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무기로 사용하지 마라.”
이별이 아무리 지독한 괴로움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이별을 왜곡하고 모함할 수는 없다.
이별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한다.
소설가이면서 시인, 영화감독, 정치․사회․문화 비평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응준 작가가 열번째 소설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을 펴냈다. 또 다른 연작소설집인 『밤의 첼로』 이후 4년 만에 펴내는 소설이며, 장편소설과 시집, 산문집 등을 통틀어 열여섯번째 책이다. 여섯 편의 단편소설과 세 편의 짧은 소설로 엮인 이번 연작소설집은, 대체로 2013년 이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 외따로 떨어져 빛나는 별이되 호명하는 이들에 의해 별자리로 불리듯이, 아홉 편의 소설들은 단편이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장편인 ‘연작장편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퍼즐을 맞추듯 한 편 한 편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커다란 모자이크 벽화 앞에 서 있는 듯한 환상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적실한 의미로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은 ‘소년의/소년에 의한/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일 터. 「작가의 말」에서 언급되었듯, 소년은 “사랑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라면, 그 소년은, 그러니까 당신의 소년은, 다름 아닌 당신”인 바로 그 소년이다. 그리하여 이번 연작소설집은 “아수라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노래하는 만큼은 분명히 성장하는 모든 인간들의 총칭”(pp. 274~75)인 소년들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극단의 와중에 ‘죽음 충동’과 함께 ‘삶에의 강한 의지’를 되찾는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이란성 쌍둥이”인 『밤의 첼로』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빛과 어둠이 서로 은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면,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은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과 삶을 가로지르며 엮인 인연들의 거대한 청홍사(靑紅絲) 실타래’처럼 보인다.
소설은 「북극인 김철」에서 김철이 「그들은 저 북극부엉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의 화자인 은상길을 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작 자신도 자살을 위해 한강철교에 갔으면서, 그는 오재도 형사에게 쫓겨 일본행 여객선에서 뛰어내려 ‘민들레 꽃씨들’을 뿌리고 나서야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북쪽 침상에 눕다」의 화자인 남승건은 오재도 형사를 사적으로 고용해, 그로부터 친모가 얼마 전 호스피스 수도원에서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아울러 그녀가 거둬 키운 아들이 작가라는 것도 알게 되는데, 그가 바로 「소년은 어떻게 미로가 되는가」의 화자 이은파이다. 이은파는 「떠나는 그 순간부터 기억되는 일」의 화자인 ‘천재 탈북 청소년 리신적’의 세번째 자살을 막아준 장본인이고, 리신적은 「전갈의 전문」의 화자인 강해선과 함께 ‘외눈박이 검은 도둑고양이’를 살리거나 보살펴주는 인물이다. 극단의 혁명가인 강해선이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며 번역하고 있는 『소년혁명』의 원고는 「그림자를 위해 기도하라」의 화자인 정이섭 역시 번역하고 있는데, 그는 시인인 안희언으로부터 자극받아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을 집필하게 된다. 안희언과 연인 관계였다가 헤어진 뒤 이혼하고 전임교수 자리까지 사임한 한승영이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에서 정독 중인 책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인데, 이 책은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국회의원직까지 마다한 조근상의 자살을 막는 데 일조한다. 한편 한승영이 조근상과 조우한 필리핀의 외딴섬 앞바다에 둥둥 떠 있을 때, 그의 가슴께까지 다다른 것이 ‘한 송이 흰 민들레꽃’이다. 그건 마치 여러 차례 꼬아진 뫼비우스의 띠에 그어진 긴 선이 안과 밖을 돌아 마침내 첫 지점에 가 맞닿는 것처럼, 저 ‘북극인 김철’이 뿌렸던 ‘민들레 꽃씨들’로 가서 맞닿게 되는 셈이다.
김철이 일본행 여객선에서 뛰어내린 것, 남승건의 아버지가 사막의 모래 폭풍 속으로 사라진 것, 이은파의 아버지가 중국행 유람선에서 투신한 것, 이은파의 외삼촌인 문장규가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 그리고 세 번의 자살을 기도했던 리신적이나, 자살까지 생각하고 파라티온을 챙겨왔던 조근상 등등……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속에는 죽음과 죽음의 그림자가 많고도 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다면적인 관찰 보고서와도 같은” 이 연작들이 “결코 자살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자명하다. “어찌 보면, 자살 충동에 이끌리는 사람들에 대한 깊고 애정 어린 관찰과 이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충동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여전히 깊고 애정 어린 관찰과 이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응준의 이번 연작소설집이 갖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장경렬, p. 266). 그리고 그러한 ‘삶과 죽음’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랑과 이별’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이응준식 사랑의 해석법’일 터다.
외로움을 불평하지 마라.
나는 비천하지만, 사랑을 믿는 사람이다.
이 책이 그 증거다.
“이 책을 마무리하는 내내 [……] 예술가로서의 소설을 쓰는 한국문학의 마지막 세대라는 생각이 들었다”(p. 275)는 작가의 말은, 역설적으로 그의 작업이 작가주의적인 “지독한 괴로움” 속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발현되었음을 보여준다. “소행성에서의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죽음에게 농락당하거나 삶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는 “사랑을 믿는” 것. “이 책이 그 증거다”(p. 277)라는 다짐 섞인 증언 역시.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를 특유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국가의 사생활』이나 정치색이 다른 남녀 국회의원의 사랑을 다뤄 TV드라마의 원작이 되기도 했던 『내 연애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역시 “환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도 하다는 가정을 밀어붙이며” “정교한 관찰과 신랄한 비판, 착잡한 현실과 산만한 재현의 대비”(유종호)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시적인 유려한 문장과 특유의 감수성이 짙게 배어든 문체, 그리고 치밀하되 유연함을 잃지 않는 구성과 주제의식들은 장르를 넘나들며 교감했던 이응준이 가 다다른 소설 세계의 현 지점이다. 독자들과 함께 그 소설 세계를, 그리고 벌써부터 다음 상상력의 공간을 고대하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 될 터다.
□ 책 속으로
북극인 김철
김철은 한강철교에 자살을 하러 갔다가, 그보다 앞서 투신한 사내(「그들은 저 북극부엉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의 ‘은상길’)를 구한 뒤 사라진다. 그는 삼 대째 이어오는 국내 유일의 종자회사를 경영하고 있었으나 다국적 종자 기업의 농간으로 망한 뒤, 아내와 그녀의 내연남, 그리고 부하 직원을 살해한 뒤 쫓기는 몸이다. 이미 해일에 쓸려가 죽은 딸 은지와 북극곰을 만나기 위해 일본행 여객선을 타는데, 그를 쫓는 오재도 형사가 탄 순시선이 다가 오자 갑판에서 사라진다.
“아, 이 무정한 무의미를 어찌할 것인가. 아무것도 아냐. 네 고통은 아무것도 아냐. 어서 돌아가. 어서 가. 꺼져버려. 넌 쓰레기야. 북극인 김철의 귀에는 북극곰의 그런 두서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북극곰 옆에는 북극성이 있을까?” (p. 17)
소년은 어떻게 미로가 되는가
이은파는 연애소설을 쓰고자 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영혼을 지배하는 건 10년 전에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외삼촌 문장규이다. 건축가였던 그와 예술가로서의 정신적 유대로 엮여 있는 것. 아버지는 중국으로 가는 호화 유람선 갑판에서 실종되었고, 어려서부터 이은파를 길러준 건 현재 호스피스 수도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새어머니이다. 어머니와 외삼촌의 연인이었던 박현아를 만나고 돌아온 이은파는 외삼촌이 남기고 간 칼라시니코프 소총으로 자살을 기도하는데, 이때 어머니의 전화로 인해 스마트폰이 반짝인다.
“탐미주의 예술가가 멋진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부심이라는 게 있다. 때로 그것이 주변을 좀 피곤하게 하거나 괴롭힐지라도 당장은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지. 인격을 함양할 시간에 작품을 잘못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욕을 처먹을지라도 아름다운 작품을 토해내는 것이 예술가에게는 남는 장사이고 이 세계에도 훨씬 기여하는 일 아니겠어? 욕을 처먹는 장인이나 욕을 해대는 사람들이나 피차 어차피 죽으면 다 썩어 문드러지니까. 욕을 처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요 욕을 한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잘못 만든 작품은 이 세계에 두고두고 남아 사기를 치고 수백만 명의 영혼들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잖아. 예술가의 진짜 범죄는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거야.” (p. 50)
북쪽 침상에 눕다
꿈을 꾸지 못하는 질병을 가지고 있는 남승건은 의료보조기구 회사의 부장으로, 새 연수원 건물을 보러 다니고 있다. 사막의 모래 폭풍 속으로 사라진 아버지 때문에 그는 자신을 “사막 태생”으로 여기는데, 어느 날 바에서 만난 굴지의 무기상 에릭 크립트리와 술을 마시며 ‘선과 악’ ‘비극과 계몽’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헤어진다. 연인인 허소정의 전 남편은 툭하면 자살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는데, 아무려나 그는 소정과 동물원에 갔다가 “무자비하고 가공할 세계의 무게를 더는 감당할 수 없어” 낙타 우리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풀려난 그에게 (사적으로 고용된) 오재도 형사는 그의 친모가 얼마 전 호스피스 수도원에서 숨졌으며, 그녀가 길렀다는 아들이 작가라는 말을 전한다.
나는 사막 태생이다. 그리고 열세 살 가을, ‘불멸’과 처음 마주쳤다. 그것은 아버지의 낡고 색 바랜 노트 속 그늘진 문장 한 귀퉁이에 파라오의 미라처럼 누워 있었다. 방금, 결국 이렇게 되고 말기까지, 나는 어느 글에서든 불멸이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으며 살아왔다. 비웃지 마라. 감히 나 따위가 가질 수 있는 무엇이 아님을 나는 첫눈에 알아차렸을 뿐이다. (p. 73)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한승영은 연인이었던 안희언과 최악의 상황에서 헤어지고, 그로부터 6년 뒤에 아내와 합의 이혼하고, 전임교수 자리까지 사직한 후, 필리핀의 작은 섬으로 여행을 떠나왔다. 거기서 그는 태풍 때문에 호텔 방에 고립된 채로 먼 친구였던 정이섭의 책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을 읽으며, 어쩔 수 없이 같은 방을 쓰게 된 전직 국회의원 조근상의 요설을 견디는 중이다. 한편 조근상의 가방에서 극약이 발견되고, 어느 날 밤에 그가 사라지자, 그를 찾아나섰던 한승영은 그가 동성애자이며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국회의원 공천까지 반납한 채 사라졌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승영은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이별은 사랑보다 영적으로 훨씬 충만한 상태이다. 사랑보다는 이별이 더 공정하기 때문이다. 더 깨끗한 거울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무기로 사용하지 마라. 이별이 아무리 지독한 괴로움이라 하더라도 사랑이 이별을 왜곡하고 모함할 수는 없다. 사랑이 때로는 감옥이 되듯 이별이 늘 아픔의 가치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별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한다”라고 했던 그 사랑의 말. (p. 149)
그림자를 위해 기도하라
7년 남짓 만에 정이섭 앞에 불쑥 나타난 안희언은 자신이 시인으로 등단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그에게 어떤 글을 쓰느냐고 추궁한다. 정이섭이 얼결에 종말론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하자 희언은 제목이 ‘새로운 시대의 종말론’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무려나 친구로부터 그녀가 음독자살했다고 전해 들었던 이섭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녀와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섭의 가방에 안희언의 시집이 들어 있던 걸 알게 되고, 거기서 그는 7년 전부터 그녀가 쓰고 싶다던 「새로운 나무」라는 시를 발견한다.
나는 / 물고기로 변해 / 깊은 어둠 속으로 헤엄쳐 나아간다. // 사랑은, 당신을 바라보는 내 슬픔에 / 우주가 휘어지는 것. // 그리고 다시 사랑이란, // 나의 새로운 나무와 / 문득 찾아오는 바다와 / 아무도 없는 것만 같은 저 골목 너머에 / 누군가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숨어 있다는 사실과 // 어둠 속에서도 오로지 혼자 있기에 / 혼자서 빛나는 물고기처럼, // 아무리 잊으려 해도 아무리 / 잊고 있어도 // 당신의 거울에 내 일생이 비춰지는 것. (pp. 175~76)
그들은 저 북극부엉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은상길은 낡은 침대 위에 누워, 2년 남짓 전 어느 날 한강철교에서 투신을 했다가 누군가로부터 구해졌던 사실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북극부엉이가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는데……
전갈(Scorpion)의 전문(電文)
극단의 혁명가인 강해선은 젊어서 위장 취업 중에 당한 사고로 한 손이 의수인 채로 국내에 번역된 적 없는 『소년혁명』 원서를 홀로 번역 중인데, 그런 그녀에게 언제부턴가 외눈박이 검은 도둑고양이가 홀연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떠나는 그 순간부터 기억되는 일
천재 탈북 청소년인 리신적은 세 차례나 자살을 기도한 바 있는데, 그중 세 번째에 목숨을 구해줬던 인연으로 작가 이은파와 교류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망고를 먹다 앞니가 부러지고, 그런 그에게 외눈박이 검은 도둑고양이가 나타난다.
옛사람
노동운동 관련 시국사범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조근상은 고교 동창생인 민수로부터 20여 년 만에 정호의 소식을 듣는다. 그가 에로 영화의 배우로 나오더라는 것. 조근상 역시 정호와 우연히 조우하고, 또 그가 출연한 영화도 찾아보게 된다. 한편 고교생 시절 정호를 질투한 나머지 그를 모함해 학교에서 자퇴하도록 만들었던 조근상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그에게 정호는 “괜찮다”고 말한다. 아무려나 정호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데……
□ 추천사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속 머나먼 이국의 바다와 외딴 섬은 휘몰아치는 태풍과 함께 현대 도시인의 일상에 찌든 영혼을 낯설게 환기시키고, 각자 비밀과 트라우마를 가진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거리는 우여곡절 끝에 화해로 귀결된다. 이 연작소설집을 이루고 있는 소설들은 대체로 예정조화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채 환상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도 하다는 가정을 밀어붙이며 전개된다. 생활인의 상식적인 질서를 넘어서는 담대한 상상력은 이응준 작가의 특징이다. 그것에 대한 불신을 거두며 작품과 소통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정치 혹은 정치인의 행태에 관한 냉소적 관심도 이 작가의 성향이라 기억하는데, 이번에도 그것이 보인다. 정교한 관찰과 신랄한 비판, 착잡한 현실과 산만한 재현의 대비는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과 인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끔 만드는 독자적 장치이리라.
유종호(문학평론가)
□ ‘해설’ 중에서
이처럼 소설 전체를 덮고 있는 것이 ‘자살’의 그림자다. 그 때문에 이응준의 이번 연작소설집 자체가 이 주제에 대한 다면적인 관찰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아마도 우리 문단에서 이 같은 유형의 작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p. 242). [그러나] 우리가 짧은 글 안에 이처럼 여전히 한 번 더 긴 인용에 기대고자 함은 ‘자살에 대한 다면적인 관찰 보고서’와도 같은 이응준의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이 결코 자살에 관한 우울한 이야기 모음집이 아님을 힘주어 밝히고 싶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살 충동에 이끌리는 사람들에 대한 깊고 애정 어린 관찰과 이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충동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 대한 여전히 깊고 애정 어린 관찰과 이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응준의 이번 연작소설집이 갖는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p. 266). 이응준의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이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작가 이응준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문학적인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란 무언가에 대한 깨달음을 강요하지 않는 담론이기에, 작가는 우리가 직면해야 할 문제를 스스로 깨닫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pp. 270~71).
장경렬(문학평론가․서울대 영문과 교수)
□ ‘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나의 종교이므로 이것은 내게 교리문답과도 같다. 누군가 내게 다시 묻는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는 대답한다. 소설이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간의 이야기란 결국 인간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뭔지 몰라 심지어 생명이 불태워지기도 하는, 그러나 그 아수라 같은 사랑을 끌어안고 노래하는 만큼은 분명히 성장하는 모든 인간들의 총칭을 ‘소년’이라는 이미지로 떠올리며 나는 여기 이 소설들을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천국에서조차 방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그 소년은 자신의 마음이 누구의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 가슴속에 감추어진 저마다의 모습이다. 설령 당신이 백 살 먹은 노인이라 할지언정 사랑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라면, 그 소년은, 그러니까 당신의 소년은, 다름 아닌 당신이다(pp. 274~75).
누군가 내게 아직도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책 한 권이 모든 사람들을 진보시키진 못하더라도, 세상을 진보시킬 한 사람을 호명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어느 분야에서건 책과 작가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 혁명이란 없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작가란, 오로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만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저 써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쓰는 존재인 것이다. 시대의 환경과 대접에 따라 낙담할 바엔 애초에 손대지도 말았어야 할 일을 누군가는 죽는 그 순간까지 운명처럼 갈고 닦으면서 살아야 한다. 요컨대 그것이 장인(匠人)이 만들어내는 문화이며, 한 사람의 영혼이란 하나의 우주이기에, 한 사람을 감동시켰다면 이미 그것은 비좁은 세상 따위가 아니라 온 우주를 감동시킨 것 아니겠는가. 그저 나는 타인에게는 즐거우나 스스로에게만큼은 고통스러운 여러 형태의 문건들을 되도록 많이 남기고 싶을 뿐이다. 이제 내게 있어 문학은 나의 종교라는 감옥을 벗어나 인간의 사랑에 대한 신앙을 해석하는 도구가 되었다. 나는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다만 작가라는 것은 뿔 달린 현대의 사제(司祭)임을 소중히 간수하며 나의 나머지 날들을 감당할 작정이다(p. 276).
북극인 김철
소년은 어떻게 미로가 되는가
북쪽 침상에 눕다
소년을 위한 사랑의 해석
그림자를 위해 기도하라
그들은 저 북극부엉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
전갈(Scorpion)의 전문(電文)
떠나는 그 순간부터 기억되는 일
옛사람
해설: 죽음의 유혹에서 다시 삶으로_장경렬
작가의 말: 소행성에서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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