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은 사람

정소현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10월 15일 | ISBN 9788932039060

사양 변형판 120x188 · 332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네가 부러웠다. 네가 가진 모든 것들, 네가 가지지 못한 것들,
어느 하나 부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원작 소설 수록!
★제1회, 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수록★
★‘2012년 가장 뛰어난 첫 창작집’ 김준성문학상 수상작★

어느 날, 과거가 나를 찾아왔다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작가 정소현의 첫 소설집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게 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나는 보았다.”
유보라(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 작가)

세상의 모순을 정확하고 기민하게 추적하는 작가 정소현의 첫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2012)이 『너를 닮은 사람』(2021)으로 재출간되었다.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의 원작 소설을 포함해 일부 표현을 다듬고 새로운 호흡으로 읽힐 수 있도록 배치를 바꾼 소설 8편이 수록되어 있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두 권과 장편소설 한 권을 출간하는 동안 정소현은 현실을 “괴로울 정도로 정확하게”(정세랑) 대면하게 만드는 진중한 태도를 내내 유지해왔다.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지 못한 채 고통을 감내하고 욕망을 억누르다 터져버린 사람들. 타인에게 그 상처를 기어이 전염시키고야 마는 이들을 세상은 악인이라 부른다. 악인은 어떻게 탄생되는가. “한 인간 속에 숨어 있는 죄의식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우리 문학에서 흔치 않은” “집중력”(남진우)을 보여주는 작가 정소현의 첫 발걸음을 다시 마주해보길 권한다.

「너를 닮은 사람」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선뜩한 기운이 다시금 떠오른다.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폭력으로 느껴질 즈음,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복되는 매력적인 구성. 이 짧은 소설 안에 이토록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니.
소설이 끝나고도 계속 곱씹게 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나는 보았다.
유보라(드라마 <비밀><그냥 사랑하는 사이><너를 닮은 사람> 작가)


미묘하고도 불운한 근원을 찾아서

「너를 닮은 사람」의 ‘나’는 가난에 허덕이던 유년기를 거쳐 자신이 절실히 바라던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다. 남편 집안의 든든한 재력을 기반으로 한 교외의 고즈넉한 전원주택, 물심양면 자신을 지원해주는 무던한 남편,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준 두 아이, 인정받는 유학파 화가라는 직업까지. 그러나 어느 날 잊고 있던 기억이 ‘나’를 찾아온다.
정소현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과거에 붙들려 있다. 끊임없이 자신의 근원을 찾아 헤매거나, 지우고 싶은 과거를 무의식중에 외면해버린다. 작가는 그들이 돌이키거나 숨기려 드는 과거를 보여주면서 비틀린 인물들의 심리를 파헤친다.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는 주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지나간 미래」 「돌아오다」). 살아 있더라도 가볍게 자식을 방임(양장 제본서 전기」)하는 무책임한 존재다. 부모 역할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는 생존을 위해 ‘나무라고 징벌하는’ 초자아 역할만 강화되어버린다. 아이는 직간접적으로 방임되고 학대되며 유기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상을 입은 아이는 자라서 ‘실수하는 인간’이 된다. 의욕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거나 말을 더듬는 건 예삿일이다. 상처는 영영 남는다. 아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갈기갈기 찢겨 과거들 속에 흩뿌려져”(「너를 닮은 사람」) 있을 뿐이다.

“나는 무능한 것, 칠칠치 못한 것, 나잇값 못하는 것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었다.”
「돌아오다」

“키도 커졌고, 힘도 세졌는데, 그냥 어렸을 때 산에 묶여 있던 아이 그대로인 것 같았어요.
무력감은 내 몸보다 더 커져서,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빛나는 상처」

어떤 아이는 질서를 파괴하는 악마적 인물이 된다. 학대에 익숙해진 아이는 억압하는 대상이 사라진 후에도 자기부정을 내면화한다. 무력감에서 무감각으로 도피한다. 그들은 윤리적으로 백지 상태다. ‘실수’로 화분을 망가뜨리고 아버지를 죽이고 취객을 위협하다 결국 자신을 의심하게 된 조력자를 살해하는 과정을 겪으며 「실수하는 인간」의 ‘석원’은 덜떨어진 사람에서 용의주도한 연쇄 살인마가 되어간다. 흔히 사이코패스라 불릴 만한, 수월하게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석원은 「너를 닮은 사람」의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짓들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담담하고 건조한 정소현 문체의 특색이기도 하지만 주인공들의 행동 궤적을 따르다가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 없어”지는 탓이기도 하다. 사람의 감정을 소홀히 대하는 것을 냉혹하다고 평한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냉혹하다. 작가는 인물들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채, 다만 그들의 추악함을 소설 안에 놓아둔다.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수록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너를 닮은 사람」

“석원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는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것은 태어난 것이 실수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인간」

무수한 돌아봄 끝에 다음 걸음으로 나아가기에 성공하는 인물들도 있다.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빛나는 상처」의 인물들은 과거를 찾아 돌아간 시공간에서 내내 붙들어왔던 희망이 기대와 어긋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를 부정하고 도피하기보다 그 공간에서 마주친 함께 버려진 이들과 연대한다. 「폐쇄되는 도시」의 ‘삼’이 폐쇄 직전의 도시에서 마지막으로 구출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아이인지 노인인지 좀처럼 분간이 되지 않”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계속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할머니는 버려진 존재들을 상징한다. ‘삼’은 무섭고 두려워하면서도 그 존재(들)과 함께 앞으로 걸어간다.
그렇기에 『너를 닮은 사람』은 서스펜스와 따스함을 모두 맛볼 수 있는 책이다. “이름조차 안 남기고 완전히 사라지는 사람들도 허다한”(「양장 제본서 전기」) 버려지고 잊혀가는 것들의 세계에서, 정소현은 또다시 “기록을 시작한다.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지고 잊혀질 테지만 기억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지금 이 시간을 기록한다(「빛나는 상처」). 2012년, ‘첫 책을 만들던 그 시절로부터 멀리 온 줄 알았지만 여전한 마음’을 간직한 채로(「작가의 말」).

“울지 마. 모두 지나간 일이잖아.
나는 내가 아니지만 타인도 아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도 쓰다듬어준 적 없는 내 머리를 생각하며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매만져주었다.”
「돌아오다」


본문에서

이건 죽는 것과는 다른 거겠지요?
그럼요.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죽음을 생각해볼 수 있지요. 하지만 죽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자살 도우미니 증발 브로커니 하는 범법자들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 서비스는 개인의 기억을 추출해내 양장 제본서로 남기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추출된 기억은 표지 속의 칩에 이식되고, 동시에 책으로 기록되어 허가한 대상에 한해 열람이 가능하게 되죠. 몸은 사라지지만 정신은 제본된 기억 속에 머물게 되는 거지요. 예전에는 기술 부족으로 기억을 모두 남겼는데 2001년부터는 머물고자 하는 기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그 기억의 내용까지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영원히 보존해주고요.
「양장 제본서 전기」

석원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았는지 기억해보려 했지만 무엇이 실수였고 무엇이 고의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확한 것은 태어난 것이 실수라는 것이다.
「실수하는 인간」

나는 할머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과 동시에 외국계 금융사에 쉽게 취직했다. 할머니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독립하기 위해 열심히 학점 관리를 하고 외국어 공부를 한 결과였다. 나는 직장을 몇 년 다니다가 외국으로 발령받아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계획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내 자신이 무가치한 인간처럼 느껴졌고 평생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좌절감만 들었다. 나는 할머니와 같은 땅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는 내가 취직했다고 하자 직장에 다니지 말라고 했다. 다녀봤자 큰돈도 못 벌고 승진도 못 할 테니 힘 빼지 말라는 거였다. 할머니는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 것이 못마땅한 것 같았다.
「돌아오다」

“엄마가 나를, 저 위 공원에 데리고 올라가 숲 속 벤치에 눕힌 채로 묶어두고, 혼자 내려갔어요. 나무가 무성한 숲이었어요. 나를 묶으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런다고, 미안해, 미안해 이러면서 막 우는데, 차라리 죽어주고 싶었어요. [……] 나는 말이에요, 키도 커졌고, 힘도 세졌는데, 그냥 어렸을 때 산에 묶여 있던 아이 그대로인 것 같았어요. 무력감은 내 몸보다 더 커져서, 복수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빛나는 상처」

아직도 따라오고 있어요? 조금 더 먼 곳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텅 빈 도시의 거리에 셋의 발걸음 소리만 타닥타닥 울려 퍼졌다. 그들은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웠지만, 그 존재가 따라올 수 있도록 조금씩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길가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아직 도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모두 연행하겠다는 경고 방송이 울리고 있었다. 도시가 폐쇄되기 하루 전이었다.
「폐쇄되는 도시」


작가의 말

나는 무언가에 마음을 잘 싣지 않는 사람, 무엇이 소중한지 잘 모르는 사람,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기어이 놓아버리는 사람이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 생각했던 순간과 첫 책을 만들던 때의 마음만은 쉽사리 잊지 못한다.
그 시절로부터 멀리 온 줄 알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하고, 세상도 여전하나, 똑같은 자리는 아닌 듯해 다행이다.
다시 함께해준 민희 님과 슬기 님, 새 옷을 기꺼이 입혀준 문학과지성사에 처음과 같은 감사를 보낸다.

2021년 가을의 시작
정소현

목차

양장 제본서 전기
너를 닮은 사람
폐쇄되는 도시
실수하는 인간
돌아오다
지나간 미래
이곳에서 얼마나 먼
빛나는 상처

해설|실수하는 사회, 실수하지 않는 인간・김형중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정소현 지음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개정판 『너를 닮은 사람』) 『품위 있는 삶』, 중편소설 『가해자들』이 있다. 젊은작가상, 김준성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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