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과 관련된 말의 모습을 묻지 않는 곳에서는
오키나와를 사고하는 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프란츠 파농을 통해
폭력을 감지하는 존재로서 오키나와를 읽어내며,
말이 정지하는 폭력적인 상황에서
미래를 향한 말의 가능성을 찾는다.
『폭력의 예감』 『유착의 사상』 등을 통해 ‘오키나와’를 어떻게 사고해야 할지에 관한 지속적인 물음을 던져왔던 일본의 학자 도미야마 이치로의 신간 『시작의 앎』이 출간되었다. 일본 현대사 속에서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내 유일하게 본격적인 지상전이 벌어졌던 곳이자 이후 20년 가까이 미군이 점령했으며 현재는 일본 내 미군기지 시설의 70퍼센트 이상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도미야마는 그간 여러 저서와 연구를 통해 일본 현대사의 여러 국면에서 폭력적 상황에 처했던 오키나와라는 존재를 오키나와학의 선구자인 이하 후유를 중심으로 읽어냈다.
『시작의 앎』에서 도미야마는 프란츠 파농의 글을 통해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과 그와 함께 말이 정지하는 상황에 관해 논한다. 이 책에서는 민족 해방 투쟁 활동가나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담지자로서의 파농을 넘어서 정신과 의사로서의 파농과 그가 수행한 임상의 의미에 주목한다. 어떻게 해도 말이 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폭력적 상황에 놓인 존재들은 어떻게 자신의 말을 찾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파농의 글을 깊이 독해함으로써 논하며 이처럼 일본인과는 다른 존재로 변별되고 배제되어온 오키나와를 그와 함께 사고한다. 도미야마는 파농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오키나와를 사고한다는 것과도 깊게 연결되어있는 일이며 나아가 읽고 쓴다는 것, 연구라는 행위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되어있는 일임을 강조한다.
파농과 임상, 그리고 오키나와
“나는 종종 아랍인으로 오인되어 대낮에 경관의 신문을 받았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정신과 의사로 부임한 파농은 종종 아랍인으로 “오인되어” 경관의 “신문”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아랍인이 아님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오인된다는 경험은 말에 앞서 벌어지며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 이번에는 그 증명이 통했다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어떤 식으로 분류될지 모른다는 절망을 동반한다. 즉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폭력적 상황과 늘 함께하는 것이다.
도미야마는 파농이 아랍인으로 오인되는 상황에서, 아랍인을 ○○로 두고 ○○ 안에 들어가는 존재들을 떠올려보기를 제안한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쉽게 ○○인종이면 차별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종이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애초에 ○○에 정확한 기준은 없고 ○○에 해당하는 이름들이 확장되어갈 뿐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오인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 중인 폭력에 미리 방어태세를 취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도미야마는 이러한 “방어태세를 취하는 것은 지각이자 현실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음을 아는 일”이며 이 “지각은 말을 낳을 것이며 말은 신문공간에서 타자와의 만남을 낳는” 것이라 말한다. 이처럼 말이 말이 아닌 것으로 배제된 영역에서 나타나는 타자와의 관계를 떠맡고 나와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이야기하는 ‘앎’인 것이다.
말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가
“오키나와어로 담화하는 자는 간첩으로 간주하고 처형한다”(오키나와전투 당시 제32군의 군명). “대지진 때 표준어를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조선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자네들도 오인되어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어를 교정하려던 교사).
오키나와인의 발화는 앞서 파농이 경험한 ‘오인되는’ 것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오키나와인은 파농의 경우와 같이 자신이 ○○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으나 이러한 상황 역시 공포와 절망이 함께한다. 이처럼 “말을 하고 있는데 말하고 있다고 간주되지 않는” 폭력적 상황에 처한 존재로 오키나와가 있으며, 도미야마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파농을 통해 오키나와를 읽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오키나와인에게 이러한 상황은 어떤 식으로 지속되고 있는 것인가.
도미야마는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전투를 계엄상태로 정의한다. 이 계엄상태는 전투 당시만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키나와가 끊임없이 주권의 가장자리 혹은 예외적 위치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며, 이러한 주권의 예외화라는 영역과 관련된 역사성을 나타내는 말임을 오키나와의 현대사를 짚어나가며 밝힌다.
“오키나와는 식민지인가, 아니면 국내의 한 지역인가? 오키나와 근대를 생각할 때는 늘 이러한 식민지와 국내의 한 현이라는 위치 사이에서 흔들리는 오키나와라는 장소가 있다. 오인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1945년 이후의 전후 오키나와를 생각할 경우, 1972년까지 이어지는 미국의 오키나와 통치가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 미국의 오키나와 통치의 법적 특징은 주권은 일본에 있지만 통치는 미국이 한다는 점이었다.” (109쪽)
“식민주의적인 점령과 계엄상태가 맞닿게 되는 통치가 바로 전후 세계에 지속되는 폭력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점이다. 그리고 실로 이러한 영역과 관련된 역사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오키나와 근현대가 안고 있는 계엄상태라는 물음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전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110쪽)
이러한 오키나와의 역사는 개인들에게 어떠한 상흔을 남기는지 도미야마는 1960년대 후반 진행된 오키나와전투 체험에 관한 구술조사 작업과 1966년 오키나와에서는 처음으로 진행된 ‘정신위생실태조사’를 통해 살펴본다. 도미야마는 오키나와전투가 남긴 상흔이 감지되는 상황에서 말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즉 “오키나와전투와 관련된 어떠한 흔적이 존재한다면, 그 흔적은 어떠한 말로 이야기되어야 할까?”라는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는 것이다. 도미야마는 그 물음에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1970년 오키나와 차별에 항의하며 도쿄타워에서 인질을 잡고 농성한 도미무라 준이치와 같은 이들의 구체적인 목소리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도미야마는 이 책을 통해 말이 말이 아닌 것으로 배제된 영역에서 나타나는 타자와의 관계를 떠맡고 나와 관계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 이야기하는 ‘앎’이라 말한다. 도미야마는 “앎이 개인을 전제로 한 소유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집단적인 말”이라면 이러한 앎이 연결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며, “프란츠 파농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임상 역시 바로 그 같은 장”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도미야마가 매주 진행하고 있는 ‘화요회’라는 논의 공간과 그가 한국에서 만났던 이들과의 논의 역시 그러한 ‘장’이 된다.
『시작의 앎』에서 도미야마는 파농의 글을 비롯한 다양한 글과 사례를 통해 폭력적 상황에 놓인 존재들은 어떻게 자신의 말을 찾아갈 수 있는지 논한다. 도미야마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5·18을 비롯한 한국 현대사의 여러 국면과도 겹쳐 읽을 수 있으며, 소수자를 ○○로 명명하며 배제하는 현재 사회문제를 비판적으로 읽도록 해준다.
책 속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현실에서 있을 곳을 찾을 수 없는 존재를 똑바로 바라보며, 이를 매개로 미래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이다. 파농의 말은 “‘존재’와 연대”하는 곳에 있다. 즉 자신의 현실에 밀착한 말인 동시에 그렇게 밀착함으로써 확인되는 갈 곳 없는 존재를 매개로 미래를 향해 현실을 열어나가는 말이기도 하다. 강조해야 할 것은 현실과의 밀착 속에서 말이 정지하고 미래를 향해 움직여나가는 곳에 시작이 있다는 점이다. 파농을 읽을 때에는 바로 이 정지와 시작의 정류에서 확보된 말의 모습이, 바꿔 말하면 신문공간 속에서 말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하다. (28쪽)
이 책에서는 이러한 나 자신의 안다는 행위를 말로서 제시하려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속수무책인 지금의 세계에서 시작해야 할 앎에 대해 전망해보고 싶다. 파농을 오키나와 연구에 참조하는 것이 아니다. 파농이 남긴 말은 오키나와를 사고한다는 행위 자체와 관련되고, 연구라는 행위를 형성하는 말의 모습과도 관련된다. 또 거꾸로 말하면, 앎과 관련된 말의 모습을 묻지 않는 곳에 오키나와를 사고하는 행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오키나와가 연구 대상으로 미리 마련되어 있다는 전제 자체가 파농을 배반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파농을 읽는다는 것은 포스트콜로니얼 이론의 고전을 읽는 일도 아니거니와 알제리 민족 해방 투쟁의 역사를 공부하는 일도 아니다. 그보다는 나 자신의 장소를 형성해온 말에 대해 묻는 일이었으며, 말하자면 나 자신의 인지를 다시 짜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키나와에 관한 말도 다시 읽을 수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사고할 수 있었다. (36쪽)
오키나와전투 트라우마의 치료와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아리쓰카 료지蟻塚亮二에 따르면, PTSD 증상에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체험자는 말할 수 없다기보다는 “정해진 노선을 달리는 열차처럼” 명확히 말한다고 한다. 즉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것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두르고 있으며, 명확한 말은 그와 동시에 말할 수 없는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증상이다.(83쪽)
걸프전쟁 때,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기지 근처에 사는 마쓰다 마리코松田真理子 씨는 “기지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마쓰다 씨가 감지한 기지는 울타리 내부에 구획되어 갇혀있지 않다. 또 기지 내 군사력의 움직임은 중동으로 향하는 일직선 벡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물처럼 울타리를 빠져나와 마쓰다 씨의 일상을 침식한다. (121쪽)
1975년에 오키나와 해양박람회가 개최되어 당시 황태자였던 아키히토가 오키나와에 발을 디뎠다. 그때 경찰은 108명의 ‘정신 장애가 의심되는 자’를 목록으로 만들어 강제 입원을 포함한 예방 구금 조치를 취할 것을 현 예방과에 제의했다. 또 지역 공동체는 이 목록 작성에 관여했다. 경찰과 연동한 지역 공동체의 목록 작성은 실태 조사 당시의 조사 활동과도 겹쳐지는 문제다. 공동체는 사전배제와 문답무용의 폭력 속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157쪽)
‘광기’를 윤리적인 올바름이나 이해하기 쉬운 주장으로 환원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운동의 확대를 단지 명확한 주장에 찬동하는 동아리로 축소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또 올바름을 주장하는 개인을 낭만화하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174쪽)
■ 차례
한국어판 서문
서장 신문공간
1. 가계부
2. 신문공간
3. 파농을 읽다
4. 대항하기와 거슬러 올라가기
5. 오키나와를 생각한다는 것
1부 시작
1장 예감하다
1. 오인된다는 것
2. “말씨가 좀 다른데”
3. ‘개성’
4. 사전배제
5. 예감하다
6. 시작: 인간이기
2장 유착하다: 휘말리다/떠맡다
1. 방어태세의 어려움
2. 휘말리다: 이미 남의 일이 아니다
3. 떠맡는 것의 어려움: 사후성이라는 문제
4. 다른 장소로: 다초점적 확장주의
5. 바뀔 가능성이 있는 현재를 위해
2부 오키나와에서
3장 계엄상태로서의 오키나와
1. 오키나와전투와 신문공간
2. 방첩
3. 신문에 대한 기억
4. 전쟁은 계속된다
5. 냉전
6. ‘그림자’로서의 삶
7. 불완전한 죽음
8. 뛰어넘다
4장 만나는 장
1. 오키나와전투 ‘후’
2. 『오키나와 노트』
3. 공동체
4. 우리를 이야기할 장소
5장 단독 결기, 무수한 ‘S’에게
1. 분노의 풍경
2.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요”
3. ‘광기’
4. 취조실
5. 정신감정
6. 무수한 ‘S’에게
종장 확보하다 혹은 화요회라는 시도
1. 임상의 앎
2. 황야에서 만나다
3. 화요회
4. 태도
5. 읽다
6. 묻다
7. 논의하다
8. 논의 중독
9. 프랑수아
보론 1 접속하라! 연구기계: 연구 액티비즘을 위해
1. 연구기계
2. 프레카리아트와 대학
3. ‘수유+너머’로부터
4. 1970년대
5. 망상-모의
보론 2 대학의 위기?
1.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혹은 위기에 대해
3. 대학 해체? 혹은 ‘선생님’이 할 일
4. 대학의 가능성
보론 3 추한 얼굴
후기
주
옮긴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