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살다 살다 이렇게 소원을
들어주기 힘든 경우는 또 처음이군.”
신세를 꼭 갚고 싶은 능청스런 고양이와
자기 소원이 뭔지 잘 모르는 하루의
유쾌하고 따뜻하고 사랑스런 만남!
내 소원을 말해 보라고요?
음…… 십 분만 기다려 주세요.
학교 담벼락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주인공 하루가 우연히 구해 준 고양이로부터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면서 하루와 고양이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기 소원이 뭔지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유쾌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능청스런 고양이를 등장시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묻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쾌한 길을 내준다. 소원 하나에 주저하는 아이와 그것을 들어주려는 고양이의 캐릭터가 같은 눈높이에서 입체적으로 그려진 것과 소원을 이루는 과정에서 생기는 해프닝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완결성을 갖는다.
갑자기 소원을 이뤄 준다고 하면 마음이 급해지고 당황하는 건 당연하다.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면 더욱더.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 안절부절못하는 하루와 그런 하루에게 까칠하게 말하면서도 소원을 꼭 들어주고 싶어하는 고양이는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다. 상대방의 상황을 생각해 주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로 은근슬쩍 서로를 배려한다는 것이다. 순수함과 유쾌한 심성을 잃지 않은 하루와 고양이가 어수룩하면서도 서로에게 진심을 다하는 장면들이 참 따뜻하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봐.
학교, 학원, 집을 오가며 공부와 시험에 지친 하루는 매일매일이 지루하고 재미없고 시시하기만 하다. 엄마의 기대치만큼 성적도 올려야 하지, 숙제는 많지, 친구랑 놀 시간은 없지, 눈 씻고 찾아봐도 도무지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그날도 하루는 수학 학원 차를 기다리며 학교 담벼락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깜짝 놀랄 만한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운은 조금도 없는 평범한 날이었으니까. 다른 게 있다면 졸 때마다 앞으로 넘어오던 고개가 뒤로 확 넘어간 정도랄까? 그런데 세상에, 그 바람에 그 고양이를 만난 것이다. 담벼락 위에서 입술을 씰룩이며 낮잠 자던 고양이를,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떨어지는 1000살 먹은 고양이를 말이다. 하루가 졸았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담벼락에서 떨어지는 고양이를 받아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잠결이라지만 고양이답지 못하게 떨어져 버린 자신의 모습이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고양이는 하루에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생일대의 행운 앞에, 심사숙고해야 할 중요한 순간에 하필 하루를 기다리고 있는 건 수학 학원 차다. 어서 타라는 기사 아저씨의 재촉 때문에 갈팡질팡하던 하루는 얼떨결에 소원 같지도 않은 소원을 이루게 되고, 마음 약한 고양이는 찜찜함에 자꾸 하루 앞에 나타나 마지막이라며 다시 소원을 묻는다. 하루는 엄마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영어 시험 점수를 10점 올려야 할 것도 같고, 최신 유행하는 변신 로봇카도 사고 싶기도 하다.
은근히 마음 약한 고양이 덕분에 하루는 그 모든 소원을 이루었지만 뭔가 마음이 개운하지 않다. 더 높은 점수, 더 멋지고 비싼 장난감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하루는 결국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만 깨닫고는 어깨가 더 처지고 만다. 게다가 고양이는 소원을 들어주다가 낮잠 잘 시간을 놓쳤다고 투덜대기까지 한다. 앗, 그 순간 하루에게 정말 멋지고 진짜 원하는 소원이 떠올랐다. 공부에 지친 하루에게 뜻밖의 선물로 찾아와 준 1000살 먹은 고양이는 이번에도 과연 하루의 소원을 들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