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새하얀 벽에서 오점을 찾아내기보다는
넝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쪽이었다.”
아름다웠던 과거를 그대로 박제하다!
에도 시대를 그리워한 탐미주의자, 나가이 가후 대표작
화류계를 배경으로 근대 문명을 비판하고 에도 문화에 대한 향수를 그린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 나가이 가후의 대표작 『묵동기담/스미다 강(濹東綺譚/すみだ川)』(대산세계문학총서 140)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37년에 발표한 대표작 『묵동기담』과 1909년에 발표한 단편 「스미다 강」을 묶은 책이다. 『묵동기담』의 주인공 다다스는 실제로 화류계 여성들과 염문을 뿌리며 문단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던 나가이 가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다다스는 급속도로 서구화되는 화려한 긴자 거리를 피해 빈민촌을 즐겨 찾고, ‘묵동(濹東)’으로 표현한 스미다 강 주변이야말로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일본적’인 장소라며 에도 시대 문화에 대한 애착을 표한다. 「스미다 강」은 어느 시대나 존재했을 부모 자식 간, 세대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데, 이 작품 역시 나가이 가후 특유의 에도 정서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전체주의 · 군국주의로 치닫는 당시 일본에 대해 환멸과 무력함을 느낀 가후는 현실을 방관하고 과거로 회귀하여,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쾌락을 중시했던 에도 시대 일본인들의 삶을 좇아 탐미주의적 문학 세계로 빠져들었다. 가후는 강 위의 다리 하나하나, 골목 구석구석까지 세세하게 표현하며,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기억하고 싶었던 옛 정경을 그 자리에 박제하듯 기록한다.
“온화하고 우아한 시정, 고매한 문학비평, 철저한 현실 조명 등을 고루 갖추어 수많은 걸작을 창출했을 뿐만 아니라 에도 시대 문학 연구, 외국문학 전파에 업적을 올리며 일본 근대문학사에 독자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_1952년 문화훈장 수여 사유
아름답게 멈춰 선 노(老) 작가의 시간, 『묵동기담』
“오유키는 지쳐버린 내 마음에 우연히 들어와 그리운 과거에 대한 환상을 떠올리게 하는 뮤즈였다.” _20쪽
일본 근대 탐미주의 소설의 대표 격인 『묵동기담』은 중년의 소설가 오에 다다스가 새로운 작품 『실종』을 구상하기 위해 스미다 강 근처를 배회하다가 갑작스레 쏟아진 소나기를 계기로 창부 오유키와 인연을 맺는 이야기이다. 나가이 가후의 자전적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스는 에도 문화에 애착을 보이는데, 양장을 입은 유녀들 사이에서 드물게 옛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오유키는 그에게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 늙은 작가의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 될 초고를 완성시킨 신비로운 구원자”이다. 하지만 미래를 함께할 것을 상상하는 오유키의 구애에는 등을 돌리고 이별을 한다.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멈춰 서기를, 혹은 되돌아가기를 선택한 다다스의 태도는 미래보다 순간을 추구하던 에도 시대의 모습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하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난 가후는 외국 경험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서구화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대신 옛것, 익숙한 것, 도락에 빠져드는 인물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화려한 긴자 거리가 아닌 허름한 변두리의 유곽촌을 선택하여 겉모습만 화려하고 위선적인 주류 문화에 반감을 드러내고, 욕망과 과시로 가득 찬 근대 문명을 비판한다. 홀로 멈춰 서서 지나가는 모든 것들을 바라볼 때의 애상은 『묵동기담』과 가후의 탐미주의적 시선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서정시와 같은 풍속 소설 「스미다 강」
조키치는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번민과 불안을 까맣게 잊고, 그 아래 세대의 처지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잔소리나 늘어놓는 편리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나이를 먹은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통할 수 없는 어떤 괴리가 있다는 생각도 절실하게 들었다. _169쪽
전통 기예인 도키와즈를 가르치는 오토요는 아들 조키치를 공부시켜 버젓한 회사원으로 길러내기 위해 홀로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조키치는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공부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고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동경한다. 소꿉친구이자 짝사랑하던 이웃집 오이토까지 게이샤가 되겠다고 나서자 공부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어머니와 대립하게 된다. 조키치는 젊은 시절 방탕하게 놀았고 예술가로 살아가는 외삼촌마저도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신을 설득하는 것을 보고 어른이 되는 것에 환멸감마저 느끼며 좌절한다.
가후가 탐미주의에 빠지기 전인 1909년 발표한 「스미다 강」은 『묵동기담』처럼 동시대를 향한 강한 혐오감을 보이지는 않으나, 근대 사회의 기준으로 성공을 추구하는 어머니와, 규격화된 성공보다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원하는 아들의 갈등을 통해 세대 간 갈등을 보여준다. 가후 또한 진로를 둘러싸고 부친과 갈등을 겼었다. 특히 외국 유학 시절 부친은 가후가 사업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길 바랐으나 가후는 오페라, 연주회 등을 더 좋아했고, 귀국 후에도 화류계 출입을 일삼으며 가족과의 갈등이 심했다. 「스미다 강」은 가후의 젊은 시절을 잘 대변하는 작품이다.
20세기를 살아가는 나약한 예술가의 상처
메이지 시대에 출생한 나가이 가후가 본 도쿄는 근대화라는 기치 아래 에도의 흔적을 무참히 지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신정부는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서구의 제도 · 기술 · 문화를 도입해 짧은 기간에 큰 성장을 이루지만, 서양 사상과 문화의 급속한 유입과 갑작스런 변화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작품 활동 초기의 나가이 가후는 추악한 현실을 폭로하는 자연주의 작가로서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작가였다. 에밀 졸라에 매료되었던 가후는 현실이 부당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깨어 있는 의식보다도 강력한 무기력함이 그를 지배했다.
가후는 1911년, 천황 암살 미수라는 죄명을 씌워 사회주의자들을 처형하는 사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침묵하는 작가로서 부끄러웠던 가후는 현실과 거리를 두고, 관능과 아름다움에 탐닉하며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탐미주의로 돌아섰다. 그는 1919년에 발표한 단편 「불꽃놀이」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썼다. “문학가로서 사상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졸라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믿고 옹호하다가 국외로 망명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문학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가 문학가라는 사실에 대해 수치심마저 느꼈다. 이후 나는 내 예술 수준을 에도 시대 통속문학 작가로 낮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약한 예술가로서 과거(에도 시대)로의 회귀를 택했다. 이러한 가후의 삶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격변하는 20세기를 감당하는 한 방식이었다.
■ 본문 속으로
조용히 펼쳐든 우산 아래로 하늘과 마을의 풍경을 지켜보며 걷던 중, 갑자기 뒤에서부터 “나리, 저기까지 씌워주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우산 아래로 새하얀 목을 들이밀었다. 기름 향이 나는 걸 보니 머리를 올리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고, 커다랗게 묶은 머리에는 기다란 은색 실들이 걸려 있었다. _27쪽,「묵동기담」중에서
항상 시마다마게나 마루마게 머리를 하는 오유키의 모습과 지저분한 도랑, 모깃소리는 내 감각을 한껏 자극하여 3, 40년 전에 사라져버린 과거의 환영을 되살려주었다. 나는 이러한 덧없으면서도 기묘한 환영을 보여준 그녀에게 되도록 확실하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오유키는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는 면에서는 난보쿠의 교겐을 연기하는 배우보다도, 란초를 낭독하는 쓰루가 아무개보다도, 더 정교하고 조용한 예술가였다. _51쪽,「묵동기담」중에서
창의 바깥쪽은 대중이다. 즉 세상이다. 창의 안쪽은 한 사람의 개인이다. 그리고 그 양자 사이에는 현저히 대립되는 것이 없다. 이것은 왜 그런 것일까. 오유키는 아직 젊다. 아직 세간의 일반적인 감정을 잃지 않았다. 창에 앉아 있을 때의 오유키는 그 자신의 신분을 천하게 여기며 따로 숨겨둔 인격을 품고 있었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골목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가면을 벗고 자긍심을 버리기 때문이었다. _80쪽,「묵동기담」중에서
오유키는 지쳐버린 내 마음에 우연히 들어와 그리운 과거에 대한 환상을 떠올리게 하는 뮤즈였다. 오랜만에 책상 위로 올라온 한 편의 초고는 만약 오유키의 마음이 내게 향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더라면 이미 갈기갈기 찢겼을 것이다. 오유키는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한 늙은 작가의 아마도 마지막 작품이 될 초고를 완성시킨 신비로운 구원자였다. 나는 그 얼굴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_81쪽,「묵동기담」중에서
빽빽하게 이어져 있는 지저분한 지붕들. 폭풍이 밀려오기 전 무겁게 내려앉은 하늘에 비치는 등불을 바라보며, 오유키와 내가 어두운 2층 창가에 기대 서로의 땀 맺힌 손을 쥐어가며 별것도 아닌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을 나누던 때에 갑자기 내려친 번개에 비친 그 옆얼굴. 그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눈에서 지워질 줄을 몰랐다. 스무 살 무렵부터 가벼운 연애에 탐닉해왔으나, 이렇게 노인이 다 되어서 덧없는 꿈을 이야기하게 될 줄이야. _91쪽,「묵동기담」중에서
“요새 세상을 보면 지금까지의 도덕이나 그런 걸로는 다스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일을 정력 발전의 한 현상이라 생각한다면 암살이든 간음이든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리 놀랄 필요가 없을 겁니다. 여기서 정력 발전이라 한 것은 욕망을 추구하는 열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 이 현상에는 현대사회 특유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남보다 자신이 더 잘났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또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개인의 마음입니다.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메이지 시대에 자란 저는 그런 건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아주 조금입니다. 이게 바로 요새 사람들과 우리들의 차이라 생각합니다.” _112~13쪽,「묵동기담」중에서
조키치가 외숙 라게쓰의 말대로 그때부터 샤미센 연습을 계속했더라면 틀림없이 지금쯤은 어엿한 예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이토가 게이샤가 된다 해도 이리 비참하게 여기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의 방향을 아예 잘못 틀어버린 기분이었다. 갑자기 어머니가 미워졌다. _143쪽,「스미다 강」중에서
조키치는 사람이란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에 경험했던 번민과 불안을 까맣게 잊고, 그 아래 세대의 처지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잔소리나 늘어놓는 편리한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나이를 먹은 사람과 젊은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통할 수 없는 어떤 괴리가 있다는 생각도 절실하게 들었다. _169쪽,「스미다 강」중에서
묵동기담
스미다 강
옮긴이 해설 _ 에도 시대를 그리워한 20세기 작가, 나가이 가후
작가 연보
기획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