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이 오히려 가능성의 원천임을 믿고
문학은 내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55년간의 비평 활동을 딛고 다음 반세기를 그려내는
꾸준한 ‘읽는 사람’ 김주연의 신작 비평집
『문학과지성』 동인이자 1세대 문학평론가로서 지난 55년간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쳐온 김주연의 신작 비평집 『그리운 문학 그리운 이름들』이 2020년 5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원로 비평가이자 독문학자로서 ‘4·19세대’ ‘문학과지성사 창립 멤버’ ‘숙명여자대학교 독문과 명예교수’ ‘한국독문학회장’ ‘한국문학번역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 화려한 이력과 수식어가 따라붙는 김주연이지만, 그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한결같이 읽고 쓰는 학자’일 것이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현역 비평가로서 꾸준히 집필할 수 있었던 그의 비결은 역동하는 문학장을 기민하게 감각하고 유연하게 이해해온 열정적 자세에 있을 것이다. 김주연은 비평을 통해 종교의 문화적 역할에 대한 깊은 해설을 제공하고, 온갖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문화적 상황을 기독교적 지성과 신앙으로 치유해왔다.
32편의 비평문과 한 편의 대담이 담긴 이번 비평집 또한 문학의 가치에 대한 신실한 믿음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문학작품들을 치열하게 분석한 결과물을 한데 묶었다. 또한, 애정 어린 눈으로 한국 문학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며, 오늘날 문학의 가치와 역할을 진지하게 질문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에는 이청준, 최인훈, 김현, 김치수, 황인철, 이문구 등 “과거로 밀려가 있는 문학 친구들을 위한 진혼곡”(「책머리에」) 열세 편이 절절하게 담겼다. 비평가 김주연의 진솔하고 유머러스한 언어로 씌어진 한국 문학이 잃은 소중한 별들과의 추억은 이번 비평집을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문학을 다시 생각한다>에서는 21세기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진화해나갈 문학의 모습을 그리고, 세계 문학과 더욱 긴밀하게 교호할 한글문학의 방향을 묻는다. <2부 하늘과 땅 사이에서>는 괴테, 카프카, 카잔자키스, 헤세 등 다양한 해외의 고전 문학작품을 깊이 있는 종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비평한다. <3부 작가가 빚은 항아리>는 박화성, 황순원, 전숙희에서부터 이승우까지 넓은 세대의 작가를 아우르며 작품의 본 의미를 꿰뚫는 해설을 묶어 원숙한 현장비평가로서의 위용을 보여준다. <4부 밀려간 시간 속 이름들>은 지난 시절 동안 문학과 학문의 길에서 통음한 문학 동료이자 동지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인품과 성실을 보여주는 여러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마지막으로 문학평론가이자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인 유성호와의 대담을 실어 그의 비평가로서의 입장과 의지를 생생하게 들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책의 소개를 마치며 김주연의 비평 자장 안에서 성장해온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을 유성호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그렇게 깊은 성찰과 구원의 언어를 통해 궁극적 신성에 가 닿으려는 그의 비평이, 척박한 이성중심주의의 문학 토양, 영상중심의 즉물주의의 맞은편에서 그 모든 것을 껴안고 깊고도 넓은 형이상학적 파동을 일으키며 문학의 위의(威儀)를 높이며 지속적으로 이어져갈 것을 소망한다.”
■ 책머리에
그리움과 동경
‘동경(憧憬)’이 아득한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면, ‘그리움’은 과거를 향해 무한정 달려간다. 그 질주는 미래를 향한 열림보다 더 넓고 더 제멋대로다. 문학은 어느새 내게 이렇듯 그리움의 대상이 되어간다. 내가 즐기고, 내가 생각했던 ‘문학’은 이미 과거가 되었는가.
이 책의 4부는 과거로 밀려가 있는 문학 친구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그리움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문학의 현장이다. 그들은 그리운 이름들이지만, 이 그리움 속에서 나와 더불어 현재와 똑같은 들숨 날숨의 호흡을 한다. 그렇다, 문학은 어차피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1, 2, 3부는 지난 5, 6년 사이 만년(晩年)에 주어진 단상들이지만, 나름대로 치열하다. 그리움을 딛고 앞을 바라본 문학의 미래일 수도 있다. 아마도 동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세상에서 한갓 미망이 아닐는지— 오히려 묵시록적 예감 앞에서 숙연해진다.
2020년 5월
법화산 기슭에서
伊村
책머리에
1부 문학을 다시 생각한다
문학, 여전히 필요한가―디지털 시대 삶과 관련하여
죽음 뒤에 오는 영감―문학의 미래를 생각한다
한글문학의 성취를 위하여
문학, 다시 떠나는 아브람의 길―4차 산업혁명에 직면하여
한국문학, 세계문학인가―거듭되는 질문의 이해를 위하여
문학작품, 왜 번역하는가
2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역설―괴테의 『파우스트』 속에서
마을과 성(城)이 왜 함께 공존할까―카프카의 장편 『성』의 종교성
자유! 자유? 자유―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유머, 젊음을 일으키다―헤르만 헤세를 기억하면서
괴테와 낭만주의의 축복―독일문학의 즐거움과 함께 살아온 인생 길
3부 작가가 빚은 항아리
근대 비판의 사회의식 싹트다―박화성, 박경리, 박완서 문학의 발아
실존과 종교의 공존―황순원 문학의 근본 메시지
신앙과 사랑으로 문학을 세우다―벽강 〈전숙희 문학전집〉 발간을 돌아보며
사람을 찾고, 시를 찾고, 구원을 찾는―김남조의 『충만한 사랑』을 읽고
이슬과 꽃, 그리고 시인―마종기의 최근 시를 생각한다
왜곡과 위선, 언어는 진실한가?―현길언 문학의 마지막 질문
바람의 기억들, 그 이후―이하석 시집 『연애 間』
글쓰기의 신성성―이승우 장편소설 『캉탕』의 구조와 뜻
4부 밀려간 시간 속의 이름들
단정한 눌변의 힘―소설가 이청준의 기품
문학 속에서 실컷 놀다―김현의 화려한 몸놀림이 그립다
행동하는 선비의 의리―소설가 이문구의 멋
문학과 신앙의 선배가 된 후배―항상 단내가 나던 최인호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하늘로 다시―진짜 변호사 황인철과의 추억
부지런함, 그리고 성실한―건강 청년 김치수, 낯선 곳에 있다니
아이러니 속의 화평―세밀한 허무주의자 오규원
자신만만은 어디서 오는가―씩씩한 소설가 홍성원의 외길
죽음의 또 다른 연구―신비주의자 박상륭의 죽음 같은 삶
문학에 대한 기이한 확신―철학자 소설가 최인훈
마르크시즘 연구, 또 연구―정문길의 트로이카
바다를 넘어선, 바다의 시인―문충성의 아득한 목소리
소설가 현길언, 하늘과 땅을 함께 껴안다
[대담: 유성호] 모바일 시대 상상력의 비평―김주연 선생과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