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 고봉만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10월 8일 | ISBN 9788932039008

사양 변형판 125x192 · 136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행복은 불현듯 우리에게 찾아온다”
삶을 더 평화롭고 유쾌하게 만드는,
작고 평범한 기쁨들에 대한 매혹적인 찬사

평범하고 소소한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하는 프랑스 작가 필리프 들레름의 에세이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고봉만 옮김)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그동안 일상은 지겹도록 반복되고 무미건조한 것, 일탈과 해방을 꿈꾸게 만드는 벗어나야 할 굴레로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꽤 긴 시간,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온 우리에게 이제 일상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온다.

이 책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이처럼 우리의 평범한 삶에 깃들어 있는 작지만 보편적인 기쁨들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다. 겨울 아침의 새벽 거리에서 먹는 갓 구운 크루아상, 맥주 첫 모금의 짜릿한 느낌, 작은 멜랑콜리가 찾아드는 일요일 저녁, 바닷가에서 책 읽기, 땅거미 질 무렵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며 내는 부드러운 소리, 지하 저장고에서 익어가는 사과 냄새, 자동차 안에서 뉴스 듣기 등 저자 들레름은 우리 삶에서 가장 평범하고 소소한 서른네 개의 사물이나 습관, 순간들을 길어 올려 가만가만 살며시 그것들의 가치를 살핀다. 유쾌하고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삶에 대한 깊은 음미를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인생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반짝이는 행복의 순간들은 작고 대수롭지 않은 사건들, 하찮고 보잘것없는 일상 속에 숨어 있음을 우리에게 새삼 깨우쳐준다.

“무뜩 유연油然히 떠올랐다가 표홀하게 사라지고 마는 감각들. 필리프 들레름은 서른네 개의 작은 이야기들 속에서 프루스트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게 한, 마들렌 케이크를 다시 찾아내고 있다. 섬세히 아름다운 보석 같은 글이다.” _『푸앵드뷔Point de vue』


연한 빛깔의 행복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서른네 편의 보석 같은 에세이

모두 서른네 편의 글이 실려 있는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은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필리프 들레름의 대표작으로, 이 책의 경이로운 성공은 그를 프랑스에서 문학적・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가장 프랑스적이면서 가장 보편적인, 우리 인생에 내재한 소소한 기쁨들을 아름답고 섬세한 문장으로 탁월하게 포착해냈다고 평가받는 이 책은 1997년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51주간 종합 베스트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20여 개국에서 번역・출간, 누적 판매부수가 200만 부를 상회한다. 한국에서도 『첫 맥주 한 모금』(김정란 옮김, 1999)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이번에 새로운 호흡으로 읽힐 수 있도록 제목을 비롯해 본문 구성을 바꾸고 충북대 고봉만 교수의 유려한 번역으로 요즘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책으로 재출간되었다. 또한 글과 어울리는 따뜻하고 서정적인 그림들이 본문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독자들의 마음에 오랜 여운을 남긴다.

“삶에 스민 소박한 즐거움에 대한 반갑고 고요한 관찰” “삶의 순간순간을 묘사한 멋진 산문”(아마존)이라는 평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갑작스러운 사고, 기대와 전율, 서스펜스 따위는 없다. 그러나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작고 달콤한 슈크림 냄새, 주머니칼을 접었다 펼 때의 느낌 등 저자 들레름은 이 책을 통해 일상의 소소한 감흥, 상실해가고 있던 감각, 잊고 지내온 추억들을 독자들로 하여금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며, 일상의 낯익은 사물들을 낯설고 매혹적인 자태로 그려낸다. 저자가 몸소 겪은 시간과 공간들은 섬세한 언어를 통해 밀도감 있게 드러나고, 아울러 우리 앞에 놓인 시간과 공간들을 새로운 의미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의 맛을 읽는 순간, 특별하지 않은 사물의 고요하고 비밀스러운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애써 성찰하지 않아도 된다. 긴장을 풀고, 주변을 돌아보며, 조금은 느릿느릿 일상을 누리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소소하고 착한 행복이 우리 앞을 지나간다. 우리는 그 행복을 놓칠세라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가만히 잡는다. 물론 아주 살살 잡아야 한다.” (125쪽)


■ 책 속으로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9~10쪽)

샐러드 볼에 가득 담긴 콩 속에 손을 넣어본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둥근 완두콩들이 은은한 초록색 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손이 젖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연한 빛깔 행복이 침묵 속에서 한동안 이어진다. 이윽고 말 한마디가 톡 터져 나온다. “빵 사올 일만 남았네.” (「완두콩 깍지를 까는 일」, 12~14쪽)

중요한 것은 딱 한 모금이다. 두번째로 넘어가는 맥주는 점점 더 싱거워지고 평범해진다. 미적지근하고, 들쩍지근하고, 두서없이 질척거릴 뿐이다…… 사실 맥주 첫 모금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은 이미 모두 씌어 있다. 우리의 마음을 꾀어 부추기는 데 이상적인 것은 지나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맥주의 양이다. 이윽고 맥주를 들이켜면 숨소리가 바뀌고, 혀가 달싹대며, 그것들에 비길 만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즉각적인 행복감이 찾아든다. 무한을 향해 기쁨이 열리는, 거짓말 같은 느낌…… 동시에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최고의 기쁨을 벌써 맛보아버렸다는 것을……
이제 맥주를 마시면 마실수록 기쁨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이것은 씁쓸한 행복이다. 우리는 첫 모금을 잊기 위해 계속 마신다. (「첫 맥주 한 모금」, 18~20쪽)

목욕물을 받는다. 일요일 저녁의 진짜 목욕, 푸르스름한 거품이 바글대는 욕조에서 뽀얗게 낀 수증기와 보드라운 솜 같은 사소한 것들 사이로 둥실 몸을 내맡기며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그런 목욕을 해보기로 한다. 욕실의 거울에는 뽀얗게 김이 피어오르고 머릿속은 나른해진다. 특히 지나간 한 주에 대해 생각하지 말기를. 내일이면 다가올 한 주에 대해서도 더더욱 마찬가지다. 따뜻한 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 끝에서 찰랑대는 작은 물결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 (「일요일 저녁」, 29쪽)

두 팔을 펼쳐 모은 상태로 오래 책을 읽다 보면, 턱이 스르르 내려가 모래사장에 파묻힌다.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온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몸을 일으켜서 두 팔을 가슴 위로 마주 낀다. 이번에는 한쪽 손으로 페이지를 넘기거나, 이따금 읽은 페이지를 접어본다. 흔히 이런 포즈를 ‘청춘기의 포즈’라고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고 책을 읽으면, 서글프고 허무하고 작디작은 것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보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고, 싫증이나 들쭉날쭉 쾌락을 맛보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게 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에 포함되는 것이다. 눈이 아닌 몸으로 책을 읽는, 그런 느낌이 든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 40쪽)

그러자면 새 스웨터가 한 벌 필요하다…… 몸이 털실에 푹 싸여 보이지 않을 만큼 아주 헐렁한 스웨터라야 한다. 그런 스웨터를 입게 되면 계절과 한 몸이 된다. 어깨에까지 흘러내려 뭔가 여지를 남겨놓는 스웨터. 한 해의 막바지로 흘러가는 이 시기를 모양과 빛깔을 달리해서 즐긴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멜랑콜리의 나태함을 선택할 것, 그리고 남은 날들의 빛깔과 같은 새 스웨터를 살 것. (「가을 스웨터」, 74~75쪽)

입술이 말라온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갈증은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사과의 하얀 과육을 베어 물어도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월이 와야 할 것이다. 대지가 다져지고, 부드럽게 굽은 지하 저장고의 천장 아래 사과가 놓이고, 비가 내리고, 기다림이 시작되는 10월이. 사과 냄새를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것은 이전보다 더 강건한 어떤 삶, 더 이상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없는 ‘느림’의 냄새이기 때문이리라. (「집 안 가득 사과 냄새」, 78쪽)

목차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완두콩 깍지를 까는 일
잘하면 정원에서 점심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첫 맥주 한 모금
호주머니 속 작은 칼
스노글로브
일요일 저녁
아침 식사 때 읽는 조간신문
에스파드리유에 물이 배다
바닷가에서 책 읽기
아랍 가게의 로쿰
엉겁결에 초대받다
처음 하는 페탕크
투르 드 프랑스
자전거의 휴대용 발전기 소리
우리 동네 수예점
멈춰 있는 정원
오디 따러 가다
가을 스웨터
집 안 가득 사과 냄새
애거사 크리스티의 어떤 소설
포르토 한 잔만 주세요
일요일 아침의 디저트 박스
일반 자전거와 사이클 자전거
영화관에서는
밤에 고속도로를 달리다
감기 치료 훈증 요법
바나나 스플릿
이동도서관
자동차 안에서 뉴스 듣기
몽파르나스역의 무빙워크
옛날 기차를 다시 타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하기
만화경 속으로 뛰어들기

옮긴이의 말

작가 소개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흐의 여러 작품 속에 등장하는, 파리의 북쪽 시골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태어났다. 교사였던 부모 덕분에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교실과 학교 놀이터에서 보냈다. 파리 낭테르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1975년부터 노르망디 지방의 외르에서 중학교 문학 교사로 일했다. 2007년 이후로 작가의 길을 걸으며, 현재 프랑스 유수의 출판사인 포앵 쇠이유에서 ‘말의 취향’이라는 총서를 담당하고 있다. 육상 경기에 심취하여 2004년 아테네 하계 올림픽 기간 동안 프랑스의 대표적 스포츠 일간지인 『레키프L’Équipe』에 관련 기사를 기고했고,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때는 프랑스 텔레비지옹France Télévisions의 육상 경기 해설을 맡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행복을 담은 그림과 잡담』 『길들이 우리를 만든다』 『행복한 사내의 일기』 『셀피selfie의 황홀경』 등이 있다.

고봉만 옮김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루소와 레비–스트로스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저서와 개성 있는 프랑스 소설을 번역・소개하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문학의 고전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성찰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 『방드르디, 야생의 삶』 『인간 불평등 기원론』 『덧없는 행복』 『크리스마스의 악몽』 『악마 같은 여인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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