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심훈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마지막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게 되고, 그것으로 놀이는 끝이 난다”
죽음의 목전에서 삶을 되돌아보며 안간힘을 다해 짓는 최후의 표정
개성 넘치는 인물과 재치 있는 서사로 고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해온 김중혁의 다섯번째 소설집 『스마일』(문학과지성사, 2022)이 출간되었다. 국내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며 저력을 다져온 작가가 지난 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으로 동인문학상까지 수상한 뒤 7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표제작 「스마일」과 심훈문학상 대상을 받은 「휴가 중인 시체」를 포함하여 그동안 신중하게 쓰고 다듬은 다섯 편의 작품을 한데 묶었다.
“두려워하는 것을 마주한 채 한참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고, 소설을 쓰는 동안 그런 용기를 얻기 위해 노력”(「창작노트」, 『휴가 중인 시체』)했다는 김중혁은 이번 소설집에서 예외적인 존재들의 삶과 더불어 죽음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진중하게 다룬다.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문체를 잃지 않으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서의 죽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한다. 그러므로 『스마일』은 김중혁이 2000년 『문학과사회』에 「펭귄뉴스」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보여준 다채로운 재능과 지적 호기심이 한층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불가해한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향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깊이 있는 통찰이 오롯이 담겼다.
우리가 여태껏 한 번도 죽지 않고 계속 살아 있는 존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잠들었다가 죽는 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코를 골면서 자던 누군가 ‘컥, 컥, 컥’ 숨을 멈추는 듯하다가 다시 숨을 쉴 때, 그는 죽었다 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휴가 중인 시체」, p. 201)
운명의 그늘 속을 헤매는 사람들
『스마일』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상황 속에서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다. 그것은 타인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이들의 생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다. 표제작 「스마일」에서 데이브 한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던 길에 승객 중 한 명이 별안간 사망했음을 알게 된다. 바로 옆 좌석에 앉은 잭으로부터 죽은 남자가 밀수꾼일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콘돔에 가득 채워 삼킨 헤로인이 복중에서 터져 사망했으리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잭은 데이브에게 시체의 얼굴을 꼭 보라고 권한다.
사람들은 마지막 얼굴로 자신의 모든 인생을 표현합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괴로웠던 시절의 고통, 마지막 순간의 회한이 그 얼굴에 다 들어 있어요. 얼굴 하나로 최소한 30년의 시간을 표현하는 겁니다. 볼 수 있으면 봐야죠. (p. 33)
권유에 못 이겨 데이브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커튼 너머로 시체를 5초쯤 보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남자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고 데이브의 눈앞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 얼굴에 예상치 못한 “이상한 미소 같은 게” 어려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기억날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오랫동안 기억날 거예요. 그게 죽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힘이죠.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최후의 표정. (p. 40)
이처럼 죽음이 살아 있는 이에게 각인되는 장면은 소설집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왼」에서 연구를 위해 칼리와 부족을 관찰하던 기하는 두 부족민의 결투를 목격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불어닥친 태풍에 결투가 중단되었음에도 이튿날 죽은 채로 발견된 남자가 어제 그 부족민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된다. 이후로 기하는 그들의 결투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 영상”처럼 남아 “끊임없이 눈앞에서 재생”되는 나날을 보낸다. 자신이 목격한 죽음의 원인뿐 아니라 그 의미조차 가늠할 수 없어 번민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물들의 삶에 갑작스레 출몰하는 죽음과 그것이 남긴 불가해성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일까.
막막한 길 위에서 가까스로 내딛는 한 걸음
「휴가 중인 시체」에서 주원 씨는 ‘나는 곧 죽는다’라는 문구가 적힌 버스에서 생활하며 전국을 떠돌아다닌다.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그를 본 ‘나’는 “거울 속에 있는 나”를 본 것 같은 기분에 휩싸여 주원 씨를 찾아간다. “그 사람의 얼굴이, 특히 눈빛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게 함께하게 된 버스 여행에서 나는 주원 씨가 과거에 저지른 과오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쳐 다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실수라는 건 간단한 게 아니에요. 그 모든 기록을 한꺼번에 통째로 순식간에 지워버립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서 죽어야 해요. 여기가 내 관이고, 무덤이고, 천국이고, 지옥입니다.” (p. 197)
‘또 다른 나’로 여겼던 주원 씨와 헤어지고 난 뒤 나는 그와 사뭇 다른 선택을 내린다. 주원 씨와의 대화록을 불태우는 행위를 통해 “첫번째 삶을 끝내고, 두번째 삶으로 넘어”간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기력과 심연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마일』은 불가피한 생사의 비의뿐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결정한 이의 용기까지 보여준다. 삶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허무를 이겨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숭고한 가치가 소설 속에서 빛을 발한다.
모든 게 무너지고 나서 끝이라고 생각하는 지점이 새로운 출발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차오」, p. 141)
■ 책 속으로
예절을 갖춰서 웃으며 말해라, 그리고 땅을 보지 말고 정면을 봐라.
―「스마일」
죽음이라는 단 하나의 사건이 개입됐을 뿐인데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알렉스가 게임 엔딩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죽음이 이야기에 개입되는 순간 수진과 내가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는 사라지는 것일까.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나의 왼손으로 시계를 반대 방향으로 돌릴 것이다. 시간을 되돌린 다음, 우주의 탄생으로 돌아가 신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할 것이다. 서로의 왼손으로.
―「왼」
그거 알아? 산에 불이 나면 많은 나무가 타 죽잖아. 그런데 그 아래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이 힘차게 자라난대. 잿더미가 나무를 키우는 거야.
―「차오」
사람은 얼굴이 답안지예요. 문제지는 가슴에 있고 답안지는 얼굴에 있어서 우리는 문제만 알고 답은 못 봐요. 그래서 답은 다른 사람만 볼 수 있어요. 사람과 사람은 만나서 서로의 답을 확인해줘야 한대요.
―「휴가 중인 시체」
■ 작가의 말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음악을 재생시켰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음악이 꺼져 있을 때가 있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음악이 사라졌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소설 속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악이 꺼진 걸 알고 난 후에도 나와 소설 속 주인공 모두 더 이상은 음악이 필요하지 않았다. 음악이 꺼진 채로 우리는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음악 틀까? 아니 그냥 둬. 그냥 이렇게 좀더 이야기를 하자. 나는 자신의 뺨을 때리는 사람과 배 속으로 이상한 물질을 삼킨 사람과 플라스틱 섬에 갇힌 사람과 자동차에 갇힌 사람과 오랫동안 악수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음악이 멈추고 이야기가 지속되는 순간을 맞닥뜨리기 위해, 나는 음악을 듣고 소설을 쓴다.
■ 차례
스마일
심심풀이로 앨버트로스
왼
차오
휴가 중인 시체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