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대는 내게 시간을 팔겠다는 거요?”
예술을 위해 감행한 악마와의 거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토마스 만이 그린 예술, 그리고 20세기 독일, 독일인
카프카, 헤세와 함께 독일 현대문학의 3대 거장이며, 니체, 쇼펜하우어, 바그너, 괴테의 뒤를 잇는 ‘독일 문화의 계승자이자 전파자’로 일컬어지는 토마스 만의 말년의 대작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52~53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평범한 인문학 교수인 차이트블롬은 오만하고 냉정한 천재 작곡가 레버퀸의 곁을 평생 동안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지켰다. 그러나 이제 차이트블롬은 혼자 남아 음악적으로는 빛났으나 개인으로서는 비극적이었던 친구의 삶을 회고하며 전기를 남긴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레버퀸은 24년간 거의 광적인 자기 몰두로 천재적인 작품을 남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들을 불러 마지막 작품이 된 『파우스트 박사의 탄식』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한 충격적인 비밀을 밝힌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절정에 달하다가 마침내 종전을 향해 가던 1943년, 토마스 만은 미국 망명지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모두 담아 파우스트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집필했다. 작가는 평생의 화두인 시민과 예술가, 정신과 예술, 육체와 예술의 대립을 고찰하는 동시에 도구적 이성에 갇혀 오직 목표를 향해 광기를 보여준 독일과 당시 독일 시민 문화의 비극을 통렬하게 그렸다.
24년 후 영혼을 바칠 것, 그 누구도 사랑하지 말 것
불멸의 음악을 얻기 위해 내놓아야 했던 대가
어려서부터 재능이 남달랐던 아드리안 레버퀸은 오만하고 냉소적이다. ‘인문적인 것’ ‘인간적인’ 감정들을 깔보는 레버퀸은 주위에 관심이 없고 애정도 쏟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친구인 차이트블롬과만 격의 없이 지내는 정도이다. 레버퀸은 음악에 재능이 있었으나 대학에서는 (마치 음악 내지 이에 대한 지배 능력으로부터 도피하듯이) 신학을 선택했다가, 다시 운명처럼 음악 세계로 돌아와 작곡을 시작하고, 24년간 거의 광적인 자기 몰두로 천재적인 작품을 남긴다. 예술적 광기에 사로잡혀 작품 활동에만 몰두하던 레버퀸에게도 사랑이 있었으나, 그 소수의 애틋한 관계마저 모두 비극을 맞이한다. 레버퀸은 지인들을 불러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을 선보이기에 앞서 자신의 탁월한 창작은 악마와의 결탁으로 가능했으며,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난 비극들은 모두 자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토마스 만의 문학적 화두 중 하나는 건전한 삶을 동경하는 시민적 기질과 초인간적인 극단의 미를 추구하는 예술가적 기질의 대립과 갈등이었다. 레버퀸을 찾아온 악마는 “지옥과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천부적 재능”은 없으며, 영감은 “오로지 악마, 즉 열광의 진짜 주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술적 야망으로 악마의 꾐에 넘어가는 레버퀸은 “악마와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순간적으로 번쩍 빛나는 영혼의 섬광을 체험”하고 싶었던 예술가 토마스 만의 소망을 대변하는 듯하다. 또한 차이트블롬의 모습에도 격동의 시기 ‘독일의 양심’이자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토마스 만이 어른거린다. 건실한 인문학자 차이트블롬과 뼛속 깊이 ‘비시민적인’ 예술가 레버퀸의 상반된 속성은 토마스 만 자신의 내적 단면들을 드러낸다.
신께서 부디 너희 불쌍한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나의 친구여, 나의 조국이여!
– 독일, 독일인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절정에 달하다가 마침내 종전을 맞던 시기, 즉 1943년에서 1947년까지 토마스 만은 망명지 미국에서 소설 『파우스트 박사』를 집필했다. 조국의 몰락을 우려하면서도 동시에 기원해야 했던 지식인 차이트블롬의 모습과 나치 체제하에서 조국을 등져야만 했던 토마스 만의 기구한 운명이 맞물려 있는 이 작품은 자기 고백적인 속성이 강하다.
소설 앞부분은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1914~18)에 열광하다 패배하고 바이마르공화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혼란과 동시에 희망을 품던 독일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 또 점점 더 폭발적으로 천재적 악상이 분출될수록 악화되는 레버퀸의 뇌질환은 히틀러의 집권(1933)과 맞물려 있고, 마침내 정신착란과 분열에 빠져드는 때는 나치 정권의 광기가 제2차 세계대전과 국가적 몰락으로 치닫는 시점과 겹친다.
천재 예술가 레버퀸의 존재가 시대적 · 역사적인 현상으로 연결되는 과정에 간간이 펼쳐지는 독일 문화사 내지 정신사의 ‘리뷰’는 매우 광대하다. 기독교적 가치가 지배했던 중세부터, 이에 반발한 루터의 인간성 담론과 전설 속 파우스트의 (악령과의 결탁도 마다하지 않은) 초인간적인 창조성 추구를 넘어, 개인의 주관성과 자율성에 심취했던 인문주의를 거친 뒤, 19세기 말 니체에 의한 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독일 정신’의 끊임없는 자아 해방과 자기 신격화가 어느덧 자신이 만든 덫에 걸리고 파멸로 향하는 긴 과정에 대한 성찰이다. 토마스 만은 자신의 문학적 자아 레버퀸의 운명을 통해 ‘독일(인)’의 운명을 그려냈다.
레버퀸이 악마와 결탁하고 인간적으로 몰락을 맞이했듯이, 20세기 독일 민족의 극단적인 광기는 전통적인 가치들을 던져버리고, 나치와 파시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독일 민족의 운명을 위협했다. 토마스 만은 세계대전 당시 전 유럽을 파국으로 몰고 간 파시즘에 대해 비판하고 그로 인해 망명을 한 작가이다. 이 작품은 가장 독일적인 작가라 불리는 토마스 만의 ‘독일 정신’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다.
‘토마스 만’을 ‘토마스 만’답게,
진정한 『파우스트 박사』를 만난다!
『파우스트 박사』를 읽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자 동시에 많은 재미를 제공한다. 독일의 폭넓은 정신사적 · 문화사적 세부 지식, 지극히 복합적인 작품 소재와 모티프의 섬세한 연결은 독서의 즐거움을 자극하고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유명한 ‘토마스 만적인’ 문체(길고 복잡하게 얽힌 문장들, 여러 의미로 해석 가능한 사변적인 언어유희들,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중언부언, 화자의 독특한 개입)와 당대의 시대상, 수많은 음악 관련 용어 및 표현으로 이 소설의 번역은 번역자에게 ‘고통’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런 이유로 토마스 만의 작품 형식이나 주제의 특징들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는 『파우스트 박사』의 우리말 번역이 지금까지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오역이 양산돼왔다.
번역자 김륜옥 교수는, “토마스 만의 문체는 서술자의 특성이나 인물 및 사건의 ‘역사성’, 궁극적으로는 작품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이므로 번역문에서 임의로 재단하거나 쉽게 풀어쓰는 방식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파우스트 박사』 번역이 ‘가독성’만 추구하다가 (가령) ‘재미있는 말투’로 읽힌다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를 옮겼다고 하기 어려운 것이다. 독자는 끊임없이 드러나는 암시와 연상 기호에 고무되어 마치 ‘퍼즐 게임’을 하듯 작품 속에서 길을 찾아갈 것이고 재미를 느낄 것이다. 오랜 시간 토마스 만을 연구해온 역자의 10년이 담긴 번역으로 한국의 독자들은 진정한 토마스 만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파우스트 박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