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애인이냐고 묻지 마세요.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봐 주세요!
‘장애아’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우리가 되기 위하여!
4월은 장애인의 달이고, 4월 20일은 올해로 39회를 맞는 장애인의 날이다. 이 날을 앞두고 장애와 장애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의미 있는 동화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유통 기한 친구』는 표제작 「유통 기한 친구」로 2017년 ‘5·18문학상’ 동화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박수진 작가의 첫 작품집이다. 수상작을 포함한 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특수반 선생님으로 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던 아이들의 진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장애가 있다는 것은 조금 불편한 것일 뿐 결코 동정의 대상이 아니며, 장애인도 일반인과 똑같은 감정을 지닌 인격체라는 것을 작가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유쾌하고 산뜻하게 들려준다. 우리는 장애에 대해 동정어린 시선과 함께 그에 못지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장애인을 향한 불필요한 동정의 시선, 무조건적인 너그러운 태도, 한없는 이해심 같은 감정들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이 이야기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다섯 편의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장애를 갖고 있지만 그 누구 못지않게 건강하고 적극적이고 활달하다. 또한 자기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때로는 너무 용기 있는 모습에 주변을 깜짝 놀라게도 하고, 예상치 못한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무엇이든 솔직한 모습에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평범하지 않거나 조금 모자라기 때문에 막연히 동정의 대상이라고 여겼던 아이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또래들 속에서 그들과 다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넘치도록 잘해 내며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파란색과 13번 사물함만 좋아하는 민재와 나란히 수영 대회에 나가게 된 찬이는 경쟁자로만 여기던 민재와 통하는 게 생긴 것 같고, 휠체어를 타고 씩씩하게 지하철을 탄 수호는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멋진 지하철 여행을 하게 된다. 다리가 불편한 유리는 학교에서 일주일씩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새로 전학 온 도우미 정다정의 무심함과 서투름 때문에 화도 났지만 결국 용기 있는 김유리가 되고, ‘한정우’라는 이름만 들어도 하경이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데 대책 없이 밝고 솔직한, 강력한 라이벌 윤지가 나타나 한정우를 향한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은섭이는 껌딱지 누나의 칭찬통장 때문에 날마다 피곤하지만 누나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 주변 친구들, 가족들이 나누는 우정에는 자신들과 주변을 변화시키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힘이 담겨 있다.
■ 작품 소개
․ 「1등 앞선」
수영을 제일 좋아하는 찬이는 구 수영 대회 출전 선수로 뽑히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바로 파란색과 13번 사물함에 유독 집착하는 민재다. 민재는 혼자만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매번 똑같은 노래만 부르고 이상한 소리도 내지만 누구보다 수영에 열심이다. 정정당당히 겨룬 끝에 둘은 나란히 구 수영 대회 선수로 뽑혀 바로 옆 라인에서 시합을 벌인다. 꼭 1등을 하고 싶은 찬이는 이상하게도 민재랑 시합만 하려고 하면 집중도 안 되고 실력 발휘도 제대로 안 되는 거 같아 속상하다. 드디어 최선을 다한 수영대회가 끝나고 찬이는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리고 민재와 왠지 통하는 게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말은 안 해도 민재도 찬이랑 같은 마음이겠지?
․ 「반짝이는 지하철 여행」
휠체어를 타는 수호는 항상 엄마나 대학생 승재 형과 함께 지하철을 탄다. 하지만 그날은 승재 형의 사정으로 혼자 지하철에 올랐다. 엄마는 꼼짝도 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지만 그날만큼은 혼자 힘으로 집이 있는 지하철역까지 가 보고 싶었다. 난생처음 혼자서! 수호는 지하철 노선도도 외우고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스럽고, 휠체어에 앉은 채 노선도를 확인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잔뜩 긴장한 가운데 지하철 창 너머로 반짝반짝 아름다운 한강이 눈앞에 펼쳐지자 수호는 이 멋진 지하철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마음씨 좋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드디어 엄마를 만나고 수호는 엄마한테 자신의 또 다른 계획을 털어놔 엄마를 놀라게 한다.
․ 「유통 기한 친구」
오른손과 오른다리가 불편한 유리는 학교에서 일주일씩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생활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척척 알아서 유리를 도와준다. 그런데 이번 주에 새로 전학 온 정다정이 도우미가 되면서 유리는 황당한 감정에 휩싸인다. 눈치가 없는 건지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상황을 모르는 건지 다른 아이들이 으레 유리를 빼놓는 과제나 과목에서도 유리를 끼워 넣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정다정 덕분에 유리는 자기가 잘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자연스레 보통 아이들의 놀이와 과제에 함께하게 된다. 일주일짜리 도우미로만 여겼던 정다정은 어느새 성큼 유리의 진짜 친구가 되어 가고 있다.
․ 「가슴이 콩닥콩닥」
새 학년 첫날, 하경이는 한정우를 보고 첫눈에 반하고 만다.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에서 노래하는 오빠랑 이름마저 똑같다니. 왠지 노래도 잘 부를 것만 같은 한정우다. 자신의 마니또로 한정우가 뽑히자 하경이는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강력한 라이벌 윤지가 등장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다. 다운증후군인 윤지는 항상 밝고 솔직하고 당당해서 선생님과 아이들은 모두 윤지를 좋아한다. 하경이보다 한발 앞서 정우에게 성큼 다가가는 윤지 때문에 애만 태우던 하경이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한정우 생일파티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 하경이가 먼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하경이는 아이들 앞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지만 그 일로 윤지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다. 그런데 정우는 하경이의 마음을 눈치챘을까?
․ 「누나의 소원」
특수학교에 다니던 누나가 은섭이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 껌딱지 누나 때문에 은섭이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늘 피곤하다. 수업 종은 울렸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교실에 실과 시간에 만든 김밥을 들고 와서 “은섭아, 끼빠! 끼빠 머거!”를 외쳐 대 곤란하게 하질 않나 집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걸스카우트 노래를 불러 대질 않나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다. 게다가 새로 온 도움반 선생님이 만들어 준 칭찬통장에 은섭이의 칭찬을 한 줄이라도 받고 싶어서 날마다 은섭이를 살뜰히 챙긴다. 은섭이의 곤란한 마음도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동생을 위하는 누나의 진심 어린 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은섭이는 드디어 오늘 누나의 칭찬통장을 열었다. 은섭이는 과연 뭐라고 썼을까?
■ ‘작가의 말’에서
나는 주로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저 누나는 어떤 장애인이에요?”
“장애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우리가 이해해야지.”
“장애가 있는 애들은 원래 고집이 세고 못됐어.”
“세상에, 장애를 극복하려고 저렇게 노력하다니, 정말 대단해.”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는 장애가 없으니까. 저 사람은 너무 딱해.”
“넌 장애가 있으니까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해.”
“난 결정 장애야. 선택을 못하겠어.”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어떤 장애인이냐고 묻기보다,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봐요.”
“장애인이라고 다 참고 이해할 필요 없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도 돼요.”
“장애인들은 특별히 착하지도 못되지도 않았어요. 사람들은 모두 성격이 다르잖아요.”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자기 불행을 장애인을 통해 위로받지 마세요.”
“장애라는 말을 아무 곳에나 쓰지 마세요. 선택을 못하는 건 장애가 아니에요.”
사람들은 우리 곁에 있는 ‘진짜’ 장애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인식의 틀에 가둔 장애인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런 상황에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등 앞선
반짝이는 지하철 여행
유통 기한 친구
가슴이 콩닥콩닥
누나의 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