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사회
한국 사회를 읽는 문학 필독서
<해시태그 문학선> 1차분 4권 출간!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로운 시리즈 <해시태그 문학선>을 독자들 앞에 선보인다. <해시태그 문학선>은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주제어를 선정해, 이와 연관된 문학작품들을 선별하여 묶은 앤솔러지다. 이번에 출간된 1차분 4권은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로 #젠더와 #생태를 선정하고 각 주제어별로 #시와 #소설 편을 엮어 펴냈다.
해시태그(#)는 소셜 네트워크상의 검색을 편리하게 해주는 기호로 시작되었지만, 이제 일상의 관심사에서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아우르는 유력한 주제어를 띄워 올려 대중들을 광장으로 끌어내는 문화 현상으로 진화했다. 문학과지성사의 <해시태그 문학선>은 문학작품이라는 ‘기호hash’를 ‘묶는다tag’라는 어원 그대로, 시간과 지면을 달리하여 각기 흩어져 있던 문학작품들을 하나의 주제어로 묶어낸다. 수록 작품들의 목록은 문학의 언어가 얼마나 내밀하게 동시대의 뜨거운 문제와 마주하고 있는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책에 실린 개별 작품들은 하나의 주제어에 포섭되지 않지만, 주제어와 문학작품과의 연관을 사유하고 상상하는 작업은 한국문학의 스펙트럼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며 독자들에게 새롭고도 섬세한 문학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또한 ‘포스트잇’(작품 해설)과 ‘생각의 타래’(생각해볼 문제)를 더해 ‘#문학’을 둘러싼 보다 심층적인 질문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새롭게 기획한 <해시태그 문학선>에 많은 관심과 기대 부탁드린다.
침몰하는 지구를 구할 문학적 상상력
#생태
<해시태그 문학선>은 2021년 한 해 동안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로 ‘#생태’를 선정하고, 이 주제를 다룬 시 62편과 소설 6편을 선별해 각각 『#생태_시』와 『#생태_소설』로 엮었다. 생태의 위기는 전 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2020년 탄소 배출량 세계 9위를 기록한 한국에서 더더욱 미룰 수 없는 문제로 다가온다. 특히 코로나19 재난은 생태계 파괴가 당장 우리 개개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내일이면 너무 늦다는, 지구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뿐이라는 목소리가 더욱 절실해지는 이유다.
<해시태그 문학선_#생태>는 작고 연약한 생명들에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독자들에게 생태 위기를 호소하는 한국문학의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생태_소설』은 기민한 감각으로 생태 문제를 사유한 김원일, 최성각, 듀나, 편혜영, 정세랑, 천선란의 소설 6편을 선정했으며, 『#생태_시』는 생명들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이야기하는 한국의 생태 시 62편을 추려 ‘문명의 그늘’ ‘훼손된 자연’ ‘인류의 위기’ ‘자연의 재발견’ ‘자연, 생명, 여성’ ‘상생의 길’이라는 여섯 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담았다.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섬세한 문학의 언어로 생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볼 것을 권한다. 나무와 새, 방아깨비 등 생태계를 이루는 존재들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교감하며, 서로 다른 줄 알았던 자연과 인간이 실제로는 “같은 성분으로 되어 있”는 생명 공동체라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가 하면 경제 성장의 대가로 생태를 희생해온 한국 사회에 위험 신호를 보내며,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무너지고 마는 인류 문명의 모습을 상상해 보이기도 한다. 생태 문제를 사유하고 상상하는 문학의 힘을 통해, <해시태그 문학선_#생태>는 공멸이 아닌 공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지구의 목소리’를 전한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생태적 파국을 예감하며 공존하는 미래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 문학적 상상력
『해시태그 문학선_#생태_소설』은 김원일, 최성각, 듀나, 편혜영, 정세랑, 천선란의 소설 6편을 통해, 생태 위기에 처한 우리를 간절한 문학 상상력의 지평으로 안내한다. 멀리는 1970년대, 가까이는 2020년에 발표된 소설을 한데 묶어 한국문학이, 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시기별로 생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말해왔는지 한눈에 읽어낼 수 있다.
먼저 김원일의 「도요새에 관한 명상」은 인근에 공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생태 환경이 파괴되어가는 동진강 하구 도요새 도래지를 배경으로 쓰인 생태 소설이다.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환경 운동을 하는 형 ‘병국’과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돈벌이로 도요새를 포획해 박제사에게 넘기는 동생 ‘병식’의 대립을 통해서 인간의 이윤 추구가 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여전히 유효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최성각의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는 주인공이 몸의 이상 증세를 떨쳐내기 위해 건강한 물을 찾아 유락산 약수터로 약수를 뜨러 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시에 이 소설은 실제 신문 기사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1980년대 말 한국의 사회상, 특히 국내 환경오염의 사례들을 충실히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폐수를 한강에 무단 방류하는 등 소설에서 언급되는 당시의 이기적인 세태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물을 마시겠다고 약수터로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과 꼭 겹쳐진다.
듀나의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 낯선 바다 행성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생존기다.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같은 이 행성에서 사람들은 낮만 있는 모래사막 대륙과 밤만 있는 얼음 사막 대륙 사이의 바다를 떠다니는 고래 등 위에 올라타 생활하는데, 고래 사이에 전염병이 번지며 사건이 시작된다. 전염병과 기후 위기라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머나먼 시공간에서 펼쳐 보이는 SF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편혜영의 「아오이가든」은 아오이가든이라는 아파트 단지에서 퍼져나간 역병 탓에 버려진 도시와 인간의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담아낸다. 역병의 치료법조차 알지 못하는 무력한 상황에서, 도망칠 곳이 없는 주인공 ‘나’는 아오이가든에 남아 희망 없는 시간을 보낸다. 개구리와 내장, 분비물과 냄새로 가득한 「아오이가든」의 기괴한 세계는 생태 환경이 탈 났을 때 인간 사회의 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를 섬뜩하게 예감한다.
정세랑의 「리셋」은 거대한 지렁이가 인류 문명을 갈아엎는 소설이다. 과잉생산과 과잉 소비로 작동하는 문명에 “구역감”을 느끼고, 도시를 집어삼키는 지렁이를 보며 “내가 죽고 다른 모든 것들이 살아날 거란 기쁨”을 말하는 서술자의 태도는 읽는 이들에게 경각심을 환기한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인류 문명이 사라진 지구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리셋’ 이후를 상상해낸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천선란의 「레시」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바다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지구를 떠난 탐사대가 토성의 얼음 위성 엔셀라두스에서 외계 생명체 ‘레시’와 조우하는 순간을 그린다. 탐사대와 관제 센터는 이 미지의 생명체를 경계하고 심지어는 만일의 경우 사살해도 좋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레시를 분석하고 관찰하고, 이곳에서 살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바이러스 연구자 ‘승혜’는 레시를 알기 위해, 레시와 소통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 드넓은 우주 속에서 작고 연약한 존재들의 교감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 책 속으로
“뻔뻔스러운 자식. 언제부터 그 짓 시작했어? 왜 새를 죽여, 죽인 새로 뭘 해?” 병국이 언성을 높였다.
“별 말코 같은 소릴 다 듣는군. 날아다니는 새도 임자 있나? 지구의 새를 형이 몽땅 사들였어?” 〔……〕
“누가 네게 그 일을 시켜? 그 사람을 대.” 병국이 잔을 밀치며 소리쳤다.
“형이 고발할 테야? 날아다니는 새 잡아 박제한다구? 그건 죄가 되구, 허가 낸 사냥총으로 새 잡는 치들은 죄가 안 된다 말이지?” 병식이 코웃음 쳤다.
“희귀조가 멸종되고 있다는 건 너도 알지? 인간이 새를 창조할 순 없어.”
“개떡 같은 이론은 집어치워. 지구상에는 30억 넘는 새가 살아. 그중 내가 몇 마리를 죽였다 치자, 형은 그게 그렇게 안타까워?” (김원일, 「도요새에 관한 명상」, 84~85쪽)
그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모든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석유화학제품을 혐오했다. 그가 혐오하는 것은 플라스틱이나 짜장면에 씌워진 랩이나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도 담아주는 비닐봉지, 분해되지 않는 합성세제뿐만이 아니다. 일산화탄소와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 그리고 수돗물에 함유된 중금속류와 강력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 디젤엔진, 가공할 만한 산성비, 무엇보다 이 땅에 얼마나 비치되어 있는지 비밀에 부쳐져 있는 핵무기 및 핵 기지 들을 혐오하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이 땅을 ‘세계 최대의 공해 실험장’이라고 단정하는 것에 침통하게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최성각, 「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124쪽)
“우린 고래와의 공생 관계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했지요. 고래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래는 우리가 필요 없었어요. 그냥 견딜 만한 작은 기생충에 불과했지요. 그런데 그 견딜 만한 기생충이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기 시작했다면 고래들도 여기에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영리해요. 해류를 읽고 폭풍을 예측하고 정보를 교환해요. 사라진 고래를 이루는 개체들이 다른 고래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해봐요. 그리고 인간을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전수했다면?”
잠시 우리는 멸종에 대해, 3천 년 동안 이어져온 우리 역사의 끝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좀더 긍정적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영리하다면 인간이 단순한 기생충이 아니라는 걸, 대화가 통하는 지적인 존재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 처치하고 잊어버리는 대신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똑똑한 동료가 있는 건 좋은 일이기에. (듀나, 「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168~169쪽)
사람들은 두 겹으로 마스크를 썼다. 손에는 일회용 위생 장갑이나 수술 용 고무장갑을 꼈다. 어쨌거나 병에 감염되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몇 년이 지나야, 어쩌면 몇백 년 후에야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다. 당국은 병의 치사율이 그렇게 높지 않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감염률은 높고 치료제는 찾을 수 없어서 전염에 대한 공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병에 걸리면 죽는 일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병을 옮기는 것밖에는 할 게 없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나을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공기 중에 떠도는 역병의 기운과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맞서느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고 있었다. (편혜영, 「아오이가든」, 192쪽)
무엇보다 멸종이 끔찍했다. 멸종, 다음 멸종, 다다음 멸종. 사람들 눈에 귀여운 종이 완전히 사라지면 ‘아아아’ 탄식한 후 스티커 같은 것이나 만들었다. 사람들 눈에 못생기거나 보이지 않는 종이 죽는 것에는 개뿔 관심도 없었다. 잘못 가고 있었다. 잘못 가고 있다는 그 느낌이 언제나 은은한 구역감으로 있었다. 스스로 속한 종에 구역감을 느끼기는 했어도, 끝끝내 궤도를 수정하지 못했다.
모닥불 가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나를 죽이고 싶어 할지 모르지만, 지렁이들은 제때 왔다. 우리가 다른 모든 종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하기 전에 와줬다는 게 감사할 정도다. 궤도는 가까스로 수정되었다. 나는 배낭에 들어 있던 은박 담요를 덮고 잠들며 가끔 웃는다. 내가 죽고 다른 모든 것들이 살아날 거란 기쁨에. 기이한 종류의 경배감에. (정세랑, 「리셋」, 210~211쪽)
승혜는 이곳까지 찾아오고 나서야 자신이 알고 싶었던 진실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레시와 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더 있다면 차분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 레시가 다가와 승혜를 마주 봤다. 또다시 목이 노랗게 빛났다. 레시가 말을 걸고 있다. 신호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신호…… 그때 마침 불현듯 승혜의 머릿속으로 장면이 떠올라, 승혜는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니까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비참하고 서글픈 몸짓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레시에게 장갑 낀 손의 손바닥을 내밀었다. 〔……〕 만에 하나라도 승혜의 상상이 비약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온다면 이곳에서 돌아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레시를 끌어안을 것이다. (천선란, 「레시」, 277~278쪽)
기획의 말
김원일_도요새에 관한 명상
포스트잇_생각의 타래
최성각_약사여래는 오지 않는다
포스트잇_생각의 타래
듀나_죽은 고래에서 온 사람들
포스트잇_생각의 타래
편혜영_아오이가든
포스트잇_생각의 타래
정세랑_리셋
포스트잇_생각의 타래
천선란_레시
포스트잇_생각의 타래
지은이 약력
작품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