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이야기는 계속 이렇게 끝난다”
명확한 음률 없이, 그러나 분명한 리듬 있게,
무한으로 펼쳐졌다 한 점으로 사라지는 (불)가능성의 소설
“문학의 고유한 전복성과 비판 정신을 실천”(문지문학상 심사 경위)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문학계 안에서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온 김태용의 신작 소설집 『확장 소설』(문학과지성사, 2022)이 출간되었다. 2005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데뷔한 이래 계속된 그의 여정은 언어 실험의 관성화마저 엄격하게 경계하며 전위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는 데 특별함이 있다.
저자는 이번 소설집의 제목 “확장 소설”이 ‘확장 영화expanded cinema’ 개념에서 빌려 왔음을 「작가의 말」을 통해 밝히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상영 과정을 다양하게 변주하여 관객이 저마다의 의미를 선택하여 수용할 수 있게끔 유도할 수 있다는 것과 달리 소설은 언어를 버릴 수 없기에 소설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소설을 통한 김태용의 ‘확장’ 작업은 무엇일까. 작가는 문장과 행간을 벌려 그 안에 새로운 의미를 틈입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그 고정된 의미 자리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무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다. 소설 없이, 언어 없이, 그러나 소설의 언어를 재료 삼아 만들어내는 그의 독특한 리듬감. “사유-서사-언어의 해체와 날것의 물컹함이 동시에 투명하게 폭발하는, 김태용식 비미래”(시인 이원)가 이 책을 펼친 당신의 세계를 뒤집어내며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영역대로의 진입
“이상하게 0으로 수렴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제가 하는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꼭 그런 것만 같았습니다. 0으로 수렴되는 이야기.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0으로 수렴되는 이야기입니다.” (「옥미의 여름」, p. 32)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은 과연 현실이 맞는가.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은 결코 플랫 하지 않다. 시공간이 중첩되고 비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현실은 물리적, 광학적 힘이 닿지 않는 상태에서 뒤집히고, 뒤섞이고, 혼돈 상태가 되었다가 뜻밖의 질서를 찾고 순환한다. 역사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시간, 그 시간의 바깥을 향한 지각, 규칙을 재배열하는 과학, 그 과학의 바깥을 향한 감각이 보여주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미지의 순간들과 조우하게 된다. (「방역왕 혹은 사랑 영역의 확장」, p. 75)
이 책의 수록작들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느슨하게 주제 및 분위기를 공유한다. 전반부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은 ‘역사적·사회적 재현으로의 확장’이라는 주제를 관통한다고 말해볼 수 있을 텐데, 이전까지의 김태용 소설을 따라 읽어온 사람들은 특히 ‘북한’이나 ‘코로나19’ 등의 소재가 확연히 드러나는 소설들로 인해 다소 서사가 강하다는 인상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내러티브에 갇히지 않는 장면 장면과 디테일한 요소들, 계산된 어긋난 문장들을 통해 이 소설은 세계 밖으로 훌쩍 나아간다. 우리가 익숙했던 사회와 인물, 역사 너머로, 주목하지 않았던 시선들을 되짚어내고, 확실하고 명쾌한 언어로 인해 들리지 않았던 작은 읊조림들을 재생한다.
닿지 않는데 계속해서 넓혀가는 우아한 볼레로
우리의 친구, 댄스 없는 댄스 필름을 만들던, 삐, 잠시, 아니 계속해서, 이제 막 시작했지만, 시작 전부터 계속되고 있었지, 우리의 친구, 이름을 부를 순간이 오면, 그보다 먼저, 이제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대답 없는 부름이 가능할까, 우리가 들었던 대답들은 모두 부름에 대한 대답이 맞을까, 대답이 없다는 걸 알고도 부를 수 없을까, 불러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부를까, 어떻게 대답을 듣지 않고 부를까, (「삐에르 밤바다」, p. 239)
우리는 지금 산허리 어디쯤을 헤매고 있을까. 어쩐지 산림감시원의 반쪽짜리 삶을 대신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쓰고 있는 것만 같다. 읽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내가 쓴 것을 증명한 뒤 부정하기 위해 이 글을 지속해야 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쓰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일까. 너는 네가 무엇을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일까. (알게 될 거야」, pp. 213~14)
소설집 후반부는 네 편의 소설과 함께 한 편의 시 「루프」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들 간에 ‘원숭이 윤’ ‘삐에르 밤바다’ ‘잎’ 등 같은 인물명이 중첩되어 비선형적 연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품 전반이 ‘언어의 심연’을 향해 깊어지며, 소설을 불가능성의 영역까지 밀고 나가는 과감한 여정을 담고 있다. “허구의 무대에서 언어의 볼레로를 추면서”(「작가의 말」) 억지 없이 우아하게, 충분한 궤적을 그리며 소설의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김태용의 작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은 남다른 해소감이 느껴진다.
가능/불가능을 넘어선 신념의 영역
김태용에게 소설은, 전위는, 어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작업의 결과물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읽히고 읽히지 않고, 이해되고 오해되고, 가능하고 불가능하고의 문제를 넘어선 어떤 희망, 혹은 사랑으로. 뚜렷한 세계에 균열을 내고 믿음의 틈새를 비춰내는 일. 파편이 무한으로 펼쳐지고 끝내 한 점으로 소멸하는 영원의 궤적이 『확장 소설』로 다가오고 있다.
어떤 길은 길어졌다 짧아졌다 멀어졌다 가까워지면서 무한의 차원을 만든다. 길 위의 사람들. 우리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살짝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활짝 웃음이 퍼진 얼굴로. 자연 하라. 축축한 냄새. 고조되는 소리. 일렁이는 물결. 그리고 사랑. (「방역왕 혹은 사랑 영역의 확장」, p. 120)
■ 추천의 말
갓 뽑은 열무처럼 말이다! 멜랑콜리의 행성, 토성처럼 말이다! 김태용 소설을 읽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김태용은 ‘소설 없는 소설’을 맹렬하게 써왔다.//‘제발트적’ 시공간을 언어에서 음악으로 통과한 그는 이제 ‘리듬’에 도달한다. 휘몰아치듯 읽게 되는 것은 리듬. 리듬을 읽을 수 있는 소설의 탄생이다.//나타나지 않아 끝내 사라지지 않는, 이 ‘리듬의 피리’는, ‘삐에르 밤바다-원숭이 윤-옥미-슬픔병-홀로수’의 “회전문”. 기억을 낱낱이 새긴 자화상. 거기, “소수”의 자리. 사유-서사-의미의 해체와 날 것의 물컹함이 동시에 투명하게 폭발하는, 김태용식 ‘비미래’. 이원(시인)
김태용은 불가능성 주위를 부드럽게 회전하며 소설의 가능 영역을 확장한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환영의 표면이 넓어진다. 그가 상징적 죽음과 불가피한 공백 주위를 능청스럽게 배회할 때 그동안 상징의 세계가 소외시켰던 것들이 소설의 표면으로 부상한다. 김태용은 무언가를 소진한 채 현재에 불시착한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들의 역량에 주목한다. 이 역량을 활성화했을 때 생성되는 전자적 혼란과 시간을 해산하는 대화, 미열 같은 웅얼거림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소설은 소설 자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들을 통해 다시 쓰이는 광경을 목도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것은 끝과 무의미를 향해 나아가는 비애와 좌절의 걸음걸이가 아니다. 끝을 딛고 개시되는 우아한 언어적 상황들이다. 양선형(소설가)
■ 작가의 말
전반부의 소설이 기록된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의 소설은 기입된 이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있다.
허구의 무대에서 언어의 볼레로를 추면서
소설의 영역을 잠시나마 확장할 수 있다고 믿기로 했다.
이제 믿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그건 불가능과 다른 문제이다.
[……]
요즘 희망이란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생각할 뿐 쓰지는 않는다.
이번엔 쓰기로 했다.
희망
나는 썼다.
2022년 여름 숲에서
김태용
■ 목차
옥미의 여름
우리들은 마음대로
방역왕 혹은 사랑 영역의 확장
낮을 위한 착각
밤을 위한 착각
알게 될 거야
피드백
루프
삐에르 밤바다
작가의 말
추천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