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학과지성』으로 시작된 문지 비평의 흐름
문지의 논리를 따라 읽는 한국 문학의 이력
오는 12월 12일, 문학과지성사가 창사 40주년을 맞는다. 회사는 1975년 설립되었지만, 문지를 구성하는 논리는 그 이전에 시작되었다. 문학평론가 김현을 중심으로 『68문학』에 결집했던 비평가들은 1970년 『문학과지성』을 창간하며 다시 뭉친다. 창사를 하고, 폐간을 겪고, 『문학과사회』가 창간되고, 세대교체를 네 번 거듭하며 현 5세대 체제를 맞기까지, 그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줄곧 문지는 ‘동인’을 주축으로 움직이는 집단이었다. 이 책은 40년 넘게 문지의 핵심이 되어온 1~4세대 문지 동인들의 평문을 모은 선집이다. 1970년 『문학과지성』 창간 당시 동인이었던 김현에서 가장 젊은 세대인 강동호에 이르는, 총 21명의 문지 신구 동인이 계간지 『문학과지성』 『문학과사회』에 실렸거나 문지에서 평론집으로 묶였던 글들 가운데 편집위원과의 논의를 거쳐 각자 한 편씩을 골랐다(고인일 경우 편집위원이 대리 선정).
김현이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쓴 것은 1970년이었다. 당시 문지 1세대 동인들은 ‘한국 문학’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고려함으로써 오히려 그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었던 듯싶다. 당연하게도 가능성이란 아직 실현되지 못한 어떤 상태를 지시하는 말이고, 따라서 항상 불가능성을 전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사유하고자 한다면 그는 항상 그 불가능성의 조건들에 대해서도 사유해야만 한다.
시대가 부과하는 제약이 달랐고, 담론을 생산해내는 세대 또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문지 담론의 중심에는 항상 ‘문학’, 그것의 (불)가능성에 대한 고뇌와 기대가 있었다. 문학에는 항상 사회적 각인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확인, 그러나 우리가 문학을 하는 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개입 역시 문학을 매개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믿음, 언어는 그 자체로 수행적이어서 언어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신념, 이런 것들이 ‘문지 담론’의 기저를 형성했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문학주의’였다. 그러므로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문지 담론 형성의 주역이었던 동인들의 비평문을 모은 이 책은 문지 문학주의의 역사라 해도 무방하겠다.
―발간사에서
제1장에는 문학론과 한국 문학사 관련 글들이 묶였다.
김 현은 「한국 문학의 가능성」에서 먼저 ‘지적 식민주의’와 ‘새것 콤플렉스’를 당시 한국 문단의 병폐로 지적하고 그 근원을 짚는다. 무분별하게 도입되었다가 피상적으로 소비된 서구 제도를 맹신하거나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을 성급하게 개념화하여 도식적으로 대립하기보다는, 한국의 역사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여 현실에 걸맞은 새로운 이념형을 추출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주연의 「문학사와 문학비평」은 독일의 사례와 기존 한국 문학사를 검토하며 시대 구분의 문제를 제기한다. 왕조에 따른 순서 개념의 한계를 주목하면서도, 서구 시민 사회의 발전 과정 및 문예이론의 발달과 비교했을 때 한국사에서 기준점이 될 만한 본질 개념을 추출하는 일이 어려우므로 우선 한국의 불균형적 특수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김병익의 「6·25와 한국 소설의 관점」은 6·25 발발 30년을 맞이하여 한국 문학사에서 한국 전쟁의 의미가 무엇이며, 전쟁 이후 한국 작가들이 수십 년간 어떻게 끊임없이 현실적 문제로 환기시켜왔는지 홍성원, 이청준 등의 소설에 전통적 감수성, 자아의 각성, 사회사적, 역사의식적으로 접근하여 통찰한 글이다.
성민엽의 「열린 공간을 향한 전환」은 80년대가 문학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논한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저항의 형태로 폭을 좁혀갈 수밖에 없었던 한국 문학은 이와 동시에 사회과학적 의식이 심화되면서 독자적인 미학적 지평을 새로 열게 되었다. 성민엽은 한국 사회의 복합적이며 중층적인 모순에서 비롯된 두 양상이 변증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90년대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우찬제의 「경계를 넘어서」는 세기말을 갓 벗어나 시각적 이미지와 스펙터클로 출렁거리던 2000년에 씌어진 글로, 확정된 진실이 사라진 혼란스러운 시기에 주체와 타자, 경쟁과 상생, 디지털 신화와 생태학적 신화, 미메시스와 환상 사이의 경계를 사유하며 그 진실을 탐문한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으며 21세기의 문학 지도를 그리고자 시도했다.
이광호의 「문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는 정치적 위기가 부분적으로 해소되었던 2000년 당시의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문학이 어떻게 자기 존재의 논리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 점검한다. ‘문화 산업’이라는 명칭으로 대두되는 신자유주의가 문학의 자율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진단하고,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체제 비판을 실현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물으며 새로운 문학적 기획을 도모한다.
제2장에는 비평 관련 글들이 묶였다.
김치수의 「비판의 양식으로서의 비평」은 비판 그 자체가 ‘미학적 양식이 된 비판’으로서의 비평이 갖는 성질을 논한다. 60년대 이후 활발해진 문학비평의 흐름에 주목하며, 정명환·백낙청·김현·김종철·오생근의 작업을 분석한다.
정과리의 「민중문학론의 인식 구조」는 1988년 『문학과사회』 창간호에 수록되었던 글이다. 정과리는 민중문학론자들의 공통된 인식을 밝히고, 1988년 당시 민중문학론을, 80년대 백낙청 개인으로 대표되는 한 흐름과 젊은 세대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흐름으로 크게 둘로 나눈 뒤 민중문학론이 갖는 담론을 해체한다.
홍정선의 「맥락의 독서와 비평」은 맥락을 파악해가는 독서와 이를 바탕으로 한 비평의 중요성에 관해 다룬다. 홍정선은 80년대 일부 비평이 맥락의 독서와 거리가 멀어지고, 비평을 현실의 직접적 등가물로 위치시켰다는 점을 비판하며, 비평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 맥락의 비평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권오룡은 「권력형 글쓰기에 대하여」에서 권력형 글쓰기란 무엇인지 분석하며 권력형 글쓰기가 권력의 소멸이라는 목표를 향해 씌어진 글인 것처럼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강화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며, 이러한 글쓰기가 가져오는 악순환을 주의해야 함을 지적한다.
강동호의 「파괴된 꿈, 전망으로서의 비평」은 2000년대 문학장의 중요한 지점을 차지했던 논쟁들을 살펴본다. ‘근대문학의 종언’과 ‘미래파 담론’ ‘시-정치’ 론을 대상으로 주요 논쟁을 재구성하며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전개한 비평가들의 발언들을 함께 분석한다.
제3장에는 주제론 성격의 글들을 모았다.
오생근의 「‘집’과 시적 상상력」은 인간적 삶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인 ‘집’과 시 작품을 연결 지은 글이다. 김광규, 이태수, 황지우, 최승자, 이성복, 정현종 등의 시에서 집은 구체적인 형태를 띄거나, 한편 시인의 기억이나 욕망 등과 관련된 우주적인 시각을 거쳐 초월적인 형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어떤 경우이든 시인의 집은 세계와 진정한 관계를 맺는 삶이 가능한지를 묻게 한다고 성찰한다.
최성실은 2003년 「한국 문학의 성적 상상력」에서 우리 문학에 성적 상상력이 빈곤하다고 판단하여 그 이유를 물으며 고민했다. 장정일, 전경린, 윤대녕의 소설 속 에로티즘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으며 매번 어떤 한계에 부딪치는지 통찰하면서 한국 사회의 닫힌 구조와 문학적 엄숙주의, 경직된 문학적 분위기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수형의 「아이에서 어른 되기, 아무도 속지 않는 거짓말」에서는 근대 일본과 한국에서 문명을 건설하는 데 아이가 맡았던 역할을 살피고, 채만식, 정이현, 배수아, 백민석, 김영하 등의 소설 작품을 예로 들면서 나이가 미성년과 성년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김형중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소설 쓰기」는 2011년 장편소설 대망론이 대두했던 당시의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조립과 해체 방식을 활용한 ‘브리콜라주’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낸다. 단면도 형태로 정리한 이 글에서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한 호오를 드러내기보다 서준환과 최제훈 등의 소설 작품을 예로 들어 눈앞에 놓인 사태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살피고 있다.
허윤진의 「보드카의 밤」은 위기과 갈등이 없이 평형 상태를 이루려는 이 세계의 욕망을 파헤친다. ‘치유를 권하는 사회’라는 지금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복’을 불러오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을 불행하게 하고, 비균형적인 세계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말한다.
조연정은 「왜 끝까지 읽는가」에서, ‘끝까지 읽을 수 없다’는 이유로 위기에 놓인 장편소설의 상황을 비틀어 그럼에도 ‘끝까지 읽는’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장편소설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결국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읽기’자체가 지속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제4장에는 작가론 성격의 글들을 모았다.
김태환의 「이야기꾼의 자의식」은 이인성의 『한없이 낮은 숨결』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 김태환은 소설가(작가)와 소설 속의 화자, 파견된 주체(이야기꾼)로 분리한다.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인성의 이야기꾼을 “자의식을 가진 이야기꾼”으로서 보고 논의를 전개시킨다.
김동식의 「생의 도약과 영원회귀의 잠재적 공존」 에선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통해 김애란의 소설을 비평한다. 작가가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는 방식, 타자로서의 ‘나’를 파악하는 태도, 글쓰기에서 드러나는 상상력의 힘 등 여러 각도에서 소설집을 분석한다.
박혜경의 「세계라는 허구의 영토」는 2000년대 시적 경향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김민정과 김행숙을 꼽으며, 이들의 시를 비평의 재료로 다룬다. 박혜경은 두 시인의 시 세계를 시뮬라크르의 세계라 말하며, 표면 위를 흘러다니는 돌발적이고 감각적인 시적 언어들이 펼쳐 보이는 영역을 탐구한다.
강계숙의 「사랑을 주었으나 똥으로 받는 이에게―시코쿠의 편지」는 황병승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대상으로 하며, 오로지 ‘즐겨라’라는 명령에 충실한 세계에 속하고 싶은 우리를 단숨에 ‘종말’ 앞으로 데려가는 황병승의 시들을 분석해낸다.
1970년 『문학과지성』이 창간되었을 때, 동인들은 물었다. “이 시대의 병폐는 무엇인가? 무엇이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의식을 참담하게 만들고 있는가?” 그들은 거듭 묻고 진단하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애썼다. 불가능은 모습을 바꾸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가능성이란 어느 시대에든 유효한 단어다. 여느 해보다 한국 문단에 깊은 성찰이 요구되었던 2015년, 문학과지성사는 ‘문지 담론’의 자의식을 다시 되새기려 한다. “문학에는 항상 사회적 각인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확인, 그러나 우리가 문학을 하는 한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개입 역시 문학을 매개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믿음, 언어는 그 자체로 수행적이어서 언어의 변화가 세계의 변화를 촉발할 것이라는 신념”(발간사). 이에 더해, 내년부터 문지를 짊어질 새 동인들은 이 담론이 관념적인 논의의 반복이나 자기 안의 외침에 그치지 않도록 고민의 가시적인 결과물을 곧 마련할 것이라 약속하였다. 자성과 방향 제시, 문학과지성사는 40주년을 맞이해 주어진 숙제를 모두 마쳤다. 독자들의 검토를 기다린다.
발간사
제1장 경계를 넘어서
김 현
김주연 문학사와 문학비평
김병익 6•25와 한국 소설의 관점
성민엽 열린 공간을 향한 전환
우찬제 경계를 넘어서
이광호 문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제2장 전망으로서의 비평
김치수 비판의 양식으로서의 비평
정과리 민중문학론의 인식 구조
홍정선 맥락의 독서와 비평
권오룡 권력형 글쓰기에 대하여
강동호 파괴된 꿈, 전망으로서의 비평
제3장 왜 끝까지 읽는가
오생근 ‘집’과 시적 상상력
최성실 한국 문학의 성적 상상력
이수형 아이에서 어른 되기, 아무도 속지 않는 거짓말
김형중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소설 쓰기
허윤진 보드카의 밤
조연정 왜 끝까지 읽는가
제4장 이야기꾼의 자의식
김태환 이야기꾼의 자의식
김동식 생의 도약과 영원회귀의 잠재적 공존
박혜경 세계라는 허구의 영토
강계숙 사랑을 주었으나 똥으로 받는 이에게—시코쿠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