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21년 여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5월 28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3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여름호를 펴내며

문학과사회–하이픈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안준범 옮김, 문학동네,2021)만큼이나 우리에게 늦게 도착한 책 『비철학자들을 위한 철학 입문』(안준범 옮김, 현실문화, 2020)에서, 알튀세르는 ‘예술적 실천’의 특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로부터 인간들은 기이한 대상들을 생산해왔는데, 그것들은 그 어떤 물질적 유용성도 갖지 않는다는 특수성을 지니며 식욕이나 성욕 등등 인간의 그 어떤 생체 욕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 그것들의 고유함은 무용성 덕에 애호된다는 것인데” 운운(p. 289). 그에 따를 때 예술적 실천은, ‘이데올로기적 실천’과 달리 실재하는 원료(돌, 나무, 소리, 물감)에 작용해서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실물로서의 대상(그림, 악보, 조각, 건축, 책)을 생산한다. 그렇다고 이 ‘기이한’ 실천을 노동에 의한 생산(원료에 작용해서 구체적이고 유용한 결과물을 산출하는)과 동일시할 수도 없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대상의 용도가 프로이트가 말한 대로(그리고 김현이 말한 대로) 오로지 ‘사전 쾌락’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무용한 것의 생산, 그것이 예술적 실천이다.

그러나 무용한 것은 그것이 무용하다는 바로 그 이유로 항상 무해하거나 무익한 것일까? 혹은 유익한 것들만 추앙받는 세상에 오롯이 반자본주의적으로 우뚝 서 있는 오벨리스크 같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이어지는 알튀세르의 문장은 이렇다. “미학적 실천도, 다른 실천들에서처럼,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순수 행위이기는커녕 추상적인 사회적 관계들 아래에서 펼쳐지는 것인데, 이 관계들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규범들이거니와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적 관계이기도 하다는 것, [……] 예술은 인간들에게 제공하는 쾌락의 경이로움에 더해, 순수와 아름다움과 절대적 자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지배계급의 지식인들에게 알리바이 구실을 하는 이데올로기를 고무할 수도 있다는 것” 운운(pp. 293~94). 그에 따를 때, 그 자체로는 무용한 심미적 대상만을 생산해낼 뿐인 미학적 실천 역시 필연코 경합하는 이데올로기적 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규범들’이 바로 그 관계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최근 자주 듣게 되는 ‘문학은 텅 빈 기표다’라는 발화는 수행적인 데가 있다.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규범들’이 이데올로기적 관계의 산물이라면 그것들의 자명성을 회의하고 탈구축하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여러 문학적 범주는 텅 빈 상태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발화에 반해 ‘문학은 한 번도 텅 빈 기표였던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텅 빈 곳일수록 그 빈 공간을 점유하려는 시도들은 범람하게 마련이고 일단 점유된 공간은 저절로 다시 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정의해온 규범들’이 차지했던 자리는 새로운 (비)규범들과의 계쟁을 통해서만 대체되거나 재점유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계쟁의 장이다.

다섯 해 전, 『문학과사회』 혁신호와 함께 별권으로 『문학과사회 하이픈』(이하 『하이픈』)을 따로 꾸리기 시작했을 때의 정황이 그와 같았다. 세월호 참사, 신경숙 표절 사태, 문단 권력 논쟁, 미래파 논쟁, 문학과 정치(윤리) 논쟁 등을 연이어 숨 가쁘게 겪고 또 지켜보면서 발본적인 차원에서 문학의 제범주들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내부로부터 제기되었고, 당시 동인들은 그런 문제의식을 단절과 연속, 절합과 이접의 표지인 ‘–’ 속에 담고자 했다. 『하이픈』은 “완료될 수 없는 연결의 상징이자 결코 연결될 수 없는 완료의 상징이다. 하이픈은 지속이며 단절이고, 논쟁적 전선이자 새로운 세대의 기대지평을 나타내는 표식이다”(조효원)라고 말할 때의 포부가 바로 그와 같았다. 즉 발본적인 수준에서 문학의 제범주를 둘러싼 계쟁들을 활성화하기…… 그리고 다섯 해가 지났고, 그 사이 한국 문학장의 상황은 그와 같은 문제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호 『하이픈』의 주제가 ‘하이픈–하이픈’인 것은 그런 이유다. 벌써 스무 권째 발간하는 만큼, 중간 점검과 자성 그리고 그간의 성과를 모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보자는 심사였달까? 말하자면 『하이픈』의 눈으로 지난 『하이픈』을 돌아보는 기획이다. 돌이켜보니(여기 『하이픈』이 그간 기획해온 주제들을 모두 나열하지는 않겠다. 특집의 마지막에 실린 황호덕의 글을 읽는 것으로 그간의 경과는 충분히 정리될 것이다) 얼마간 자부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독자들 눈에는 부족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로서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과 사안에 최선을 다해, 신중하게, 문학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개입하려 했다는 정도의 말은 하고 싶다. 그러나 팔은 또 매번 안으로만 굽는 법이니 우리가 하거나 하지 못한 일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하리라. 이번 호 『하이픈』의 필자를 내부의 세 사람(강동호, 조연정, 조효원), 외부의 세 사람(금정연, 장영은, 황호덕)으로 구성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동인들은 자화자찬을 피하는 대신 현재 한국 문학장과 관련된 『문학과사회』의 고민들을 피력했고, 외부 필자들은 그간 『하이픈』이 해온 일을 바깥의 시선으로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보완해주었다.

강동호의 글 「문학의 정치—재현·잠재성·민주주의」는 내용과 형식, 순수와 참여, 예술성과 정치성, 자율성과 타율성, 미학과 정치 등의 오래되고 자연화된 대립 관계를 생산하는 기제를 잠정적으로 “재현 체계”라 명명하고, 이 체계의 두 가지 기능을 언표 기능과 주체화의 기능으로 구분한다. 이 두 기능에 의해 문학과 현실은 인식론적으로 분리되고, 분리된 채 주체화의 기제로 작용하면서 문학과 현실로 양분된 문학적 통치 이데올로기를 유지 보존한다. 따라서 이 재현 체계의 해체와 지양이 해묵은 채로 반복되는 이항적 논쟁들에 대한 궁극적인 대안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와중에 필자가 참조하는 사례는 히토 슈타이얼의 ‘다큐멘터리즘’과 박솔뫼의 ‘평등과 해방의 감각’이다. 발본적일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기 카프의 내용–형식 논쟁으로까지 소급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그의 문제 제기가 향후 생산적인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조연정의 글 「무심코 그린 얼굴 2—렸던 평소 필자의 글로서는 예외적일 만큼 사적이고 고백적이다. 다소간 용기가 필요했을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글의 형식은 최근 한국 문학장에서 우세를 점하기 시작한 ‘구술적 글쓰기’의 일환으로 읽힌다. 필자에 따르면 최근 에세이 형식의 부상은 “‘나’와 현실 사이의 긴장을 온전히 감당하려는 시인/작가들의 책임감 있는 태도”에 그 연원을 둔다. 조연정의 글은 그 책임감에 대한 비평적 응답임에 틀림없다.

조효원의 글 「자유주의의 자유의지」는 멀리 『사도행전』의 아나니아와 삽피라 일화까지 에둘러가는 흥미진진한 우회로를 거치지만 우회 끝에 도달한 함의가 신랄하다. 자유주의를 “거짓말할 수 있는 모든 개인의 자유의지의 총합”으로 정의하는 이 글의 말미에 그가 타진한 우리 시대의 세태는 한마디로 “가장 뛰어난 아첨꾼이 가장 존경받는 파레시아스트로 등극”하는 상황이다. 글은 “강제로 떠밀려가는 변기의 생”에 대한 김현의 일기를 필사하면서 끝난다. 떠밀려가는 ‘시대착오자’의 마음으로라도 아첨꾼들의 세계를 견뎌보려는 냉소적인 아이러니스트의 심사는 비관적이지만 반박하기 힘들다.

금정연의 「나의 쓰지 않은 글들에 대해 쓰지 않기」는 재기와 유머가 번뜩이는 글이다. 『하이픈』 초기 8호까지 발간에 참여했던 전 편집동인으로서 그는 자신이 『하이픈』에 쓰지 않았으나 쓸 수도 있었을 글들에 관한 메모를 쓰려 하였으나 결국 쓰지 못하게 된 사연에 대해 쓴다. 그러나 쓰지 못하게 된 그의 글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비평, 서평, 음악과 독서에 관한 반짝이는 사유의 파편들을 읽게 된다. 그의 글의 미덕은 항상 ‘아주 지적인 B급 감수성’이다.

장영은의 「김일엽이 이야기하는 김일엽」은 그간 『하이픈』의 여러 기획에서 다루어온 ‘페미니즘’에 대한 응답이자 보완으로 읽힌다. 여성의 자기 서사에 관심이 많은 필자가 김일엽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식민지 시기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해야 했고 또 어떤 선택을 감행해야 했었는지를 전기 형식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필자에 따를 때 김일엽에게는(그리고 당시 대부분의 여성 지식인에게는) 종교와 글쓰기만이 공공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들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만들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결과가 아직도 여기에 있다”는 엘렌 식수의 말을 경고로서 음미하게 만든다.

황호덕의 「지금 문학이 어디 있는가, 스무고개—문학의 위치, ‘전위’ 문학과 ‘후위’ 문학/비평 사이에 『하이픈』」은 (완전히 동의하는가의 여부와 무관하게) 참 고마운 글이다. 『하이픈』 열아홉 권을 통독하고 쓴 글이 틀림없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간 『하이픈』이 걸어온 길, 그러나 스스로는 그릴 수 없었던 그 길의 지도를 그려준 글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의 지도는 문학의 전위성과 문학의 사용성이라는 두 좌표 위에 그려져 있는데, 그에 따르면 『하이픈』이 걸어온 길은 ‘언어의 사용자에서 시민이라는 사용자의 단말기로의 위치 조정’이다. 말하자면 『문학과사회』의 ‘언어적 전위’에서 『하이픈』의 ‘시민적 후위’로의 위치 이동을 발견하는데, 그는 이를 ‘내전적 편집’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절묘한 표현이다. 사실 『문학과사회』는 항상 내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문학잡지의 윤리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내부에 전통과 전위를 동시에 포함한 어떤 문학적 공동체만이 새로운 문학적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알다시피 김현의 믿음이기도 했다.

이번 호 〈지성〉에는 최근 한국에 번역된 두 권의 책에 대한 서동진과 오근창의 긴 리뷰를 싣는다. 자크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가 그 책들이다. 서동진의 글은 랑시에르의 반–재현적이고 반–역사적인 ‘노동자들의 꿈 아카이브’ 작업의 의의를 명료하고도 매력적으로 요약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시쳇말로 서동진의 이 글을 안 읽은 사람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글을 읽고도 『프롤레타리아의 밤』을 읽으려고 시도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글의 말미는 역시나 서동진다운 (좌파적) 균형 감각으로 마무리되는데, 미학화되고 공간화되고 탈역사화된 포스트모던 아카이브가 일종의 트렌드가 된 작금의 현실에서 랑시에르와는 다른 방식의 아카이빙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그의 제언은 경청할 만하다. 오근창의 「비판이론으로서 자기분석—정체성이라는 쟁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겠다. 이 글을 안 읽은 사람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글을 읽고도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읽으려고 시도하지 않을 독자는 없을 듯하다. “자전적 글쓰기나 자기분석이 비판이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길잡이 삼아 랭스의 귀향과 사유의 전개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는 이 글은, 와중에 계급, 젠더, 정체성 같은 첨예한 주제들과 마주치고 대화한다. 또한 부르디외와 알튀세르의 한계를 지적하고 랑시에르를 비판하고 푸코를 새롭게 전유한다. 오근창이 따라가는 랭스의 귀향길은 또한 사유의 모험이기도 하다.

〈리뷰〉에는 김형영 시선집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에 대한 박혜경의 글과, 조해진 소설집 『환한 숨』에 관한 전승민의 글을 비롯하여 김진석, 임지훈, 성현아, 유운성, 황예인의 글을 싣는다. 항상 더 많은 신작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기 힘들다. 그러나 지면 관계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들이는 품에 비해 얻는 게 별로 없는 작업임에도 흔쾌하게 원고를 보내준 일곱 분의 필자에게 각별한 감사를 드린다.

특집을 소개하느라 매호 길게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문학과사회』의 가장 빛나는 코너가 창작란이란 사실에 변함은 없다. 황동규, 김혜순, 이원, 이우성, 장수진, 이다희, 신이인, 윤혜지의 시들을, 그리고 박솔뫼, 천희란, 장류진, 나일선의 단편소설과 구병모의 장편 연재 마지막회를 싣는다.

독자들에게 제2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수상자가 결정되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한다. 시 부문에 차호지 씨(「창문」 외), 소설 부문에 이서아 씨(「악단」), 평론 부문에 이희우 씨(「옷의 딜레마: 경쟁하는 세계들—이수명론」)가 올해의 주인공들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 부문에서 당선작을 낸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자세한 내용은 본권의 〈신인문학상 발표〉 코너를 참조하기 바란다.

편집동인 김형중

 

▶문학과사회 134호 (2021년 여름) 보기

목차

하이픈 – 하이픈
강동호 문학의 정치—재현·잠재성·민주주의
조연정 무심코 그린 얼굴 2—최근 한국 문단에 대한 단상들
조효원 자유주의의 자유의지
금정연 나의 쓰지 않은 글들에 대해 쓰지 않기
장영은 김일엽이 이야기하는 김일엽
황호덕 지금 문학이 어디 있는가, 스무고개
—문학의 위치, ‘전위’ 문학과 ‘후위’ 문학/비평 사이에 『하이픈』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1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