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시간

이은용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8월 28일 | ISBN 9788932037608

사양 · 181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지나간 일을 돌아보지 말고 네가 살아갈 날을 그려봐.’

오늘의 삶과 내일의 시간,
‘자기 앞의 생’을 축복해주는 운명의 시간

완전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한 줄기 빛
‘난 네 덕분에 용기를 낸 거야.’

깊은 절망을 경험하고 앞으로의 기대나 꿈도 희미해진 상황에서 삶의 끝에 서게 된다면, 그러나 다시 삶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일은 바게트』와 『그 여름의 크리스마스』 등을 통해 청소년기의 예민한 감각과 혼란한 시간을 아름답게 그려온 이은용 작가의 새 장편소설 『우리가 만난 시간』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이던 ‘율’은 늦은 시간, 가로등도 없는 외진 장소에서 자전거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길고 깊은 꿈속에서 율은 환한 미소로 자신을 반기며 손을 내밀어준 ‘세라’에게 마음을 열고 그동안 꼭꼭 눌러놓기만 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3일 만에 깨어난 율은 사고로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당황한다. 엄마는 다시 율의 생활을 점검하고 설계하며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재촉한다. 상담 선생님도 차근차근 율의 기억을 끌어내려 열심히 율을 다독인다. 하지만 율은 지워진 기억이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마음, 진실과 맞닥뜨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그러던 중에 꿈속에서 본 그 아이, 세라와 닮은 ‘아라’를 만나게 된다.
『우리가 만난 시간』은 10대 소년 율이 사고로 잊힌 기억을 추적하는 심리극이자 꿈과 현실이 얽혀들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판타지이며, 지나온 삶이 힘겹고 절망스럽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되찾아가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율은 여느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어른들이 정해준 틀 안에 갇혀 “내일의 안락한 삶을 위해 오늘 하루를 기꺼이 바치는 인생”을 살아왔다.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쫓기듯이 음식을 욱여넣고 학원으로 달려가는 율과 친구들에게는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을 취하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헤아릴 시간도.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못 본 척 지나가고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앞만 보고 사느라 일상의 삶에서 진짜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율은 죽음의 시간을 체험하게 되면서 이제는 어떤 가능성도, 기회도 없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삶의 영역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던 율은 삶에 미련을 두고 끝나버린 시간에 아쉬워하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삶의 시간이 남은 율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응원하며 ‘자기 앞의 생’을 찾아갈 힘을 북돋는다. 특히 세라는 따뜻한 눈길과 환한 미소로 진심을 다해 율의 말에 귀 기울이며 율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도록, 용기를 내어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독여준다. 꿈인 줄로만 알았던 세라와의 만남을 복기하는 사이, 그리고 세라의 동생인 아라와의 만남을 통해 율은 서서히 자신이 겪은 사고의 실체와 거기에 얽힌 친구들과의 관계, 부모님과의 일들을 모두 떠올리게 된다.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었으며 그것을 알면서도 얼마나 무기력하게 스스로를 방기했는지도. 주어진 삶을 다 살고도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돌던 세라는 율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네가 곁에 있어서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네 덕분에 나를 생각했어. 내가 지나온 날들과 이제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무얼 해야 하는지.’ 그 말은 율이 하려던 말과 같았다.

먼 길을 떠나는 세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내게 와줘서 고맙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라는 계속 보듬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율이 제자리로 돌아와서 다행이다. _「작가의 말」

율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 완전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서 지나온 날과 가야 할 곳, 그리고 해야 할 일들을 떠올리게 해준 세라 덕분에 율은 앞으로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앞에 남겨진 생을 위해.


■ 줄거리

고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간 율은 사고를 당해 3일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다. 친구 은찬의 집에 모여 여럿이 함께 놀고 있었는데 자신이 왜 비까지 내리는 늦은 밤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집으로 오는 익숙한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서 사고를 당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잠들어 있는 동안 율은 길고 깊은 꿈을 꾸었다고 믿었다. 아라가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황세라.” 율은 자신이 꿈이라 믿었던 세계에서 만난 친구, 그 이전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그 아이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쌍꺼풀이 없는 눈과 뾰족한 턱을 가진, 키는 나보다 한 뼘 정도 작으면서 예리한 눈빛을 한 그 아이는 세라가 아니었다.
“우리 언니는 죽었어. 1년 전에.” 믿을 수 없던 율은 아라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선명하게 기억이 떠오르는 세상과 현실의 지워진 기억 사이에 비밀처럼 숨겨진 사건을 밝히기 위해서. 아라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율을 밀어내지 못한다. 너무나 그리워 놓아주지 못한 언니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서. 그렇게 둘은 사고 당일의 발자취와 율이 경험한 특별한 세상 이야기를 따라 조금씩 비밀의 실체를 함께 찾아 나선다.


■ 본문에서

죽음에 다가선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다. 남자와 여자, 나이 든 자와 어린아이. 한때는 모두가 같은 시간 위를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마다의 삶을 끝내고 모여들었다. 간절하게 죽음에 이르고 싶어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도 있었다. 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걱정과 부러움이 묻어났다. 무심한 듯 툭툭 뱉어내는 사람들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간은 선택하는 게 아니야. 주어지는 거지.’ (70~71쪽)

이유도 모른 채 삶을 떠나왔다는 사실에 억울할 때도 있었지만 그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남은 생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무엇과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심정을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 나는 더 움츠러들었다. (106쪽)

“고생했다.”
선생님의 한마디에 왈칵 감정이 솟구쳤다. 눈두덩이 뜨거워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리고 괜히 헛기침을 했다. 지워진 기억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 힘든 시간을 지나온 것 모두에 해주는 위로의 말 같았다. 선생님은 내가 견뎌내고 있는 것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널 믿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선생님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123쪽)

죽음에 가까워진 뒤로 과거를 되짚어본 적은 있어도 미래를 그려본 적은 없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가 똑같이 펼쳐질 거라는 예견 때문에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갖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게 무언지 아직 갈피를 잡을 수는 없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게 하나만 있어도 살아야 할 이유가 될 거야.’ (157쪽)

‘여기서 보면 더 잘 보여.’세라의 말에 나는 이끌리듯 움직였다. 몇 걸음 뒤에서 보니 시야가 달라졌다. 가장자리에 섰을 때는 발밑을 보게 되었는데, 뒤로 물러서니 멀고 높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아래를 보는 것보다 멋진 경치가 펼쳐져 있었다. (178쪽)

목차

■ 차례

우리가 만난 시간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이은용 지음

서울에서 태어나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08년 『평화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다. 『열세 번째 아이』로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했다. 동화 『어느 날 그 애가』와 장편소설 『내일은 바게트』 『그 여름의 크리스마스』 『맹준열 외 8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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