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호를 펴내며
정치를 소멸시키는 적대의 적들 사이에서
한국 사회는 내년 3월에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정치적 적대와 불화의 시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축제로 일컬어지는 선거를 앞둔 많은 유권자의 마음은 참담하기 그지없는 것이 현실이다. 거대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모두 과거의 비리와 부패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며, 후보자들이 연일 쏟아내는 각종 실언과 막말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불안을 극도로 심화하고 있다. 후보에 대한 반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비호감 대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공감을 얻는 상황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특정 정치인과 정당을 향한 실망을 넘어 정치 자체에 대한 우리들의 냉소와 허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최근 들어 더욱 현실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치라는 개념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이념적 대립 또는 가치 체계들 사이의 경쟁을 가리키지 않는 것 같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생산적인 정치적 차이를 대신하는 것은, 상대 진영을 악마화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표를 얻고자 하는 분열과 적대의 언어들, 다시 말해 권력에 대한 순수하고도 맹목적인 의지뿐이다. 상황이 이러하기에, 권력을 쟁취하려는 투명한 동물적 욕망의 장 위에서 진영 간의 이념적 차이가 무화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를테면, 진보와 보수를 대변한다고 자임하는 거대 정당들이 ‘이대남’이라는 실체 불명의 세대 집단에게 표를 구걸하는 퇴행적인 태도를 드러내며 페미니즘의 악마화를 시도하거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데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극단화된 권력 투쟁과 정치가 동일시되는 과정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본적인 이념적 식별 체계가 붕괴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의 장 자체가 소멸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병적 증상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적 적대와 불화의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혼란, 즉 좌우 이념의 붕괴가 비단 현실 제도권 정치에 국한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젠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통적인 이념 전선이 와해되고, 새로운 형태의 적대적 분할선들이 재생성되는 현실을 우리는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는 진보적인 의제들이 신국가주의로부터 정치적 동력을 얻거나 시장 친화적인 보수 이데올로기가 유력한 정의론을 재구성하는 풍경을 목도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공정 담론의 득세 속에서 전통적인 평등의 이념이 망각되는가 하면, 이미 퇴조해버렸다고 여겼던 과거의 민족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포퓰리즘적 열망과 함께 진보의 이름으로 부활하기도 한다. 한편, 우리 사회의 정치적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던 정체성 정치는 때로 극단적으로 급진화되는 가운데 타자에 대한 배제와 파괴를 수행하는 본질주의적 정치와 적대의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재창안되는 적대의 분할선들은 정치적 이념 지형도에 관한 기존의 인식 틀이, 다시 말해 진보와 보수라는 기왕의 이념적 식별 체제가 무력해진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좌우의 합종연횡이 이루어지면서 재편되는 정치적 전선의 복잡성에 관한 비판적 분석과 검토가 부재할 때, 결과적으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억견doxa이 득세하는 혼란스러운 (리오타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쟁론le différend의 무대를 정치와 동일시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공동체 내부의 건강한 긴장을 촉발하는 정치적 분화와 소통의 장 자체를 상실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증오와 혐오를 기반으로 야기되는 분열적인 투쟁을 넘어, ‘생산적인 적대와 불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치적인 것을 회생시킬 가능성은 남아 있을까? 이를 구체적으로 사유하기 위해서는 ‘포스트–트루스post–truth’ 등으로 일컬어지는 변화된 사회적 조건과 매체적 환경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재구성되는 계기와 과정을 새로운 시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문학과사회』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젠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영토화되고 분화되는 정치적인 것의 분할선과 그 전선의 식별 체계에 관한 이론적 비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호 하이픈의 주제인 ‘정치적–적대적’은 현재 우리 사회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정치적 식별 체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정치적 적(敵)을 재생산하는 무수히 많은 분할선의 작동 메커니즘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를 소멸시키는 적대의 적들 사이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사유하는 거점이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서동진의 「좌파라는 ‘경험’—탈정치의 시대에서 정치의 만회」는 “좌와 우의 구분이 소멸하는 듯한 정치적 세계의 풍경”을 목도하고 있는 필자의 소회를 담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는 좌우의 대립을 과거의 정치 문법으로 간주하려는 탈정치적인 시각을 비판하고, 좌우를 나누는 정치적 분절의 상상력이 ‘정치적인 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토대임을 거듭 강조한다. 이때 필자가 경험을 Erfahrung와 Erlebnis로 구분했던 벤야민의 관점을 토대로, ‘정치적인 것’에 대한 상상과 동일시를 가능하게 한 정치적 경험의 몰락을 현재 좌파가 처한 곤혹의 원인으로 분석하는 대목은 흥미롭게 읽힌다. 요컨대 서동진의 글은 정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성을 상징화할 수 있는 좌파적 경험이 어떻게 만회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한편 김현준의 「민주화체제의 ‘정치적인 것’과 포스트–민주화의 ‘스캔들’—‘집권민주화세대·세력’의 헤게모니 실천과 그 패착에 관하여」는 박근혜 퇴진 이후 권력을 쟁취한 현 민주화 세력이 정치적으로 실패하게 된 원인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글이다. 그에 따르면 조국 사태와 미투운동 및 페미니즘 리부트에 응답할 수 없었던 현 집권 세력의 정치적 무능은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현실을 설명해왔던 ‘민주 대 반민주’라는 대립 구도의 해체를 보여주는 징후에 가깝다. 기존의 정치적 헤게모니가 직면한 시대적 한계를 성찰하지 않고, 그것을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로 환원하고자 하는 민주화 세력의 퇴행적 태도가 결과적으로 맹목적인 정치종교를 낳게 했다는 김현준의 날카로운 분석은 현 한국 사회의 이념적 착종 상황을 설득력 있게 진단하고 있다.
김보명의 「보수적 페미니즘은 ‘여성’을 구할까?」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포퓰리즘 정치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는 대중 정치와 페미니즘 사이에서 발생하고 있는 예상치 못한 조우를 조명하는 글이다. 페미니즘의 제도적, 문화적, 대중적 성공이 역설적이게도 보수적 페미니즘의 확산을 가능케 한 배경이라는 사실을 짚어내는 가운데, 필자는 진보적 정치 담론의 보수화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한다. 그에 따르면 페미니즘을 포함한 모든 진보적 정치 담론은 그것이 대변해야 할 하나의 진실 또는 실체를 규명하는 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관건은 지배 담론에 대한 의식적, 담론적, 정동적 개입과 실천 속에서 그간 포착되지 못했던 불확실한 실체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조직할 수 있는 운동성이다. 김보명의 이러한 진단은 페미니즘 운동 내부에서 나타나는 긴장과 혼란을 페미니즘의 실패로 규정하려는 항간의 백래시적 시각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방법과 관점을 제공해준다. 요컨대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자체를 끊임없는 변주와 재구성의 과정으로 정립하려는, 개방적인 운동 속에서 진보적 정치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조형근의 「선을 지키는 사람들, 선 너머의 사람들」은 ‘촛불’ 이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현실의 실재를 조명하고 있는 글이다. 박근혜 정부의 퇴진 이후 더욱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시민들의 기대와 희망이 무너지고 오히려 타인에게 모욕, 수치심, 분노, 경멸을 표하는 태도와 정동이 도처에 난만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그는 묻는다. 흔히 ‘을들의 싸움’으로 통칭되는 이러한 사태가 야기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조형근이 제시하는 것은 바로 ‘불평등’이다. 사회적으로 극심한 경쟁을 일으키는 병목 같은 기회 구조로 인해,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 너머의 연대가 모색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공정’이라는 형식적 정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에 해당한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절차적 정당성 너머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 사회의 보수적 공정 담론의 허상과 퇴행성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지주형의 「우리 시대의 정치적 상상력」 역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하에서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을 지적하고 있다. 그의 글은 한국이 사회적 측면에서 상당히 저발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의 위기에 처해 있는 사회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의 글에서 제시되고 있는 구체적인 지표들은 분절적 양극화 체제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감하게 해주며,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한 정책적 무능이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요컨대, 공정성에 대한 과도한 강조 및 능력주의의 부상은 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상상력의 부재를 드러내주는 징후에 가깝다. 그의 주장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에 퇴행적으로 안주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및 국가 체제의 전환을 이뤄낼 수 있는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이 요구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영진의 「‘민족해방’과 ‘국민국가론’ 사이에서」는 ‘민족’과 ‘국민국가’를 정치적으로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를 원점에서 다시 모색하는 글이다. 1990년대 이후 ‘민족주의’와 ‘내셔널리즘’에 대한 학문적 비판이 진보적 학술장의 메인스트림을 형성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비판의 이름으로 개진되어왔던 ‘민족’과 ‘국가’에 대한 전방위적 해체의 흐름이 어느새 이론적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판단하에, ‘민족’/‘국가’의 해체 이후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지 못한 상황이 오히려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을 둘러싼 논리와 심정의 괴리”를 초래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최근 목도하고 있는 문화적 ‘국뽕’과 우익 포퓰리즘의 득세 및 비판 이론의 퇴조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 형성되었던 정치적 담론 지형도를 꼼꼼하게 경유하면서, 필자가 탐색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를 위한 진정한 장례식”을 위한 방법과 태도, 즉 과거에 대한 계보학적 성찰의 필요성이다.
한편 허경의 「현재의 진단학—21세기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이 18세기 프랑스이다”(강조는 원문, 이하 동일)라는 도발적인 선언으로 시작되는 글이다. 그가 18세기 프랑스와 21세기 한국 사회를 비교하는 것은 단순히 두 시대 사이의 표면적 유사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두 시대를 관통하는 정치적 상황의 동시대성, 즉 좌우의 이분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시대적 위기 상태이다. 정치가 진실에 종속되어 있던 진리의 시대가 붕괴됨으로써, 과거의 언어로 현재의 정치적 이념이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로 인해 야기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전면적인 불신과 그로 인한 극심한 권력 투쟁이다. 하지만, 허경에 따르면 이러한 불신은 새롭게 도래할 미래를 사유하기 위한 일종의 가능 조건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현재에 대한 이해불가능성을 토대로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방하는 철학적 사유가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정치와 관련해 만연해 있는 오늘날의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을 제시해준다.
한편 김항의 「혐오, 음모, 그리고 내전—집단 학살의 패러다임과 정치적인 것의 상황」은 칼 슈미트의 정치철학을 해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세계 도처에 만연해 있는 가짜 뉴스와 혐오, 그리고 음모론을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와 구분되는 존재를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드러내는 ‘예외적 순간’이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구성하며, 적과 동지의 구별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정의definition’가 아니라 ‘식별identification’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즉 슈미트식의 정치는 근본적으로 식별 이후에 구체화되고 증명될 수 있는 현실적 사태에 해당하며, 그것의 궁극적인 숨은 소실점은 내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전으로서의 정치’라는 김항의 테제는 혐오와 증오에 입각한 음모론, 더 나아가서는 인류사의 비극으로 기록된 수많은 집단학살이 단순히 예외적인 것, 정상으로부터 일탈한 병리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반정치적 사태들을 예외가 아닌 상례로 인식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비로소 21세기의 혐오와 음모 정치에 대항할 수 있는 비판적 거점이 확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빈곤하고 편협한 말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지만, 이러한 말들의 가난함을 무색게 하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언어의 성찬이 이번 계절에도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정현종, 김승희, 박형준, 김소연, 오은, 백은선, 김호성, 문보영, 이자켓 시인의 신작시를 만나볼 수 있으며, 소설란에서는 최제훈, 위수정, 장혜령, 이서아 작가의 단편소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지난 계절의 신간들을 예리한 시선으로 읽어준 김지윤, 선우은실, 조강석, 김형중, 서영인, 전승민, 조연정 평론가의 글도 일독을 권한다. 〈지성〉 코너에서는 최근 작고한 장–뤽 낭시의 삶과 철학을 되돌아보는 꼭지를 마련했다. 낭시의 철학을 멀리서, 충실하게 읽고 계승하고 있는 박준상 교수의 섬세한 글을 통해 철학자로서의 낭시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사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전해야 할 기쁜 소식이 유독 많은 계절이다. 올해 목포시와 문학과지성사가 공동으로 주관한 목포문학상 수상작으로 이숙종 소설가의 「보트하우스」가 선정되었다. 아울러 2021년 문지문학상 시 부문에 백은선 시인이, 그리고 소설 부문에 김멜라 소설가가 수상자로 결정되었다. 해당 작품들에 대한 구체적인 심사평과 수상 소감은 지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상자들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아쉬운 소식을 하나 전한다. 『문학과사회』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던 김형중 평론가가 이번 호를 끝으로 편집동인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새삼 돌이켜보니,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간되었던 『문학과사회』 곳곳에 그의 번뜩이는 사유와 섬세하고도 유머러스한 비평적 감각이 배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의 존재를 대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기 위해서라도 아쉬운 마음은 뒤로한 채, 조금은 기쁜 어조로 평론가로서의 그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메울 수 없는 그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노력 속에서, 『문학과사회』의 도전과 실험 역시 한층 더 치열해질 것임을 모두에게 약속드린다.
편집동인 강동호
정치적 – 적대적
서동진 좌파라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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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명 보수적 페미니즘은 ‘여성’을 구할까?
조형근 선을 지키는 사람들, 선 너머의 사람들
지주형 우리 시대의 정치적 상상력
이영진 민족해방’과 ‘국민국가론’ 사이에서
허경 현재의 진단학
김항 혐오, 음모, 그리고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