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138호 (2022년 여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2년 6월 7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51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여름호를 펴내며

죄 없는 자들의 천국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쳐라. 2천 년 전, 나사렛 출신의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은 이 낮은 말의 위력 앞에 굴복했고, 그래서 모두 말없이 물러났다. 아마도 이런 상상이 가능할 듯하다. 2년 뒤, 만약 이 땅의 사람들이 벽지 출신의 어느 사내에게 똑같은 말을 듣는다면, 필경 그들은 즉각 합심하여 가장 먼저 그에게 돌을 던질 것이다. 과연 누가 모를까? 모를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이 실로 ‘죄 없는 사람들의 천국’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분명 모두가 부인할 것이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하지만 한결같이, 극구 전면 부정할 것이다. 베드로처럼, 유다처럼, 베드로–유다처럼. 왜냐하면 이제는 누구도 ‘죄 없는 사람’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더, 더, 끝없이 더, 정확하게 말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없는 죄’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의 충만, 죄의 포만, 죄의 미만. 이것은 각종 ‘당신들’의 천국이고, 모든 ‘나’의 지옥이다. 그러니 사실상 천국도 지옥도 더는 없다. 있을 수 없다. ‘나’와 ‘당신’은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당신’ 사이에 ‘우리’는 없다. 천국에서 웃는 ‘당신들’과 지옥에서 신음하는 ‘나’들 사이에서 어떻게 ‘우리’가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되지 못한 채로, 아마 결코 될 수 없는 채로, ‘당신’과 ‘나’는 이미 하나다. ‘당신’과 ‘나’의 표정이 오롯이 겹치고, ‘나’와 ‘당신’의 생각이 또렷이 닮았기 때문이다. 도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둘이라는 사실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인 공통점은 이것이다. ‘나’와 ‘당신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백을 주장하며 탄원하거나 탄식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언제나 어김없이 ‘당신들’이 ‘나’의 알리바이가 되어주고, 거꾸로 ‘나’ 또한 번번이 ‘당신들’의 변명거리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와 ‘당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니 사실은 너무 잘 보이지만 보이는 즉시 잔상이 휘발되어버리는 어떤 존재들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당신들’의 천국과 ‘나’의 지옥이 똑같은 천국, 아니면 적어도 그 차이가 무의미할 정도로 아주 비슷한 천국일 것이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 사는 이곳, 즉 천국=지옥은 어디서도, 어느 시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낙원이다. 이 아수라 낙원에서, 모든 축제는 축죄()의 현장이 된다. 여기서는 축죄의 형식이 아닌 축제는 계획될 수도, 개최될 수도 없다. 결코 귀책의 주체가 되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런저런 비판적 분석은 여기서 거론할 계제가 아니다. ‘업보’라는 전통적 종교 어휘 역시 ‘당신’과 ‘나’의 기괴한 하나 됨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릇 ‘업보’란 문명과 질서를 전제할 때만 운위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그렇다. ‘우리’가 실종된 상황은 토머스 홉스가 상상하고 염려했던 ‘자연 상태’에 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우리’의 흔적, 미세한 흔적은 그래도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이 흔적, 오직 이 흔적 덕분에 ‘당신’과 ‘나’는 어쨌든 병존할 수 있고, 심지어 아무렇지 않은 듯—아무렇지 않은 척(!)—축제를 벌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모든 ‘우리’가 정말로 가뭇없이 사라진다면, 그것은 분명 완벽한 종말 이상의 어떤 사태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짐작하건대, 절대다수의 ‘그들’ 역시 그럴 것이다. ‘나’와 ‘당신’의 병존—공존이 아니다!—이 정녕 완벽한 종말보다 더 나은 것일까? ‘우리’의 자취를 희미하게나마 지각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로, ‘세상의 끝’보다 더 좋은 것일까? 데이비드 코레시와 그의 추종자들, 이장림 목사와 다미선교회의 신도들은 이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일까? 단언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틀림없이 불특정 절대다수의 ‘그들’을 포섭하여 배타적인 ‘우리’로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누가 모를까? 모를 수 있을까? 이들이 이미 상당히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그렇다고 할 때, ‘당신들’의 천국과 ‘나’의 지옥, 결코 둘이 아닌 이 기묘한 ‘하나’는 저 비밀스러운 ‘우리’의 도약을 위한 발판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이것이 가장 난감한 문제인데—저들의 도약이야말로 ‘나’와 ‘당신’이 가장 간절히 바라면서 동시에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 없는 자들의 천국’은 ‘당신’의 가장 높은 소망이 ‘나’의 가장 깊은 공포와 남김없이 일치하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두려움은 ‘나’의 뿌듯함과 신비롭게 공명한다. 만약 이 공명을 일종의 ‘동시대성’이라 규정할 수 있다면, 현시대 문학과 예술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이 ‘동시대성’ 안에 도사리고 있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악무한적 동시대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 아니 바람직한 일인가? 바로 이러한 질문을 이번 호 하이픈 특집 주제로 설정해보았다. 감사하게도 여러 필자가 자유로운 형식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운 견해들을 보내주었다. 먼저 “게으른 예술 종자이자 태만한 죄인”인 시인 김승일은 새로움을 향한 자신의 열망을 비평가와 출판사를 향한 비굴하고도 신랄한 형태의 읍소()로 풀어낸다. 다음으로, 소설가 나일선은 새로움에 대한 추구란 알고 보면 시대착오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을 제출하며, 더 나아가 이 인식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어떤 착오의 결과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고 진술한다. 그의 냉소적인 결론은 ‘새로운 문학’이란 기껏 벤 버냉키나 워런 버핏의 거대한 옷장 안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문혜진은 보리스 그로이스, 자크 랑시에르, 핼 포스터를 경유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미술을 규정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생산 및 수용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네트워크의 시대”가 위기인지 기회인지 알 수 없으나, “미술 일반의 가치를 좌우”하는 최종 심급은 결국 제도이며, 따라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응답을 기대한다. 시인 박세미는 새로움에 대한 고민이 산출하는 난맥상을 다음과 같은 다짐으로 통과하려 한다. “나는 현재를 소거하지 않고, 생활을 제거하지 않고, 매 순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 위에 언어를 입히고, 또 그 위에 언어를 쌓는 방식으로 쓰는 재미에 빠져 있다. 새로운 것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 순 없어도, 이미 존재하는 것과 손잡고 새로운 오늘을 마주할 생각이다.” 소설가 서이제의 허구적 고백은 한층 격렬하고 과감하다. 그는 원래 “한국 문학이라는 말에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고 싶었으나 “딱히 도망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제는 살기 위해, 적군도 아군도 아닌 상대를 향해 맥북을 휘두르고” 있다. 반면 소설가 양선형의 사유는 새로움의 복잡계 안에서 어떻게든 버텨내려는 치밀하고 치열한 고민을 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낯선 것은 보존된다. 다만 그것은 특정한 믿음의 형식을 통해 규합되거나 보호받지 못하고 유령처럼 보존된다.” 새로운 것과 낯선 것 사이의 간극에 대해, 그리고 그 간극의 유령성에 대해 양선형과 함께 고민을 심화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비평가 양윤의의 글은 이유리, 김멜라, 임솔아, 김지연, 위수정의 소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어떤 냉소, 나일선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다른 냉소에 도달한다. “비슷하지만 다른 게 아니라, 역으로 다르지만 비슷해 보이는 것이다. 동시대 문학의 관찰자로서 비평가가 여기에 덧붙일 수 있는 말은 이런 것이다. 내일도 모래밭에는 비가 내릴 것이고 그러면 모래밭은 다르지만 비슷한 풍경을 펼쳐 보일 것이다.” 소설가 위수정은 새로움에 대한 고민의 근저에서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발견한다. “아니, 다 끝났다는데 우리가 이걸 계속해야 하는가? 할 수 있는 것인가?” 깊은 우울을 유발하는 이 질문 앞에서 위수정이 선택한 대처 방안은 도스토옙스키의 ‘병든 인간’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시인 유계영의 선택은 사뭇 독특하다. 그것은 “1분 전의 확신 속에서 조금씩 옆으로 비껴나가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인데, 이 전략은 기억과 망각이라는 또 다른 심대한 주제에 대한 고민으로 독자를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픽디자이너 유지원의 네 가지 단상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스스로 발언하지 못하는 새로움은 왜곡된 잔상을 남긴다”는 두번째 단상이다. 새로움은 본질상 찰나의 시간에 기대는 것이며, 설령 스스로 발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새로움의 기대 수명은 지극히 짧다. 그러나 스스로에 대해 스스로 발언함으로써 그것은 기록이 될 수 있고, 이 경우 생명에 대한 규정 혹은 관점이 완전히 새로워질 수 있다. 소설가 이미상의 자기 폭로 역시 흥미롭다. 그에게 소설 쓰기란 “일종의 자기 주도 학습”인데, “왜냐하면 [……] 넣고 싶은 주제는 많은데 구성 실력은 딸려서 결국 통합에 실패해 궁여지책으로 다른 형식의 글쓰기를 끌고 들어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궁여지책이 새로움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시인 “이소호의 퍼포먼스”는 스위스 소설가 로베르트 발저의 글쓰기 비책을 (아마도 부지중에) 모방한 것인데, 그 비책이란 일단 쭉 써 내려간 다음 단 한 글자도 고치지 않는 것이다. 신종 분과 학문인 미디어고고학을 소개하는 정찬철 교수의 글 역시 일독할 가치가 높다. 그에 따르면, 미디어고고학이란 “미디어 역사의 통합을 강요하거나, 모순을 거부하거나, 비구성적인 자연성을 가정하거나, 총체적 선형성과 통합적 서사를 우선시하기보다는 ‘과거에서 현재’를 더욱 비선형적 방법으로 이해하기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소설가 한정현은 새로움에 대한 고민을 혁명과 사랑의 역학 관계에서 찾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일종의 부작용이 바로 재미의 문제일 텐데, 그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집어든 선택지는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인간만이 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 위에 굳건히 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론가 홍성희는 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새로움에 대한 판정의 문제, 즉 권위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대범한 결심을 선보인다. “비평의 자리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앞으로 만나게 될 무수한 문학을 이미 본 것, 이미 아는 것, 새롭지 않은 것으로 판정하는 대신 그보다 앞서는 것도 뒤서는 것도 없이 오롯한 지금으로 마주 보며 읽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호 하이픈 특집은 한층 산포된 생각과 표현의 다채로운 향연인 만큼, 더욱 다종한 독자들의 주의 깊은 독서와 적극적인 응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본권의 작품란에는 김광규, 이병률, 신영배, 이혜미, 안미린, 안태운, 강보원, 최재원, 김보나, 오산하의 시와 배명훈, 백수린, 강화길, 이민진, 이현석의 소설이 게재되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의 열독을 권한다. 박동억, 이희우, 김미정, 김형중, 선우은실, 안서현, 정주아 평론가가 신간 시집 및 소설에 대한 리뷰를 써주었다. 노고에 감사드린다. 본권의 지성란에는 최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프레드릭 제임슨의 저서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 문화 논리』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제임슨의 인터뷰를 번역하여 게재했다. 역자인 박진철 선생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올해에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은 전 부문에서 당선자를 배출했다. 세 사람 모두의 문운을 기원하며, 독자 제현의 응원과 관심을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이번 호부터 평론가 홍성희 씨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합류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린다. 앞으로 큰 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동인 조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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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여름호를 펴내며


김광규 담쟁이의 봄 외 1편
이병률 이면지 뭉치 외 1편
신영배 서커스·5·6·7 외 1편
이혜미 비문 사이로 외 1편
안미린 세속 신비 외 1편
안태운 기러기보자기 연습 외 1편
강보원 파인애플 자르는 법 외 1편
최재원 시 외 1편
김보나 유리우주 외 1편
오산하 야광 인간과 손 맞잡고 걷기 외 1편

소설
배명훈 행성처럼 붉은
백수린 봄밤의 우리
강화길 비망(備忘)
이민진 거기 있는 것들
이현석 훈향

리뷰
박동억 기댐의 형식, 견딤의 형식
안미린,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최지인,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이희우 나의 우울과 나무의 기쁨
이수명, 『도시가스』
김미정 여성 서사의 자긍심
박서련,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김유담, 『돌보는 마음』
김형중 파기된 계약
양선형, 『클로이의 무지개』
선우은실 존재를 보전하는 방법298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
이원석, 『까마귀 클럽』
안서현 고독이라는 장소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정주아 우연이자 필연인 가족의 역사
이서수, 『헬프 미 시스터』
한정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지성
박진철 다시 보는 포스트모더니즘프레드릭 제임슨 인터뷰

제22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발표
차현준 당귀 방 외 4편
주이현 녹지 않는 슈가 크래프트와 블루의 도시
최다영 지옥에 깃든 응시, 공백을 확장하는 시(詩)김복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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