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의 사랑

뱅자맹 콩스탕 지음 | 김석희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11월 11일 | ISBN 9788932040875

사양 변형판 120x188 · 176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사랑은 나에게 인생의 전부였지만,
당신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자기 파멸로 치닫는 사랑의 심리를 치밀하게 분석해낸
프랑스 근대 심리소설의 선구적 대표작

프랑스 근대 심리소설의 선구적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의 사랑』(김석희 옮김)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출간되었다. 심리소설의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스탕달의 『적과 흑』(1830)보다 10여 년 앞서 181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 인습과 욕망을 사이에 두고 겪는 내적 갈등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비견되기도 한다. 특히 국내 최고의 번역가 김석희가 번역을 도맡아 한 이 작품은 번역가 자신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1979년 출간된 그의 첫 번역서로서, 『아돌프의 사랑』은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정한 최초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의 저자 뱅자맹 콩스탕은 문학가보다는 정치인으로서 눈에 띄는 이력의 소유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프랑스혁명과 프랑스 제1제정, 7월 혁명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근대 프랑스 정치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었다. 나폴레옹과의 관계에서 협력과 결별을 오가면서 망명과 귀환을 되풀이한 그는, 정치적 생애에서 변절을 거듭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폴레옹의 백일천하가 막을 내리자 나폴레옹의 조력자였던 그는 다시 한번 국외로 망명해야 했는데, 이 시기에 그가 발표한 소설이 『아돌프의 사랑』이었다. 이 소설 한 편으로써 그는 프랑스 문학사에서도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아돌프와 엘레노르의 연애 이야기를 수기 형식으로 엮은 고백체 소설이다. 몇몇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쓰인 이 소설은 분량이 길지 않지만, 프랑스어로 창작된 수많은 소설 가운데에서도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아돌프는 20대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다. 그때까지 사랑의 경험을 해본 적 없던 아돌프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던 중, P 백작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집에서 P 백작의 첩인 엘레노르를 만나게 된다. 교양이나 몸가짐, 고상한 기품과 자존심을 보건대 자신과 “전혀 걸맞지 않은 세계에서” 자신의 운명, “자신이 처해 있는 계급에 반항하”는 듯 살아가고 있던 열 살 연상의 이 여인에게 아돌프는 사랑을 느낀다. 그는 P 백작의 우정도 저버린 채 그녀에게 끊임없이 구애한다. 처음에는 이를 뿌리치던 엘레노르도 서서히 그에게 마음을 열며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히게 되지만, 정작 그녀가 백작과 아이들, 재산까지 모든 것을 내던졌을 때 아돌프의 마음은 달라져 있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엘레노르를 동정하면서도, 그녀에게 속박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앞날을 발목 잡히고 있다 여기며 이 사랑을 버거워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둘의 관계는 서서히 파국으로 치달아간다.

사랑이란 한순간에 타오르는 하나의 불빛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것처럼 여겨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랑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얼마 안 가서 그것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_51쪽에서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필요 이상의 것을 다루지 않는다. 나머지 구체적인 정황을 상상해 채워 넣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작품의 무대는 살롱이거나 어떤 방일 뿐이다. 공간적 배경이 제시되더라도 사실적 묘사는 없다. 작품 속의 몇몇 에피소드는 작가의 의도를 나타내기 위한 것만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묘사나 사건의 기막힌 전개, 우연에 의한 작위적인 전개 등, 작가의 의도에 어긋난 것은 일절 배제되어 있다. 이는 과장과 혼돈, 감정으로 가득한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들과는 선명하게 구별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콩스탕의 언어는 감정의 옷을 벗어버린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진솔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속도감 있고도 자연스러운 우아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치밀한 심리묘사, 섬세하고도 명쾌한 문체, 파국으로 치닫는 삶의 고통을 낱낱이 기록함으로써, 자기 파멸에 가까운 고뇌와 절망을 표출해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작품이 연애 심리소설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작품에 대해 프랑스 평론가 알베르 티보데는 『근대 프랑스 문학사』(1936)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의 심리소설은 이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이야기를 다시 쓰거나 덧붙이거나 변주하거나 근대화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라고 평한 바 있다.

지금은 당신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고맙게 여기지만, 언젠가 당신은 그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의 무정한 마음 때문에 속이 상해서, 여태까지 당신 마음대로 휘어잡아온 이 마음, 당신의 사랑을 먹고 살아온 이 마음, 당신을 감싸기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은 이 마음,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이 쳐다보지도 않을 이 마음이 없어진 것을 후회할 것입니다. _156쪽


■ 책 속으로

나는 혼자가 되었을 경우가 아니면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런 수줍고 소심한 성격은 줄곧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다. 아무 하잘것없는 것인데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에 처하게 되면, 사람 얼굴 보는 것이 거북해서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기려고 사람을 피하게 되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에겐,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극심한 이기주의 같은 것은 없었다. 언제나 나 자신의 문제에 골몰해 있었지만 막상 나 자신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나는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나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어떤 감정의 욕구를 품고 있었다. (18~19쪽)

사람의 감정이란 참으로 모호하고도 복잡한 것이다. 그것은 눈으로 붙잡을 수 없는 수많은 인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는 말은 언제나 조잡하고 또 너무 일반적이어서, 그런 감정을 뭐라고 지칭할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감정을 어떤 것이라고 규정짓는 데에는 별 소용이 없다. (27쪽)

그녀의 슬픔과 맥 빠진 표정은 어느덧 사라졌다. 자기 때문에 내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은근한 기쁨을 더 이상 감추거나 물리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식탁에서 일어설 무렵에는, 우리의 마음은 이제껏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객실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보다시피 저의 모든 것은 부인의 처분에 달려 있습니다. 제가 무슨 짓을 했기에 부인께서는 저를 고통에 빠뜨리면서 즐거워하시는 겁니까?” (43쪽)

“어떻게 되든 당신은 곧 떠나겠죠. 그러나 미리부터 그때를 생각하진 마세요. 그리고 나 때문에 걱정하지도 마세요. 하루 한 시간이 나에겐 아까워요. 당신이 떠날 때까지, 순간순간이 나에겐 소중하고 필요해요. 아돌프, 나는 어쩌면 당신 품에 안겨서 죽을지 몰라요. 왠지 그런 예감이 들어요.”
우리는 이렇게, 이전과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게, 엘레노르는 여전히 슬프게, P 백작은 여전히 우울하게.
마침내 기다리던 편지가 도착했다. 아버지는 당신 곁으로 돌아올 것을 나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63쪽)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 관능에 몸을 떨고 무아지경에 도취되며 모든 이해타산과 의무를 망각하게 하는, 그런 사랑을 이제는 느낄 수가 없어요.” (94쪽)

우리는 불편한 관계 속에서나마 언제나 함께 있어왔고, 온갖 사건을 함께 겪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고받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까지 추억과 연결되어, 밤의 어둠 속을 스치고 사라지는 번갯불처럼 우리를 문득문득 과거로 데리고 돌아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풀어주는 애잔한 감동에 잠기게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마음속에 묻혀 있는 추억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추억은, 이별을 생각하면 괴로움을 안겨줄 만큼 강렬하게 나타났으나, 함께 있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 약했다. (101쪽)

이런 게 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속으로 나 자신을 달랬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사실은 내가 겪고 있는 불행의 원인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나는 자책하려는 마음을 억눌렀다. 그녀가 걱정하며 괴로워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에 올라탔다. 우리는 말을 재촉하여, 엘레노르와 나 사이에 놓여 있는 땅을 급히 달려갔다. (117쪽)

“알았어요. 그만둘게요. 하지만 사랑하는 아돌프,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셔야 해요. 어딘지는 모르지만 내가 챙겨둔 서류 속에 당신에게 쓴 편지가 한 통 들어 있어요. 그걸 꼭 찾아주세요. 나중에라도 찾게 되면, 부디 읽지 말고 태워버리세요. 우리가 그동안 나누었던 사랑의 이름으로, 당신이 보살펴준 이 마지막 순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부탁할게요.”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안심하는 얼굴을 했다. (149쪽)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고뇌입니다. 아무리 교묘한 형이상학도 자기를 사랑한 여자의 마음을 짓밟는 남자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해명할 수만 있으면 어떤 실수도 용납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자만심을 나는 증오합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말하면서도 실은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해 있고, 자신을 이야기하는 의도 속에는 남의 동정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흑심을 숨기고 있으며, 파멸의 한복판에 태연히 서 있으면서도 뉘우치기는커녕 제 자신을 이리저리 따지려 드는 그 허영심을 나는 증오합니다. (162쪽)

목차

■ 차례

제3판에 부쳐

아돌프의 사랑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가 소개

뱅자맹 콩스탕 지음

1767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유럽 각지를 여행했으며, 독일 에를랑겐 대학과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했다. 프랑스혁명이 끝난 이듬해인 1795년 파리로 나와 입헌왕정파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후 집권한 나폴레옹과의 관계도 협력과 결별을 오가면서 부침을 겪었고, 그에 따라 망명과 귀환을 되풀이했다. 정치적 삶에서는 변절을 거듭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신봉했다. 왕정복고 후에는 참사원 의장에 선임되었고, 1830년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정부는 국장으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의 생애는 정치적 이력으로 점철되었지만, 『아돌프의 사랑』을 남김으로써 문학사에서도 우뚝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연애소설이라는 외피를 걸치고 있는 이 작품은,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남녀의 심리묘사를 통해 자기 파멸에 가까운 고뇌와 절망을 표출함으로써 근대 심리소설의 선구적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석희 옮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면서 리처드 휴스의 『자메이카의 열풍』과 존 미드 포크너의 『문플릿의 보물』,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데이비스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등 많은 책을 번역했다.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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