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저편

만년의 양식을 찾아서

김병익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1년 4월 20일 | ISBN 9788932038421

사양 양장 · 46판 128x188mm · 20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시대에 대한 관용, 인간에 대한 이해, 사태에 대한 성찰로 써 내려간
세대 교체와 시대 변화 속에 선 한 지식인의 희망과 용기

한 사회의 지적 자산은 여러 범주로 헤아려볼 수 있겠지만, 그중 가장 든든한 것은 동시대를 앞서 고민하는 참된 지성, 멘토를 갖는 일이 아닐까. 정치학도에서 문화부 기자로, 문학비평가에서 출판 편집인으로 평생을 책과 함께 살며 시대의 운명에 맞서 온 우리 시대의 지성 김병익 선생이 2013년부터 본인의 이름으로 연재해온 칼럼을 『시선의 저편』(2016) 이후 한 번 더 갈음하여 펴냈다. 이번 책 역시 만년의 여가로서의 책 읽기와 세상에 대한 소외를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지만, 계속되는 ‘칼럼 쓰기’에 대해 그 의미부터 새롭게 인식하고 매번 그 본질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노력이 새롭게 읽힌다. 정기적인 매체에 시의성이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 읽는 이들의 공감을 얻을지, 의식의 결기를 다잡고 거기서 빚어질 긴장과 씨름하며 사유들 속을 부지런히 헤맨 기록이기 때문이다. 자신이기에 생각하고 쓸 수 있는 자유로운 대상을 다루는 데 객관적・공론적으로 벼린 말을 찾기 위한 그 부지런한 좇음이 지난 4년여의 시간적 흐름과 사회적 적요(摘要)를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또한 『생각의 저편』에 담긴 글들은 그가 읽은 60여 권의 책과 몇 년간의 사건과 사고 들, 그리고 100년의 가까운 현대사와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고, 대학생으로 맞았던 4‧19와 편집인으로 맞았던 6‧10의 민주주의는 정치권의 상투어나 권력자가 남용할 위선이 아닌 우리 사회의 개인적 삶의 실질이 되어야 함을 잊지 않게 한다. 부질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 같은 만년의 양식 쌓기와 사유의 증진은 살아 있는 한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노력인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선생에게서 지금을 살아내는 그 희망과 용기를 배운다.


교육의 역류,
젊은이와 새 시대에게 배움을 구하는 용기 있는 삶

저자는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해방 후 한국어 교육을 받은 첫 세대로서, 6‧25와 4‧19, 6‧10민주항쟁과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 있기까지 온갖 세월의 수난 속에서도 사회가 성숙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여든을 넘긴 이즈음의 심사는 남다르다. “정녕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성장이 반드시 발전이 아니며 풍부가 풍요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발전과 풍요가 인간 행복의 지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신념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권력은 정의를 버리며 문명이 공정함과 관계없고 진보가 평화를 괴롭힐 수 있다는 것”(p. 150)이 한껏 품었던 기대를 회의로 만드는 것을 목도한 지금 젊은이들이 짊어진 고통이 커 안쓰럽기만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삶을 위해 스마트폰을 익히고 새로운 소식에 귀 기울이며 젊은 세대와 새 시대에게 배움을 구하는 교육의 역류를 경험하면서 그는 “과거의 성취를 내세워 호령하는” “또래들의 ‘세월 모르는’ 완매함”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60년 전의 자부심 높던 세대가 자존심을 앞세워 반성 없이 여전한 주역으로 착각하고 전날의 반공주의와 성장주의에 물려 여전히 그 위세를 휘두르며 21세기 젊은이들을 호령하려 든다면 빈 수레의 헛소리로 그 시끄럼만 크게 울릴 것”(p. 121)이라는 그의 염려는 이제 문명이나 발전이라는 것, 이념이나 체제라는 것의 실체가 인간 삶의 현실에 얼마나 맞춤하게 조응하는지 살피며, 아들 세대 손자 세대에게 손 내밀어 그 새 세대들의 새로운 도전을 돕고 그 후견 역할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새롭게 변모한다. 『생각의 저편』은 여러 세대를 잇고 함께 생동하게 할 아주 젊은 사유의 자유로운 흐름의 기록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세계가 허망하기에 신뢰를 지켜야 한다는 것, 이 시대가 죄스럽기에 존중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사회가 위선이기에 관용이 필요하다는 것, 인간들이 포악한 존재이기에 선의가 피어나야 한다는 것, 삶이 고통스럽기에 유머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 (「고흐의증례」, p. 73)

인류사에서 처음으로 교육의 역류를 경험하면서 과거의 성취를 내세워 호령하는 내 또래들의 ‘세월 모르는’ 완매함이 불편해진다. 60년 전의 자부심 높던 세대가 자존심을 앞세워 반성 없이 여전한 주역으로 착각하고 전날의 반공주의와 성장주의에 물려 여전히 그 위세를 휘두르며 21세기 젊은이들에게 호령하려 든다면 빈 수레의 헛소리로 그 시끄럼만 크게 울릴 것이다. 4・19세대로 자부해오던 나도 이제 아들 세대에게 귀 기울이고 손자 세대에게 손 내밀어 그 새 세대들의 새로운 도전을 돕고 그 후견 역할로 자족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아니, 이제 나부터 물러나 입 다물고, 달라진 세계를 다시 바라봐야 할 것을! (「4.19세대의 시효」, p. 121)

역사의 성찰은 과거의 극복을 위한 고회이고, 현재의 확인을 위한 고심이며, 미래의 선택을 위한 고민이다. 그 역사 인식 행위는 호모 사피엔스로서 가장 정직하고 지적인 행위이다. (「전범국의 자기기만」, p.133)

문명이나 발전이라는 것, 이념이나 체제라는 것의 실제가 인간 삶의 현실에 얼마나 맞춤하게 조응하는지, 혹 적폐청산 작업이 새 적폐를 만드는 건 아닌지, 그 넘치고 모자람의 불화가 만드는 역사의 고비를 우리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역설」, p. 169)

글의 주제가 당시의 현실적 상황에 매이지만 그 접근 방법과 태도는 여유 있고 탄력적이며, 글의 내용은 통개인적이고 공론적이지만 글의 형태와 쓰기는 유연하고 사유와 추리는 필자의 개인적 특성과 자유로움을 보장해줄 것이었다. 제약 속의 자발성, 한계 속의 제멋대로임을 열어주는 ‘칼럼’의 형태는 그래서 노년의 내 바람에 어울려가는 것 같다. (「‘늙은’ 칼럼니스트의 심사」, p. 197)

목차

서문 6

‘촛불 시위’의 정치 시학 11
블랙 리스트 18
‘인간의 얼굴’을 한 거버넌스 25
『무정』 100년 32
‘지성과 반지성’ 재론 39
“몸은 땅에, 영혼은 노을에” 46
민영익의 세계, 뉴턴의 시계관 53
지식사회의 압축 성장 60
고흐의 증례 67
작가들, ‘자유의 바다’를 바라보다 74
쓸모없음의 쓸모 81
금, 긋기와 지우기 88
‘과학의 세기’와 그 불안 95
지나간 세기에의 미련 102
한갓진 글쟁이의 다행 109
4.19세대의 시효 116
역사에의 관용 122
전범국의 자기기만 128
문화문자로서의 한글 134
세대론 수감 140
2020년, 그 설운 설에 ‘다시’ 146
‘아름다운 시절’을 위하여 152
큰눈, 먼눈: 『한겨레』 10000호 158
고르바초프의 역설 164
‘거리두기’ 문화론 170
동심으로의 피정 176
기억으로서의 크리스마스 182
2020, 그 자부심의 세대 188

덧붙임 | ‘늙은’ 칼럼니스트의 심사 194

『생각의 저편』과 함께 읽은 책들 199

작가 소개

김병익 지음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1965~1975)을 했고, 한국기자협회장(1975)을 역임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참여했다. 문학과지성사를 창사(1975)하여 대표로 재직해오다 2000년에 퇴임한 후,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저서로는 『상황과 상상력』 『전망을 위한 성찰』 『열림과 일굼』 『숨은 진실과 문학』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 『기억의 타작』등의 비평집과, 『한국문단사』 『지식인됨의 괴로움』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 등의 산문집, 그리고 『현대 프랑스 지성사』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등의 역서가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상, 팔봉비평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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