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현대사 속에서 새로 피어난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놀라운 가능성
한국문학 연구자이자 문학평론가로서 40여 년간 다양한 문학 범주를 망라해 다뤄온 김종회 교수의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문학과지성사, 2015)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인 동시에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이며, 과거 사단법인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총장, 통일문화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김환태평론문학상, 김달진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평론 활동을 해왔으며, 북한문학과 해외동포문학에 대한 꾸준한 연구로 『북한문학의 이해』(전 4권), 『북한문학 연구자료총서』(전 4권), 『해외동포문학 전집』(전 24권) 등을 엮어내기도 했다.
이번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은 제목 그대로 각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해외동포들의 문학과 휴전선 이북의 북한 체제 내의 문학 등 저자가 애정과 관심을 쏟아온 디아스포라 문학 관련 자료를 집대성한 연구서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외부 강압에 의해 자신의 삶터에서 흩어진 유대인 집단 거주지나 그렇게 이산된 상황을 지칭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을,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잃고 36년간 식민 지배의 참혹한 시기를 보내며 타국으로 이주하거나 전쟁 후 억지로 분리되어 살게 된 한민족의 역사에 대입한다. 즉,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 연구란, 이런 과정을 거쳐 각 지역에 산개된 한민족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조명하는 것이다. 저자는 연구 대상을 남북한문학과 더불어 중국 조선족문학, 중앙아시아 고려인문학, 일본 조선인문학, 그리고 미주 한인문학으로 유형화하고, 이들 작품의 연관성과 문학사적 의미, 향후 문화통합과 공동 연구의 가능성에 대해 검토해나간다.
제1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방향성에서는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며 그간 상정되어온 한국문학의 완고한 경계를 넓히는 작업을 진행한다. 이 장에서는 작품이 씌어진 언어나 지역 등을 기준으로 한국문학을 경계 짓고자 한 속문주의‧속지주의 논의를 정리한 뒤, 외형적 구분에 얽매여 ‘가부’를 따지는 것이 아닌 각 작품에 한국문학적 요소가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가를 따지는 ‘정도’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 이주한 사람들의 역사와 살아온 환경들을 짚어가며 작품들을 일별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저자는 각 지역의 문화통합의 연대를 도모하며 통합문학사를 기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제2부 문화권 범주의 확장과 문학의 실제에서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이 세계 각 지역, 특히 미주와 중앙아시아에서 개화한 결실에 주목한다. 저자는 재미 한인문학 작가들을 총 3세대로 분류한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세대와, 이민 1세대인 부모 아래 미국에서 태어나 줄곧 미국에서 성장한 2세대, 그리고 그 이후 세대가 보여주는 작품의 특성과 정서를 분석한다. 2부의 맨 마지막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려인들의 문학을 조명한다. 문호 개방 이전 구소련 체제와의 거리두기로 인해 이제껏 많은 연구가 진행되지 못하였는데, 현재 한인들의 창작이 둔화되고 많은 자료가 유실된 터라 이 지역 문학 연구가 협소해져갈 수밖에 없는 점에 대한 연구자의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제3부 북한문학의 새 이정표와 변화 양상은 주체문학론이 당의 공식 문예이론으로 채택된 이후 북한문학이 전개되어온 과정과 남북관계의 변화에 북한문학이 대응해온 방식에 대해 다루었다. 북한문학이 각 시기별로 보여준 노선의 변화와 주제로 삼아온 소재들을 일별하며 북한의 시대별 사회상을 가늠해보았으며, 한편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남한에서의 사건들이 북한문학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4부 남북한에서 함께 읽는 작가 박태원은, 제목 그대로 남북한에서 공히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아온 박태원의 작품을 통해 남북한문학 공동 연구의 가능성을 점쳐본다. 저자는 박태원 문학의 성격과 세계관을 분석하기 위해 해방 이전의 행보와 이후의 문학적 궤적을 추적한다. 박태원 소설에서 특유하게 나타나는 다양한 기법과 장치 들이 일정한 성과를 이루고 있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떠나서도 미학적 완성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월북 이후의 박태원이 쓴 문학 작품들의 가치와 의의에 새로운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저자는 “여섯 개 지역의 문학이 모두 다 자기 몫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소통이 어렵기로 금세기 으뜸인 남북한문학의 접점과 교류의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민족 디아스포라라는 좀더 큰 틀의 무대와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광복 70년인 동시에 분단 70년을 맞은 2015년 오늘, 이 비극의 현대사를 끌어안고 동서양 각지에서 꽃핀 우리의 해외동포문학을 통해 우리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맥락들을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의 역사를 바로 바라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책머리에
한국문학을 논의하는 마당에서 ‘글로벌시대’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개념을 견인한다. 글로벌시대의 어의(語義)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동시대 문학에 적용되는 시간 및 공간의 범주 구획은 점차 약화되거나 무화되어가고 있다. 8만 리 태평양을 건너 원고를 보내는 데 1초를 넘기지 않고, 어떤 궁벽한 오지에 있다 할지라도 작품만 좋으면 문단 본류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해외에서 한글로 창작이 이루어지는 여러 지역의 디아스포라 문학 또한, 문제없이 이 글로벌시대의 호활한 날개에 탑승할 수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남북한문학과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통합적 연구가 도저한 물결을 이루는 시발점이자, 하나의 뜻있는 시금석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안고 있다. 그 길은 멀고 험하지만, 마침내 우리 한민족 문학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가야만 하는 도정(道程)이다.
책머리에
1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방향성
디아스포라 문학의 가능성과 과제
한국문학의 탈경계와 세계적 확산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문화통합과 문학적 연대
한민족 문학사의 통시적 연구와 기술의 방향성
2부 문화권 범주의 확장과 문학의 실제
한민족 디아스포라 강역의 통합적 고찰
재외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과 민족의식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에 나타난 민족 정체성
대륙의 평원에 가꾼 민족문화의 텃밭
3부 북한문학의 새 이정표와 변화 양상
『주체문학론』 이후 북한문학 변화의 실상
북한문학에 반영된 한국 현대사
남한의 체제 및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북한문학의 비판 양상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의 이정표
4부 남북한에서 함께 읽는 작가 박태원
박태원 문학의 성격과 세계관
박태원의 구인회 활동과 이상과의 관계
일제강점기의 박태원 문학
해방 전후 박태원의 역사소설
월북 후 박태원 역사소설의 시대적 성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