ 오스트리아 ‧ 스위스에서 보낸 16세까지의 삶은 우리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시대의 지성 카네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은 흔한 위인의 초상이 아니다. 빈의 강렬함에서 취리히의 평안과 자유로움에 이르기까지, 한 소년의 삶은 이념의 대립과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20세기 초 유럽의 풍경을 담아낸다. 또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통해 의미로 가득 채워진 소년의 일상은 그가 평생에 걸쳐 천착했던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의 단초를 보여주는 증언이 된다.


작가 카네티의 탄생
경이롭고 독특한 문화적 오디세이아! _『하퍼스 매거진』

엘리아스 카네티가 태어나서 16세까지 불가리아 ‧ 영국 ‧ 오스트리아 ‧ 스위스에서 보낸 시기를 담은 자서전 『자유를 찾은 혀』는 장차 시대의 지성,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될 카네티의 정신적 삶의 형성과정과 사상적 바탕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부모이다. 카네티에게 처음으로 ‘책’을 선물한, 카네티의 삶 전체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존재인 아버지, 아버지 사망 후 어린 카네티가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도록 잔인하리만큼 혹독하게 독일어를 가르친 어머니. 카네티는 매일 저녁 그날 읽은 책에 대해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어머니가 이 일을 이어나갔으며,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던 저녁 독서 시간이 그의 본질, 즉 그의 정신적인 삶을 형성했노라고 카네티는 회고한다.
작가의 세세한 고백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면 카네티의 여정을 따라 다양한 도시를 떠돌게 되고, 그의 사유의 흐름은 더욱 큰 물결이 되어 독자들을 휩쓸어 간다. 특별한 사건뿐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의미까지도 엮어내는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한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듯한 뿌듯함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면 독자들이 느낄 가장 큰 감정은 질투가 될지도 모른다. 한 천재의 지적 열망이 움트고 꽃피는 과정은 시기심이 들 만큼 독특하고 경이롭다.


“나는 내가 결코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
분노도 미화도 없이 과거를 회고한다. 정직한 책. _『슈피겔』

『자유를 찾은 혀』는 일반적인 자서전처럼 성공기나 교훈적인 사연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사소해 기억하기조차 힘들 듯한, 혹은 ‘숨겨온/침묵해온’ 부끄러운 이야기, 제 생각만 하다가 미처 살피지 못한, 그러나 자신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 분명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자극적이고 떠들썩한 사건에 가려진 평범한 이야기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카네티가 “내 삶의 이야기 속에 나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언급했듯이, 그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초의 기억” 속에서 두 살배기 아이는 자신을 위협하는 젊은 남자와 자신을 그의 손에 넘기는 보모 앞에, 즉 칼로 위협하는 세상 앞에 무방비 상태로 내던져져 있다. 공포스럽지만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힘에 굴복한다. 흥미로운 것은 카네티가 기억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는 자신이 느낀 공포를 기술하기보다, 자신을 위협한 ‘그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회고 방식이 『자유를 찾은 혀』 전체를 관통한다. 카네티는 과거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에 대한 기술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양을 자신이 만난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한다. 또한 ‘혜성의 출현’ ‘타이태닉호의 침몰’ ‘캡틴 스콧이 이끄는 남극탐험대의 사망’ ‘제1차 세계대전’ 등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들 역시 사건들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이 책을 가득 채운 카네티가 만난 세상과 사람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카네티가 살아간 급격한 변화와 반목의 시대인 20세기에 대한 증언이 된다.


『군중과 권력』의 프롤로그, 그리고 에필로그
당대와 심리적, 사회적 얽힘을 깊이 있게, 독특하고 독창적으로 파고든다. _『메르쿠어』

카네티의 자서전은 작가의 성장기인 동시에 그의 평생의 과제이자 성과인 『군중과 권력』의 창작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0대 초반에 1920년대 독일을 경험한 카네티는 ‘군중’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에 대해 인식하고, 수십 년 동안 연구해 1960년 『군중과 권력』을 출간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의 씨앗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자유를 찾은 혀』에는 그의 연구의 단초가 된 사건들이 기록돼 있다. 고향 루세에서는 혜성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종말론적 집단 공황상태를, 영국에서는 타이태닉호 침몰 사고를 대하는 군중의 집단 우울 상태를, 1차대전 발발 당시 머물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적국에 대한 군중의 적개심과 전쟁을 찬양하는 집단 광기를 체험한다. 만년에 이른 카네티는 자신의 삶과 연구를 함께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자서전에서 그는 군중과 권력, 삶과 죽음, 통치자와 피통치자 등, 우리 삶과 밀접하면서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친근한 에피소드와 간결한 문체로 풀어냈다.
카네티는 다작을 한 편이 아니다. 많지 않은 그의 작품 목록에서 자서전 4권의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어진 20여 년의 작업 기간만 보아도, 카네티에게 자서전 집필의 의미는 대표작 『군중과 권력』 못지않다. 조용히 삶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보인 자서전 작업에는 한 인간의 삶을 반추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가 평생 몰두한 개인과 세상/군중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자서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 이 책에 대한 찬사

카네티는 위대한 상상가이자 고독한 천재이다. _아이리스 머독(소설가, 철학자)
폭넓은 시야, 풍부한 이상, 미학적 힘. _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
경이롭고 독특한 문화적 오디세이아! _『하퍼스 매거진』
분노도 미화도 없이 과거를 회고한다. 정직한 책. _『슈피겔』
당대와 심리적, 사회적 얽힘을 깊이 있게, 독특하고 독창적으로 파고든다. _『메르쿠어』
진정한 열정과 힘이 담긴 책…… 여러 도시와 볼거리, 특이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_폴 서루(소설가, 여행 작가)


■ 본문 속으로

“혀 내밀어!” 나는 혀를 내민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휴대용 접이식 칼을 꺼낸다. 칼을 펼친다. 그러고는 내 혀에 칼날을 바짝 갖다 댄다. 남자가 말한다. “지금 이 녀석 혀를 잘라버리자.” 나는 내민 혀를 다시 집어넣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곧 칼날로 내 혀를 건드릴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남자가 칼을 거두며 말한다. “오늘은 아직 아니야. 내일 하자.” 그가 칼을 다시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매일 아침 우리는 문밖의 붉은색 복도로 나간다. 그 문이 열린다. 뒤이어 미소를 띤 그 남자가 나타난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으며, 혀를 내밀라는 그의 명령을 기다린다. 나는 그가 내 혀를 잘라내리라는 걸 알고 있다. 매번 공포가 커진다.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_13~14쪽)

이제 숭고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나와 독일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독일어를 공부하는 시간 외에도 그랬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그 몇 주처럼 다시 어머니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나중에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경멸과 고통 속에서 내게 독일어를 가르친 건 나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머니 당신도 나와 독일어로 말하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있었다. 독일어는 어머니에게 친밀함의 언어였다. 스물일곱 살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아버지의 귀를 잃어버린 어머니 인생에서의 그 끔찍한 단절은 아버지와 독일어로 나누던 사랑의 대화가 멈춘 것에서 당신에게 가장 민감하게 나타났다. 이 언어 속에서 부모님의 진정한 결혼 생활이 이루어졌었다. 어머니는 어찌할 바를 몰랐고, 아버지 없이 절망감만 느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아버지의 자리에 나를 앉히려 했다. 어머니는 그 일에 엄청나게 큰 기대를 품었다. 그래서 처음에 내가 어머니의 계획을 망가뜨릴 것처럼 보이자 견디기가 힘들었다. _142~43쪽

이 시절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장 중요하고 흥분되며 특별했던 일은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던 저녁 시간과 매번 읽은 내용을 가지고 나눈 대화였다. 나는 그때 나누었던 대화를 더는 하나씩 재현할 수가 없다. 나라는 사람의 상당 부분이 그 대화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수용하고 항상 끌어다 대며, 그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정신적 물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맹목적으로 신뢰했다. 어머니가 내게 묻고 나와의 대화에서 소재로 삼은 인물들은 곧 내 세계가 돼버려서, 나는 그들을 더 이상 떼어낼 수 없었다. 나는 나중에 수용한 영향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받은 영향은 세분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내가 결코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인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이 시절부터, 그러니까 열 살 때부터 내 신조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끌리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하는 데에는 이 시절 접한 인물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내게 소금과 빵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본질적인 것, 즉 내 은밀한 정신적 삶이었다. _176~77쪽

목차

■ 차례

제1부 루세 1905~1911
최초의 기억 / 가문에 대한 자부심 / ‘카코 라 가이니카’ | 늑대와 늑대인간 / 아르메니아인의 도끼 | 집시들 / 동생의 출생 / 튀르키예인 저택 | 두 할아버지 / 부림절 | 혜성 / 마법의 언어 | 불 / 살무사와 문자 / 살인 기도 / 여행을 향한 저주

제2부 맨체스터 1911~1913
벽지와 책 | 머지강 변 산책 / 작은 메리 | 타이태닉호의 침몰 | 캡틴 스콧의 죽음 / 나폴레옹 | 사람 잡아먹는 손님들 | 일요일의 친구들 / 아버지의 죽음 | 마지막 버전 / 거룩한 예루살렘 / 제네바호수 가의 독일어

제3부 빈 1913~1916
메시나의 지진 | 집 안의 부르크테아터 / 지치지 않는 남자 / 전쟁 발발 / 메데이아와 오디세우스 / 불가리아 여행 / 악인의 발견 | 빈 요새 / 알리스 아스리엘 / 노이발데크 근처의 잔디밭 /어머니의 병 | 대학 강사 / 보덴호수 속의 수염

제4부 취리히—쇼이히처가 1916~1919
맹세 / 선물로 가득 찬 방 / 스파이질 / 그리스인의 유혹 | 인간 이해에 대해 배우는 학교 / 해골 | 어떤 장교와의 논쟁 / 밤낮없는 독서 | 선물의 삶 / 최면 상태와 질투 | 중상자들 / 고트프리트 켈러 축제 / 곤경에 처한 빈 | 밀라노에서 온 노예

제5부 취리히—티펜브루넨 1919~1921
얄타 빌라의 선량한 노처녀들 | 베데킨트 박사 / 시금치의 계통발생학 | 유니우스 브루투스 / 위대한 남자들 사이에서 / 오거 결박 / 미움받는 법 / 탄원서 / 금지령에 대한 준비 / 쥐 치료법 / 징표를 단 남자 / 동물의 탄생 / 모르쇠 | 카나리아새 / 열렬한 팬 / 역사와 우울 / 모금 / 마술사의 출현 / 검은 거미 / 미켈란젤로 / 버림받은 낙원

옮긴이 해설 · 엘리아스 카네티의 자유를 찾은 혀 540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불가리아 루세에서 스페인계 유대인 사업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6세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후 영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빈 대학에서 화학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나 철학과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다양한 언어에 능통했으나 평생 독일어로만 작품을 썼으며 장편소설 『현혹』(1935)과 대표작 『군중과 권력』(1960)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나치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이후 영국으로 망명해 영국에서 지내던 카네티는 만년에 이르러 어린 시절의 낙원이었던 취리히에서 주로 지내며 자서전 집필을 시작한다. 1977년 1권 『자유를 찾은 혀-어느 청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전에 3권까지 출간했으나, 1994년 영면에 들면서 사후에 출간된 4권을 마지막으로 5부작으로 계획했던 자서전은 미완으로 남았다. 카네티의 자서전은 자신의 삶의 의미들을 꿰어 엮듯 밝은 면뿐 아니라 실패와 불화를 포함한 순간들을 포착해 작가 카네티의 정신적 삶의 형성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자서전은 20세기에 대한 하나의 증언이며, 그의 필력과 더불어 하나의 거대한 문학작품으로 남았다.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 넬리 작스상, 프란츠 카프카상 등 세계적인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으며, 1981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진숙 옮김

성신여자대학교와 같은 학교 대학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알베르트루트비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상명대학교 글로벌지역학부 독일어권지역학전공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독일 문화와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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