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불길이 지나간 뒤에도 풀들이 다시 자란다는 걸 알아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패트릭 화이트의 ‘가장 오스트레일리아적인’ 소설
멀고 막막한 변방의 유형지에서야 삶과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아무것도 되돌아볼 수 없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 문학의 거장 패트릭 화이트의 『전차를 모는 기수들』이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65~66번으로 출간되었다. ‘서사시적이고 심리적인 수법’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세계 문학계에 탁월하게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화이트는 1990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이어가며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정체성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음에도 부모의 고향이자 유럽에서 ‘변방의 유형지’로 이해되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착한 이후, 문학과 더불어 동성애에 대한 부당한 편견, 애버리지니(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의 인권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설적인 발언을 했고 문화적인 후원을 통해 그들의 예술을 오스트레일리아 내외에 소개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모든 소수자, 나아가 세계의 모든 소수자를 대변했다.
18세기 말 영국은 오스트레일리아를 새로운 유배지로 삼아 이주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 폭증하는 죄수들을 유배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에는 금광이 발견되면서 한탕을 노린 인구가 전 세계에서 흘러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20세기 중후반까지 유색인종의 유입을 배척하는 백호주의가 채택되기도 했다. 애버리지니와 유색인종을 향하던 이러한 차별은 안정적인 정착에 실패한 백인들에게도 해당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당시 유럽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변방의 유형지로, 그곳에 정착한 백인들은 식민지의 주민으로만 이해했다.
『전차를 모는 기수들』은 이러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의 삶과 정체성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스스로 이 멀고도 막막한 땅을 선택한 작가는 그 땅에서 아무것도 되돌아볼 수 없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작품에 등장하는 메리 헤어, 앨프 더보, 루스 조이너, 모르데카이 히멜파르프는 모두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사람의 범주 밖으로 내몰린 인물들이다. 물려받은 혈통과 재산이 제아무리 값진들 기괴한 존재로 소외된 광인 메리는 누구도 사람으로 여기지 않던 유대인과 가난뱅이 여인을 친구라 부르며 사랑한다. 위대한 실험의 일환으로 백인 목사 가정에 입양된 앨프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음에도 원주민의 피가 섞인 탓에 고립된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살며 하층민으로 무시당하는 루스는 가장 낮은 이들과 거리낌 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이곳까지 흘러든 유대인 히멜파르프는 부활절을 앞두고 동료들의 ‘장난’에 의해 나무 위로 끌어 올려진다. 이 모든 고난에도 이들이 감당하는 소외는,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기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사람의 범주에서 밀려났을지언정 새로운 범주를 만들거나 외부의 존재를 배척하려 들지도 않는다. 본능적으로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동물처럼 그들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사랑은 곧 모든 종교 위의 종교로 부활한다.
「에스겔서」에 적힌 기수의 비전으로 서두를 여는 이 작품은 비유적이고 계시적인 색채로 가득하지만, ‘보잘것없는’ 존재들이 종교를 넘어서는 사랑을 증명하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로이 정의하는 과정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선사한다.
스스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증명해내야 하는 ‘범주 밖의 사람들’
구원의 전차를 묵묵히 이끄는 이들의 위대한 사랑과 묵직한 울림
가스실 문턱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유대인 히멜파르프는 전쟁이 끝난 후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이주를 허락받는다. 하지만 새로운 이스라엘을 건설할 꿈에 부푼 유대인들 사이에서 홀로 한없이 회의를 느낄 뿐이다. 스스로를 소외시키며 벼랑 끝으로 물러설 때 내몰리듯 떠올린 오스트레일리아. 아무것도 되돌아볼 수 없을 만큼 멀고,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을 만큼 막막한 곳. 그 땅에서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기에 외롭게 배척당하는 이들이 살아간다.
제아무리 내로라하는 가문 출신에 귀한 혈통이라 해도, 제대로 단어조차 조합하지 못하는 광인 메리는 사람이 아니다. 독일인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저명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해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흘러든 유대인 히멜파르프는 사람이 아니다. 백인 목사 가정에서 라틴어 동사 활용과 신의 존재에 대해 교육받았다 한들, 애버리지니의 피가 섞인 앨프는 사람이 아니다. 정직한 노동에 헌신하며 여섯 명의 딸아이를 사랑할 줄 아는 인간으로 키워냈다 한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사는 가난뱅이 루스는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의 소외는 패트릭 화이트에게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러했듯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이들이 스스로 낮은 자리에 머물며 보여주는 사랑은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서로를 보듬는 생존을 위한 몸짓이다. 새와 염소를 사랑하듯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던 메리 헤어는 철저히 외면당하는 유대인과 하층민 여인을 친구로 여기며 존경한다.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던 유대인 모르데카이 히멜파르프는 사랑의 화신 예수가 그러했듯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사람들을 용서하며 희생당한다. 애버리지니의 후손 앨프 더보는 목사의 누이에게서 처음 배운 유화를 통해 그 자신이 목격한 사랑의 극한과 신성을 증언한다. 가장 상처받은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낮은 자리에 머물려 했던 루스 조이너가 머리에 쓴 왕관을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이들이 묵묵히 이끄는 구원의 전차는 서로를 구분하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는 온갖 경계를 뛰어넘으며 범주에서 내몰린 모든 존재를 위로할 뿐이다.
민족, 종교, 성별, 이념, 빈부 등 인간을 범주 밖으로 밀어내는 숱한 조건은 오늘날에도 굳건하다. 그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모두에게 이 작품은 지극히 묵직한 울림이 되어줄 것이다.
■ 책 속으로
그녀는 삽이 아니라 뱀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뱀은 두 토막이 난 몸을 아직도 씰룩거리고 있었다.
“그걸 죽였어!” 헤어 양이 서럽게 따지고 들었다. “완전히 날 믿고 따르게 하지는 못했어도, 가끔 우유를 내주면 마시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옆에 서 있어도 가만히 있어 주었는데. 나 좀 아픈 것 같아.”
헐떡이면서.
“댁이 그 뱀을 그렇게 죽인 거야.”
“죽였다기보다는……” 졸리 부인은 삽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나쁜 것들의 세력을 없앤 거죠.” “나쁜 게 뭔지 누가 결정하는데요?” 헤어 양이 물었다.
적어도 그녀는 상황을 감당할 만큼 기운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뜰에서, 아버지의 입에 담기 어려운 죽음은 물론이거니와 가엾은 염소의 희생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던가.
(1권, 145~46쪽)
“내가 보기에도 형님 내외는 충만합니다. 그렇지만 잠깐일 뿐인걸요. 아무것도, 아아, 영원하지는 않아요. 이 골짜기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의 땅도 마찬가지고요. 대지는 들고일어납니다. 언제든 새로운 돌들을 토해내겠지요. 그건 오늘 밤일 수도 있고 내일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형님같이 선택받은 사람한테는 끊임없이 희생양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 가운데 몇몇은 끌려가기를 기다리는 대신 계속해서 스스로 몸을 바치듯이 말입니다.”
“그러면 너는 어디에서 추구할 생각이지? 뭐랄까, 그런 식의 이상주의를 말이야.” 아리 리프만이 물었다.
이제 꼼짝없이 붙들린 건 히멜파르프 쪽인 듯했다.
“글쎄요.” 그가 말문을 열었다. “예를 들자면……” 그는 머뭇거렸다. “어쩌면……”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될 수도 있겠지요.”
전에는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올린 적이 없었으나 이제 그 땅이 현실로서 그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곳이기 때문이었으리라. (1권, 337~38쪽)
히멜파르프는 생각의 잔해 속에 스스로 파묻힌 사람들을 구해내는 데는 결코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몸서리쳤다. 자기네가 아직 살아 있다고 고집하는 이들이 치아며 시계며 필요할 만한 것들을 찾아 잔해 속으로 돌아가려 뻗대는 동안에도, 그들의 육체는 계속해서 실려나가 담요 아래 덮일 터였다. 그러나 가장 심하게 기만당한 희생자는, 음울한 목소리로 자기네가 이미 식물, 돌, 동물, 그리고 경우에 따라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도록 벌써 지시받았다고 항변하는 그 영혼들이었다. 그렇게 영혼들은 불에 그슬린 머리칼을 빗질하며 울고 있었다. 그들은 종소리니 기도니 주문이니 하는 것들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인생행로에서 그것을 거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불운이었던 숱한 불길의 저주 때문에, 어느덧 지쳐버렸다.
지금도, 그리고 기억 속 구름 위에서도, 오직 그 전차만이 똑바로 묵묵히 말을 몰 뿐이었다. (2권, 39~40쪽)
그 옛날 페그가 자두를 병조림하곤 했듯, 헤어 양은 유대인의 손을 잡아 오직 사랑으로만 보존될 그 모든 이미지와 더불어 그녀의 시든 가슴속에 가두고 싶었다.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자기가 얼마나 요령이 부족한지를 떠올리며, 경험을 통해 오직 분열만이 영구적이자 어쩌면 유일하게 바람직한 상태임을 배웠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헤어 양은 그 지점에서 다시금 거의 넘어질 뻔했다. 언제나 그런 건 아닐지라도 결국 진실은 정적과 빛이었다. 따라서 그녀는 쿵쿵거리며, 장애물만 없다면 허둥지둥 달리며, 모양을 다잡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처럼 젤리 같은 입술을 훑으며, 불길과 그녀 사이를 가로막은 광대한 왕국을 통과하느라 피부가 쓸릴지라도 계속해서 나아갔다. (2권, 240쪽)
■ 차례
1권
1부
2부
3부
4부
2권
5부
6부
7부
옮긴이 해설·가장 멀고 가장 막막한 곳에 선 인간
작가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