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문학과지성 시인선 R 13

박상순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17년 10월 20일 | ISBN 9788932030456

사양 변형판 128x205 · 114쪽 | 가격 8,000원

책소개

전위나 전복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3차원 세상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다른 차원의 시

2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새롭고 놀라운 ‘여주인공, 마라나’

 

1975년 문학과지성사 창립과 함께 시작하여 지난 40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과 문인들의 아낌 속에 한국 문학사상 가장 강력한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한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2012년 겨울부터 그 안에 방 하나를 새로 내어 〈시인선 R〉을 펴내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기에 출간되었다가 여러 사정으로 절판된 시집들 가운데, 지금-여기에서 새로운 시의 미적 갱신과 우리의 새로운 정신적 지평을 여는 데 기여하는 시들을 찾아 소개하는 시리즈이다. 이성복, 황지우, 오규원, 김혜순, 이수명 들의 시적 요체를 가장 그들다운 시적 틀에 담고 있는 시집들부터 황병승, 김경주, 이민하, 신영배 들의 신선하고 독특한 매력을 아낌없이 담고 있는 첫 시집들까지 〈시인선 R〉의 목록은 한 권 한 권이 쌓일 때마다, 단순한 ‘복간’이나 ‘반복’에 그치지 않고 중요하고 개성 넘치는 또 하나의 현대 시사로 거듭나고 있다. 이 시리즈의 열세번째 시집으로 박상순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문학과지성 시인선 R 13, 2017)을 소개한다.

 

 

예술은 하나의 세계를 대체하는 끊임없는 생성의 놀이

 

1991년 『작가세계』로 데뷔해 올해로 등단 29년차인 박상순은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1993)를 낸 이후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1996), 『Love Adagio』(2004)를 내고 오랜 시간 동안 시집을 엮지 않다가 13년 만에 네번째 시집 『슬픈 감자 200그램』(2017)을 낸, 과작이지만 자신의 시 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중견시인이다.

문지 시인선 R로 다시 태어난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은 1996년 세계사에서 발행된 두번째 시집으로, 첫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가 1990년대 시단에 가한 충격을 이어가는 첫 시집의 후속편이었다. 더욱이 당시는 물론 지금도 관행처럼 되어 있는 시집 해설을 싣지 않은 파격을 보여준 시집이었다. 해설을 배제한 시집 구성은, 이후 박상순 시집의 특징이 되었다.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새롭고 신선한 시편들로 가득한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은 그 어떤 시집보다 문지 시인선 R에 부합하는 시집이다. 1부는 1996년 세계사에서 출간할 때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새롭게 추리고 시어의 교체와 삭제, 시행의 배열에 변화를 주었다. 2부는 1996년 판에는 없는 미출간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해설 대신 1997년에 쓴 시인의 산문을 수정, 보완하여 실었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이때의 언어는 질료인으로서의 언어이다. 약속된 질료는 예술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시적 언어는 약속되지 않은 질료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의 동인(動因)만을 제공한다. 실재와 상상과 상징의 세계 따위를 밀고 당기는 힘.
그 힘은 말하려는 것 바깥에 또 다른 말해짐이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힘이다. 이때 언어는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깥에 존재하는 말해짐도 아니다. 그러한 에너지의 존재를 표출시키는 것이 언어 예술이 취할 미적 태도이다.” (시집 수록 산문 「그림 카드와 종이 놀이」에서)

풀밭에는 분홍 나무
풀밭에는 양 세 마리
두 마리는 마주 보고
한 마리는 옆을 보고

오른쪽 가슴으로
굵은 선이 지나는
그림 찍힌
티셔츠
―「양 세 마리」 부분

 

박상순은 일상의 단어, 미니멀한 말들로써,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가 외면해온 문장으로 자신의 언어를 세우고 허물고 또 그 자리에 세우기를 반복한다. 이때의 반복은 단순 반복, 즉 같은 것을 세우는 반복이 아니라 난반사의 반복, 무정형의 반복이다. 그가 세운 언어의, 시의 세상은 쉬우면서도 어렵고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다. 집으로 비유하면 허공에 띄운 집이거나, 쉼 없이 굴러가는 집이다. 중력 없는, 대지 없는 건축물처럼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건축물은 과학적으로 건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과학적인 구성물,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축(물)인 것이다.


 

두 세기에 걸친, 30여 년의 전위, 20여 년의 전복

 

전위라는 수식어로만 박상순의 시는 규정되지 않는다. 전위라는 말에는 당연히 시간성이 내재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위는 소멸하거나 정전(캐논)이 된다. 물론 이 시간은 일상의 시간이나 역사의 시간으로 대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전위는 언제나 전위에 머물지는 못한다. 그런데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이 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 시편들은 소멸은커녕 여전히 정전의 자리에도 안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박상순의 시편들을 굳이 전위라고 한다면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도 전위이다.

전복이라는 수식어로도 그의 시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기존의 질서를 일시에 뒤집는, 기존의 서정시 또는 “리얼리즘이 판을 치는 우리 시단”(이승훈, 첫 시집 해설 「결핍의 공간에서 태어나는 자아」)을 뒤집는 반리얼리즘 시라는 평가는 박상순 시의 한 단면일 뿐이다.

 

잘 가세요. 그 여자는 물속에서 다시 떠오를 거예요. 당신의 빵 공장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 기차가 지나가고 있나요?

그 기차는 빵을 싣고 가나요? 저 아래서 지하철을 타세요. 내 어머니가 기다리실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만난다 할지라도 당신을 알아볼 수 없겠지요? 그렇군요. 그래요. 당신 그림엔 당신이 없겠군요. 그렇겠지요.
―「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2년 뒤」 부분

 

박상순 시는 각각의 이미지가 레이어로 겹쳐 있어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엄연히 층위가 다른 곳에 존재한다. 박상순 시에 등장하는 단어(빵, 공장, 철도 여자, 물속, 가다, 싣다, 기다리다, 떠오르다 등등)는 그 자체로 새롭지도 않고 미래적이지도 않다. 그렇다고 낯간지러운(?) ‘시적 허용’식의 단어도 없다. ‘바로 이곳’의 사람들이 말할 때 쓰는 그런 평범한 단어다. 문장을 이룬 단어들은 시가 아니라면 너무도 평이해 문장 하나하나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는 사람들은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곧 그 의미는 휘발되고 이미지와 이미지는 서로 다른 레이어에 놓여 겹쳐지면서 충돌하거나 아득히 멀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구축된 시편들은 3차원 이상에 자리하면서 3차원적 의미를 무화시킨다. 독자들은 3차원 이상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시적 상상력으로 3차원 이상에 실재해야 그의 시를 온전히 읽을 수 있다. 아니, 그 시편들을 읽음으로써 독자들은 3차원 이상의 시적 차원을 상상할 수 있다.


 

차원이 다른 시, “구조에서 구축으로, 시선에서 포착으로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해도 코끼리의 전체상을 알게 되는 것이 시적 발견, 시인의 말로는 ‘포착’이다. 그것은 쉽게 말해 시적 상상력이다. 이때 상상력이란 허무맹랑한, 기괴한 등의 수식어로 눙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과학적 상상력에 가깝다. 2차원의 사람은 3차원의 사람이 길을 가다가 점프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이때 2차원의 사람이 보는 것은 3차원의 사람이 길을 가다가 불현듯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박상순의 시를 읽는 독자들이 어리둥절할 때는 바로 이런 때이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느닷없이 사라진 이미지 때문에 “난해하다” “기괴하다”는 감상평이 첫 시집 이후 지금까지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현실, 즉 3차원의 세계에서 시는 세 개의 좌푯값을 갖는다. 어떤 변방의 시도, 전위의 시도, 인생과 자연을 노래하는 서정시도 그 좌푯값은 x, y, z 세 개다. 세 개의 값을 숫자로 변환하여 표시했을 때 그들 숫자 사이가 멀다 해도 결국은 3차원 공간 어느 자리의 한 점으로 표시된다. 시인들은 영원한 현재의 한 지점으로 시의 자리를 표시해온 것이다. 현대시는 여기에 시간을 더함으로써 자신의 모습을 현대화한다. 박상순의 시편들은 여기에 또 한 차원을 더해 자신의 시적 공간을 확정한다.

3차원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자는 수식을 사용하고, 시인은 시적 언어를 사용한다. 수식이나 언어는 모두 3차원의 것이므로 그 자체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수식으로 표현된 명제, 언어로 표현된 시는 다른 차원의 단면을 3차원의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차원을 상상하게 해준다. 과학적 상상력, 시적 상상력이란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모습을 보게 하는 힘이다.

 

“수용자가 어떤 구조적 관점에 놓일 때, 작품은 항상 배타성을 지닌다. 배타성 내에서 예술적 대상은 비로소 이타화될 수 있다. 여기에 의지가 개입한다. 그러나 의지의 개입을 자의적으로 차단할 때 한편으로 예술은 고유성(최소 단위의 정체성)을 성취한다. 고유성은 의지의 발동을 호소한다. 동시에 의지는 고유성에게 복제를 호소한다. 이것은 정신과 형식을 연결하는 내적 필연성인 예술적 표현 의지이다.” (「그림 카드와 종이 놀이」에서)

 

심심한 앵무새와 흰 두 발 짐승
이라고 쓰고
물병 또는 사랑이라고 읽는다.

심심한 앵무새와 흰 두 발 짐승
이라고 쓰고
불평 또는 햇빛 쏟아지는 거리라고 읽는다.
또는 너에게, 또는 나에게,라고도 읽는다.

우아한 곡선, 밤새도록 내리는 비
라고도 쓰고
심심한 앵무새 또는
휘저을 팔이 없는, 흰 두 발 짐승이라고 읽는다.
―「두 눈을 깜박이는 기하학적 공간」 전문

 

“[……] 내 시에 나타나는 끝없는 변주와 그런 변주의 결과로 빚어지는 수많은 이미지들의 모든 과정은 하나의 트릭trick입니다. 이것은 어떤 방식의 마술이며 장난이고 혼란입니다. 트릭이라면 혼란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고급한 기술hightech이 빚어낸 혁신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혼란과 혁신을 통해 <미적 경험>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것의 즐거움을 통해 문학적인 의미나 가치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
[……] 환상이나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나의 시들 또한 일상의 삶에서 분리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적인 것을 만드는 작업의 과정과 결과가 <미적 경험>이라는 범주에 있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
그래도 그것이 내 안에 존재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 생명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것은 일상적인 사랑의 모습으로 싹트기도 하겠지만, 어떤 다른 방향으로, 포물선이나 진자운동처럼 방향이나 속도가 변합니다. 내적으로 이것은 자유나 욕망의 운동력이 되고, 외적으로는 실험이나 변혁에 관한 에너지가 됩니다. 그것이 증폭되어, 내 시는 물론 나의 삶을 예술적 방향으로 전환시킵니다. [……]
그렇게 만나는 접점에서 우리는 시대정신에 관한 그림을 그리고, 문학적 형식을 만들고 의미나 가치의 변화 또는 재정립을 시도하며 인생의 시간을 소진합니다. 그러나 나의 삶은, 모든 것을 헛되이 다 써버리는 ‘탕진’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벌거벗은 생명으로 체제 안에서 희생되는 ‘호모 사케르homo sacer’일 수도 있습니다. 이성이나 역사 등의 추상적인 관념만을 높이 세운다면 생명은 파멸에나 파국에나 이르겠지요.”
―박상순·김호성 대담, 「미적 경험의 즐거움」, 『현대시』(2017년 4월호)에서


 

■ 시집 속으로

 

두 눈에 조개껍데기를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오래된 철교를 부수는 소리

두 눈에 조개껍데기를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허리에 돋아난 제 발들을 떼어내는 소리

두 눈에 조개껍데기를 박은 사람이 안개 속에서
내 눈동자를 빼 가는 소리
― 「내가 본 마지막 겨울」 전문

 

누군가 사라진다. 일곱 살의 나, 여덟 살의 나, 아홉 살의 나. 누군가 사라진다. 한 사람의 빵집 아저씨, 두 사람의 빵집 아저씨, 세 사람의 아저씨. 누군가 사라진다. 한 사람의 기관사, 두 사람의 기관사.

누군가 세계에서 사라진다. 우산을 들고 촛불을 들고 내 머리를 들고 물통을 들고, 마라나의 구두를 들고 내 손톱을 들고, 시계를 들고, 마라나의 빛나는 입술을 들고

누군가 사라진다. 세계를 들고. 마라나를 남기고 나를 남기고 누군가 사라진다. 한 사람의 마라나, 두 사람의 마라나, 세 사람의 마라나. 네 사람의 마라나, 다섯 사람의 마라나.
―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3」 부분

 

내 소원은 죽은 토끼, 죽은 토끼는 녹슨 총, 녹슨 총은 빗소리, 빗소리는 꽃무늬, 꽃무늬는 발가락, 발가락은 두번째 죽은 토끼, 두번째 죽은 토끼는 푸른 잎, 푸른 잎은 나비, 누군가의 가슴에 앉은 두 마리 나비. 나비는 가로등, 가로등은 눈 덮인 산, 눈 덮인 산은 술잔 속에 빠진 별, 별은 죽은 토끼를 낳은 암소, 암소는 나의 고통, 내 고통은 네가 준 조약돌, 네가 준 조약돌은 끝없이 부서지는 나, 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너, 너는 내 소원. 내 소원은 죽은 토끼
― 「내 소원은 죽은 토끼」 전문

 

■ 시인의 말

시는 그것을 말함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말해지는 언어이다. ‘나’를 무너뜨리면서도, 어떤 희망도 미래도 없는 ‘나’를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는 생존이다. _산문 「그림 카드와 종이 놀이」(박상순)에서

 

 

■ 시집 표4(뒤표지글)

이런 명랑한 허무를 보았나.
이렇게 죽음의 허탈 속으로 줄달음쳐 들어가는 유쾌한 방울 소리를 들은 적이 있나. 나는 없다. 나는 내가 죽는 줄도 모르고 구경에 빠져든 관객처럼 그의 시 안에서 딸랑거린다.
이런 순수한 비트와 맴도는 이미지만으로 구현한 세상의 살갗을 만져보았나.
이렇게 시만 들어갈 수 있는 6차원 존재 세계에 가본 적이 있나. 나는 없다. 나는 그가 그린 심연의 미래, 무늬의 세상에 이미 가 있다.
이런 비성년 화자의 목소리로 만든 소리의 사슬을 몸에 둘러본 적이 있나.
이렇게 리듬과 라임을 타고 와서 자기 존재와 시간을 내적 벼랑으로 떨어뜨려버린 자를 만난 적이 있나. 나는 없다. 나는 그의 시 안에서 영혼과 심장만으로 의미와 이름의 세계를 건너뛴다. 그렇지만 ‘울고 있는 꼬리의 굽은 어깨’의 정서에 젖어 왠지 울게 된다.
이런 철없는 신과 말간 눈동자를 가진 짐승이 함께 눈뜨는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나.
이렇게 흉내의 흉내로 다른 세상을 구축해가는 시인을 만난 적이 있나. 나는 없다. 나는 생활의 속옷과 기억의 모자를 벗고 빛과 소리의 명증성 속으로 들어간다. 이 시인의 직업이 전도된 세상의 ‘안내원’이기에, 그의 뛰노는 발걸음의 보폭을 그대로 따라서. _김혜순(시인)

목차

1부
붉은 체크무늬의 외투를 뒤집어 쓴 태양/양 세 마리/돌이 울고 있었다/내가 본 마지막 겨울/바늘 잎의 별/너 혼자/앵두나무, 앵두나무/불멸/고독의 이미지/불 꺼진 창/불 켜진 창/바다를 입에 물고 너를 만난다/형광등 공장의 고추잠자리/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1/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2/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3/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4/그녀의 그것이 자꾸 자라나/밤의 버스/가을 속으로/거울에게 전하는 말/대리물의 정신물리학/달과 나/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1년 뒤/빵 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22년 뒤/지난밤 한 남자가 말했다/물 없는 욕조에 들어앉아/나무를 뱉어내는 항아리/자네트가 아픈 날 1/자네트가 아픈 날 2/새벽/어린 유령들이 피어나는 길/불이 열리는 나무/도넛을 만드는 A, B, C/음,음,음.

2부
모든 불빛 소멸 공장/자루/내 가을의 소리/두 눈을 깜박이는 기하학적 공간/내 소원은 죽은 토끼/어떤 생일 축하 안내인/영혼이 어부에게 말했다/철새의 죽음/흙/오늘 밤 그녀의 시/스물셋과 염소와 뽕나무와 콩나무가/점과 선/이렇게 말해요/밤의 누드

산문_ 그림 카드와 종이 놀이 _박상순
기획의 말

작가 소개

박상순 지음

1962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서양화)를 졸업했다. 1991년 계간 『작가세계』 봄호에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 외 8편의 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6은 나무, 7은 돌고래』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 『Love Adagio』 『슬픈 감자 200그램』이 있다. 현대시동인상, 현대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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