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 정희경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8년 11월 5일 | ISBN 9788932035000

사양 사륙변형판 120x188 · 134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이 작품 속에는 내가 숨어 있어요.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절대적 사랑을 찾아 헤매는 언어의 모험

 

우리에게 『연인』으로 잘 알려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 『모데라토 칸타빌레』(정희경 옮김)가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독자들 앞에 다시 선보이게 되었다. 그의 대표작 『연인』이 삶과 글쓰기가 융합된 일종의 자서전이라면, 『모데라토 칸타빌레』 역시 교묘하게 감추어진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다. 자신이 겪은,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강렬한 개인적 체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작품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절대적 사랑을 찾아 헤매는 한 여인의 내적 갈등의 역정을 간접적 문체 기법, 보류와 암시의 언어를 통해 애잔하고도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소설은 ‘모데라토 칸타빌레’의 뜻을 아이에게 다그치는 피아노 선생과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집스레 대답하지 않는 아이의 실랑이로 시작된다. 그들이 실랑이하는 동안, 갑자기 거리에서 큰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카페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죽인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소도시 공장주의 아내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며 10년 전 결혼한 이래 남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라고는 없는 완벽한 처신을 해온 주인공 ‘안 데바레드’는 그날 그곳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여자를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애무하는 남자를 목도하게 되고, 그 사건을 계기로 그녀의 내면 깊숙이 억눌려 있던 본능이 눈뜨기 시작한다. “죽은 다음에도 기쁜 듯 미소 짓고” 있었던 여자와 그녀의 뜻에 따라 여자를 살해하고 자신도 피투성이가 되어 죽은 여자를 애무하는 광경은 삶과 죽음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입맞춤으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그 욕망이 일상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고 열정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사랑의 광기로 관통된 죽음은 주인공 ‘안’에게 살아 있는 매혹적인 것이 된다.
이렇듯 소설은 완전한 사랑을 재현하려는 ‘안’의 내적 모험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상류층의 주거지와는 정반대편 공장 지대에 위치한 카페를 드나들며 노동자 ‘쇼뱅’을 만나 싸구려 포도주를 마시면서 살인 사건의 두 주인공을 재현함으로써 그들이 도달한 경지를 맛보려는 시도로 구체화된다. ‘안’과 ‘쇼뱅’은 상상과 허구 속에서 자신들이 두 죽음의 연인에게서 느꼈다고 믿는 것, 상상이 현실에 중첩시킨 것을 재창조해나간다. 여기서 ‘쇼뱅’은 마치 심리 치료사처럼 ‘안’의 내적 모험을 돕는 역할로서 기능한다. 방금 표면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한 ‘안’의 일탈의 욕망을 포착하고 그것을 끌어내는 집요한 시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안’은 이러한 내적 모험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 죽기를 원할 정도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마침내 그들은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모험은 환각 속에서 서로 스친 두 손과 입술, 그리고 말로써 이루어진 것일 뿐 더 이상의 구체적 행동에는 이르지 못한다.
이처럼 우연히 목도한 절대적 사랑의 실체를 찾아 가망 없는 언어의 유희를 계속하는 ‘안 데바레드’는 전형적인 뒤라스의 여인이다. 특히 이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기법 대신, 침묵으로 일관된 긴장 속에 놓여 있는 주인공의 위기가 냉정하면서도 극적으로 그려지는 글쓰기 기법을 선택하고 있다. 묘사나 분석, 설명은 사라지고, 암시가 담긴 간결함이 작품을 지배하며, 성격의 묘사나 사건의 기술도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간접적인 문체적 수단을 이용해 전달된다. 서술자의 짧은 개입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의 대화가 간접적으로 드러내주는 것, 불완전하고 불규칙하나마 그들의 행동에서 언뜻언뜻 엿보이는 것을 통해 독자들은 해독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 8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주인공 ‘안’의 아들이 피아노 레슨을 받는 장면(1, 5장), ‘안’이 ‘쇼뱅’과 만나는 카페 정경과 대화(2~4, 6, 8장), 그리고 ‘안’의 저택에서 열리는 만찬 장면(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에서는 소나티네가 배경 음악을 이루고 있으며 제목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그 연주 방법의 지시이다. 침묵과 공허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이야기의 애잔한 어조, 조심스러운 주문呪文의 목소리가 바로 ‘모데라토 칸타빌레,’ 즉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이다.
이렇듯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뒤라스의 글쓰기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새로운 언어 기법의 지평을 열어 보인 소설이라고 평가된다. 알랭 로브그리예의 지적처럼,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되고 충만하며 그 자체로 닫혀 있는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남겨놓은 여백의 의미와 침묵의 소리를 따라가며 나름대로의 작품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축해나가도록 초대받은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미지와 은유, 단어의 형태, 내포 의미, 문장 형식, 시제 그리고 구두점에 이르기까지 작은 구성 요소 하나하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절대적 사랑을 헤매는 이 언어의 모험에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밝히는 것인데, 『모데라토 칸타빌레』에서 나는 비밀스레 겪어낸 개인적 체험을 전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을까 두려워 이 경험 주변에 벽을 쌓고 거울로 둘러놓았지요. 경험이 격렬했던 만큼 더욱 엄격한 형식을 택한 것이랍니다. 이 작품 속에는 내가 숨어 있어요. 다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욱더 말입니다.”

 

책 속으로

“그런 복도가 있지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말씀하신 그대로예요. 그건 그렇고, 제발 말씀해보세요. 어떻게 해서 그 여자는 자신이 남자에게 원하는 게 바로 그거라는 걸 알아낼 수 있었는지 말이에요. 어떻게 자신이 그에게서 뭘 갈망하는지를 그토록 확실하게 알았을까요?”
그는 좀 사나워진 눈초리로 여자의 눈을 응시했다.
“제 생각엔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어느 날 새벽, 여자는 그에게 간절히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어떤 것인지를 그 남자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게 분명해졌단 말입니다. 그런 걸 알게 되었을 땐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41~42쪽)

“이렇게 지나가는 사람들 말고는 하루하루의 일과가 정해진 시간에 따라 판에 박은 듯이 이루어지죠. 계속할 수가 없군요.”
“우리에겐 남은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계속하십시오.”
“늘 똑같은 식사 시간이 되돌아오죠. 그리고 밤이 찾아오고. 어느 날 전 피아노 레슨을 생각해냈어요.” (81쪽)

“그래서 그 여자는 떠났던가요?”
“때때로 남자가 시키는 대로 나갔죠. 가고 싶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안 데바레드는 이 낯선 사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채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망을 보는 짐승처럼.
“제발.” 그 여자가 애원했다.
“그러다가 남자가 여자를 바라볼 때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이는 그런 때가 오고야 말았어요. 그 여자는 이제 더 이상 예쁘지도, 밉지도,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모습이 되었고,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과도 닮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웠어요. 그땐 마지막 휴가 중이었죠. 겨울이 되었어요. 라메르가로 돌아가실 거죠. 곧 여덟번째 밤이 될 겁니다.” (85~86쪽)

오렌지 소스를 곁들인 오리 요리가 다시 한번 지나갈 것이다. 안 데바레드는 조금 전과 같은 몸짓으로 자기를 그냥 지나쳐달라고 애원할 것이다. 그녀를 그냥 지나쳐갈 것이다. 그 여자는 소리 없이 허리가 꺾이는 괴로움으로, 그 타는 듯한 고통으로, 자신의 은신처로 되돌아간다.
사내는 정원 철책을 놓아버렸다. 그는 힘을 써 일그러진 텅 빈 두 손을 들여다본다. 저만치 팔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서 운명이 결정되었다. (100쪽)

안 데바레드의 신음 소리가 다시 흘러나와 더 커졌다. 그녀는 다시 손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여자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가, 결국 고통스럽게 알아차리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손을 들어 그 여자 손 위에 포개놓았다. 그들의 손은 너무도 차가워서 오직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소망 속에서만 환각으로 서로 스쳐 갔다. 지금과 같이 소망 속에서 말고는 달리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손은 죽음의 포즈로 굳어진 채 그렇게 머물러 있었다. (108쪽)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112쪽)


■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소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은 빛의 파장처럼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펼쳐드립니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작지만 확실한 고전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1차분 다섯 권 출간!

1996년 황순원의 『별』을 시작으로 한국 문고판 시장의 르네상스를 주도해온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2011년까지 모두 101권의 책을 펴내며 독자들에게 시대와 영역을 가로지르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펼쳐 보였다. 그동안 보여준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성원에 힘입어 문학과지성사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문지 스펙트럼>은 오래도록 독자들 곁을 지키며 사랑받아온 책, 현재에도 유의미하며 앞으로도 계속 읽힐 책들을 엄선하여 1차분 다섯 권을 먼저 독자들 앞에 선보인다. 이제 우리는 시간의 타래처럼 오랜 세월의 무게로 더 깊고 두터워진 고전의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기실, 고전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인류의 보편적 정서를 아우르는 우리 인간의 이야기이므로. 이렇듯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우리 삶 속에, 삶 가까이에 자리한 고전의 가치를 현재적 의미로 새롭게 되새기는 목록들로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더 작고 더 강하고 더 가까이 독자들 곁에 다가갈 준비를 마쳤다. 다양한 주제와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다양한 언어권의 작품들이 보다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끔 하는 접점이 될 것이다.
가장 먼저 독자들을 찾아갈 이 다섯 권의 작품들은 세심한 개정 작업을 거쳐 모던하고 세련된 장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앞으로도 계속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빛의 파장처럼 다채로운 세계 문학과 사상의 고전들을 독자들에게 펼쳐줄 것이다. 문학의 섬세함으로 혹은 사유의 힘으로.
다양한 빛깔과 무늬로 우리 삶과 사회의 면면을 비출 ‘문지 스펙트럼’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1.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정희경 옮김)
2.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 없는 세대』 (김주연 옮김)
3. 에드거 앨런 포, 『도둑맞은 편지』 (김진경 옮김)
4. 오에 겐자부로,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유숙자 옮김) 
5.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이정임 옮김)

목차

모데라토 칸타빌레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가 소개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1914~1996)
1914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코친차이나에서 태어나 베트남과 캄보디아 지역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열여덟 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 법학,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43년 ‘뒤라스’라는 필명으로 소설 『철면피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인도차이나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은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를 비롯해 『부영사』 『갠지스 강의 여인』 등 수많은 작품들로 변주되었다. 특히 1984년 공쿠르 상을 수상한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한 뒤라스는 감독을 맡은 「인디아 송」이 1975년 칸 영화제 예술・비평 부문에서 수상하면서 유럽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이었고, 이 당시의 경험을 담은 소설 『고통』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뒤라스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작은 공원』 등 50여 년에 걸쳐 70편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하며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인생 편력을 거쳐 온 뒤라스는 1995년 『이게 다예요』를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1996년 영면하였다.

정희경 옮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파리 7대학에서 수학했다. 지은 책으로 『은유, 그 형식과 의미작용』이 있고, 옮긴 책으로 『천재의 역사 2』 『카산드라』 『카를멘』 『발 이야기 그리고 또 다른 상상』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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