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살아가기 위해 과거의 기억 정도는
조금 덜어내도 괜찮을 거라 믿었다”
테두리만 남은 과거의 흔적을 감각하는 김수온의 첫 소설집!
현재와 과거 사이 불안한 시차를 살아내는 사람들
201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수온의 첫 소설집 『한 폭의 빛』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김수온의 등단작 「( )」는 동생이 실종된 뒤 가족들의 눈앞에 계속해서 비어 있는 괄호가 등장한다는 상상력을 전제로 한 소설이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소설가 은희경과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소설을 지배하는 아득한 슬픔의 정조”가 “투명한 감각을 선사”한다고 평하며, 애도의 정서를 마치 수채화와 같이 스며들고 퍼져나가는 이미지로 구현해낸 김수온의 작품에 기대를 표했다.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는 등단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여자, 아이, 물, 햇빛, 도시, 먼지 등의 반복된 재료를 바탕으로 이미 잊힌 과거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일에 몰두한다. 여기서 작가가 과거를 그리는 방식은 지난날의 기억을 재현하거나 지워진 자리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구체적인 기억을 환기하지 않은 채 과거는 도처에서 풍겨오는 냄새로, 썩어가는 과일의 검은 반점으로,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은 빈 괄호의 모양으로 소설 곳곳에 기척처럼 남아 그 빈자리를 증명한다.
비어버린 과거의 흔적들에 발목이 묶인 채로도 소설 속 화자들은 앞으로 진행되는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에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현재라는 시차 사이에서 작가는 앞으로 향해 가는 삶이란 무엇인지, 지난날을 짊어지고 계속해서 정면을 보고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사라져가는 기억의 테두리만 남은 흔적을 손에 쥐고 쉽게 작별하지도, 온전히 되살리려고도 하지 않고 오로지 주어진 시간의 감각을 톺아보는 진심 어린 글쓰기가 김수온의 첫 소설집에 담겨 있다.
“여기 놓고 잊은 거겠지. 어쩌면 다신 찾지 않으려고.”
뒤를 ‘뒤’로 만들기 위해 전방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연인은 호수를 끼고 시계 방향으로 돈다. 그들의 오른편엔 언제나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호수를 바라본다. 왼편에 선 남자는 오른편에 선 여자의 뒷모습만을 본다. 오른편에 선 여자는 왼편에 선 남자의 얼굴을 잊었다. 손을 잡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떠나고 있다. 그들은 호수를 떠나지 못해서 남겨져 있다. 시간이 흘러 구름이 걷히고 호숫가에 서서히 빛이 들어찬다. 처음과 같은 양의 빛이 호수를 비추고 있다. 어느새 연인은 사라지고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빛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_「한 폭의 빛」
호수를 시계 방향으로 돌고 있는 연인은 서로를 마주 보지 않는다. 마주 보기 위해선 오른편에 선 여자가 왼쪽을 봐야 한다는 의미인데, 시계 방향에서 왼쪽은 시간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연인은 오른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오로지 시간의 ‘앞’으로 정해진 숙명을 받아들이고 걷는다. 김수온의 이번 소설집에서는 이처럼 닥쳐오는 ‘앞’, 즉 전방만을 주시하면서 나아가는 일에 몰두하는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네를 타는 ‘나’와 ‘너’는 설사 지상으로 내려올지라도 다시 발을 굴려 앞으로 올라가고(「나의 마르멜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어딘지 모를 곳을 향해 계속해서 걸어간다(「행렬」).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전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시간의 뒤에 남아 있는 것에서 등을 돌리기 위해 ‘앞’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앞은 언제나 뒤를 동반하고, 뒤를 뒤로 만들기 위해 앞이 발명되고 수행된다. 앞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등지고 싶은 것들에 대한 완고한 거부와 다르지 않다”(홍성희 문학평론가).
「행렬」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나’는 걸어가기를 주저하며 비로소 행진하는 이들을 바라본다. 나를 뒤로한 채 멀어진 이들을 보면서 전방으로만 향한 시선이 보지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묻는다. 다른 시선들 혹은 종종 드리워지는 ‘한 폭의 빛’은 누군가 떠나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들을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한다. 다만 이 흔적들은 이미 지워지고 사라진 뒤에 남아 있는 것들이므로, 김수온의 소설은 지난날을 증명하는 기척들로 자꾸만 가득해진다.
“조금도 가까워질 수 없는 마음으로 당신과 멀어지고 있어.”
뒤를 돌아보는 즉시 사라져버리는 기척들
조금 전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살며시 몸을 돌리자 이불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이불은 여자의 몸 언저리에 축 늘어진다. 방금까지 이불을 쥐고 있던 것이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지고 눈앞엔 텅 빈 허공만이 남아 있다. 다만 이불 끝자락에 살짝 주름이 져 있을 뿐이다.
달아나버렸어.
단지 뒤를 돌아보아서._「한 겹의 어둠이 더」
표제작 「한 폭의 빛」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장면이 포개어져 있다. 먼저, 요람의 이불 안에 누워 있는 아이를 돌보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의 집을 찾아오는 어머니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숲의 끝에 서 있는 검은 모포를 두른 사내가 있다. 창문 곳곳에서 아이의 손자국, 즉 아이의 흔적은 발견되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이는 하얀 이불 아래 몸을 감추고 있을 뿐 실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딸과 그의 아이를 살피러 온 어머니조차 아이가 머물고 있는 방 앞에서는 들어서기를 머뭇댈 뿐 문을 여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한편 “들어가도 됩니까./들어가면 안 됩니까”(p. 44)라며 허락을 구하는 말을 반복해서 중얼대는 사내의 대사는 사뭇 상징적이다. 곳곳에 기척으로만 남은 세계의 한복판으로 들어가기보다 기척의 주위를 서성대는 인물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한 겹의 어둠이 더」에서 여자는 이불로 몸을 가린 채 앞 방향으로만 걸어가는데 계속해서 뒤쪽에서 자신의 이불을 잡아당기는 기척을 느낀다. 뒤로 돌아 기척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것은 뒤를 ‘앞’, 정면으로 만드는 일이기에 여자가 “뒤를 돌아보”는 즉시 흔적은 “달아나버”린다. 때문에 함부로 기척에 다가갈 수 없다. 기척들, 나의 ‘뒤’에 남아 있는 흔적을 계속해서 붙잡아두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내 앞에 주어진 정면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나의 앞과 뒤라는 이 거리감을 좁히지도 해소하지도 않은 채로 그저 붙들고 있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과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 만큼 더 멀어지지도 않는다는 것, 그저 멈출 수 없이 이루어지는 일들 사이의 간극이 내내 지속될 따름이라는 사실”, 김수온의 소설이 말하려는 것은 어쩌면 이 작은 사실 하나일지도 모른다(홍성희 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네가 말했다. 너는 양손에 열매를 하나씩 쥐고 있었고 그중에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비닐을 벗기자 잘 익어 빛깔이 선명하고 껍질이 단단한 열매가 보였다. 잠에서 깨어 한창 허기가 졌던 터라 입안에 금방 침이 고였다. 열매를 한 입 베어 물자 투명한 과즙이 팔뚝을 타고 흘렀다. 향긋한 향에 비해 열매는 여전히 시기만 했다.
그치만 열매는 맺지 않았으면 해.
진심을 다하고 싶지 않거든.
―「나의 마르멜로」
시계 방향으로 돈다. 그들의 오른편엔 언제나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호수를 바라본다. 왼편에 선 남자는 오른편에 선 여자의 뒷모습만을 본다. 오른편에 선 여자는 왼편에 선 남자의 얼굴을 잊었다. 손을 잡고 있지만 서로가 서로를 떠나고 있다. 그들은 호수를 떠나지 못해서 남겨져 있다. 시간이 흘러 구름이 걷히고 호숫가에 서서히 빛이 들어찬다. 처음과 같은 양의 빛이 호수를 비추고 있다. 어느새 연인은 사라지고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빛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한 폭의 빛」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하면 정말, 다 괜찮아지는 법이니까.
참지 못하면 달아나면 된다. 사는 건 줄기차게 도망가는 것이다. 혹시라도 길을 잃으면 손뼉을 치렴. 그럼 찾으러 가마.
동생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괄호 안에 온갖 활자를 꾹꾹 눌러 담을 수 있었다.
―「( )」
나는 손차양을 하고서 앞을 바라봤다. 행렬을 두고 양쪽으로 갈라진 폐허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걸었다. 앞을 조심해라. 뒤보다는 앞을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뻗어 자꾸만 허공을 휘저었다. 정말 앞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인데요.
다 무너진다.
이미 무너져버렸는걸요.
―「행렬」
달라진 일과를 아이들은 여전히 함께한다. 아직 한참 자라나야 하기 때문에 서로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음과 음은 하나가 되었다가 여러 개로 쪼개지고 다시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음이 생겨나고 하나의 마디가 완성된다. 마디가 모여 짧은 곡이 되고 아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미완의 곡들이 떠오른다.
―「음,」
다만 그것이 텅 빈 수족관이었을 뿐이었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수족관이 있는 이 집에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열대어를 기르게 된 것뿐이었다. 단순히 그런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수족관이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 아마 수족관이 없었다면 열대어를 기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마음의 불안과 죄책감을 좀 덜어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다 정해져 있던 것처럼 여기다 보면 내가 벌인 일에 모든 책임을 다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괜찮게 느껴졌다. 그런 마음이었을까.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푸른 열대어」
우리가 처음 열차를 타던 날,
그날 나는 나도 모르는 뭔가를 잃어버리고 만 거야.그날을 회상하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당시의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멀리 지나와서야 나는 그게 일종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곤 했다. 지금의 도시로 떠나오고 나서부터 이 동네의 기억을 점차 지워갔으니까.
―「얼굴 없는 밤의 초상화」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이불은 여자의 몸 언저리에 축 늘어진다. 방금까지 이불을 쥐고 있던 것이 흔적도 없이 말끔히 사라지고 눈앞엔 텅 빈 허공만이 남아 있다. 다만 이불 끝자락에 살짝 주름이 져 있을 뿐이다.
달아나버렸어.
단지 뒤를 돌아보아서.
―「한 겹의 어둠이 더」
나의 마르멜로
한 폭의 빛
( )
행렬
음,
애프터눈 티
푸른 열대어
얼굴 없는 밤의 초상화
한 겹의 어둠이 더
해설|진심의 시계・홍성희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