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문학상 2회
김태용 / 머리 없이 허리 없이
수상자: 김태용
작품: 머리 없이 허리 없이
수상 소감:
살다 보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다,라고 시작하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많은 소설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렇게 믿으며 왔다. 다시 살고자 하는 욕망은 다시 살아도 이래저래,라는 숭고한 체념에 무릎을 꿇지만 다시 쓰고자 하는 욕망은 다시 쓰는 게 다시 사는 것이라는 체념적 숭고에 닿으려고 한다. 다시 쓰면 다시 살게 된다고? 나는 이 말에 책임을 질 수 없다. 나의 글은 어느 순간부터 다시 쓰기의 반복과 변주이지만 그것에 대한 의문과 항의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 오로지 다시 쓰는 것으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비겁하게도 그렇다. 그러니까 독자들은 계속 따져 묻고 나는 계속 다시 써야 한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 내가 나를 추궁할 수밖에 없다. 왜 너는 계속 다시 쓰고 있는가.
모든 죽음은 심장마비다,라는 문장을 한동안 적어두었다. 어느 날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죽음이 있던 것도 아니고 죽음 관념 놀이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왜 그것을 몰랐을까,라는 자책과 동시에 그 문장이 혀에 달라붙었다. 혀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떼어내기 위해 남들의 귀가 필요했다. 어떤 소설들은 첫 문장이 곰삭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작되곤 한다. 시작되자마자 끝이 나는 소설들이 대부분이지만 끝이 난 것을 알면서도 질질 끌고 가면 이게 끝이 아니라고, 위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겁하게도 그렇다. 소설은 끝을 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질질 끌고 가서 비겁과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 그게 맞을 것이다. 나의 비겁이 소설의 비법일까.
비겁이라고 말해놓고 보니, 내가 정말 비겁한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더 비겁해져야만 할까. 비겁한 인류의 엉덩이에 비겁한 나의 소설을 꽂아두는 것이 옳은 것일까. 옳은 것이라니. 무엇이 옳은 것인지 생각하면서 글을 쓴 적은 없지만 가끔 이렇게 옳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기가 아니었다면 ‘비겁’과 ‘옳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많이 기쁘고 기쁜 만큼 부끄럽고 부끄러운 만큼 또 기쁘다. 문지가 아니었다면 나와 친구들의 문학이 얼마나 외롭고 빈약했을까 생각해본다. 문지 선생님들과 편집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잘생긴 가족과 어리석은 친구들, 한낮의 독자들이 있어 계속 갈 수 있었다. 이미 접어든 길에서 때로는 비겁하게 가끔은 옳은 것을 생각하며 다시 쓰고 쓸 것이다. 밤과 손에게 키스를 보낸다. 술이 떨어지면 웃어야겠다. 퀠퀠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