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9회 - 2009
김나영 / 비평 / 「신(新)-자궁에 흐르는 세 혈맥(血脈)-김선우 론」
박성준 / 시 / 돼지표 본드 외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이 이번으로 9회째를 맞게 되었다. 이 문학상을 통해 배출된 젊은 문학인들이 2000년대 문학 공간에 불어넣은 창조적 활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많은 투고작들이 도착하여 새로운 문학인의 탄생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해주었다. 새로운 편집위원들이 동참하여 2주에 걸침 심사 과정 끝에 시와 평론 분야에서 당선작을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박성준, 김나영 두 사람은 20대의 문학적 열정과 패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한국 문학의 틈새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미학과 감수성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축하를 보내면서, 소설 투고자들을 비롯한 여러 투고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모두의 문학적 정진을 바란다.
올해 응모된 시 중 먼저 주목된 것은 정수연의 「숙련공」 외, 서동빈의 「연가곡 마리오네트」 외, 박도준의 「긍정의 힘」 외, 서지석의 「맛있는 홍대, 베이커리」 외, 김상혁의 「사랑의 기술」 외, 박성하의 「고래잠」 외, 박성준의 「돼지표 본드」 외 등의 작품이었다. 이 중 최근 시의 경향에 근접해 있어 고유의 개성이 미만하다고 여겨진 경우와, 작품의 편차가 커서 시를 완결 짓는 힘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판단된 경우를 제외하고 남은 것이 정수연, 박성하, 박성준의 시편이었다. 정수연의 시들은 전체적으로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고 일상의 단편들 속에서 시적 모티프를 착안해내어 평범한 삶의 현실을 다른 세계로 옮겨놓는 발랄함과 유연함이 돋보였지만, 화법과 어조가 기성의 시인을 연상시킨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우리’라는 복수명사의 반복적 사용이 특히 그러한 인상을 주었는데, 시적 화자로 ‘우리’가 제시된 이유와 맥락이 시 내부에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심사자들이 당선작을 쉽게 결정하지 못할 만큼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인 것은 박성하와 박성준의 작품이었다. 두 사람 모두 안정된 기량을 갖추고 있었고, 우열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어 이 중 한 사람을 택해야 하는 일이 즐거운 고민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박성하의 시는 언어의 묘미를 한껏 살린 연금술적 기술과 정돈된 탁마(琢磨)가 수려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빚어내어 순도 높은 서정성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고, 박성준의 시는 다채로운 어조를 바탕으로 사물의 이면을 투시하는 시선과 포착된 대상의 특질을 다양한 각도에서 부각시킬 줄 아는 구성력이 시의 밀도를 높이고 있었다. 오랜 논의와 숙고 끝에 우리가 최종적으로 택한 것은 신인으로서의 패기가 더 돋보인다고 여겨진 박성준의 작품이다. 박성하의 경우, 파편적인 언어의 진행을 서정성 가득한 이미지로 끌고 가는 힘이 빼어났지만 시종일관 지속되는 단조로운 톤이 당선작으로 뽑기엔 미흡한 측면으로 여겨졌다. 박성준의 몇몇 시편은 각각의 사물이 언어의 표층에서 작위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긴 했지만, 대상을 허투루 보지 않는 진지함과 숙고의 태도가, 그리고 시를 언어의 정교한 구성물로 만들 줄 아는 정밀함이 최근 시에 드물었던 시적 기량으로 여겨져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투고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리며 모두의 앞길에 문운이 깃들길 기원한다.
_이번 소설 부문 심사에서도 수준 높은 응모작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작품이 갖춘 역량과 완성도, 그리고 신인 작가로서의 참신성과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면서 여러 차례 독회를 진행했고, 그 결과 김율(「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세요」 외), 배상민(「미운 고릴라 새끼」 외), 이상건(「호모 모르뚬 선언」), 정경윤(「조용하다」 외), 정수헌(「오블로스끼」 외), 정유경(「이제 겨우 0시」) 등이 포함된 명단을 작성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지난한 과정을 거쳐 우리가 끝까지 당선 여부를 저울질했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배상민의 「미운 고릴라 새끼」는 일상적 차원에서 현대인의 삶을 규정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스스로를 짝짓기 상대를 놓고 다투는 고릴라로 착각했던 주인공의 변모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이 작품은, 문제의식 자체는 진지하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일종의 농담이나 허풍을 닮아 있어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힌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건들이 주제와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다소 작위적으로 전개되며, 간간이 거친 문장이 눈에 띈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상건의 「호모 모르뚬 선언」은 이런저런 이유로 죽은 사람들이 갑자기 되살아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산 죽은’ 자들의 출현에 의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세상, 그러나 곰곰이 뜯어보면 그들이 출현하기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세상에 대한 풍자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세상 여기저기로부터 비롯되는 이야기들을 엮어낼 수 있는 능력의 산물일 것이다. 그와 더불어 소설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호모 모르뚬 선언’을 읽으면서 지적인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풍자가 겨누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해명이 미흡하다. 마지막의 에필로그는 최인훈의 「총독의 소리」를 연상시키는데, 되살아난 총독이 갖는 문제성에 비하면 ‘산 죽은’ 자들의 그것은 단서가 약한 편이다.
정수헌의 「오블로스끼」는 아버지 김행복, 딸 장미, 아들 왕자로 구성된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가족 구성원의 이름과 달리 그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 3년 전 550kg이었던 딸이 TV에 출현해 후원금을 받은 탓에 무기력했던 아버지는 점점 방탕해지고, 딸은 점점 살이 찌고, 아들은 점점 가족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과정은 비참한 가족 이야기 이상의 상징성을 띠고 있다. 이 작품은 제목이나 인물 이름의 명명부터 흥미를 끌었으나, 러시아 소설 등에서 인유된 ‘오블로’ ‘스끼’ ‘꼬프’라는 이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이 오히려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정유경의 「이제 겨우 0시」는 유머러스하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게임을 하듯 서로 칼로 찔러 결국 아내를 죽게 하는 첫 장면을 서술하는 주인공의 어조도 유머러스하지만, 실은 아내를 찔러 죽였다고 상상할 뿐인, 다만 불면증과 그 불면증이 머릿속에 파고든 사마귀 한 마리 때문이라는 망상에 시달리고 있을 뿐인 주인공이 하루 동안 겪는 고단하고, 궁극적으로는 치명적인 삶을 서술하는 어조 역시 유머러스하다. 무거운 주제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는 능력은 분명 훌륭한 미덕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좀더 간결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 역시 타당했다.
마지막까지도 응모작들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오랫동안 토의를 거듭했지만, 아쉽게도 결론은 당선작 없음으로 낙착되었다. 응모작에 대한 기대가 큰 것은 그만큼 응모작을 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응모해주신 분들의 문학적 열정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머잖아 다른 작품으로 만나 뵙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_평론 부문의 응모작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고른 수준의 평론들이 많았다. 1차적인 선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비평의 자율성이었다. 리포트와 비평이 다르고,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비평은 특정한 정보에 대한 보고서가 아니라 창조적 글쓰기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이론들을 먼저 제시하고, 그에 맞추어 텍스트를 선택하고, 그 이론에 적합한 부분을 발췌하는 방식의 글쓰기는 비평이라고 보기 어렵다. 또한 특정 텍스트에 대해 이미 익숙한 의미 체계의 프레임을 답습하는 것 역시 생산적 비평에 미달한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내부로부터 자신의 비평적 창의력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남겨진 글은 이여름의 글과 김나영의 글이었다. 두 편 모두 수상작으로 선정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었다. 이여름의 글은 정확한 문장, 호명 방식의 유니크함,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이해의 수준 등에서 상당한 성취를 보여주었다. 글쓰기의 밀도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평가할 만한 글들이었다. 다만 진은영론에서 시인 자신이 이미 피력한 시론과 논리에 너무 의존한 점, 명쾌한 이론적 입장이 텍스트의 개별성을 읽어내는 세밀한 감각을 억누르고 있는 부분이 아쉬웠다.
김나영의 글은 상대적으로 이론에 대한 의존도가 강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행 담론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텍스트의 내부를 파고드는 비평적 감수성과 그로부터 텍스트와 텍스트의 사이의 맥락을 발견해내는 발견술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김나영의 글은 뛰어났다. 배수아 등 소설가들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글의 경우는, 대상 텍스트들의 선택과 연결의 비평적 필연성이 분명하지 않은 약점을 드러냈으나, 김선우론의 경우 기존의 김선우론에 대한 부연을 넘어서 새로운 비평적 호명 방식의 예를 높이 평가할 수 있었다. 특히 유려하고도 섬세한 문체는 비평적 글쓰기의 기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두 편의 글에 대해 망설임과 토론을 거듭한 끝에 김나영의 글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두 사람 모두의 문학적 정진을 바란다.
수상자: 김나영
장르: 비평
작품: 「신(新)-자궁에 흐르는 세 혈맥(血脈)-김선우 론」
수상 소감:
오래도록 근처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는 기억하기 버겁도록 잦은 꿈에서 깨어나고, 홀로 점점 희미해져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지하철 속에서 조는 사람과 취한 사람을, 또 어떤 날에는 자기를 외면하는 사람을 만났다.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에 행복이나 고통, 피로는 지극히 개별적인 것만 같았다. 하나 과장된 얼굴들은 가장이었을 뿐, 그들의 도드라진 어깨는 지극히 보편적인 각도로 늘어져 있었다. 그림자와 발자국은 자전처럼 일정한 얼룩을 남기고 사라졌다. 불규칙 속의 규칙들은 습관적으로 나타났다. 그런 날들은 미완의 데칼코마니 같아서. 꼭꼭 눌러 접었던 나날이 언젠가는 펼쳐져 미지의 무늬를 드러내리라고, 나는 잠시 상상해보았을 뿐이다.
나의 비틀린 그림자와 뭉개진 발자국을 가능성으로 보아주신 『문학과사회』의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분들의 믿음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과 성실을 다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지루하고 고된 길이라 여기면서도 여기까지 기꺼이 걸어온 것은,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이혜원 선생님 덕분이다. 놀이가 언제 끝나든 보채지 말고 몰두하라 말씀해주시는 김명인 선생님이 곁에 계셔서 늘 든든하다. 진실은 불온한 것들에 있다고 일러주셨던 서종택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진정 기쁘다. 믿음으로 묵묵히 지켜봐주시는 홍창수 선생님의 마음으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
부모님은 내 긍정의 최대치다. 무엇보다 내게 뭐든 잘 먹고 어디서든 잘 어울리고 쉽게 병들지 않는 몸과 마음을 주신 당신들에게 무슨 말을 더할 수 있을까. 신발을 벗어놓는 모양마저 닮은 내 동생들, 다연과 동하가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세상의 외로움들과 거리를 둘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심장의 밀도와 온도를 온몸으로 감각하게 하는, 종원과 함께여서 나의 매일이 행행(行幸)의 연속이다.
이 자리에서 차마 다 부를 수 없는 고마운 친구들과 선배, 후배들의 이름은 마음에 새겨 넣는다. 나의 시인은 열거는 사랑의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들을 방법 없이 사랑하므로.
왜 문학을 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한 대답은 “좋으니까”라는, 사뭇 무성의하게 들릴 법한 한마디였을 뿐이다. 이제와 자문자답,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뿐이다. 문학을 향한 나의 이 좋음을 이제는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를 고심해본다. 많이 두렵지만 이 긴장이 앞으로 나를 이끌어 갈 동력이 될 것임을 안다. 재미있는 한 줄의 문장으로 당신의 심중을 관통할 수만 있다면. 진실된 한 편의 글로 당신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이 설렘의 근원에 대해 주로 부지런히, 때로는 시큰둥하게, 기어코 용기 내어, 관찰하고 질문하고 고백할 것이다. 그 두근거리는 고통의 끝에 가까스로 눈물 한 방울 맺힌다면, 참 좋겠다.
작가 소개:
1983년 경북 구미에서 출생하였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를 졸업하였다.
수상자: 박성준
장르: 시
작품: 돼지표 본드 외
수상 소감:
너는 운명을 못 견디고 죽는다던 아이. 그러나 하루 늦게 태어나 자궁 속에 변을 보고 나온 아이. 아이를 때려 울리기보다 입속에 있던 똥을 먼저 제거했다지. 울음보다 배설욕이 먼저였던 아이. 어쩌면, 정말 우는 법을 알았던 아이. 주인집 그랜저에 글을 쓰겠다고 벽돌을 깨서 낙서를 하고 어머니 또 조아리시고, 그런 아이. 불자동차 그리기 대회에서 누추한 크레파스 탓에 불길을 파랗게 그린 아이. 이건 가스가 터져서 난 불이에요. 뺨을 때린 손바닥을 또 붉은색으로 칠했던 아이. 거짓말과 손톱을 좋아하는 아이. 우우 오줌소태 걸려 밑이 시려워. 누이가 버리고 간 생리대 위에서 유년을 소진한 아이. 제 이름을 처음 베껴 그렸던, 그날을 생일이라고 믿고 사는 아이. 분명하지 않은 아이.
가지 마! 너에게 나, 다 줄게. 이제 나 사물과 간통하고 싶어. 몰래, 당장! 미안해. 이건 병이지. 병! 병? 어머니, 내 병든 혀를 만들어주신 어머니!울지 마세요. 아버지 괜찮아요. 그래 누나들도 아프지 말고 살아요.
고마워, 승일아. 네가 있어서 행복하다. 태진아, 우린 서로 다 알고 사는 사이잖아. 안양예고 은사님들과 K 선생님 잊을 수 없는 시간입니다. 안양예고 C, L, G, 엔젤4와 P, S, 명지대에 고민하는 병량 씨를 비롯한 P, Y, H, K 우리 조금만 더 미치자. 그리고 경희대 국문과에 김재홍 선생님, 김종회 선생님, 최혜실 선생님, 이성천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경희대에 많은 선후배님들 모두 모두 고마워요. 원경 누나, 빈이 형 우리 여행 꼭 가요. 또 문창단 식구들 M, J, L, L, B, N 형들, B, P, P 누나, 후배 K, L 세미나 즐거웠어요. 그리고 안녕 내 영원한, 영원히야! 우리끼리만 서로 아는 이니셜들 미안합니다. 다 적고 싶은데 지면이 짧아요.
끝으로 제 ‘심장을 태워주시고’ 제 눈에서 아픈 곳을 찾아 읽어주시는 박주택 선생님 감사합니다. 제가 못나고 늘 까불거리느라 마음만큼 잘 못하고 지내왔습니다. 앞으로 그 은혜, 좋은 글 쓰면서 갚아나가겠습니다. 또한 제 시를 믿고 뽑아주신 문학과지성사의 여러 선생님들께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작가 소개:
1986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