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먹고 자라 내 몸을 모조리 태워내도
끝내 타지 않고 남을 ‘시인의 혀’
시력 31년을 맞는 시인 함성호의 다섯번째 시집 『타지 않는 혀』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59번으로 출간되었다. 직전 시집인 『키르티무카』에서 10년을 건너왔고, 『너무 아름다운 병』 출간으로부터는 꼭 20년을 맞은 해이기도 하다. 과작이라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매번의 시집마다 남다른 스타일과 더불어 깊은 무게감, 높은 밀도를 보여주었기에 시집 권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진지함과 근면함이 시인 함성호에게 있다. 실험적인 면모로 한국 시단에 큰 충격과 영감을 불어넣었던 그의 첫 시집 『56억 7천만 년의 고독』 이래, 함성호의 시는 ‘언어의 건축물’ 혹은 ‘가청권 밖의 음악’ 등 다양한 독법으로 읽혀왔다. 그렇다면 이번 시집은 무엇으로 읽어볼 수 있을까?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태환은 제목 “타지 않는 혀”와 권두의 구마라집 고사를 연결해 읽어보기를 권한다. 두 번의 파계 끝에도 깨달음과 불경 번역의 완성을 이룬 구마라집의 삶을 되새기며 시정과 세속에 뒤엉켜 살아가면서도 근원을 향한 동경과 탐구를 지속하는 구도자의 자세를 닮아가는 시인. 하지만 구마라집이 완벽한 경전 번역을 마친 증거로 화장 후에 타지 않는 혀로 남은 성인이라면, 함성호는 언어의 씨앗을 입속에 틔워내어 이로써 제 몸을 다 태우고 언젠가 혀만으로 남기를 바라는 수행자의 자리에 여전히 머무른다. 그렇게 시인은 해진 신을 신고 또 진창길을 나선다.
누가
내 입안 가득 넣어준
한 줌의 씨앗결국,
내 몸을 먹고 자라
타지 않을 혀
-「타지 않는 혀」 부분
밖은 없고 안만 있는 어둠,
기억할 수 없는 노래로 나아가는 초월나비
이 노래를 따라가면
한 발 한 발마다 아프지 않을ᄁᆞ?
아픔이 나를 알아볼까?
-「이 노래를 따라가면」 부분
나는 유리배를 타고 은하수를 흘러가네
피곤한 발을 씻었던 강은 이제 찾을 수가 없겠지
나비의 흐름을 헤치며 향유고래가 유영하는
이 어둠에서는사랑했던 사람도
기억나지 않는 고백도
필사적이었던 변명도밖은 없고 안만 있는 어둠에 와 있다
-「초월나비」 부분
김태환은 해설에서 이 시집의 다수 시편에서 해진 신을 신고 지친 발을 가진 자로 등장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에 특히 주목한다. 인용된 시뿐 아니라 “해진 신발을 신고/벼랑 끝에서 바다 너머로/저녁 해를 보냈”(「넌 자유야」)다거나 “해진 신발을 신은/내가 살”(「중국인 무덤」)았다는 시인. 그는 닿을 수 없는 세계, 죽음, 혹은 초월을 향해 나아가려 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상황의 되풀이로 귀결된다. “나는 이미 쇠락한 시대에 태어나 망해버린 때를 살고 있다”(「염하―. 이백 정거장」)는 시대 인식 위에서, 이를 극복할 어떠한 전망도 없음을 곱씹는 그는 지상에 발이 묶인 채 초월을 꿈꾸는 나비로 현현한다.
비참함에 비참함이 더해져도
다시 한번 디뎌보는 진일보進一步
고통과 슬픔, 모순과 부정의 날들에도
계속되는
삶의 비참을 쫓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
[……]
이미 끝을 지나온 것 같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가보기로 했지
이미 끝을 지나왔으니까
우리는 끝까지 가보기로 했어
-「이미 끝을 지나온 것 같았지만」 부분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꽃은 하룻밤에 져도
꿈은 영원하네
-「길에 당한 유배」 부분
함성호의 시적 화자들은 구원과 초월을 바라보지만 이는 ‘먼 빛’일 뿐, 몸은 현실에 단단히 붙박인 자들이다. 인종 차별, 가난의 비참, 구체적으로는 용산참사와 세월호, 팔레스타인의 비극 등이 이어지는 세계가 시집에서 선명하게 그려진다. “고통과 슬픔, 모순과 부정의 날들”을 견디며 “삶의 비참을 쫓”는 이들이 모두 여기 있다. 고통과 어둠 속에 유배된 존재로 태어나 탈출할 수 없을 것을 짐작하면서도 기약 없는 순례길을 걷는 시인. 그의 꾸준한 진보는 계몽과 발전의 허상을 좇는 나아감이 아니라, 지친 발을 끌고 비참을 견디는 구도의 수행을 담아낸다. 언젠가 자신을 다 내어주고 오직 시의 혀로 남을 날을 바라보면서.
■ 시인의 말
아무 노래도 생각나지 않을 때
높고 낮음과 길고 짧음이
알 수 없는 말들을 대신하는 때
나는 해ː진 신을 신고 걷는 자다.
2021년 가을
함성호
■ 뒤표지 글
시는 쓰임새를 모르는 창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옛집을 살필 때면 간혹 쓰임새를 모르는 창을 만날 때가 있다. 우리가 그 만남을 의아해하는 것은 생활이 옛날과 달라서고,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창의 개념을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창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우리는 거기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 미지의 창은 그래서 ‘비非명사적 세계’를 구성한다. 대상을 하나의 단어에 고정시키는 대신, 일하고 있는 상태, 혹은 변화하는 흐름을 쫓아간다. 대상과 일치를 꾀하는 재현을 통해 명사는 세계를 단일화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세계를 좀더 수월하게 인식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에 시가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명사’로 꾸미고, 움직이고, 어찌하는 행위는 장님의 더듬기와 같다. 조금씩 알아가는 것보다 더 많은 미지가 열린다. 모르게, 얽히고설키고, 꼬이고 감겨 있어 우리는 방향이 없는 세계에서 더듬댄다. 너, 참, ……끔찍하구나.
■ 추천의 말
시인의 “타지 않을 혀”는 아직 생성의 과정에 있는 혀, 미래의 혀이다. 시인은 아직 먼 빛을 보고 힘겹게 나아가며 기적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몸, 그의 전 존재를 소모하는 작업이다. 타지 않는 혀가 함축하는 타오르는 몸은 노래에 기대어 길을 떠난 시인이 이 세계 속에서 겪는 온갖 비참과 고독과 고통, 그러나 결국에는 구원을 가져올 모든 경험의 상징이 된다._김태환(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그는, 늘/염하—, 이백 정거장/이 노래를 따라가면/내가 풍선을 불어줄게/이제는 향기로 듣겠습니다/재;灰와 혀; 감각이 몸을 지울 때 당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등장인물/어두운 산책/악양岳陽의 옛 이름은/키친 가든/노 젓는 배/나만 모르는 일/우울/물의 철학자/뒤돌아보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된 사람들이 있다/고통으로 휘어진 공간이 있다/혼잣말, 그다음/듣는 잔을 찾아서/봄의 이유/눈 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
1. 가시, 혹은 낚시
예키 부드 예키 나부드/두꺼ㅸㅏ두꺼ㅸㅏ/영랑호 푸른 바람/외옹치리–눈–내옹치리/윤삼월 무렵/병에 대한 위문/그 나비를 놓아줘/이미 끝을 지나온 것 같았지만/새로 한 시의 계단/대중적인, 아니 통속적인/소나무 세 개/무망/공자의 생사관/그리운 적막/꽃은 나중의 일이겠지요/흰, 화진포, 숭어, 해당화, 그다음/夢/가시, 혹은 낚시/어젯밤 나는 안개의 사주를 받았다
2. 라피스라줄리
출렁이는 춤 위에서/하얀 혼/푸른 호수 위에 흰 섬 하나/눈먼 나무 이야기/시베리아 블루/신비음으로; Anahata/못 돌아오는/넌 자유야/중국인 무덤/타지 않는 혀/집으로 가자/4・16의 목소리/팟캐스트/2016. 01. 13. ~ 2017. 04. 13./팔레스타인, 용산, 세월호 90일/외줄
3. 번작이끽야
그럴 수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초월나비/그것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고, 그것 때문이라면 다 괜찮은/바다와 나/한 때/길에 당한 유배/어느 회의주의자의 굴뚝/무한 호텔/何如의 무대/이대로나 그대로니까/당신이 행복하다고 말하면/늦은 점심을 먹는 사람들/해변의 당나귀/번작이끽야燔灼而喫也
해설 진흙과 연꽃・김태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