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독백과 운문의 귀향

안치운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9월 19일 | ISBN 9788932037660

사양 변형판 155x245 · 314쪽 | 가격 20,000원

책소개

“깊은 세상은 암담하다. 언제나.
콜테스처럼 연극은 그 암담한 혼돈을 무대 위에 반영한다.”

현대 연극의 전령, 현대 연극의 신화
이 시대의 마지막 천재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를 읽다!

“그는 지하세계 신화의 창조자이며,
패배자들과 외로운 늑대들의 영웅,
완전히 새로운 희곡 쓰기의 개척자이다.”
_『더 타임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 마흔네 살의 나이로 요절한 프랑스의 배우이자 희곡작가. 『로베르토 주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등의 작품으로 제2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리며,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표하는 현대 연극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콜테스’에 대한, 그리고 콜테스 ‘작품’에 대한 본격 연구서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독백과 운문의 귀향』의 개정증보판이 출간되었다. 저명한 연극평론가 안치운이 9년 만에 완성해낸 이번 판본에는 콜테스의 대표작 「사막으로의 귀환」 연구가 새롭게 추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콜테스 사망 후 「사막으로의 귀환」 공연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 사건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더 흥미롭고 풍성해진 ‘콜테스-연보’가 실렸다.
콜테스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47개국에서 공연되었으며,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는 그를 가리켜 “지하세계 신화의 창조자이며, 패배자들과 외로운 늑대들의 영웅, 완전히 새로운 희곡 쓰기의 개척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그가 쓴 『로베르토 주코』 『서쪽 부두』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등이 번역·출간되었고, 한국 연극계의 스타 연출가인 기국서, 박근형 등에 의해 무대에서 공연된 바 있다. 이렇듯 현대 연극의 전령이자 이 시대 마지막 천재로 일컬어지는 콜테스지만, 아직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낯선 이름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저명한 연극평론가인 안치운이 깊은 안목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공들여 써내려간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이 콜테스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 더 나아가 현대 연극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 연극, 독백과 운문으로 귀향하다!

이 책 『베르나르-마리 콜테스』는 오랜 기간 동안 콜테스 희곡에 묻혀 지냈던 저자가 학자로서의 성실함과 비평가로서의 날카로운 안목을 바탕으로 완성한 결과물이다. 콜테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여섯 작품에 관한 비평을 묶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무엇보다 치밀한 분석과 더불어, 각각의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이 책은 콜테스의 유작이자 현대 프랑스 희곡에서 새로운 글쓰기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은 『로베르토 주코』 연구에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여러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독백에 가까운 말을 현재적 의식의 활동인 기억 행위로 분석한 『서쪽 부두』와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콜테스의 대표작이자 두 인물 사이에 벌어진 하나의 이야기를 18세기 방식의 대화로 풀어나가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연구, 콜테스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연구, 그리고 고향에서 추방당했던 여성이 15년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사막으로의 귀환』으로 마무리된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 현대 희곡의 특징은 “주제의 다양성과 새로움 그리고 시적인 독백의 울림, 즉 소리의 복합성이다. 애매한 말들이 상징의 숲을 만들고 독자들과 관객들을 친근한 시선으로 이끈다.” 이렇듯 프랑스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가 콜테스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고전 희곡의 특성인 ‘운문’이 중심을 이루고, 근대 연극의 특성인 대중연극적 요소 그리고 현대 희곡이 지닌 산문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의 작품은 문학적 글쓰기를 통해 희곡에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작가는 작가와 인물 사이의 경계가 무화된 독창적인 글쓰기를 펼친다. 또한 프랑스 17~18세기 문학의 운문적 전통을 대사 속에 삽입하고 있어 무수한 해석이 가능하며, 이로 인해 무대 위에서 공연하기가 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독백과 운문으로 가득 찬 콜테스의 희곡들은 “매력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시적인 언어로 ‘한순간도 고통과 비참에서 해방되지 못한’ 인물과 ‘너무 썩었고, 그런 방법으로는 오래갈 수 없는’ 세상과의 적대적 관계를 유려하고도 사실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로베르토 주코』에 나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친 살해 문제, 비극적 주인공의 등장 등은 현대 연극이지만 고전 비극의 근원과도 맞닿아 있”고, 그의 다른 작품인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는 딜러와 손님이 중심을 이루는데, 이는 “디디와 고고가 등장하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일맥상통”한다. 이들 작품에 나오는 남성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아버지로부터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버림받은 고아로 보이며, 독백으로 이루어진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처음 만난 상대방을 ‘친구’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사막으로의 귀환』에서는 피를 나눈 남매가 서로 원수지간이다.
콜테스 작품 속에서는 친구, 동지, 형제들은 서로 소통이 불가능한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관계를 포용하기 위하여 인물들은 쉬지 않고 말할 뿐이다. 다시 말해 등장인물이 말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인물들을 일으켜 세운다. 또한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 기제를 지니지도,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름조차 없는 인물들도 많다. ‘딜러’와 ‘손님’처럼 인물들은 고유한 이름을 갖는 대신 기능으로 축소되거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무화된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오로지 ‘기억’과 ‘욕망’뿐이다. 과거의 기억은 어제의 삶을 입증하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이고, 악착같이 오늘의 삶을 추동한다. 그 안에서 욕망은 또 다른 욕망과 만나고, 그 욕망들이 서로 충돌하고, 욕망이 이어진다. 콜테스 작품 속에서 기억과 욕망은 시적 메타포가 가득한 운문으로 씌어 있다. 다시 말해 그의 희곡을 읽는 일은 은유와 상징이 가득 찬 시적인 대사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희곡을 거의 독백에 가까운 말로, 그것도 운문으로 쓴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의 희곡들은 세상 곳곳에서 읽히고 있고, 오늘날 현대 연극을 대표할 만큼 널리 공연된다. 콜테스의 희곡이 대표하듯 현대 연극은 이미지와 볼거리에서 말과 글로 되돌아오고 있다. 내레이션을 중시하면서 오로지 말하기 위한 연극이 다가서고 있다. 실제 세상과 연극 사이에 있던 환영이 사라지고, 글쓰기와 인물이 지니는 전통적인 맥락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배우는 더 이상 상황을 구축하지도, 인물을 연기하지도 않는다. 배우는 텍스트를 읽는, 텍스트를 여는 존재가 된다. 독자나 관객 혹은 작가의 분신이 되며, 이로써 무대와 텍스트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운문의 독백이다. 바로 콜테스와 그의 작품이 보여주듯.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es(1948~1989)

1948년 4월 9일 프랑스 북동부의 메츠에서 태어났다. 19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장 보티에가 각색하고 조르주 라벨리가 연출한 『메디아』(세네카 작)의 마리아 카자레스로 인해 연극과 첫 교감을 경험한다. 1970년 T.N.S.에 입학하여 1971년까지 이곳에 머문다. 그동안 고리키의 『유년기』를 희곡으로 만들어 16개의 타블로로 된 공연인 『씁쓸함』을 연출한다. 이 작품은 그가 만든 ‘부두극단’에 의해 공연된다. 1973년부터 러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미국 등지를 여행하기 시작한다. 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은 이후 여러 작품의 모티브가 된다. 1977년 작가로서 진정한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을 본인의 연출로 아비뇽 오프에서 발표해 “야만적 서정주의”라는 평을 받는다. 1979년 과테말라의 아티틀란 호숫가의 작은 마을에 머물며 그곳에서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을 쓴다. 이 작품을 통해 연출가 파트리스 셰로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작가와 연출가’로서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은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1983), 『서쪽 부두』(1986),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1987), 『사막으로의 귀환』(1988)의 공연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었고, 모든 공연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콜테스의 명성을 주류 연극계는 물론 해외로까지 알리는 계기가 된다. 1989년 4월 15일 파리의 라에네크 병원에서 에이즈로 사망한다. 1990년 그의 유작 『로베르토 주코』가 출간된. 그의 다른 작품으로 희곡 『샐린저』 『타바타바』 등이, 소설 『아주 멀리 도시 속으로 말을 타고 달아나기』 『프롤로그』 등이 있으며, 최근 그가 쓴 서간문을 모은 『편지들』(2009)이 출간되기도 했다.


■ 책 속으로

『로베르토 주코』의 특징은 시적인 운문의 고백체가 많다는 것이다. 15장으로 구성된 이 희곡의 각 장은 시적인 운문으로 가득 찬 독백에 가깝다. 조각난 세계, 뒤죽박죽된 세계, 고독, 절망, 불확실성, “사건들과 이성적 질서 사이의 균열, 물질처럼 투명한 정신 상호간의 불투명성, 서로에 대해 터무니없는 것들로 취급되는 논리 체계”와 같은 현대성의 주제들이 준독백을 통한 문학적 글쓰기와 잘 어우러져 있는 것이 콜테스 희곡의 매력이다. 운문에 의한 독백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한 지고한 충동이며 유혹과 같고,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을 위한 수단이다. 앎의 대상이 오로지 실제적인 것으로 구체화되는 오늘날에 시적인 대사는 예지나 온전한 생존의 요구와 같은 모습을 지닌다. 콜테스의 인문적 텍스트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은 존재 안에 머무르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각 장에서 타인과 소통할 수 없는 고독하고 소외된 인물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동시에 작가 콜테스를 말하고 있다. 시적인 대사와 함께 침묵이 공명하고 공허가 충만하다. 그 속에서 짓눌린 듯한 기묘한 상태들이 원천적으로 발견된다. 또한 그의 작품들에는 말이 지닌 의미와 소리가 잘 어우러져 있다. 무기력, 피로, 존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가족, 인물들의 황폐한 성격이 말들의 의미와 소리로 드러난다. 또한 가족과 같이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처럼, 역전시킬 수 없는 관계망의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근원적인 사회성과의 불화와 동시에 화해를 암시한다. (「현대 연극과 운문의 독백―『로베르토 주코』 연구)

콜테스의 희곡은 공연으로 남겨놓은 암담한 세상의 풍경이다. 콜테스는 작품을 통하여 비겁한 이들만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전언을 남긴다. 콜테스도 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다시 라틴아메리카로 돌고 돌아 삶을 마감했다. 고작해야 몇 해 전의 일이다. 콜테스 희곡에는 생을 비우는 징후가 몰려든다. 희곡 속 황폐한 세상에서 삶은 지리멸렬하게 계속된다. 콜테스가 삶의 끝자락에서 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희곡 『로베르토 주코』에서 주인공 주코는 눈을 맞으며 호수를 가로지르는 코뿔소 떼들이 있는 아프리카와 같이 유물로 남은 고대 도시로 가고 싶어 한다. 『서쪽 부두』에 등장하는 세실과 로돌프 가족도 남미 한 나라에서 풍요로움을 꿈꾸며 이곳으로 이민 온 이들, 고향을 떠난 이들이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아픔을 의미하는 노스탤지어를 지닌 인물들이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극복 불가능한 상실 앞에서 떨고 있는 이들이다. 존재보다는 부재의 고통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들은 불행한 이곳에서 행복했던 고향의 삶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고향에서의 삶은 회복 불가능한 삶이다. 되찾을 수 없는 삶은 아픈 기억을 낳고, 그것은 다시 말로서 환원된다. 『서쪽 부두』에 나오는 독백에 가까운 말들은 환원될 수 없는 과거의 삶을 인물들이 애써서 기억하려는 의지의 산물이다. 베르나르-마리 콜테스의 글쓰기는 기억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을 달리 말한다면 텅 빈, 황량한 기억의 현상학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의 글쓰기, 기억의 현상학―『서쪽 부두』 연구)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에 등장하는 타인들과 소통할 수 없는 고독하고 소외된 인물들은 자기 자신의 기억을 말하고 동시에 작가 콜테스의 기억을 말하고 있다. 시적인 대사와 지문 속에는 침묵이 공명하고 공허가 충만하다. 그 속에서 기묘하게 짓눌린 기억된 시간이 원천적으로 발견된다. 콜테스의 작품들은 말이 지닌 의미와 소리가 잘 어울린다. 무기력, 피로, 존재를 끊임없이 추동하는 가족에 대한 기억, 인물들의 황폐한 성격들이 말들의 의미와 소리, 빛, 냄새로 드러난다. 이 점이 콜테스의 희곡이 지닌 현대 미학적 독창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검둥이와 개들의 싸움』뿐만 아니라 다른 희곡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몸과 언어는 기억의 질료적 구조로서 작용한다. 구체적으로 장소, 소리, 냄새, 빛에 관한 감각과 그에 관한 언어들은 콜테스 희곡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발휘한다. (「몸과 기억의 언어―『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연구)

목차

■ 차례

증보판에 부치는 글
들어가며

현대 연극과 운문의 독백―『로베르토 주코』 연구
기억의 글쓰기, 기억의 현상학―『서쪽 부두』 연구
몸과 기억의 언어―『검둥이와 개들의 싸움』 연구
욕망과 언어의 수사학―『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연구
현대 연극에 나타난 고백의 언어―『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연구
기억과 공간―『사막으로의 귀환』 연구
베르나르-마리 콜테스 연보(1948~1989)

참고문헌

작가 소개

안치운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 누벨 소르본 대학에서 연극 교육과 제도론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호서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연극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여석기 연극평론가상, PAF 비평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공연 예술과 실제 비평』 『연극 감상법』 『추송웅 연구』 『연극 제도와 연극 읽기』 『한국 연극의 지형학』 『연극, 반연극, 비연극』 『연극과 기억—우리 시대의 공연예술 읽기』 『옛길』 『그리움으로 걷는 옛길』 『시냇물에 책이 있다』 『길과 집과 사람 사이』 등이, 옮긴 책으로 유제니오 바르바의 『연극인류학—종이로 만든 배』(공역), 미셸 비나베르의 『한국 사람들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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