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시선으로 새로운 독해의 가능성을 열다
프랑스 연구자 드크레센조의 이승우 소설 읽기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창설하고 주임교수를 역임했던 장클로드 드크레센조의 이승우 소설 연구서 『다나이데스의 물통』(문학과지성사, 2020)이 출간되었다. 아시아학연구소IRASIA의 일원이자 한국 문학 공동번역가인 저자는 현재 프랑스에 한국 문학 웹진 <글마당>과 한국 문학 출판사 드크레센조를 창립하여 한국 현대 작품들을 알리는 데 기여하는 연구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프랑스에 소개된 이승우의 장편소설 6권을 읽고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도스토옙스키, 카프카 등 유럽 문학과의 풍부한 관계성을 짚어낸다. 작품 속 상징체계와 이미지를 면밀히 분석하고자 사르트르, 바우만, 스피노자, 데카르트 등의 철학 이론을 경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책머리에」에서 “이승우의 작품들이 한 가지 고랑을 파고드는 집요함을 보여”준다는 사실에서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는 말처럼 이승우의 소설들이 긴밀히 맺고 있는 연관 관계와 총체성을 탐구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작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승우의 글쓰기가 지닌 충동과 매력을 프랑스 연구자의 이채로운 시선으로 조망한다.
이승우의 소설은 자기에 대한, 자아 중심적 글쓰기이지만 그렇다고 자전소설이라 보기는 어렵다. 감각, 욕망, 결핍된 것에 대해 캐묻고 그 실효성을 확인하는 글쓰기이며, 자아의 물질성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면성의 글쓰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의 고유성은 우리가 소유한 감각의 보편적 특성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데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책머리에」
1장에서는 이승우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아버지의 부재, 닫힌 공간으로서의 방, 내면적 글쓰기와 성경 등이 작품 안에서 작동되는 방식을 세밀하게 검토한다. 2장에서는 이승우 소설 중 프랑스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된 『생의 이면』(문이당, 2013)을 중점으로 다룬다. 작품에 드러나 있는 자전적 글쓰기의 징후를 포착하고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 지닌 매혹적인 힘을 고찰한다. 3장에서는 『식물들의 사생활』(문학동네, 2000) 속 가족 관계를 다룬다.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나의 엇갈린 애정을 식물적 교감과 유비하고 사회학적 관점으로도 해석한다. 4장에서는 『그곳이 어디든』(현대문학, 2007)에 나타난 유배와 자기 탈출의 서사를 다룬다. 생의 허무와 회의에 대한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에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명제의 의미를 찾아낸다. 5장에서는 『지상의 노래』(민음사, 2012)에 등장하는 필연적 실패의 인물을 다룬다. 존재하기 위해 기억하고 살아남기 위해 잊어야만 하는 비참한 삶에서 파스칼 키냐르, 밀란 쿤데라 등의 영향을 발견한다. 6장에서는 『한낮의 시선』(이룸, 2009)에 나타난 불확실함의 비극을 다룬다. 아버지를 찾아 나선 인물의 감정과 행로를 좇으며 부재로서만 존재하는 이를 향한 오래된 욕망을 관찰한다. 7장에서는 『욕조가 놓인 방』(작가정신, 2006)에 묘사되는 사랑의 불가능성을 다룬다. 사랑을 마트료시카에 비유하며 그 끝과 시작의 공허함을 다양한 신화의 모티프와 견주어본다.
이처럼 『다나이데스의 물통』은 프랑스 연구자의 관점으로 이승우 소설들을 폭넓고 세심하게 독해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문학 독자들에게는 사뭇 낯설고 독특한 사유와 감상을 펼쳐나간다. 그러므로 『다나이데스의 물통』을 읽는다는 것은 익숙한 문법에서 벗어나 이승우 소설의 새로운 일면을 발견하는 일이자, 한국 문학 읽기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장클로드 드크레센조는 이승우의 소설 세계를 아우르는 것, 서로 다른 작품들을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것, 그러나 작품 속에 술래잡기하듯 은폐된 것들을 찾아 마치 산책하듯, 탐색하듯 더듬어나간다. 이것들의 의미를 찾아 유럽 신화와 성경, 니체, 키르케고르, 쇼펜하우어, 바슐라르 등 유럽 철학자들의 상념 속으로 스스로 파고들며 독자들을 멀고 아득한 세상으로 유인한다.
―「옮긴이의 말」
■ 책 속으로
균열이 가리키는 것들에 주목하면서 작가는 글을 쓴다. 균열은 열린 상태. 그것은 거기에 어떤 이름이나 단어를 올리는 것조차 헛된 일에 지나지 않는 원초적 상처이다. 열린 상태는 다나이데스의 물통이라 부르는, 영원히 채워질 수 없었던 곳에 머문다.
―「2. 저항과 치유」, p. 61
사랑의 의미는 실로 다양하다. 형만 편애하며 자기를 내쳤다고 생각하는 기현은 부모의 사랑을 갈망하지만, 서로 얼싸안은 두 그루의 나무 형상은 그가 갈망하는 것이 어쩌면 형의 사랑은 아닌지 반문하게 만든다. 그것은 어쩌면 때로 증오하고 때로 갈망하기도 하는 사랑의 기나긴 추격전이다.
―「3. 그리고 물가엔 한 그루 나무가」, p. 81
이승우의 작품 속 인물들은 추방된 자 또는 평범하지 않은 존재라는 감정으로 고통받는데, 그것의 근원은 고아라는 처지에서 찾을 수 있다. 고아라는 불변의 사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전통적인 가정이 지녀온 무게가 여전히 깊이 각인된 나라 한국에서 남과는 좀 ‘다른’ 존재로 살아간다는 사실은 두 겹의 형벌처럼 드리워진다.
―「6. 흔들림에 대한 분석」, p. 155
■ 차례
책머리에
1. 감추어진 것 속을 거닐다
2. 저항과 치유
—『생의 이면』에 대하여
3. 그리고 물가엔 한 그루 나무가
—『식물들의 사생활』에 대하여
4. 어디로 가야 하나
—『그곳이 어디든』에 대하여
5. 고행의 여행
—『지상의 노래』에 대하여
6. 흔들림에 대한 분석
—『한낮의 시선』에 대하여
7. 우리는 사랑한다, 사랑했던 기억을
—『욕조가 놓인 방』에 대하여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