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고다르 대화

마르그리트 뒤라스, 장-뤽 고다르 지음 | 신은실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12월 10일 | ISBN 9788932041063

사양 변형판 128x187 · 217쪽 | 가격 14,000원

분야 채석장, 인문

책소개

고다르: 우리는 조금은 적대적인 형제와도 같군요.
저는 글쓰기를 증오하거든요.
뒤라스: 대개 모든, 거의 모든 이미지는 텍스트를 방해하네.

1979년, 1980년, 1987년
뒤라스와 고다르가 나눈 세 번의 대화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한 세기에 관한 가장 강력한 증언

이 책은 1979년, 1980년, 1987년 세 차례에 걸쳐 진행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장-뤽 고다르의 대화를 담고 있다. 소설가 뒤라스(1914년생)는 알랭 레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 작업을 계기로 직접 여러 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며, 영화감독 고다르(1930년생)는 영화평론가로 이력을 시작해 자신의 초창기 영화들로부터 문학, 말과 특별한 끈을 유지해왔다. 뒤라스는 이미지의 재현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왔고, 고다르는 존재와 행위보다 이름이 앞서는, 다시 말해 율법으로서의 말이 지닌 특권과 우선권에 적대감을 표하며, 이미지와 말을 어떻게 내밀하게 연결할지 물색해왔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우리는 서로 반대 극에 서 있는 듯 보이는 그들을 관통하고 연결시켜주는 거의 모든 것을 재발견한다. 말과 이미지 간의 관계, 재현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의 재현, 유년기와 텔레비전, 여성의 말/자리와 관련한 질문 등등.
어떤 의미에서 단독적이고 고독한 길을 걸었던 두 사람, 뒤라스 본인의 표현에 따르자면 “버릇없이 자란” “왕의 일족”이자 “무뢰한”인 두 사람은, 대화 내내 어긋나고, 오해하고, 충돌하다가, 아주 드문 순간에만 일치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불일치와 오해가 그들 대화의 숨겨진 동력이 되어주었고, 그 속에서 그들은 역설적인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르지만 분리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는, 짝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존재, 고다르의 표현에 따르자면 “표면과 뒷면” 같은 존재였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보루, 자기 사상의 은신처를 방어”하고 있었다. “뒤라스는 글쓰기의 고독을, 고다르는 이미지의 고독을”(시릴 베갱). 이 대화는 언어와 이미지에 대한 두 사람의 깊은 성찰을 담은 기록임과 동시에, 한 세기에 관한 가장 강력한 증언이라 말할 수 있다.


1979년 대화
“이게 영화가 될까요?”
“네, 이건 영화예요.”
_뒤라스의 <트럭> 중에서(고다르의 <프랑스 영화 오십 년>에 인용됨)

첫번째 대화는 고다르의 영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의 촬영이 계기가 되었다. 1979년 10월 고다르는 뒤라스를 초대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요청한다. 뒤라스가 촬영을 거부하자 계획을 바꾸어 뒤라스와 대화를 나누며 이를 녹음했고, 그중 몇 문장을 영화의 사운드 몽타주로 사용했다. 대화는 고다르가 거주하던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어느 학교와 고다르가 운전하던 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고다르는 10년 동안 전투적인 영화와 비디오 에세이를 만들다가,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을 통해 다시 상업망에서 배급하는 주류 영화로 되돌아오게 될 터였다. 뒤라스에게 자신의 영화에 출연을 요청했을 때 그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뒤라스가 만든 영화 <트럭>(1977)이었다. 두 사람은 이 두 영화를 비롯해 자신들이 쓰고 찍은 다양한 글과 영화 들을 오가며,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 재현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재현하는 방식, 배우들과의 작업 및 관객에 대한 생각 등을 교환한다.


1980년 대화
“불가능한 삶을 경험한다는 건가?”
“되레 가능함을 표현하는 것이죠!”

1980년 9월 혹은 10월에 이루어진 두번째 대화 역시 고다르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고다르는 ‘근친상간’이라는 테마와 관련하여 뒤라스와 무언가 공동 작업을 해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화에서 두 사람은 근친상간과 이를 재현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을 교환한다. 실제적인 공동 작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이는 향후 두 사람의 작업에 확실한 흔적을 남긴다. 고다르는 <미녀갱 카르멘> <마리아에게 경배를> <리어 왕>에서 이 주제를 변형해 흩어 놓았고, 뒤라스는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의 오누이의 관계에서 얻은 영감을 더해 『아가타』를 쓰고 <아가타와 끝없는 독서>라는 영화를 발표한다.


1980년 대화
“영화에서는 우리가 [서로] 뒷면에 쓴다고 말할 수 있을지.”
“예. 당신의 녹색 눈은 저보다 먼저 이것을 보았습니다.”

세번째 대화는 고다르의 <오른쪽에 주의하라> 개봉과 뒤라스의 『에밀리 엘』의 출간을 즈음하여, TV 프로그램 <오세아니크>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다. 이 대화는 복잡한 상황이 겹쳐지고 몇 가지 오해로 점철되어 있어 더욱 흥미로운 양상을 띤다. 고다르는 영화를 공개한 후 TV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뒤라스는 소설 『연인』(1984)으로 엄청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후 대중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또한 고다르는 『연인』을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을 사려고 했으나 뒤라스에게 거절당한 상태였다. 애초 두 사람은 서로의 최근 작업에 대해 질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뒤라스는 고다르가 『에밀리 엘』을 읽지 않고 왔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뒤라스는 그들이 『에밀리 엘』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역설로 가득 찬, 자유로운 즉흥적 대화가 펼쳐지는 가운데, 둘은 끝없이 서로를 자극하고, 엇갈리고, 오해한다.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무척이나 아끼고 존경했고, 그들 사이에는 어떤 온기와 부드러움이 있었다. 뒤라스는 후에 이 대화를 되돌아보며 말한다. “이 혼란과 난리 속에서, 나는 갑자기 고다르와 내가 같은 종류의 인간, 동류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면서도 손이 닿지 않는 비사교성 속에 머무는 사람들이었다. […] 내 있는 그대로를 그는 존경하고, 나는 그가 사는 방식을 존중한다. 감당하기 힘들고 버릇없이 자란, 그 모든… 왕의 일족, 우리는 둘 다 왕이고… 무뢰한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다양한 맥락이 담겨 있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어법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두 사람의 관계와 그들의 작품, 당대 상황에 대한 충분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책을 엮은 영화평론가 시릴 베갱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쓰고 상세한 주석을 붙였고,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영화평론가 신은실이 옮긴이주를 통해 설명을 덧붙였다.

* 북커버 사진: 1967년 1월 20일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로 매릴린 먼로상을 수상한 장-뤽 고다르와 심사위원이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습.


■ 책 속에서

우리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들의 책을 관통하는 거의 모든 것을 재발견한다. 쓰여진 것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 재현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강제수용소와 근친상간이라는 두 개의 다른 표제)의 재현, 유년기와 텔레비전에 대해 성찰하는 질문들. 또한 두 사람은 매체를 통해 말 그대로 몸을 얻는 방식, 역사를 주파하겠다는 열의를 품고 모세, 루소, 포크너, 사르트르를 차례로 소환하며 냉담한 아이러니와 눈부신 서정이 뒤섞인 가운데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에서 깊은 열정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_8쪽(시릴 베갱)

그들이 만나는 곳은 명확히 드러난다. 작가 뒤라스는 영화창작자이기도 하며 영화창작자인 고다르는 자신의 초기 영화들에서부터 문학, 쓰여진 것, 말과 특별한 끈을 유지해왔다. 그리하여 고다르가 “자신 안의 모든 것이 작가적인 무언가와 연루되기를 거부했을 때, 영화창작자들 중 가장 작가에 가까워졌다.” 뒤라스는 이미지를 경계하는 입장을 줄곧 견지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고정되어 있으며 이어지지 않는 행위를 설명적이지 않은 최소한의 쇼트로, 환기의 힘을 구성하는 텍스트의 현전에 도달하는 방법을 질문한다._8쪽(시릴 베갱)

고다르는 특히 이 년 전에 개봉한 <트럭>을 떠올리며 뒤라스를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에 출연시키려 했다. <트럭>은 이미지 속에서 “지나가는 말parole”의 물리적 메타포를 이끌다시피 한다. 스타인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존재 방식은 최소한의 몸짓과 말로 줄어들고, 영화 속 발화도 조건법 과거이다. 이러한 방법론들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 연기자와의 작업, 실현이 불가능한 작업과 관련한 사유에 대한 공통적 질문을 진술한다. 고다르는 거의 이십 년이 지난 뒤 <프랑스 영화 오십 년>(1995)에서도 <트럭>의 대화를 인용한다. “이게 영화가 될까요?” “네, 이건 영화예요.”_16쪽(시릴 베갱)

고다르: 우리는 조금은 적대적인 형제와도 같군요, 제 잘못일 수도 있지만. 저는 글쓰기écriture를 증오하거든요. 글쓰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오는 순간을요. 글쓰기는 늘 그렇습니다… 당신의 경우, 만일 글이 없다면, 글이라 불러야 할지 텍스트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뒤라스: 나는 쓰여진 것écrit이라 부르지, 텍스트 또는 쓰여진 것.
고다르: 어느 쪽이든, 이미지는 그걸 좀 필요로 하지요…
뒤라스: 나는 스크린에 두 가지가 필요하다네. 내가 “말의 진폭”이라 부르는, 방해할 수 없는 것이지. 대개 모든, 거의 모든 이미지는 텍스트를 방해하네. 이미지들은 텍스트가 들리는 걸 방해하지. 내가 바라는 건, 텍스트가 지나가는 걸 내버려두는 무엇일세 […]._18~19쪽

뒤라스: […] 나는 가끔 첫 발성영화가 <히로시마 내 사랑>이라고 말하지. 레네가 내게 이랬기 때문일세. “간곡히 부탁하건대, 당신이 쓰는 것과 제가 요청하는 것 사이에 차이를 만들지 마세요. 그게 제가 당신과 일하는 까닭이니까요.” 이런 걸 받아들이고 청할 수 있는 유일한 이였을 테지.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로 세상에서 가장 큰 재난에 대한 한 편의 영화를 시작하는. 세상이 사진으로 넘쳐나고 있었을 때인데. 이런 관점에서 레네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지. 그가 내게 청한 것이 내 영화 모두를 관통하여 남아 있다고 여기네. 감행하는 것. 내가 이미지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면, 물론 영화를 전혀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만들 줄도 몰랐을 걸세._43쪽

고다르: […] 영화는 저 혼자는 갈 수 없는 장소로 데려가는 이동 수단이라고 여겨져요. 그게 흥미롭습니다. 저 자신의 연장, 혹은 저 자신을 연장하는 방식이 이런 것이라고 느끼지요.
뒤라스: 불가능한 삶을 경험한다는 건가?
고다르: 되레 가능함을 표현하는 것이죠!
뒤라스: 가능한 삶의 경험을, 전혀 살아보지 않은 채 표현한다…
고다르: 가능한 삶을, 경험하지 않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건, 그걸 살아내면 사람은 이미 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을 창조할 수밖에 없어요._86쪽

고다르: […] 작가들은 어떻게 그리 과감하게 쓰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과감히 쓰지 못하거든요. 말하자면 크게 할 일이 없는, 기계적인 대상을 발견한 데에 저는 만족해요.
뒤라스: 그런데 어쨌든 자네는 영화를 소리로, 낱말로 채우지 않나.
고다르: 네, 한데 저는 낱말들을 사랑해요. 낱말은 요정, 셰익스피어의 요정들이지요… 당신이나 베케트의 작품에서 낱말들은 왕이고요.
뒤라스: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번성, 낱말을 번성시키고, 또 영화를 번성시켜야지. 그런데 그것은 증명되어야 하네.
고다르: 낱말을 영화에 넣지 않는 대신 다른 걸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확실히 그래요…_108~109쪽

고다르: 저는 카메라와 함께하거나 편집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덜 두려워지는 듯합니다. 사실 카메라는 영화에서 거의 아무것도 아니에요. 영화가 생각하고, 우리는 마지막에 얻는 사유를 모으는 것이죠. 저는 생각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뒤라스: 하지만 그 사유는 우연한 게 아닐세. 그걸 자네가 영화에 넣지 않나?
고다르: 아니요, 사유는 이미 존재합니다. 한데 글을 쓸 때면 제가 생각하도록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어요.
뒤라스: 하지만 영화는 저 홀로 생각하지 않네!
고다르: 아니요, 홀로 생각합니다!
뒤라스: 그런 허튼소리는 하지 말게! 자네가 없으면 영화도 없어.
고다르: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없으면 증인이 아무도 없는 거죠._132~33쪽

여기서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보루, 자기 사상의 은신처를 방어한다. 뒤라스는 글쓰기의 고독을(“몸에 실재하는 이 고독은, 쓰여진 것의 침범할 수 없는 고독이 된다”), 고다르는 이미지의 고독을(<영화의 역사(들)> 1B편에서 읽을 수 있었던, “이미지는 부활의 때에 도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남을 실행한다. 뒤라스가 “자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다른 영화창작자를 생각한다면 그건 고다르다”라고 하는 것은, 고립을 나누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천이 지닌 고유한 단독성을 공유하길 청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이 만남은 고독의 역설적인 동맹이다._195쪽(시릴 베갱)

목차

■ 차례

프롤로그
1979년 대화
1980년 대화
1987년 대화
에필로그
부록

작가 소개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1914~1996)
1914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코친차이나에서 태어나 베트남과 캄보디아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열여덟 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법학,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43년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소설 『철면피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인도차이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를 비롯해 『부영사』 『갠지스 강의 여인』 등 수많은 작품들로 변주되었다. 특히 1984년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한 뒤라스는 감독을 맡은 「인디아 송」이 1975년 칸 영화제 예술・비평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유럽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이 당시의 경험을 담은 소설 『고통』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뒤라스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작은 공원』 등 50여 년에 걸쳐 70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인생 편력을 거쳐 온 뒤라스는 1995년 『이게 다예요』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1996년 영면하였다.

장-뤽 고다르 지음

파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1949년 소르본 대학 인류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영화 클럽과 시네마테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기고하는 등 영화평론가로 이력을 시작했고, 1959년 첫 장편 <네 멋대로 해라>를 발표하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대표 영화로 <미치광이 피에로> <주말> <넘버 2>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 <영화의 역사(들)> <언어와의 작별> <이미지 북> 등이 있다. 2022년 9월 조력사로 생을 마감했다.

신은실 옮김

프랑스 파리1대학 영화학 석사 및 DEA 과정에서 공부했다.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등에서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공저로 『필립 가렐, 찬란한 절망』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21세기의 독립영화』 등이 있다. 장-뤽 고다르의 영화 〈필름 소셜리즘〉의 한국어 자막을 번역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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