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들

파스칼 키냐르 지음 | 송의경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9년 3월 8일 | ISBN 9788932035246

사양 변형판 125x188 · 27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842년 2월14일 금요일, 아침 끝자락,
추위 속에서 그들의 입술 위로 기이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 안개를 프랑스어라 부른다.
니타르는 최초로 프랑스어를 문자로 기록한다.

 

공쿠르상 수상 작가, 『은밀한 생』의 작가 파스칼 키냐르
그가 언어의 붓으로 그려낸 ‘옛날’에 대한 현장 스케치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글쓰기로 한국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거목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눈물들Les Larmes』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신화나 역사에서 과소평가되었거나 망각된 인물을 끌어내 조명해온 키냐르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생트 콜롱브와 『부테스』의 부테스가 그러했듯) 이번에도 프랑크 왕국의 역사가 니타르와 사료에 단 한 줄로 남은 그의 형제(아르트니)를 소환하여 뼈대를 삼고, 역사 ․ 신화 ․ 전설 ․ 꿈을 시처럼 수놓아 태피스트리를 만드는 장기를 다시 한번 발휘한다.
키냐르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옛날’로 수렴되는 ‘옛날’에 대한 담론이다. 빅뱅 이론을 신봉하는 키냐르의 ‘옛날’은 우주의 시초인 빅뱅, 즉 원초적 분출로, 우리가 부재했던, 사람으로 치면 수태 이전의 세계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볼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우리 자신이 결여된 이 세계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그리움의 대상이다. 키냐르는 작품 속에서 독서, 글쓰기, 음악, 회화, 춤, 자연의 관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옛날에 접속하고자 했다.
역사상 첫 프랑스어 문서인 스트라스부르 조약을 기록한 니타르와 그의 쌍둥이 형 아르트니, 그리고 그들의 주변인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소설 『눈물들』은 언어(프랑스어)를 사람처럼 하나의 주인공으로 삼아, 키냐르가 평생 천착했던 주제인 옛날을 묘사한다. 하나의 언어가 탄생하는 빅뱅의 순간으로부터 키냐르의 ‘옛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전의 다른 ‘옛날’에 대한 접속과 약간의 변별성을 지니는데, ‘옛날’에 대해 기술하는 대신 언어의 붓으로 ‘옛날’을 생생하게 그리며 원초적 분출(빅뱅)의 현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현장에서 그려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하나가 부재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면 다른 하나는 현장에서 느끼는 기쁨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기쁨이 가득한 책’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방대한 역사적 · 신화적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여 짧지만 풍성한 이 소설은 여느 키냐르의 작품과 같이 문장과 문장, 지식과 상상력 사이의 여백에서 독자의 숨겨진 감성과 상상력을 이끌어낸다.


프랑스어 탄생의 현장 스케치

 

각 십여 장(障)장으로 구성된 열권의 책이라는 좀 특이한 목차를 지닌 이 작품은 ‘프랑스어가 태어나는 순간’의 현장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샤를마뉴의 딸 베르트는 생리키에 수도원 원장이자 해군제독이며 성인으로 추대되는 앙길베르 백작과 사랑에 빠져 아르트니와 니타르 쌍둥이를 낳는다. 그 누구보다 베르트를 사랑했던 샤를마뉴는 사위가 탐탁지 않았으나 베르트의 사랑을 막을 길이 없었다. 아르트니와 니타르는 쌍둥이이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보이는데, 아르트니는 평생 사랑을 찾아 방랑했으며, 니타르는 대머리왕 샤를의 사관(史官)이 되어 최초의 프랑스어 문서인 스트라스부르 조약을 기록하는 주인공이 된다.
이 책은 ‘옛날’에 대한 담론이기 보다는 황홀한 ‘원초적 분출(옛날)’의 순간을 현장에서 목도하듯 그려낸 소설로, 이 책에서 다뤄지는 ‘옛날’은 언어 차원에서 일어나는 빅뱅의 순간, 즉 프랑스어 탄생의 순간이다. 841년 퐁트누아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분리파의 두 군대는 842년 2월 14일 스트라스부르에서 상호 평화협정 및 동맹조약을 체결한다. ‘스트라스부르 조약’은 프랑크 왕국의 분열을 증명하듯 라틴어, 독일어와 더불어 동일하게 프랑스어로 기록된다. 그 순간 “프랑스어는 어린애가 어머니의 성기에서 나오듯 라틴어에서 나온다”(174쪽). 기적 같은 이 순간을 작가는 감격스러운 어조로 기술하고 있다.

상징적인 것이 꿈틀대는 순간을 인지하는 사회란 거의 없다. 자신들의 언어가 태어난 날짜, 상황, 일기(日氣).
기원의 우연.
숫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문자로 변환되는 광기어린 순간을 지켜보는 것, 이것은 기적에 속한다. 우리는 새로운 상징계가 발생해서 단번에 확립되는 동요를 목도한다. (140~41쪽)

프랑스어 탄생의 순간, 니타르와 쌍둥이 형 아르트니의 이야기가 엮여 짜인 직물 같은 이 텍스트에는 여러 무늬가 어른거린다. 책을 펼치자마자 원시림을 비롯한 야생의 숲이며 바다, 강은 물론이고 온갖 짐승들이 우글거린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나 방랑기 외에도 신화, 전설, 꿈, 시적 단장(短章), 샤먼과 신선의 이야기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짐승들이 말을 하고, 샤먼 사르의 나이가 천 살을 넘었다든가, 수도사 루키우스의 새끼 고양이가 티티새로 환생하고, 아르트니가 올빼미로 환생하며, 숲에 갔던 루키우스가 아름다운 새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을 뿐인데 그새 300년이 흘렀다든가 하는, 어쩌면 우리에겐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가득 담긴 키냐르의 풍성하고 화려한 상상의 숲에서 그저 길을 잃어도 좋을 것이다.


Lacrimae rerum(만물의 눈물)

 

‘눈물’은 슬픈 감정으로 유발되는 생리적 현상이라는 생각에 갇혀 있으면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다. 제목인 ‘눈물들’은 Lacrimae rerum(만물의 눈물)에서 기인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1권 426행에 나오는 이 시구에 가슴이 먹먹하도록 감동했던 키냐르는 애초에 이 책의 제목을 ‘만물의 눈물’이라 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옛날’이라는 빅뱅 혹은 원초적 분출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원자들’이며 그것은 곧 ‘만물의 눈물’이라는 이유에서다.(213쪽) 결국 제목은 ‘눈물들’로 짧아졌지만.
눈물에 함유된 기원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에피소드들도 등장한다. 가령 샤먼 사르의 새파란 동공이 절벽의 동굴에서 끝없이 흘러내려 솜 강이 생겼다거나(42쪽), 개구리들의 합창(음악)을 들으며 기원에 접속된 이들이 주저앉아 나지막하게 ‘엄마’를 부르며 눈시울을 적신다(17쪽)든가, 등등.
‘프랑스어의 출생증명’을 기록한 니타르는 프랑스어를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하던 날 ‘얼어붙은 땅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143쪽)고 밝히고 있다. 우주의 빅뱅을 목도한 이 아무도 없으나 그것은 필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장관이었으리라. 언어(프랑스어)의 원초적 분출이 일어나는 순간 우주 공간으로 원자들(만물의 눈물)이 떨어져 내리듯 하늘에서 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 것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니타르와 아르트니

 

프랑스어의 탄생이 구슬이라면 그것을 꿰는 실은 니타르와 아르트니의 이야기이다. 사료에 의하면 실존인물이었던 니타르에게는 남자 형제(frère)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작가가 쌍둥이 형으로 설정하고 이름(아르트니)과 삶을 재구성한다. 니타르의 삶 역시 실재하는 큰 줄기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가지와 잎들을 갖춘 무성한 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작가는 두 형제의 삶의 궤적을 그려나간다. 그것도 키냐르 자신의 삶의 궤적과 동일하게.
두 형제는 이중의 얽힘 장치(일란성 쌍둥이/Nitard와 Artnid란 철자 배열만 다른 같은 이름)로 묶여 있다. 아마도 작가는 애초에 한 인물(하나의 영혼)로 설정하려고 의도한 것은 아닐까? 니타르와 아르트니는 한 인물, 즉 키냐르 자신이다. 궁정사관인 니타르는 작가 키냐르의 분신이며, 일체를 버리고 방랑하는 아르트니는 도가적 ‘비움’의 철학을 지향하는 키냐르의 표상이다.
키냐르는 자신을 규정짓는 역할이나 의무, 부모와 가족의 기대, 남들의 욕망 같은 것들을 내려놓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죄책감마저 완전히 사라질 때 비로소 ‘비워진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죽음을 앞둔 아르트니가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문하며 자책에 빠지는 대목에 대해서도, 키냐르는 아르트니가 삶을 낭비한 게 아니라 일종의 야생적 금욕으로 자신을 비워낸 결과라고 말한다. 번민조차도 비워낸 마음의 자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듯하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2016년 초 잡지 Axt에서 키냐르와의 서면 인터뷰가 진행 중일 때 키냐르는 이 책을 집필 중이었고,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Axt 측의 요청에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답했다. 이 책의 번역은 그의 말에 대한 화답이다.


■ 본문 속으로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게 뭔지 이제 잘 알게 됐어요. 근데 당신은, 나의 지성과 아름다움 대신에 뭘 주실래요?”
“나의 용기와 두려움이요.”
“앞의 것만 받을게요.”
“그 둘이 하나인 걸요.”
“앞의 것에 힘을 쏟았더라면 그게 하나가 되었을 텐데요.”
“전혀 아니에요. 두려움이 용기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거든요. [……] 나는 반쪽짜리 왕자예요. 잡종 왕자. 하지만 원정의 피로나 산악의 눈, 전투의 난폭성, 느닷없이 닥칠 죽음 따위를 두려워하진 않아요.”
“그렇다면 당신의 두려움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해주세요.”
“내가 돌아오면, 당신이 내 사람이 될 건지 말해주세요. 나와 결혼해주지 않을까 봐 그게 두려워요.” _48~49쪽

 

마음 깊이 도사렸던 두려움이 이거였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그가 두려워하는 거였다. 사랑하는 대상 앞에서의 유약함, 바로 이것이 유일한, 그러나 엄청난 두려움 이었다. 어릴 때부터 냉정하거나 화가 나 있는 얼굴들만 봐온 그였다. 그의 존재가 걸리적거린다든가, 그의 요구에 역정을 낸다든가, 그가 어린 탓에 지친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그럴 때면 그들의 준엄한 눈초리를 피해 멀리 가서 흐느껴 울었다.
쌍둥이 동생인 니타르만은 그의 눈물을 알았고, 그의 물러남을 지켜주었고, 그의 도주를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르트니는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에서 벗어나 먼 곳에서 흐느껴 울었다. _50~51쪽

 

옛날이야기에서는 기적이 자주 언급된다. 그것은 오늘날에는 옛날처럼 느닷없이 발생하는 기적의 빈도가 줄어서가 아니다. 옛날처럼 우리가 그런 사건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뿐더러, 공동생활의 반복된 임무 수행에서는 정말로 마음을 뒤흔들 만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탓이다.
[……] 그래서 기적이 우글거려도 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_63~64쪽

 

842년 2월 14일 금요일, 아침 끝자락, 추위 속에서 그들의 입술 위로 기이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이 안개를 프랑스어라고 부른다.
니타르는 최초로 프랑스어를 문자로 기록한다.
[……]
상징적인 것이 꿈틀대는 순간을 인지하는 사회란 거의 없다. 자신들의 언어가 태어난 날짜, 상황, 장소, 일기(日氣).
기원의 우연.
숫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 문자로 변환되는 광기 어린 순간을 지켜보는 것, 이것은 기적에 속한다. 우리는 새로운 상징계가 발생해서 단번에 확립되는 동요를 목도한다. _140~41쪽

 

“아니, 문제는 내 죽음이 아니라 내가 다시 만나야 할 죽은 이들일세.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죽은 이들 말이야. 오래전에 죽은 이들이 내게 말을 한다네.”
[……]
“나를 힘들게 하는 건 그들 중 죽은 늙은 여인이야. [……] 유독 이 노파가 나한테 바싹 다가와, [……] 아주 나지막하게 이렇게 묻는 걸세. ‘왜 당신은 아르트니로 살지 못했어? 왜 강아지처럼 남들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 거지? 왜 언제나 남들 흉내만 낸 거야? 원숭이처럼, 무대 위의 마임 배우처럼, 물 위에 비친 반영(反影)처럼, 내딛는 발걸음을 악착스레 뒤쫓는 그림자처럼, 왜 그랬어?’” _202~206쪽

 

Lacrimae rerum(만물의 눈물).
하늘에서 떨어지는 원자들은 만물의 눈물들이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는 “지상에 존재하는 비길 데 없는 형상들과 풍경들은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들이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을 건드리는 한, 결국 고통의 눈물이 되고야 만다”라고 썼다. _213쪽

목차

Ⅰ (하이델베에르만에 대한 책)
Ⅱ (알 수 없는 마음에 관한 책)
Ⅲ (Wo Europa anfängt? 유럽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Ⅳ (앙길베르의 시집)
Ⅴ (로마력 새해 첫날에 바쳐진 책)
Ⅵ (니타르의 죽음에 관한 책)
Ⅶ (성녀 욀랄리의 세퀜티아)
Ⅷ (에덴에 관한 책)
Ⅸ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책)
Ⅹ (Liber eruditorum석학들의 책)

옮긴이의 말 ․ 프랑스어 탄생의 현장스케치
작가 연보
작품 목록

작가 소개

파스칼 키냐르 지음

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나 1969년에 첫 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출간했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열기, 실존주의 · 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 · 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그리고 20여 년 가까이 계속된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이 그의 작품 곳곳의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귀환한 뒤 글쓰기 방식에 큰 변화를 겪고 쓴 첫 작품 『은밀한 생』으로 1998년 ‘문인 협회 춘계대상’을 받았으며, 『떠도는 그림자들』로 2002년 공쿠르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표작으로 『로마의 테라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섹스와 공포』 『옛날에 대하여』 『심연들』 『빌라 아말리아』 『세상의 모든 아침』 『신비한 결속』 『부테스』 『눈물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등이 있다.

송의경 옮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덕성여자대학교에 출강했다. 키냐르의 작품 『은밀한 생』 『로마의 테라스』 『떠도는 그림자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섹스와 공포』 『옛날에 대하여』 『빌라 아말리아』 『신비한 결속』 『부테스』 『눈물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와 그 외에 다수의 문학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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