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대한 노트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알렉산더 클루게 지음 | 김수환, 유운성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0년 3월 18일 | ISBN 9788932036021

사양 변형판 128x187 · 188쪽 | 가격 12,000원

분야 채석장, 인문

책소개

“결정했다, 마르크스의 시나리오에 따라
『자본』을 영화화하기로.
이것이 유일한 형식적 해결책이다. […]
제임스 조이스가 나의 목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문학과지성사의 새로운 인문 에세이 시리즈 ‘채석장’의 첫 책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화하려고 했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작업노트(1927~28년)와 함께 에이젠슈테인의 이 미완의 기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2008년)이라는 영화를 만든 알렉세이 클루게가 이 작품의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제작한 동명의 소책자(2015년)를 소개한다. 에이젠슈테인이 만들려고 했다는 <자본>은 어떤 영화였으며 왜 실패로 돌아갔는가? 클루게는 이 이루어지지 않은 기획의 어떤 점에 매혹되었는가?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혁명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오늘날, 여전히 혁명의 열기가 가득했던 가운데 도모되었던 100년 전의 실패한 기획, 클루게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제는 “이데올로기적 고대”가 된 과거의 유령들을 불러내 그들의 실패를 복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책은 현재의 달라진 조건 속에서 과거의 유령이 보내오는 미약한 신호를 감지해내 오늘을 사유하는 유용한 도구로 전유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마르크스의 『자본』+조이스의 『율리시스』

<전함 포템킨> <10월> 등 전설적인 혁명 영화를 만들었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에 대해 오랫동안 떠돌던 풍문이 있었다. 그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화하려고 했었다는 것, 그것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같은 방식으로 찍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1973년, 소비에트 영화잡지 『영화예술』에 에이젠슈테인이 남긴 작업노트의 일부가 공개되면서 그러한 기획이 실재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상당히 구체적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본』이라는, 영화화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텍스트를 영화화한다는 기획도 그렇거니와 그것을 조이스의 방식으로 찍겠다는 명제는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더군다나 에이젠슈테인이 실제로 파리에서 조이스를 만나 이 목표를 밝혔고 조이스가 동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화제가 되었다.
1927년 10월 12일, 영화 <10월>의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에이젠슈테인은 작업노트에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결정했다, 마르크스의 시나리오에 따라 『자본』을 영화화하기로. 이것이 유일한 형식적 해결책이다.” 그 후로 2년 동안 에이젠슈테인은 이 계획에 매달린다. 에이젠슈테인은 당대 가장 잘나가는 감독이었고, 특히 <10월>을 만들 때는 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막대한 자원을 동원하여 영화를 찍을 수 있었지만, 이 ‘<자본> 프로젝트’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는 소비에트 중앙위원회와 프랑스의 고몽영화사, 심지어 할리우드에까지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누구도 이를 지원하려 들지 않았다. 심지어 스탈린은 에이젠슈테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독 스스로는 (적어도 한동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작업일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자본>은─공식적으로─제2인터내셔널에 헌정될 것이다. 모두들 분명 ‘만족할’ 것이다. 모든 방면에 걸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타격으로 이보다 더 파괴적인 공격을 생각해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의 과정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미래의 영화 <자본>

<자본>이 완성되었다면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오늘날 에이젠슈테인이 남긴 파편적인 작업노트만 갖고 그의 의도를 완전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자신이 구축한 혁명 영화의 성공적인 공식을 넘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영화 형식을 만들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감각적 몽타주에 집중하는 영화에서, <10월>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 개념적이고 지적인 영화, “사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변화해 나아가는 과정을 이 텍스트는 담아내고 있다. 에이젠슈테인은 영화 <10월>을 일종의 “에세이essay” 모음, “담론적 영화”라고 간주했는데, 그는 영화 <10월>에 존재했던 이 새로운 관점과 가능성이 <자본>이라는 미래의 영화에서 온전히 구현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영화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우리는 제임스 조이스(혹은 『율리시스』)의 역할을 몇 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가장 일차적으로는 일련의 연상과 암시, 그리고 다양한 문학적 형식을 활용해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를 묘사했던 『율리시스』처럼 에이젠슈테인이 <자본>을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로 구상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그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 형이상학적인 답변이 주어지는 “교리문답 형식”으로 된 챕터(『율리시스』 17장)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며, 다음 영화에서는 논리적인 인과나 서사의 방식이 아니라 개념적인 연상 방식을 따를 것임을 밝혔다. 수프 한 그릇에서 출발해 그 함의를 전 세계적 규모에서 드러내는 에이젠슈테인의 연상 방식이 『율리시스』에서 사용된 무의식적 연상 작용이나 프로이트의 자유연상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따져보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오늘 <자본>의 내용이 정식화되었다:
노동자들에게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 프로젝트의 핵심은 당연히 마르크스의 『자본』일 것이다. 도대체 『자본』을 어떻게 영화화하겠다는 것인가? 이미 언어라는 형식 안에서 최상으로 구현되었다고 이야기되는 『자본』이란 책을 다시 영화로 만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영화를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에이젠슈테인은 믿었던 것일까?
에이젠슈테인은 노트 곳곳에서 영화 <자본>의 테마가 “마르크스의 방법론”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변증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방법론을 교육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고 말한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방법론”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변증법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본> 프로젝트’ 이후 시작되는 ‘<글라스 하우스> 프로젝트’나 ‘<구체의 책> 프로젝트’와 연결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다. 어쨌든 에이젠슈테인은 관념이기도 하고 사물[의 관계]이기도 한 ‘자본’과 같은 대상을 마르크스와 같이 논리적, 추론적인 방식이 아니라, “에세이 영화” “영화논고(키노트락타트)”라는 방식을 통해서만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러한 방식이 영화 <자본>에만 부합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나아가게 될 방향이라고 보았다. 즉 에이젠슈테인의 포부는 단지 ‘자본’의 과정을 제대로 드러내 보여주겠다는 것을 넘어선다. 클루게를 인용하자면, 그는 “그저 『자본』을 ‘영화화’하길 바랐던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을 전적으로 파괴하고 그것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클루게의 영화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여기서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과 동명의 텍스트로 시선을 돌려보자.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법률고문으로 이력을 시작해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사회학자, 문예비평가, 변호사,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사 대표로 전 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클루게는 한국의 독자들에겐 에이젠슈테인보다도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인물일 수 있다. 에이젠슈테인의 ‘<자본> 프로젝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은 상영시간이 570분이나 되는데, 페터 슬로터다이크, 보리스 그로이스, 옥사나 불가코바, 오스카 네트, 디트마르 다트 등의 인터뷰와 에이젠슈테인의 작업노트 인용, 배우들의 『자본』 낭독, 피아노 연주, 각종 영상물과 이미지, 텍스트의 콜라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에이젠슈테인의 ‘<자본> 프로젝트’에 대한 불가코바(에이젠슈테인 전문가)의 인터뷰로 시작해 ‘껌’이라는 ‘사물의 전기’를 거쳐 ‘러시아 우주론’에 대한 그로이스의 논의로 뻗어 나간다. 이는 에이젠슈테인의 기획을 그대로 실현해낸 것이라기보다는 ‘자본’이라는 특수한 대상을 구현하기 위해 에이젠슈테인과 마르크스가 강구했던 도구와 과정을 전유하고 연습해본 것에 가깝다. 클루게는 이 책에서 에이젠슈테인과 같은 위대한 거장의 계획을 적절한 방식으로 다루는 일이 “고대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작업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이런 발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파편들과 보물들 그 자체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에세이 영화/사물 이론

에이젠슈테인이 만들려고 했던 영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상상해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에이젠슈테인이 노트에서 발전시킨 아이디어들이 오늘날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다.
「서문」에서 불가코바는 에이젠슈테인의 사유가 오늘날 예기치 않은 적실성을 획득했다고 이야기한다. 에이젠슈테인이 <자본>에서 구상한 새로운 내러티브 전략은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사물론과 세르게이 트레티야코프가 제안했던 ‘사물의 전기’ 개념, 발터 벤야민의 ‘파사주 프로젝트’와도 병치되며, ‘사물로의 전환’을 이끈 동시대의 이론들이나 미술관 설치와 같은, 영화 바깥의 새로운 존재 형식들 속에서 구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에이젠슈테인 노트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에세이 영화essay film’의 미래를 최초로 예견한 선구적 텍스트로 지목되곤 한다. 에이젠슈테인이 자본이라는 특수한 대상을 영화화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치밀하게 제련하였던 ‘에세이’에 대한 고찰은 오늘날 분방하게 나타나는 ‘에세이’라는 용어의 자기합리화식 용법을 재고해보게 만든다.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자본>을 위한 노트」는 그가 남긴 방대한 작업일지의 일부를 번역한 것에 불과하며, 애초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것이 아니어서 이 텍스트만 갖고 에이젠슈테인의 전체 비전을 사고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 책 『<자본>에 대한 노트』를 발판 삼아 다양한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더불어 문학과지성사에서는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도입부 27분, 한글자막)을 시작으로 이 텍스트를 독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유튜브, SNS 등의 채널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본문 속으로

“마르크스의 『자본』을, 자신을 매혹했던 『율리시스』의 내적 독백을 사용해 영화로 만들어보겠다는 에이젠슈테인의 생각은, 요란한 농담이거나(스탈린이 바로 그렇게 반응했는데, 그는 에이젠슈테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혹은 오늘날 예상치 않게 긴요해진 선지적 예견처럼 보일 수 있다.”(서문_7쪽)

주식거래소는 단지 “주식거래소”로서가 아니라(<마부제 박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종말>) 수천 개의 “작은 디테일”을 통해 제시된다. 마치 장르 회화에서처럼. 이에 관해서는 졸라(『돈』)를 보라. Curé[주임사제]는 지역 전체의 핵심 “브로커”다. 주택관리인은 대출 뚜쟁이다.(영화 <자본>을 위한 노트_35쪽)

동시대로 전치된 “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해, 과거 세기의 전환점이 되는 국면에 상응하는 오늘날의 대응물을 (<자본> 안에서)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방직기계의 테마와 기계를 파괴하는 방직공의 테마는 충돌시켜 보여주어야 한다. 상하이의 전차와 그로 인해 밥줄이 끊겨 철길 위에 누운 채 죽어가는 수천 명의 가마꾼들도 마찬가지다.(<자본> 노트_39쪽)

장면이 진행되는 내내 아내가 집으로 돌아올 남편을 위해 수프를 끓이고 있다. […] 세번째 부분에서 연상이 그녀가 요리에 쓰고 있는 후추로 옮겨간다. 후추, 붉은 고추Cayenne, 악마의 섬Bagne de Cayenne, 드레퓌스, 프랑스의 쇼비니즘, 크루프의 손아귀에 있는 『르 피가로』, 전쟁, 항구에 침몰한 선박들. […] 침몰한 영국 함선은 냄비 뚜껑으로 덮는 편이 좋을 것이다.(<자본> 노트_57쪽)

“옛적의”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찍었다. 새로운 영화는 여러 사건들로부터 하나의 관점을 조합해낸다.(<자본> 노트_59쪽)

<자본>에는 영화화할 수 있는 테마가 무궁무진하다(잉여가치, 가격, 지대). 우리의 테마는 마르크스의 방법론이다.(<자본> 노트_65쪽)

사실상 <10월>에서는 사건들이 아니라 전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문화 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단지 변증법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변증법적인 방법론을 교육하는 일이다.(<자본> 노트_72쪽)

일단 유럽에서 혁명의 가능성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와 더불어, 인간적 의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과 믿음이 사라져버림에 따라, 『자본』의 2판이 출간된 (나의 조모가 태어난 해인) 1872년과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와 위르겐 하버마스가 태어난 해인) “끔찍한 1929년”을 특징짓는 불안과 긴급함이 소멸되어버렸다. 우리는 흡사 정원을 거니는 듯한 기분으로 마르크스와 에이젠슈테인의 기이한 프로젝트에 담긴 희한한 관념들과 씨름해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이 이제는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이 되었기 때문이다.(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_140쪽)

대담하면서도 완강한 이 감독은 그저 『자본』을 “영화화”하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을 전적으로 파괴하고 그것을 새롭게 구축하고자 했다. 그는 ‘시각적 별자리짜임visual constellations’을, (자신의 영화들을 통해 이미 성취한 것을 넘어서는) 몽타주의 지속적인 발전을, […] 배음overtones을 끌어들일 것을 제안했다. 간단히 말해, 에이젠슈테인의 모더니티는 단지 『자본』을 영화로 옮기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모든 주제들에 대해 유용하다.(이데올로기적 고대_140~41쪽)

영화 <자본>이 끝내 실현되지 못한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이 영화의 뼈대가 되는 내러티브는 하루 동안 두 인물의 생활을 한낮부터 밤까지 따라가는 것이었는데, 이는 『율리시스』에서 일련의 연상과 암시를 통해 트로이 전쟁 이후 인류의 역사가 환기되는 가운데 (밤이 되어서야 아내를 만나는) 레오폴드 블룸의 하루가 묘사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에이젠슈테인은 『자본』의 부분들을 통해 총체적 몽타주를 구성하기를 바랐는데, “방황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거기에 짜여 넣어질 것이었다.(이데올로기적 고대_158쪽)

나는 『자본』을 영화화하려 한 에이젠슈테인의 원대한 계획을 상상의 채석장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당신은 거기에서 파편들을 찾을 수 있지만, 또한 찾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가 만들어진 영화들을 비판한다.”(이데올로기적 고대_161쪽)

에이젠슈테인과 같은 위대한 거장의 계획을 적절한 방식으로 다루는 일은 고대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작업과 유사하다. [이런 발굴 작업을 통해] 우리는 파편들과 보물들 그 자체보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마르크스의 경우에도 사정은 얼마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남긴 최고의 텍스트들은 역사적 잔해의 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 잔해를 파헤치다 보면 당신이 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도구들이다. […] 하지만 미래의 영화와 관련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 자신의 노트에서 제시한 것들은 훨씬 더 놀라운 것이다.(이데올로기적 고대_161쪽)

목차

서문_옥사나 불가코바
영화 <자본>을 위한 노트: 1927~28년의 작업노트 중에서_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마르크스-에이젠슈테인-자본_알렉산더 클루게

작가 소개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지음

소련의 영화감독이자 영화이론가로 저명한 건축가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과 엔지니어링을 공부했으나 혁명이 터지자 적군에 가담했다. 연극연출가 메이예르홀트 아래서 무대연출을 하다가 영화감독으로 경로를 바꾸어 혁명기 소비에트의 전설적인 무성영화들을 만들어낸다. 또한 당대 예술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 획기적인 에세이들을 발표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영화이론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정치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한편 에이젠슈테인은 마르크스의 『자본』을 영화로 만드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프로젝트는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 미완의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는 그가 남긴 방대한 노트에 일부 남아 있다. 대표작으로 <파업> <전함 포템킨> <10월> <폭군 이반> 등이 있다.

알렉산더 클루게 지음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문화비평가, 사회학자, 법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로 분야를 넘나들며 전 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알렉산더 클루게는 1932년 독일 중부의 작은 도시 할버슈타트에서 태어났다. 그가 열세 살이 되던 1945년 4월 연합군이 할버슈타트를 폭격하여 이 도시는 완전히 파괴된다. 그즈음 부모가 이혼을 하면서 클루게는 어머니를 따라 베를린으로 이주한다. 이때의 경험이 평생 그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이야기되는데, 특히 종전을 앞두고 벌어졌던 폭격이 안긴 충격은 이 책 『1945년 4월 8일 할버슈타트 공습』의 토대가 되었으며, 그 후로도 클루게의 다양한 예술 작업에서 변주된 형태로 나타난다.

마르부르크 대학과 프랑크부르트 대학에서 법학과 역사학, 종교음악을 공부했으며, 1956년에는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1958년에는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서 법률 자문으로 일하면서 아도르노와 친분을 쌓았고, 그의 소개로 프리츠 랑을 만나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2년 동료 감독들과 함께 ‘오버하우젠 선언’을 발표하며 1960~70년대 뉴 저먼 시네마를 이끌었다. 1987년에는 텔레비전 제작사 dctp를 설립했고 지금까지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력서들』 『감정의 연대기』 『공론장과 경험』(공저) 『역사와 고집』(공저) 등이, 영화로 <어제와의 이별> <서커스단의 예술가들> <이데올로기적 고대로부터 온 소식: 마르크스-에이젠슈테인-자본> 등이 있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게오르크 뷔히너 상, 아도르노 상 등을 수상했다.

김수환 옮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문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책에 따라 살기』 『사유하는 구조』 등이, 옮긴 책으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코뮤니스트 후기』 『영화와 의미의 탐구』(공역) 『문화와 폭발』 『기호계』 등이 있다.

유운성 옮김

영화평론가.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 『인문예술잡지 F』 편집위원을 지냈고, 현재 영상비평지 『오큘로』의 공동발행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령과 파수꾼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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