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안에서 세계를 발견하는 비평가,
작품 안에서 역사를 인식하는 비평가”
문학의 우정, 우정의 문학을 증명해온 문학평론가 김치수,
그와 함께 한국 문학의 미래를 탐문하는 일
계간 『문학과지성』을 창간하고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를 세우는 데 참여한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김치수 선생(1940~2014)이 타계한 지 2년이 되었다. 문학과지성사는 임종 이후 〈김치수 문학전집〉 간행위원회를 결성해 그의 문학적 성과에 대해 논의하여 불문학 연구서와 번역서를 제외한 문학사회학과 구조주의, 누보로망 등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론서와 비평적 성찰의 평론집을 선별해 10권의 문학전집 간행을 진행하였다. 2016년 12월 30일, 〈김치수 문학전집〉 완간 소식을 통해 한국 문학과 한국 작가의 오랜 친구였던 ‘김치수’의 빛나는 흔적을 되새기려 한다. 착한 기업 오뚜기의 후원으로 진행될 수 있었던 이 작업은 한 시대를 정리하는 일과 동시에 한국 문학의 미래를 탐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 한 비평가가 있다. 김치수(1940~2014)는 문학 이론과 실제 비평, 외국 문학과 한국 문학 사이의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어낸 비평가였다. 그는 ‘문학사회학’과 ‘구조주의’와 ‘누보로망’의 이론을 소개하면서 한국 문학 텍스트의 깊이 속에서 공감의 비평을 일구어내었다. 김치수의 사유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입장의 조건과 맥락을 탐색하는 것이었으며, 비평이 타자의 정신과 삶을 이해하려는 대화적 움직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의 문학적 여정은 텍스트의 숨은 욕망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으로부터, 텍스트와 사회 구조의 대응을 읽어내고 당대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 이르고 있다. 그의 비평은 ‘문학’과 ‘지성’의 상호 연관에 바탕 한 인문적 성찰을 통해 사회문화적 현실에 대한 비평적 실천을 도모한 4·19세대의 문학정신이 갖는 현재성을 증거 한다. 그는 권력의 폭력과 역사의 배반보다 더 깊고 끈질긴 문학의 힘을 믿었던 비평가였다.
이제 김치수의 비평을 우리가 다시 돌아보는 것은 한국 문학 평의 한 시대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 문학의 미래를 탐문하는 일이다. 그가 남겨 놓은 글들을 다시 읽고 김치수 문학전집(전 10권)으로 묶고 펴내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내일의 한국 문학을 위한 우리의 가슴 벅찬 의무이다. _〈김치수 문학전집〉 간행위원회
김치수의 세번째 비평집으로 엮인 『박경리와 이청준』은 저자가 충실하고자 했던 ‘읽는 자’와 ‘동반자’라는 문학평론가로서의 역할을 여실히 담아내고 있는 책이다. 신군부의 집권 이후 ‘시국선언’이라는 지식인의 소임을 다한 탓에 해직교수라는 명함을 달게 된 상황에서도 그는 작가들의 친구로서 당대의 작품을 함께 읽고 논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좀더 집중적으로 글을 썼던 탓에 뚜렷한 ‘당대성’과 ‘동시성’을 지닌 두 작가 ‘박경리와 이청준’의 평론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불문학을 전공한 문학평론가로서 대학과 문단에서 널리 인정받던 김치수가 몇 번째든 간에 평론집을 냈다는 것 자체가 전혀 이상할 일이 없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박경리와 이청준』은 좀 새삼스러운 데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김치수 깊이 읽기』에 실린 자전 에세이에 의하면 그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된 87명의 교수 중 한 명이었다. “4년의 해직 기간 동안 글도 많이 쓰고 술도 많이 마셨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도 받았고 친구들로부터 많은 도움도 받았다. 40의 나이에 강제 해직이란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지만……”이라는 구절에 비치듯, 많은 친구들의 도움과 위로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해직된 사건이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박경리와 이청준』은 그때 나온 책이다. “최근 두 해 동안에 쓴 글들 가운데서 두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관한 것만을 뽑아” 책을 엮었다는 서문의 내용으로 보건대, 그 시절 김치수는 정말 많은 글을 썼던 듯하다(책으로 묶이지 않은 글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그런 중에 술도 많이 마셨을 것이다). 그렇게 쓴 글들 중 일부를 모아 책으로 내면서도 김치수는 『박경리와 김치수』의 서문 결미에 어떤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은 없으나, “어느 부분은 분석적인 과정을 거쳐서 씌어진 반면에 어떤 부분은 인상으로 씌어진 것도 있음을 고백한다”라는 구절을 볼 때 어쩌면 좀 서둘러 책을 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30여 년이 지난 뒤 그 고백을 읽는 후배로서는 책을 준비할 충분한 여유조차 주지 못했던 그 시절의 엄혹함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그런 와중에도 책을 내고 또 준비가 충분치 않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김치수의 염결함을 생각하면서 잠시 아뜩해진다. _이수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