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우리 삶 속에 상실과 슬픔을 끌어안는 사랑의 공통감각
십 년을 기다려온 단 하나의 온전한 고백
누추한 현실에서 불현듯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진은영 10년 만의 신작 시집
2000년 『문학과사회』로 등단한 이후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2008), 『훔쳐가는 노래』(2012)를 차례로 선보이며, 감각적인 은유와 선명한 이미지로 낡고 익숙한 일상을 재배치하는 한편 동시대의 현실에 밀착한 문제의식을 철학적 사유와 시적 정치성으로 풀어내온 진은영 시인이 10년 만에 신작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2022)를 펴냈다. 시(인)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을 묻는 한 강연에서 “시인은 침묵함으로써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진은영은 말한 바 있다. 공동체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와 다양한 삶의 문제들에 귀를 기울여 그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가시화하는 일, 그 어렵고 힘든 일을 이번 시집에 묶인 42편의 강렬하고 감각적인 시들이 저마다 아름답게 해내고 있다. 결핍으로 가득 찬 과거와 불안하고 비탄스러운 현실 속의 우리는 진은영의 시와 함께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어울린다」) 걸어 미래로 나아간다. 고통의 쓴잔을 나눠 마시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사랑의 힘으로.
“사랑과 저항은 하나이고 사랑과 치유도 하나라고 이 시집 전체가 작게 말하고 있을 뿐, 어떤 시도 직접적으로 크게 말하고 있진 않다. 진은영의 정련된 이미지들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유와 감정이 들끓고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사유와 감정이 하나의 언어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 되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 다시 맞설 힘을 얻게 된다.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움, 진은영은 그런 것을 가졌다.” ―신형철, 해설 「사랑과 하나인 것들: 저항, 치유, 예술」에서
낡고 익숙한 단어와 감각의 재배치로
새롭게 태어나는 일상들-인식들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그러니까 시는」 부분
흔히 좋은 기사의 기본을 왜곡 없이 명징한 사실 보도에 두듯, 좋은 문학의 가능성을 상황과 관계를 단순화하지 않고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이해를 허락하는 데서 찾곤 한다. 그리고 그 좋은 예를 우리는 진은영의 시와 더불어 경험해왔다. 일찍이 낯선 은유와 아포리즘, 철학적 알레고리가 가득한 시들로(“혁명/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편협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점점 부풀어오르게/잠이 잠처럼 풀리고/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물속에서」, 『우리는 매일매일』)의 복판에서 우리 마음의 무늬를 읽게 하는 순간이 그의 시집 어디를 펼쳐도 가능했다.
길지 않은 시에 “긴 손가락”의 이야기를 몇 겹의 의미로 감추는 데 여전히 능한 그 덕분에(「아르스 포에티카」) 우리는 이번 시집 곳곳에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생의 시간’을 속도감 있게 마주한다.(“어린 시절이 숨어 있던 은유의 커다란 옷장에서/나를 꺼내 데려가주세요/얇은 잠옷 차림으로 창문 너머 별을 타고 야반도주하는 연인들처럼 가볍게/들판의 귀리 싹이 몇 인치의 초록으로 땅을 들어 올리듯/차력사인 봄을 불러다 주세요/붉은 담쟁이 잎이 잔 속에서 피어나고 흰 양털 장화 속이 축축해지도록 눈 내립니다/별과 알코올을 태운 젖은 재들 휘날립니다//내가 고백할 수 있도록”—「당신의 고향집에 와서」)
찢기거나 부서지고, 헝클어지고 녹아내리는
마음 너머의 사실들
낯선 폐품 더미 속에서 잠시 혼이 나간 아이처럼,
도무지 쓰임을 알 수 없는 이상하고 망가진 물건들 사이에서,
또한 모든 이가 어느 다락방에 쌓인 낡은 몰락의 일종이었음이
문득 자연스러워지는 오후 한때
— 「일대기」 부분
진은영의 시가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몇 겹’의 사실/이야기를 품으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얼마나 많은 것이 내 단순함의 칼날에 잘려 나갔을까?”(뒤표지 시인의 글) 하는 시인 자신을 향한 경계와 반성이 수시로 작동하는 탓이다. 진은영 시에서 익숙한 시(인)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다수의 명명들은 대개 미적인 것과 논리적인 것 사이에 발생하는 “구조적 긴장”과 “팽팽한 경쟁의 감미로움”(신형철 해설)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별들이 움직이지 않는 물 위를 고요가 흘러간다는 사실/물에 빠진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오늘 밤에도 그 애가 친지들의 심장을 징검다리처럼 밟고/물을 무사히 건넌다는 사실”―「사실」).
삶-일상에 문학을, 철학을, 그리고 정치(적 용어)를 들이고 콜라주하는 일에 오래 골몰해온 그의 시들을(“자면서 벌어진 입술로 새어 나오는 잠꼬대 같은 진실들/그런 걸, 믿으라는 말인가/나는 오랫동안 묻곤 했습니다//믿음으로/ 믿음을 지우면서/ 당신은 스스로 답했습니다:/나는 세상의 빛이다/[그러나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죠/ 한낮이 아니라/별들이 아니라/용접기 불꽃이 만든/한 개의 반짝이는 구리 반지를/벽보 속에, 슬픔 속에, 한 노동자의 얼굴 속에 넣어뒀을 뿐]”―「아뉴스데이, 새뮤얼 바버—한 노동자에게」) 변함없이 두터운 신뢰와 감탄으로 읽어온 우리가 이번 시집을 펼쳐 들었을 때 더욱 곡진한 마음이 되는 이유 또한 여럿인데, 그 가운데.
다시, 2014년 봄으로 가 부르는 진실들
땀의 완두콩, 그거 부드럽지만 헛된 슬픔의 총알
참새와 애벌레들의 후원금
먼저 죽은 친구 얼굴이 자색 양파처럼 굴러 나오고
그리고 약속의 절벽
그에게 들려줘야 할 깎이지 않는 한마디
-내가 계속할게
—「모자」 부분
시집의 제목을 포함해 ‘사랑’은 진은영 시 특유의 탁월하고 섬세한 은유를 거쳐 때로는 저항/혁명의 이름으로(“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청혼」) 때로는 변신과 불멸을 꾀하는 마법의 주문으로(“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사랑의 전문가」) 이번 시집 전편에 오롯이 담겼다. 그리고 하나 더, 아주 “조심스럽고 어려운” 작업으로서,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사랑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헤아리는 기민한 정신의 결과물”(정혜신·진은영,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로 위대한 ‘치유’의 다른 이름이라고 시인은 나직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한다. 바로, 4.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여전히 밝혀야 할 진실을 위해 함께 쓰고 부른 시들이 뜨거운 숨과 간절한 고백, 지극한 슬픔과 절실한 바람이 “빈틈없이 정교하게” 결합된 형태로 시집 2부(‘한 아이에게’)에 한데 묶였다. 모두 진실을 쫓는 거듭된 물음을 전제로, 그 물음 속에서 사랑은 저항의 표현이 되기도 하고, 치유의 과정으로 변화되기도 한다는 것.
거듭 진은영의 시(인)론을 옮겨 적어본다. “시인은 아무도 듣지 않는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소리를 마지막까지 잘 경청함으로써 그 누군가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고 그 드러난 존재가 주는 울림을 통해서 시를 쓴다.”(2018 네이버 열린연단 중에서) 어쩌면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온 심장처럼//너울거리는 은유의 옷이 아니라/은유의 살갗을//벗기면 영혼이 찢어지는 그런”(「아빠」) “진실과 영혼의 무게”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시대 가장 필요한 목소리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진은영의 시들이 아닐는지. 그가 믿는 “사랑의 윤회”는 “모든 상실”을 목도한 후에도 “모든 슬픔보다 더 오래 살아남”(「올랜도」)는 삶/죽음의 오랜 비밀, 다름 아닌 “희망”과 함께 날아오르는 영원한 다짐이겠다.
■ 시집 속으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청혼」 전문
빨간 풍선은 높이 올라갔지
내 심장의 꼭 쥔 주먹이
종이처럼 스르르
펼쳐졌을 때너는 얼마나 멀리 날아갈까
네 몫의 어리석음으로부터—「빨간 풍선」 부분
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너는 마법을 부리길 좋아해. 나는 식물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부러뜨리자 새빨간 피가 땅 위로 하염없이 흘러갔어. 너의 마법을 확신한다. 나는 바다의 일종. 네가 흰 발가락을 담그자 기름처럼 타올랐어. 너는 사랑의 마법사, 그 방면의 전문가. 나는 기름의 일종이었는데, 오 나의 불타오를 준비. 너는 나를 사랑했었다. 폐유로 가득 찬 유조선이 부서지며 침몰할 때, 나는 슬픔과 망각을 섞지 못한다. 푸른 물과 기름처럼. 물 위를 떠돌며 영원히
— 「사랑의 전문가」 전문
아침의 기슭엔 면도한 얼굴로 말끔하게 희망이, 오후가 되면 거뭇거뭇 올라오는 수염 같은 절망이 남아 있고 또다시 아침, 부서질 마음의 선박과 원자로들이, 잘 묶인 매듭처럼 반드시 풀리는 나의 죽음이 남아 있고
— 「남아 있는 것들」 부분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성냥개비들, 불꽃 한 점에 날뛴다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잘려 나간 그림자에 뒤덮여서
돋아나는 버섯의 부드러운 얼굴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한밤중 쏟아지는
폐병쟁이 별들의 기침
언어의 벌집에서 붕붕대는 침묵의 말벌들이 슬픔의 앙상한 다리는 어느 꽃술 위에 내려앉았나
내 속에 매달린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 하나— 「그러니까 시는」 전문
아빠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 「그날 이후」 부분
사라지고 꺼지는 것들로
잠시 환해지는 관념의 모서리방은 눈을 녹이는 뜨거운 손을 닮았다
방은 죽음을 쫓아 달리는 커다란 개다 겨울이 죽고 봄이 죽고
죽음은 항상 너무 빠르다
개의 헐떡거리는 혓바닥 위에서 담뱃불이 꺼지며 빛난다너는 흰 도미노처럼 서서
쓰러지는 방들의 흔들리는 어둠을, 우리를 응시하는 영원한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방을 위한 엘레지」 부분
종이는 손수건―도무지 손바닥만 한 평화
종이는 신의 얼굴―세상을 통째로 구원할 재능 없는 신의 얼굴
삼류 신, 어린 시절부터 싹수가 노랬던 신
할머니가 발가락처럼 거친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이 먹었는데 절망해도 되나
죽을 때까지 절망해도 되나
차창 밖에다 물었다
검은 상자를 칸칸이 두드리며 물었다
기차 바퀴가 끽끽, 마찰음으로 울었다
멈추는 것들은 대개 그렇듯, 슬프거든—「빨간 네잎클로버 들판」 부분
■ 뒤표지 시인의 글
또 오랜 시간을 문장들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문학은, 스스로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로제 그르니에의 문장을 읽고 두려워졌다.
얼마나 많은 것이 내 단순함의 칼날에 잘려 나갔을까?
아마도 견딜 수 없는 순간들을 견디기 위해서였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자신이 자꾸 미워졌다.
그때마다 다른 문장들이 다가왔다.
“나는 이미 한때 소년이었고 소녀였으며,
덤불이었고 새였고, 바다에서 뛰어오르는 말 못하는 물고기였으니.”
엠페도클레스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문장이다.
아무래도 나는 엠페도클레스의 후예인가 보다.
사랑의 윤회를 믿는 것 같다.
■ 시인의 말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자주 떠올린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2022년 8월
진은영
■ 추천사
기차역처럼 많고 기차 여행처럼 긴 이름들 사이에서 진은영은 반드시 멈춰 서게 되는 이름. 그가 펼쳐 보일 사랑이 오래된 거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당장 그곳으로 가 밤낮없이 거닐고 싶다. 나 역시 오래된 거리의 벤치처럼, 그의 시를 기다려왔다. 시인 안희연
진은영의 시집이 10년 만에 나온다. 10년이라니! 그사이 강산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그의 시를 향한 나의 애틋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그의 새 시집을 읽고 밑줄을 그으려고 천천히 연필을 깎았다. 지우개는 준비하지 않았다. 아무리 깨끗이 지워도 애틋한 흔적은 남는 법이니까. 시인 오은
나는 고양이 꼬리를 쳐다보고 있다. 슬픈지 기쁜지 알 수 없는 꼬리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일은 역시 조금 슬프다. 진은영 시인은 내게 고양이의 꼬리다. 시집이 나오면 또 하염없이 읽을 것이다. 시인 김승일
은빛 심장과 붉게 물드는 종이배. 그 사이에 진은영의 시가 있다. 이토록 아름답자는 약속.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진은영을 사랑하고. 시인 이혜미
내게는 무수한 문이 있는데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문이 대부분이다.
진은영의 시를 읽다 보면 전구가 켜지듯 그 문들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그저 진은영의 시를 더 많이, 더 오래 읽을 수 있게 되길 바랐다.
간절하게 기다리고 기다렸다. 환하게 펼쳐 읽을 그의 새로운 시를. 시인 안미옥
매일 넘어지던 시간, 흰 셔츠 윗주머니에 진은영의 시를 넣고 다닌 덕분에 새빨간 버찌 얼룩을 잔뜩 묻힌 채로도 다음으로 갈 수 있었다. 넘어진 자세 그대로 움직일 수 없어도 넘어진 자리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힘껏 멀리 온 여기서 다시 우리들의 시인, 진은영을 기다린다. 다른 우리로, 다시 우리로. 시인 김리윤
진은영 시인을 사랑하지 않을 시인이 어디 있을까. 나 역시 그의 뜨겁고도 섬세한 시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그의 시집이 나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시인 황인찬
■ 차례
시인의 말
Ⅰ. 사랑의 전문가
청혼
그러니까 시는
당신의 고향집에 와서
어울린다
사랑합니다
봄에 죽은 아이
모자
카살스
사랑의 전문가
조직생활자
파울 클레의 관찰 일기
생일
남아 있는 것들
종이
봄의 노란 유리 도미노를
Ⅱ. 한 아이에게
우주의 옷장 속에서
올랜도
그날 이후
뱀 이야기
단조로운 시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빨간 풍선
나는 도망 중
아빠
언제나
봄여름가을겨울의 모놀로그
시인 만세
한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Ⅲ. 사실
봄여름가을겨울
월요일에 만나요
사실
스타바트 마테르
아뉴스데이, 새뮤얼 바버
일대기
죽은 마술사
라푼젤, K를 기다리다
방을 위한 엘레지
죽은 엄마가 아이에게
아르스 포에티카
쓰지 않은 것들
빨간 네잎클로버 들판
시를 쓰며 참고한 것들
해설
사랑과 하나인 것들: 저항, 치유, 예술 · 신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