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문학상 3회

김솔 / 소설작법

김솔

수상자: 김솔

작품: 소설작법

수상 소감:

언젠가 술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마치 밤새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부치는 일과 같지요.”
무슨 이야기 다음에 나온 말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말한 후배의 표정은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처럼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돌이켜보면 나이 마흔이 넘도록 저는 제 삶을 깊이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굳건한 신념으로 시대의 숨통을 터 준 적도 없었고, 찬란한 사랑에 이끌려 파멸을 공모한 적도 없었으며, 숭고한 인류애를 근육의 노동만으로 증명해 보인 적도, 그렇다고 죽살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처연하게 방랑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어둠에 젖은 들개처럼 음험한 책들을 기웃거리면서 저의 무덤이 될 자리를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운이 좋다면 먼지 위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바람칼에 잘려 한순간 흩어지게 되는 꿈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위를 걷기에 꿈은 너무 희미하였고 제 발바닥은 너무 뾰쪽하였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꿈으로 빚어진 자에게 불면증은 곧 불임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현재의 문학과 독서 시장에 대해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은 제가 이런 상을 받는 건 염치없는 짓이 분명합니다. 더욱이 오만하게도 수상작의 제목이 ‘소설 작법’이라니요. 저는 겨우 서너 편의 소설을 썼을 뿐인데 말입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젊은 독자로부터 최근에 메일 한 통을 받고 어렵사리 회신을 했는데, 제 수상 소식이 그를 가장 먼저 실망시킬 것 같아 너무 두렵습니다. 그래서 이 글로나마 중언부언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 글쓰기는 ‘모든 글은 고작 글에 대한 글일 따름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기 시작한 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소설 작법’의 원작자가 아니라, 수십 편의 소설들을 읽고 단장취의斷章取義한 무명의 편집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 당신의 일기장을 몰래 수정했다는 사실마저 고백합니다.

그래도 한때는 작가의 제1사명이란 “요절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파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박해와도 같은 고독을 견뎌낸 뒤, 세상의 모든 책들의 가능성을 반영한 책 한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시전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맨발로 작두를 타면서, 천문을 묻는 자들에게 죽비를 휘갈기는 삶을 상상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작두는커녕 독자의 혀를 볼 때마다 몸을 옹송그리고 가슴을 졸입니다. 글은 그저 글일 뿐이라고 간주해주시길. 그게 제 글의 적절한 독서법입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아직은 ‘예술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술의 역사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종이가 나무의 유전자를 지녔다면, 작가들은 그저 나무의 유전자를 실어 나르는 숙주에 불과한 존재일 텐데도, 그들은 여전히 마실 수 있거나 입을 수 있거나 먹을 수 있는 글들을 쓰지 않으면서 나무의 몸뚱이만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나무를 죽이는 그들의 글 때문입니다. 작가들에겐 속죄를 위한 사순절과도 같은 식목일이 국경일로 복귀된다면 제가 좀더 편안하게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
같습니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의 이름을 이곳에서 일일이 부르지 않는 까닭도 나무에게 속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도 한 톨의 씨앗으로부터 숲의 규모와 쓸모를 짐작하고 기꺼이 물과 거름을 내어준 문학과지성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95년 여름 제 생애 처음 써본 A4 250매짜리 소설을 투고하였을 때 수십 페이지에 걸쳐 친절하게 밑줄을 그어주고 맞춤법을 교정하여 등기우편으로 반송해주신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까지 서 있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존엄한 상賞들은 제 기억 안팎의 사람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것이고 그들과의 유쾌한 대화와 해프닝 속에서 이 상의 권위는 스스로 공고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상 소감을 장황하게 쓰는 것이야 말로, 밤새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부치는 일과 같을 것입니다. 제 소설보다도 더 늙고 웅숭깊은 소주잔의 바닥에서 조만간 만나 뵙지요. 감사합니다.

작가 소개: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 『살아남은 자들이 경험하는 방식』 『망상, 어語』, 장편소설로 『너도밤나무 바이러스』 『보편적 정신』 『마카로니 프로젝트』 『모든 곳에 존재하는 로마니의 황제 퀴에크』 『부다페스트 이야기』가 있다. 문지문학상, 김준성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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