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존재들을 돌보는 따스하고 넉넉한
자연의 품을 노래하다!
■ 숨어 있던 자연의 구석구석을 생명으로 불러 주는 동시집
자신이 발을 디디고 있는 자연의 생태와 변화에 늘 귀 기울이고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소중함을 노래해 온 안학수 시인의 동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의 시어는 자연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미사여구 대신 담백하고 솔직하게 자연과 사람을 관찰하고 담담한 듯 따뜻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 노래는 익숙한 것들조차 새롭게 보이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산기슭의 고주박(땅에 박힌 채 썩은 소나무의 그루터기)이
둥치 큰 나무일 때
비바람을 참아 내며
벌레들도 길러 내고
다람쥐도 풀어 주었다고
산그늘이 구름옷을 입혔다.구름버섯 층층 입고
십구 층 구름탑 되었다._「운지버섯」 전문
특히 작고 여리고 홀로이고 쓸쓸한 존재를 향한 지극한 마음을 버리지 않고 시에 정성스레 투영한다. 무심하게 지나쳐 버려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을 것 같은 대상도 시인의 눈에는 나름의 역사와 생명과 근원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답고 살 만한 세상일지 시를 감상하며 곱씹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 대상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치만큼 연주를 못해도
매미만큼 노래를 못해도
나비처럼 날개 춤 못 춰도
풀 죽지 마라 땅강아지야.여치도 매미도 나비도
어둡고 답답한 땅속 길을
너처럼 다니지 못한단다.물고기가 물속을 헤엄치듯
흙 속을 헤엄치는 넌
대견하고 귀여운 강아지란다._「땅강아지에게」 전문
이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동시 읽는 즐거움도 놓치지 않고 선사한다. 경쾌하고 운율이 느껴지는 재미있는 의성어들을 아이들의 일상에 밀착시켜 보여 주는데 소리 내어 따라 읽다 보면 소리와 음성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누구라도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초시초시초시 사치사치사치
츄샥츄샥츄샥 쓰가쓰가쓰가
고그고그고그 게에게에게에[……]
미나리도 미라시도
대파쪽파도 도파솔파도
시래기도 시레시도_「양치질하기」 부분
■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도 사랑할 수 있는 큰 품으로 자라나기를!
바다와 갯벌, 산과 나무의 생명력, 그 안에서 삶을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어리고 돌봄이 필요한 존재만 아니라 쇠약하고 버려진 존재에게로까지 확장된다. 그리고 생명에서 확장된 자연의 큰 품은 생명이 아닌, 개펄에 박혀 녹스는 닻, 스티로폼 쪼가리, 종이컵, 사금파리, 그물 조각 등 물질세계의 모든 먼지까지도 바다라는 이름 안에 들인다. 이렇듯 큰 품을 보고 노래할 수 있는 것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권두시 「반딧불이」에서 말하듯 우리 또한 작은 존재만큼이라도 빛을 내길 기원하는 시인의 마음이 50편의 시에 정갈하게 담겨 있다.
너처럼만
캄캄한 밤 날아갈 수 있다면너만큼만
어둔 세상 밝혀 줄 수 있다면너와 같이
별이 되어 반짝일 수 있다면_「반딧불이」 전문
권두 시
반딧불이
제1부 나는 나대로
마술 대포
할머니의 얼굴
늦은 장거리
병
나는 나대로
겨울 새벽
양치질하기
아잇! 깜짝이야!
고장 난 자판기
제2부 하늘운동장
운지버섯
새조개
철새와 왜가리
거미
두루미 홀로
하늘운동장
겨울 강
쌓인 눈 녹을 때
서릿발
제3부 밤벌레
잠자리
밤벌레
땅강아지에게
모범 재활용
명개에 뜬 달
바늘과 실
쥐똥나무
도꼬마리와 도깨비바늘
일회용 화분
우리 강아지
제4부 아주 특별한 손님
요즘 산골 마을
이상한 집
산골 마을엔
아리랑의 뜻
우두커니
옛날 산길
아주 특별한 손님
할아버지의 길
할머니의 뜰
승아네 할머니
옛집 감나무
제5부 바다라는 이름
개펄 풍경
그 이름 바다
꾸준한 파도
고마운 파도
갯방풍 꽃
바다의 이빨
물결의 목소리
낚시꾼 앉았던 자리
어떤 스티로폼의 슬픔
파도가 한 일
부탄가스 캔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