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8회 - 2008
권온 / 비평 / 「미치광이의 이야기, 오 지저스!―황병승론」
『문학과사회』는 지난 2002년 이후 한국문학의 새로운 전위를 발굴하기 위해, ‘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제정하고, 그동안 소설가 정이현, 한유주, 박혜상, 최제훈, 시인 하재연, 최하연, 최원준, 비평가 이수형, 허윤진, 김대산 등 뛰어난 신인들을 배출한 바 있다. 이들은 2000년대 문학의 새로운 호흡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한국문학을 다른 차원으로 견인해나가고 있다.
이번 제8회 신인문학상 공모에서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었고, 응모자의 수뿐만 아니라, 응모작의 수준과 내용에서도 평균적인 수준을 능가했다. 우리는 ‘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의 문학을 향한 열정에 경의를 표하며, 이 신인상이 한국문학의 전위를 발굴해왔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심사에 임하였다. 각 장르 2차에 걸친 심사 독회는 물론 최종적인 당선작을 결정하기 위한 3차의 최종 회의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기 위한 집중적인 노력이 이어졌다. 2차 독회를 거치면서 수상작 후보로 거론될 만한 작품들을 선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으나, 최종 회의에서 각 장르별 수상작을 결정하는 것은 좀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각 분야의 수상자를 매회 배출하여 신인상의 제도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것 못지않게, 이 상이 가진 2000년대 문학 공간에서의 상징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열띤 토론을 거치면서 결국 비평 부문에서만 수상자를 내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시 부문과 소설 부문에서 새로운 창작 스타일과 어느 정도의 방법적 완성도를 선보인 작품들이 있었으나, 기존 문법에 새로운 충격이 될 만한 작품을 발견할 수 없었다. ‘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은 한국문학의 평균적인 수준에 도달한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미학적 지형에 창조적인 균열을 낼 만한 작품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평 부문에서 황병승 시에 대한 창의적이면서 유연한 독법을 보여준 권온씨의 「미치광이의 이야기, 오 지저스!―황병승론」을 선정하게 된 것은 이번 신인상 심사의 수확이자 보람이 되었다. 젊은 시에 대한 섬세한 분석적 안목과 텍스트 친화적인 문체를 가진 비평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권온씨는 우리 비평계에 새로운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한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권온씨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며, 신인문학상에 관심을 가져준 투고자 여러분과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_시 부문에서 일정한 수준의 기량과 개성을 보여준 것으로 인정되는 투고작들은 황혜경의 「서로에게 헌화가」 외, 남현지의 「국도」 외, 이은성의 「아침과 저녁」 외, 박성준의 「촛불미용사의 피부호흡」 외 등 작품이었다. 우선 황혜경의 시들은 혼종적인 상상력과 화법이 상당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고, 시적 개성 또한 인상적이었지만, 그것을 구조화하는 데 있어 창조적인 구성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남현지의 시들은 정제된 시적 언어들이 개성적인 감수성과 결합하여 남다른 시적 매력을 안겨주었지만, 간혹 삶에 대한 감상적인 시선이 그 매력을 약화시켰다. 이은성의 시들은 독특한 발상법과 시선이 낯선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었는데, 관념적인 어휘들이 그 상상적 모험을 무겁게 만들었다. 박성준의 시들은 일상적인 장면들에서 다채로운 상상적 이미지들을 길어 올리는 재능이 인상적이었지만, 어떤 시들은 최근 젊은 시인들이 보여준 이미지들과 너무 가까웠다.
이와 같이 심사 독회를 통해 추린 작품들은 각각 분명한 장점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수 없는 단점들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 단점이 한국 시를 새롭게 형성해갈 의미 있는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었다면,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수상작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끝내 수상작을 찾지 못한 것은, 그 단점을 넘어설 만한 과감한 시적 개성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시는 2000년대 초반 이후의 젊은 시들이 보여준 시적 개성과 에너지를 다른 방식으로 재배치할 수 있는 신인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다. 바로 앞의 선배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낯설게 만드는 시적 모험을 기대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우리는 올해의 투고작들이 보여준 일정한 문학적 성취를 존중하면서 그 성취가 보다 과감한 시적 개성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조금 더 기다리는 마음으로 수상작을 내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하고자 한다. 투고해준 모든 분들의 시적 정진을 바란다.
_올해 소설 부문 심사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현대적인 감수성과 개성적인 문체를 갖춘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문학에 새로운 호흡을 불어넣었던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들에 비추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여러 번에 걸쳐서 독회를 가지며 작품을 선별했고 심사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응모작 가운데 우리가 주목했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이효정씨의 「오늘의 재발견」은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다양한 매체들이 우리의 환경을 구성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삶이란 텍스트로 구성되거나 치환될 수 있다는 발상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오늘의 재발견」은 현대 미디어인 UCC의 배후에 힘겹게 존재 증명을 하고 있는 삶의 위상을 포착하는 안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새로운 에피소드가 덧붙는 플롯은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또한 ‘나’ ‘랑’ ‘연’ 등으로 불리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감각적인 주제에 비하면 평면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에 조금 더 입체감을 부여했다면 작품 중간에 삽입된 잠언풍의 문장들과 더욱 잘 어울리며 작품의 주제를 구체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김종우씨의 「마더텔레포트」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이야기 지어내기를 좋아하는 엄마가 주인공인데, 엄마는 일기장에 온갖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허구적으로 각색해서 적어놓는다. 허풍선이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일들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던 전화기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으로 함몰되어 사라진 이야기꾼, 또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다가 결국에는 이야기에 잡아먹힌 이야기꾼에 대한 소설인 셈이다. 소설 쓰기에 대한 미적 자의식이 작동한 작품인데, 발상의 신선함에 비해 구성의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한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들에서도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기묘한 소재 쪽으로 작가의 생각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율씨의 「아르바이트」는 전화로 상품을 판매하는 텔레마케터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돈된 문장과 소설 기법에 대한 자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괄호 속에 처리하여 지문 속에 배치하는 기법은 작품 속에 복화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상품 구매를 권유하는 전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제시한 부분은 현대 소비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몽타주로 읽혔다. 주인공들은 초당 1초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양한 물건을 소개하지만 결국 하나도 팔지 못한다. 그들을 고용한 여자도 물건이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일을 시키는 것일까, 달리 말하면 텔레마케팅이란 어떠한 의미와 목적을 갖는 것일까. 무척이나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작품에서는 답변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욕망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소설적 장치로서만 활용된 점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장벽씨의 「카르마Karma-표본」은 나비 표본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네 개의 장면이 반복적으로 교차 편집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표본을 만들기 위해 비누로 손을 씻는 장면, 전화를 걸어 자장면을 주문하거나 배달을 독촉하는 장면,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집에 들어와 눌러 앉는 장면, 그리고 나비 표본을 만들 때의 느낌을 제시하는 장면.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지만 섬세한 묘사가 작품의 시공간과 인물들의 심리를 중층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비누, 오지 않는 자장면, 불쑥 난입한 여자, 표본이 된 나비 등은 모두 운명의 메타포로서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상의 균열과 운명의 표정, 그 미세한 차이와 반복이 조금만 더 섬세하게 드러났으면 하면 바람을 가져본다. 인서트 핀이 나비의 몸통을 관통할 때 생기는 미묘한 느낌과 소리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각으로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 한동안 남아 있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여러 번의 독회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논의를 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심사평을 쓰는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응모해주신 예비 작가들의 문학적 열정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_비평 부문에는 상당히 수준 있는 글들이 투고되어 심사자들을 크게 고심하게 했다. 특히 마지막까지 고려된 몇 개의 작품들은 주로 2000년대 이후에 활동을 시작한 새로운 시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이른바 미래파 논쟁과 함께 일군의 젊은 시인들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 현대시의 지형이 비평가 지망생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검토의 대상이 된 것은 권온씨의 「미치광이의 이야기, 오 지저스!―황병승론」과 김영희씨의 「미래를 소환하는 목소리의 심급―김경주, 황병승, 김행숙의 시와 ‘목소리의 지형도’」였다. 전자의 경우는 황병승의 시 세계를 부끄러움, 어린이, 거울, 기독교, 이상 네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재구성하고 있는데, 황병승의 시편들에 대한 분석적 시선과 맥락적 이해는 훌륭한 시 비평가로서의 자질을 예감하게 한다. 다만 해석들 전체를 통합하는 관점이 좀더 뚜렷이 부각되지 않아 글이 때로 산만해지고 결론 부분도 다소 미진하게 느껴지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후자는 바흐친의 다성주의 이론을 배경으로 하여 현재 주목받고 있는 세 명의 시인들의 시 세계에서 전통적인 서정적 자아의 단일한 목소리에서 이탈해가는 움직임을 읽어낸 글로서, 분명한 이론적 관점과 비평적 감수성, 안정된 문장을 높이 살 수 있다. 다만 이론적 관점이 뚜렷하다 보니 시인들의 시 세계가 일면적으로 다루어진 측면이 있고, 그러한 관점이 실제 분석을 통해 충분히 정당화된 것인지 다소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다. 이러한 고려 끝에, 권온씨의 황병승론을 당선작으로 선정한다. 앞으로 활발한 비평 활동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수상자: 권온
장르: 비평
작품: 「미치광이의 이야기, 오 지저스!―황병승론」
수상 소감:
수많은 낮과 밤을 보내면서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했다. 해명 없는 부적절한 행동들은 걷잡을 수 없는 오해를 낳았고, 나는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렸다. 세상은 나의 졸렬한 열등감을 눈감아주지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 풀어야 할 난제였다. 한때 「존재의 이유」라는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제야 나도 존재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아 기쁘다. 나는 본문을 써야 할지 주석을 달아야 할지 알지 못했다. 주석을 다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욕심이겠지만 본문만큼 아름다운 아니 본문보다 더 아름다운 주석을 달고 싶다. 언젠가 기형도의 시를 해설한 김현 선생의 글에 감탄한 적이 있다. 작품보다 더 작품다운 평론 혹은 비평을 나의 글이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마움을 전해야 할 시간이다. 먼저 나의 가족을 생각한다.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아버지. 특히 내가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된 근원인 아버지께 애증이 교차하는 영원한 존경을 보낸다. 다음으로 나의 지도 교수이신 최동호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분에게서 나는 학문과 예술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이 최우선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시적 감수성을 일깨워주신 산정(山頂)의 시인 조정권 선생님을 마음에 새긴다. 나는 선생님의 과분한 애정을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간직할 것이다. 그 밖에 아둔한 나를 이끌어주신 여러 선생님들과 선후배 동학 여러분께 큰절을 올린다. 끝으로 나의 추루한 글을 뽑아주신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선생님들께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진력을 다하여 좋은 글을 쓰는 것만이 그분들께 보답하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평론가, 비평가가 되고 싶다.
작가 소개:
1974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국어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