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어.”
한 지붕 아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네 곰의 달콤 쌉싸래한 인생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름답게 영글어 갑니다!
■ 보름달가슴곰 보람이네가 살고 있는 반달시 뒷동에서는 오늘도 삶이 펼쳐집니다!
소외되고 외로운 곳을 찾아 그들의 아픔을 만져 주며 웃음과 감동을 전해 주는 이야기꾼 유은실의 장편동화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됐다. 유은실은 삶의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워 낸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슬픈데 웃고 있거나, 웃는데 슬며시 눈물을 훔치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고 있는 삶의 애환을 작가 특유의 재치와 사람에 대한 애정으로 잘 버무려 놓았기 때문이다. 무례하지 않고 위트 있게!
늘 사람 사는 냄새 풀풀 나는 이야기로 우리를 울리고 웃기던 유은실이 이번에는 곰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로 찾아왔다. 반달가슴곰에서 착안해 ‘보름달가슴곰’이란 새로운 곰 가족을 만들어, 그들을 통해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현실감 있게 투영하고 있다. 특히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주거 문제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굳이 포장하지 않고 드러내 보이며 많은 생각과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재치와 유머 속에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보름달가슴곰들이 그려 내는 일상 속에는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
반달시 뒷동 223번지에서 엄마 아빠가 아닌 할머니, 증조할머니와 살고 있는 보람이와 보루 남매네 집에는 활기가 넘치다가도 가끔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형편이 어려운데도 사는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 증조할머니와 철없는 보루가 만나면 웃음꽃이 피지만,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할머니와 사춘기에 접어들어 ‘품위 있게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보람이는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향이 서로 다른 개성 강한 네 곰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내는 조화는 가난 때문에 퍽퍽해진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기도 한다.
■ 할머니, 가난해도 꿈꿔도 되지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보람이는 참나무 기초학교 4학년, 여섯 살 암곰이다.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낡고 오래된 집에서 사는 게 창피하지는 않지만 불편함을 점점 알아 가는 나이가 되었다. 텔레비전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자 취미인 증조할머니, 자식 대신 손주를 돌보느라 건물 청소부로 일하는 할머니, 증조할머니 옆에 딱 붙어 철없는 소리만 하는 기초학교 2학년 남동생 보루를 대신해 크고 작은 집안일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는 보람이 두 살 때 사업하다 빚을 져서 집을 나가 버렸고, 일 년 후 엄마마저 집을 나갔다. 보람이는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할머니를 보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꿈에 대해 어쩌면 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의무교육인 기초학교를 졸업하면 각 분야의 고급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지만 그건 할머니의 어깨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보람이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가난하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어른 곰이 되고 싶은 것 정도이다. 철학곰 포우가 쓴 1500쪽짜리 『발톱』을 읽으면서 말이다.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한다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곰팡이가 피어 있는 집에서 지내다 보면 보루처럼 평생 피부염을 달고 살아야 할 수도 있고, 무릎이 안 좋은 증조할머니에게 마당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건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위험하고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는 건 노력과 의지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절망이 깊어 갈 때쯤 앞집에 사는 정 많은 골짜기 아줌마가 굉장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집을 고쳐 주는 프로그램인 <드림 하우스>에 사연을 신청하자는 것이다. 아줌마의 진솔한 사연 덕분에 드디어 보람이네 집이 선정되고 설마 했던 기적 같은 일이 보람이네 집에 찾아온다.
■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가는 오늘 하루하루를 아름답게!
집을 고치기 전에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기 시작하면서 보람이네 집은 시끌벅적해진다. 방송 작가가 나와 증조할머니부터 보루까지 일대일로 취재를 한 뒤 건축가 등이 와서 집 안 곳곳을 사진 찍고 어떻게 고칠지 대책을 논의하느라 연일 소란스럽다. 그 과정에서 보람이는 아토피 때문에 가슴털이 빠진 보루의 모습과 화장실 가는 게 힘들어서 바지에 실수를 한 증조할머니의 모습까지 낱낱이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게 마음 아프고 어쩐지 가슴이 쓰리다. 더군다나 더욱 극적인 장면을 요구하는 피디와, 취재를 하면서 보람이네 식구들과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작가 사이에 말싸움이 일면서 <드림 하우스> 촬영은 위기를 맞게 된다.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게 된 보람과 할머니는 새집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마음에 다른 상처 하나를 더 남기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지만 촬영은 예정대로 진행된다.
우여곡절 끝에 보람이네 사연은 <드림 하우스 12회-조손 가정의 꿈>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파를 탄다. 방송에 대한 기대가 다들 달랐던 것인지 동네 곰들은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놓고, 시청곰 게시판에는 저마다의 의견들이 달린다. 새집으로 탈바꿈한 집에는 예전 낡은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들과 새 물건들이 뒤섞여 사용되고 있다. 집은 새 것이지만 여전히 현재를 살아야 하는 보람이네는 전기세, 난방비 등 걱정이 가시지 않지만 보람이는 자신만의 방에서 철학곰 포우의 『발톱』을 읽으며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비로소 행복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