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에게는 가축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함께 노는 친구들!
동물들과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두 자매와
능청맞게 꾀를 내는 고양이의 시끌벅적 소동들
뮤지컬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의 원작 소설을 쓴 ‘프랑스 국민 작가’ 마르셀 에메의 우화집 『능청맞은 고양이와 동물 농장 1·2』(김경랑·최내경 옮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아웅다웅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우정을 나누는 두 자매 델핀과 마리네트, 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이 오래도록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에서 벌이는 열일곱 편의 경쾌한 소동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웃음과 여운을 함께 안겨주며, 1934년 초판본이 출간된 이래로 꾸준히 사랑받아왔다.
책의 프랑스어 원제 ‘les contes du chat perché’를 직역하면 ‘높은 곳에 앉은 고양이 이야기’다. 술래는 고양이가, 나머지 아이들은 쥐가 되어 잡고 잡히는 프랑스식 술래잡기의 이름 ‘높은 곳에 앉은 고양이 놀이’에서 따온 것인데, 이는 작품 내에서 아이들이 동물들과 하는 여러 놀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수건돌리기, 손뼉치기, 도둑잡기에 더해 아이들이 새로 만든 놀이로 농장은 늘 떠들썩하다. 그렇지만 천진난만해 보이는 이 세계에도 인간과 동물 사이에 복잡한 사정이 있음을 차츰 알게 된다.
“닭들에게 이빨이 생기면, 아마도 너희는 우리를 학대했던 걸 후회하게 될 거야.” _2권 272쪽에서
작가 마르셀 에메는 우화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마냥 아름답고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현실을 서늘하게 되새기며 작품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델핀과 마리네트에게 동물들은 함께 노는 친구이지만, 어른들에게는 가축이다. 각자의 ‘쓰임새’에 맞게 엄마 아빠가 농장에 데려온 동물들에게는 집을 지키고 밭일을 하다가 결국은 잡아먹히거나 다른 곳으로 팔려 나갈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동물들은 주어진 운명을 넘어 다른 길을 꿈꾼다. 농장을 떠나 “주인님도, 해야 할 일도” 없이 마음껏 달리고 뛰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숲의 자유를 꿈꾸며 결국 가출을 감행하는 동물들도 있다. 가출은 간혹 해피 엔딩으로 끝나기도 하지만(「돼지, 날다」) 자유를 얻은 대가는 목숨까지 걸어야 할 만큼 결코 만만치 않다(「사슴에게 자유를」 「작고 검은 수탉의 독립」). 설령 그렇다 해도 인간에게 쓸모 있는 가축이 아닌, 자신의 삶을 향해 발을 내디디는 동물들의 도전은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봐봐, 난 우리가 돼지를 구하는 게 정말 맞는 건지 고민돼…… 그래. 알아. 돼지에게는 안된 일이지. 하지만 우리에겐 아닌걸. 어쨌든 돼지를 먹으려고 키우는 거잖아. 돼지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 달아난다고 생각해봐.” _2권 304~305쪽에서
그런데 친구들의 도전은 델핀과 마리네트에게도 커다란 숙제다. 오래도록 동물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어서 벌인 일이 결국은 먹고사는 문제를 동물들에게 의존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맞닥뜨리게 하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흰 소에게 공부의 재미를 일깨워준 것이 흰 소를 위기에 빠뜨리는가 하면(「똑똑 소와 낄낄 소」), 원하던 대로 당나귀와 말로 변신했다가 가혹한 노동을 하게 된다(「우리가 엄마 아빠 딸이에요」). 아이들은 농장에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씁쓸하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뛰어넘으며, 우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네 살부터 일흔다섯 살까지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입니다”
백조들에게 오해를 사서 붙잡힌 와중에도 동생을 챙기는 의젓한 열 살배기 언니 델핀, 다친 늑대의 애원에 금세 마음을 열 만큼 해맑은 일곱 살배기 동생 마리네트. 둘에게는 다정하고 영리한 동물 친구들이 있다. 집 안과 농장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몇 안 되는 동물로 아이들을 위해 비를 내리게 하는 능청맞은 고양이 알퐁스, 공작처럼 아름다운 깃털을 갖고 싶어서 혹독하게 관리한 끝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돼지, 아이들이 그려준 초상화 속의 모습대로 변신하고 만 수탉과 소처럼, 동물들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특별한 주인공이 된다.
열일곱 편의 우화를 두 권에 나눠 수록한 『능청맞은 고양이와 동물 농장』은 마르셀 에메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기발한 발상과 유머를 선보이면서도 아이러니를 통해 현실을 포착해내는 이 책은, 또 다른 소설집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와 함께 에메를 모파상에 비견될 만한 ‘짧은 이야기의 장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이 책에 대해 에메는 “네 살부터 일흔다섯 살까지의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의 말처럼 이 책의 수록작들은 프랑스의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리며 프랑스의 모든 세대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한국에서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이야기 1~3』(작가정신, 2000)으로 출간된 바 있는 이 책이 이번에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김경랑 연구원과 서경대 최내경 교수의 번역으로 ‘네 살부터 일흔다섯 살까지의’ 한국 독자들을 새롭게 만난다. 여기에 익살스러운 일러스트 열네 컷까지 더해 동물들의 개성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에메는 「서문」에서 동물들이 “말을 한다고 해도 이 이야기에 나오는 동물들 같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정치나 알류샨열도 과학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심도 있는 문학평론”을 할 것이라는 의견에 능청스레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그가 우화라는 형식을 통해 그려낸 것은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꾸밈없고도 솔직한 동물들의 이야기다. 기쁨과 슬픔이 한데 뒤섞여 있는 우리 삶의 다채로운 풍경이 여기에 있다.
“이젠 사냥이란 말은 듣고 싶지도 않아. 끝이야! 너희 부모님이 아직도 개를 필요로 하시는지 물어보려고 왔어.”
마리네트가 대답했어요.
“그럼요. 아까도 말씀하셨어요. 아, 잘됐다! 앞으로 우리랑 쭉 같이 있는 거죠!”
아이들과 오리는 정답게 꼬리를 흔드는 개에게 미소를 보냈어요. _1권 72쪽에서
■ 책 속으로
2권
“한참 생각해봤는데……” 마침내 오리가 입을 열었어요. “알퐁스를 자루 밖으로 나오게 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아. 그 녀석을 내가 잘 아는데 아주 고집쟁이거든. 억지로 녀석을 끌어내더라도 너희 부모님이 도착하시면 제 발로 두 분 앞에 모습을 드러낼 녀석이야. 알퐁스를 구하려면 그 녀석이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해.” (22쪽)
“운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만약 어제처럼 아줌마 아저씨가 늦게 돌아오신다면 오늘도 잘 넘어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준비해둘 게 있어.”
오리는 동물들에게 해야 할 역할을 하나하나 지시한 후 동물들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했어요. 성미 급한 돼지가 오리의 말 중간에 자꾸 끼어들려고 했어요. 마침내 발언 기회를 얻은 돼지는 말했어요.
“아주 훌륭한 계획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
“더 중요한 일이라니, 그게 뭐지?”
“그야 물론 젖소 친구들을 다시 찾는 일이지.” (64쪽)
“나한테 약속하셨거든. 내가 행복해질 거라고, 내가 주인님을 위해 했던 것처럼 길을 안내해줄 거라고, 내가 지켜드렸듯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내가 주인님의 아픈 눈을 받자마자 작별인사 한마디도 없이 나를 버리고 가버리셨어. 그래서 어제저녁부터 이렇게 시골에 혼자 남아 나무에 부딪히고, 길가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했어. 그러다 방금 전 송아지 고기 냄새를 맡고 노래 부르는 두 소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 거야.” (89~90쪽)
“그러니까, 귀여운 두 따님이 있어서 이번에는 용서해드리는 겁니다. 길게 볼 필요도 없이 따님들이 아주 얌전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라는 걸 단번에 알겠네요. 안 그러니, 얘들아?”
아이들은 얼굴이 완전히 빨개져서 멀거니 입을 벌린 채 감히 한마디도 못 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오리는 태연하게 대답했어요.
“아 네, 그렇죠, 선생님, 이보다 더 온순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착한 아이들이랍니다.” (150쪽)
“무식한 소에게 함부로 말씀하시는 건 이해해요. 저런 녀석들에겐 다른 식의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저처럼 많이 배운 소를 그렇게 예의 없이 대하시면 안 되죠.”
가까이 다가온 아이들이 그만 말하라고 손짓 발짓으로 신호를 주었지만 흰 소는 계속 말을 이어갔어요.
“과학, 문학, 철학을 배운 소라고요, 저는.” (180~181쪽)
“대체 뭐가 문제라는 건지 모르겠네. 내게는 너무 간단해 보이는걸.”
아이들은 기대에 부푼 얼굴로 암탉을 바라보았어요. 그러나 다른 동물들은 그러지 않았어요. 그럴 리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죠.
“암탉이 답을 찾았을 리 없어. 괜히 관심을 끌고 싶어서 저러는 걸 거야.”
〔……〕
“아무도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나는 더 놀라운걸! 마을 숲은 여기서 아주 가깝잖아. 나무의 숫자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숲에 가서 세어보는 거지. 우리가 다 같이 하면 한 시간도 안 걸릴 거야.” (195~196쪽)
“무지개다! 와! 정말 아름다워!”
돼지도 고개를 돌려 뒤를 보고는 소리를 질렀어요. 자기 몸 뒤로 꼬리가 거대한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광경을 보았던 거예요. 돼지가 외쳤어요.
“이것 좀 봐요! 내 꼬리가 펼쳐졌어요!” (251쪽)
“주인님들은 물론 잘못을 많이 하지. 닭구이를 해 먹는 건 정말 원망스럽긴 해! 하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짧은 기간 동안에는 우리와 잘 지냈어. 우리가 아무 부족함 없이 지냈다는 건 인정해야 해. 맛있는 사료에, 맛있는 모이에, 또 잠자리까지. 내가 먹이를 찾아 헤맨다고 생각해봐.” (266~267쪽)
“그럼 햄이 되는 걸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말하고 싶은 게 많지만 슬프구나. 무엇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건, 델핀과 마리네트가 나를 먹을 수밖에 없다는 거야……”
당나귀, 하얀 암탉과 심지어는 돼지와 조금도 친한 적 없었던 고양이도 이런 말을 들으니 훌쩍이지 않을 수 없었어요. 돼지는 동물 친구들이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알아차리자 더는 그들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말했어요.
“여하튼 잘될 거라 믿어. 두고 봐. 기다리면서 시소나 탈래. 너희 중 시소 저쪽 끝에 앉을 친구 누구 없니?” (298쪽)
■ 차례
2권
비를 부르는 알퐁스의 발
고자질쟁이 젖소 코르네트
너의 눈이 되어줄게
그리는 대로
똑똑 소와 낄낄 소
암탉에겐 쉬운 문제
내게도 공작 깃털이 생겼니
작고 검은 수탉의 독립
돼지, 날다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